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영악한 건 부모 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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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인성 교육보다 부모들의 인성 교육이 더 필요한 시대


 한국에서 심심하면 속보로 등장하는 뉴스 중 하나가 '청소년 폭력'과 관련한 뉴스이다. 오늘 이 글을 쓰는 8월 4일은 청소년 폭력과 조금 접근을 다르게 해야 하는 사건이 보도되었다. 그 사건은 '고등학교에서 성추행을 일삼은 남교사'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건이었는데, 듣는 내내 정말 기가 막혔다.


 더욱이 그 고등학교의 교사는 학교의 여학생들에게 성추행을 한 것이 아니라 학교 내의 동료 여교사에게도 똑같이 성추행했다고 한다. 모든 교사가 그렇게 최악 최저의 빌어먹을 인간은 아니겠지만, 이렇게 소수라고 말할 수 없는 빌어먹을 인간이 학교 선생님이라는 사실에 '경악'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정도다.


 이번 사건으로 모든 교사를 비판할 수 없겠지만, 학교에서 일어나는 추태는 여전히 심각한 수준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비판할 수밖에 없다. 과거 청소년 사이에서 벌어지는 학교 폭력의 심각성이 사람들 사이에서 문제가 되자 교육부는 학교 폭력 근절을 위해 움직였지만, 학교는 여전히 새까맸다.


 학교 폭력 당시에도 교장 선생님을 비롯한 일부 선생님이 학교 위신을 운운하면서 학교 폭력을 조용히 넘어가려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 서울 한 고등학교의 교사가 벌인 일도 교장 선생님이 조용히 넘어 가버리자 상황이 극으로 치달아버렸던 거다. 도대체 우리 학교는 왜 이렇게 되어버렸을까?


ⓒ위키피디아[각주:1]


 흔히 요즘 사람들 사이에서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정말 영악하기 그지없어서 손을 쓸 수가 없다.'고 말한다. 집단 따돌림이라는 말이 단순히 중학교 이상의 고학년이 아니라 초등학교에서 사용될 정도로 아이들이 집단 폭력을 만드는 일은 하루가 더 빨라지고 있다. 심지어 유치원에도 발생한다고 한다.


 이런 일이 너무 흔하게 벌어지자 사람들은 하나둘 입을 모아서 '인성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아무리 인성 교육을 주장하더라도 학교는 바뀌지 않았다. 인성 교육의 중요성이 사회 각지에서 목소리가 커지자 학교에서 시행되어버린 건 인성 평가였다. 이제는 인성도 사교육을 하자는 것이다.


 참, 어떻게 머리를 굴리면 그런 바보 같은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분명, 우리가 아직도 학교에서 인성이 똑바로 자리를 잡는 모습을 보기 어려운 이유는 이 탓이다. 이렇게 엉뚱한 방향으로 해결책을 모색하여 책임을 일부 가해 학생에게 지우고, 오히려 피해 학생을 나무라니 어떻게 바뀔 수 있을까?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요즘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영악한 이유로 난 '부모의 영악함'을 이유로 지적하고 싶다. 부모가 어릴 때부터 아이에게 '저 아이와 놀지 마.' 하면서 차별을 가르치고, 아이에게 편견을 심어주면서 이미 아이들은 폭력을 만들 준비를 가정에서 철저히 가르치기 때문이다.


ⓒ학교의 눈물


 내 아이가 남보다 뛰어나기를 바라고, 내 아이가 이상적인 정답을 선택하기를 바라는 욕심은 부모의 당연한 욕심이다. 어떤 부모가 내 아이가 다른 아이보다 못하기를 바라고, 내 아이가 오답을 선택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할까? 그래서 어릴 때부터 교육에 힘쓰고, 힘이 되는 한 좋은 학원에 보낸다.


 그런데 문제는 이 과정에서 발생한다. 어릴 때부터 아이를 닦달하는 부모는 아이가 어떤 마음으로 지금 자신이 시키는 일을 하는지 모를 때가 많다. '나중에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에 취업하려면 엄마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해!'라며 나무라면서 지금 아이가 어떤 마음을 품은 지 보려고 하지도 않는다.


 처음에는 부모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노력하던 아이는 점점 칭찬보다 비난을 더 많이 받게 되면서 주눅이 들고, 우울증과 낮은 자존감으로 이어지면서 남을 괴롭히는 일에 손을 뻗게 된다. 자신보다 약한 아이를 괴롭히면서 우월감에 빠지고, 학업으로 쌓인 스트레스를 폭력으로 풀게 된다.


