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학교의 눈물을 아직 기억하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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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에게서 잊혀지고 있는 학교의 눈물, 아직 학교의 눈물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2013년 1월 SBS에서는 《학교의 눈물》이라는 스페셜 다큐 프로그램이 방송되었다. 《학교의 눈물》이 우리에게 보여준 학교 폭력의 진실은 당시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학교 폭력을 일으키는 아이는 무조건 공부를 못해 겉도는 아이가 아니라 공부를 잘하는, 반장과 학생회장까지 하는 상위권의 아이가 일진이라는 사실에 많은 사람이 두 눈을 비비며 보았을 거다.


 그리고 《학교의 눈물》이 보여준 아이들이 어떻게 망가지고 있는가, 어떻게 아이들의 마음이 병들고 있는가, 어른의 잔인한 편견에 아이는 어떤 식으로 엇나가고 있는가… 등의 많은 문제를 보여주었다. 단지, 문제를 보여주는 것만이 아니라 어른이 모르는 아이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어른은 어떻게 아이에 대해 착각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며 '해결을 위한 방책'도 함께 고민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이 프로그램이 방송된 이후 많은 사람이 '어른이 노력해야 한다', '어른이 바뀌어야 아이도 바뀔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했고, 교육부는 학교에 심리 상담 선생님을 배치하는 정책을 비롯해 학교 폭력을 줄이는 동시에 아이들의 쉼터가 될 수 있는 공간을 학교에 마련하고자 노력했었다. 아마 그 당시에 이 프로그램과 큰 충격을 줬던 몇 학교 폭력에 대한 기사를 읽은 사람은 이 일을 기억하고 있을 거다.


 그러나 우리 학교는 예나 지금이나 바뀐 것이 없다. 교육부에서 실시한 심리 상담 선생님을 배치하는 제도는 불과 1년도 채 되지 않아 지원이 끊기면서 사실상 폐지 수준에 들어가버렸고, 아이들의 인성과 바른 마음을 위해 주목받던 대안학교는 조금씩 귀족학교로 변해가며 그 본질을 잃어버리고 있다. 참, 돈이 들어가게 되면 언제나 이렇게 변질되는 현실이 착잡하다.


 《학교의 눈물》이 방송되고 많은 자책 섞인 반성의 목소리가 나왔었지만, 지금은 많은 사람이 '뭐야? 무슨 일 있었어?'라는 말을 할 정도로 이 일이 무덤덤해졌다. 다시 한 번 더 반복되는 그런 슬픔에 학교는 여전히 눈물을 흘리고 있고, 그 눈물에는 스스로 상처를 입히고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아이가 있다. 그리고 그 눈물은 학교의 눈물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눈물이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학교의 눈물, ⓒ노지


 나는 얼마 전에 《학교의 슬픔》이라는 책을 읽다가 '혹시 지난번에 방영되었던 《학교의 눈물》은 도서로 옮겨지지 않았나?'라는 생각에 미처 인터넷 서점에서 '학교의 눈물'로 검색을 해보았었다. 아니나 다를까, 역시 그 프로그램은 책으로 나와 있었는데… 나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인터넷 서점 카트에 넣어 책을 구매했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학교의 눈물》을 읽고 쓰게 되었다.


 책 《학교의 눈물》은 우리가 TV 방송으로 보았었던 《학교의 눈물》보다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읽어볼 수 있었다. TV로는 볼 수 없었던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서 아이들을 만나고, 천종호 판사가 보여준 아이들의 모습과 부모님의 모습, 그리고 한 명의 부모로서 PD가 어떤 식으로 학교 폭력의 피해자 혹은 가해자가 되어 있는 아이와 부모의 모습을 보았는지… 등 여러 이야기를 말이다.