 최근 벌어지는 학교 폭력의 가해자가 공부를 못하며 가정 해체를 겪은 청소년이 아니라 공부를 잘하고 가정에도 문제가 없는 청소년이 늘어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겉으로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이미 속은 심각하게 뒤틀려 제대로 된 좋은 사회인이 되기 기대하기 어려운 청소년인 거다.


ⓒ학교의 눈물


 글을 쓰는 조금 전에도 다음 뉴스에 '10대 남녀 3명, 또래 여학생 집단 폭행… 피해 학생 중태'[각주:2]이라는 제목이 달린 기사를 읽어볼 수 있었다. 10대 남녀 3명은 단순히 길을 가다 쳐다봤다는 이유로 피해 학생을 중태에 빠질 정도로 구타한 것인데, 이는 일부 망가진 10대 청소년의 수준이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준다.


 해당 사건 기사를 읽어보니 남학생은 학교에 다니지 않았다고 한다. 아마 이 기사를 읽으면서 사람들은 '역시 가정에 문제가 있는 아이가 제일 위험해.'라고 판단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단편적인 이야기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청소년 문제와 학교 문제를 폭넓게 볼 필요가 있다.


 가정불화를 통해 마음이 다친 아이들이 쉽게 폭력에 빠지기도 하지만, 부모의 지나친 욕심으로 마음이 다치는 아이들도 쉽게 폭력에 빠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특히 공부를 잘 한다는 이유만으로 만들어진 가짜 모범생은 이후에도 좋은 성적으로 좋은 대학에 가고, 학교 교사가 될 가능성도 있다.


 2년 전에 방영된 드라마 <학교 2013>에서 "부모가 공부만 잘하면 된다고, 다 필요 없다고 가르치니까 저 모양이 된다고. 우리가 지금 뭘 박에 보내는 건지…."라고 말하며 혀를 차는 선생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그 모습은 우리가 부정할 수 없는 현재이자 오늘까지 이어지는 모습이었다.



 '영악하다.'는 말은 바로 그런 아이들에게 사용될 수 있다. 교묘하게 다른 아이를 괴롭히고, 교묘하게 동료 직원을 괴롭히는 사람은 모두 한결같이 그런 사람이다. 이런 사람을 만든 그 출발점을 찾아보면 언제나 부모를 찾을 수 있다. 부모부터 그런 몹쓸 짓과 가치관을 철저하게 가르쳤기 때문이다.


 남과 언제나 경쟁해야 하고,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우리 사회에서 그렇게 가르치지 않는 게 손해일지도 모른다. 공부를 잘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고, 사람이 착해야 한다고 말하는 일은 바보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솔직히 글을 쓰는 나도 그런 욕심을 100% 거부하기 너무 어렵다.


 그래서 좋은 부모가 되는 일은 어렵다고 생각한다. 좋은 부모가 곧 착한 부모라는 수식어를 만족하게 하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부모가 개인의 욕심을 버리고, 진짜 아이를 위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일은 한 사람으로서 실천하기가 너무 어렵다. 더욱이 사회 또한 그런 사회가 되지 못한다.


 그런 까닭에 우리 사회는 쉽게 바뀌지 못하고 있다. 내 아이에게 공부가 아니라 자유를 가르치려고 하면 주변 부모가 나서서 '왜 물을 흐리느냐? 당신 아이 때문에 내 아이까지 공부 안 하면 어쩌려고 그러느냐?' 하고 따지는 시대다. 청소년 범죄가 더 영악해지는 이유는 이런 부모 탓이 아닐까?


[문화 이야기/방송과 행사] - 학교 2013이 우리 사회에 남긴 마지막 메시지

[문화 이야기/방송과 행사] - 학교 2013이 보여준 부모의 잘못된 자식 사랑

[문화 이야기/독서와 기록] - 혹시 학교의 눈물을 아직 기억하고 계신가요?

[시사 이야기/학교와 교육] - 학교의 눈물을 닦기 위해 어른이 알아야 할 것



  1. 학교 이미지 : https://goo.gl/jHDziN [본문으로]
  2. 연합뉴스 '10대 남녀 3명, 또래 여고생 집단폭행... 피해학생 '중태' : http://goo.gl/UFMdYD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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