 단지, 그것만이 아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아이가 어른의 잔인한 행동에 어떤 식으로 상처를 받고, 어떤 식으로 자신에게 상처를 주고, 어떤 식으로 타인에게 고통을 주는지부터 시작해서 학교 폭력의 시발점은 무엇인지를 자세히 알 수 있었다. 또한, 일방통행식의 이야기가 아니라 책을 읽는 동안 긴 한숨을 내쉬며 '어떻게 해야 할까?'는 질문을 던지면서 책을 읽을 수 있었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상당히 긴 시간 동안 생각의 늪에 빠졌었다. 책의 내용은 한때 학교 폭력 피해자였던, 가정 폭력 피해자였던, 학교를 저주했던, 세상을 저주했던… 내게 끊임없이 생각하게 하였다. 한숨을 쉬면서도, 눈에 눈물이 맺히면서도… '그때 내게 이런 일이 있었다면… 바뀔 수 있었을까?', '왜 어른은 지금도 문제 해결을 하려고 하지 않는 걸까?'는 질문을 던지게 했다.


 특히 지금처럼 군대 가혹행위만이 아니라 여러 곳에서 사회 폭력도 볼 수 있는 이 시기에 《학교의 눈물》이라는 책에서 읽을 수 있던 내용은 1년 6개월 전에 보았던 그때와 달리 더 심각하게 다가왔다. 아직도 우리가 제대로 문제 해결을 하지 못하고, 외면만 하고 있기에 학교의 눈물은 우리 사회의 눈물이 되어버렸으니까. 지금도 많은 사람이 그 눈물 속에서 밤을 지새우고 있으니까….


판사 : 너희들 보니까 일진이네. 부모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부모 : 제가 볼 때 우리 아이는 일진과는 전혀 관계 없는 걸로 보고 있거든요.

판사 : 솔직히 이야기해봐, 아버님한테. 네가 일진인지 아닌지.

아이 : 일진 아닙니다.

판사 : 그럼 왜 피해자들이 그렇게 순순히 너희에게 돈을 주나?

아이 : 나이 차이가 좀 나니깐 무서워했던 점도 있었어요.

판사 : 일진입니까? 아닙니까?

부모 : 아닙니다. 절대 그런 쪽으로 빠질 애가 아니거든요.

판사 : 빠진 애가 아니고요. 이 아이들이 그렇게 논다니까요. 자기들끼리 무리 지은 게 일진 아닙니까! 그걸 모르면 아이 교육 방침을 어떻게 세울 거예요? 어떻게 교육시킬 건지 이야기해보세요.

부모 : 제일 첫째가 인성교육이겠죠.

판사 : 그게 틀린 거예요. 집단 따돌림 같은 경우에나 인성교육 하지요. 일진 아이들은 그렇게 교육시키는게 아닙니다. 지금 만나는 친구들을 못 만나게 해야 돼요!! 부모님 앞에선 착한 아이죠? 하지만 저 아이들이 무리를 지으면 두려움이 되는 겁니다. 그게 바로 일진입니다. (p34)


 위에서 읽을 수 있는 짧은 이야기는 책의 초반부에서 읽어볼 수 있는 부분이다. 이처럼 아이나 부모가 스스로 '잘못'이라고 모르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학교 폭력은 대체로 그런 식의 잘못된 가치관이 발단이 되어 발생하고, 끊임없이 반복되며 누가 '그건 명백한 잘못이다.'라고 지적해주지 않는 한 멈추지 않고 그 수위는 더 높아지기만 한다.


 군대에서 일어난 가혹 행위도 마찬가지다. 스스로 잘못이라고 인정하지 않기에, 그것이 군 생활이라는 말도 안 되는 변명을 가져다가 붙이기에 버젓이 자행되는 거다. 우리 사회는 하나부터 열까지 피해자의 눈물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그 눈물은 우리 사회를 점점 더 병들게 하고, 많은 사람에게서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와 희망'을 빼앗고 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외면하고자 해서도 안 되고, 철저히 '잘못이 없다.'라고 말해서도 안 된다. 바뀌지 않으면, 우리 사회의 눈물은 절대 옅어지지 못할 것이다. 《학교의 눈물》이 방영되고 1년 6개월가량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바뀐 건 하나도 없다. 그래서 나는 이 글에서 또 한 번 이야기하고 싶었다. '학교의 눈물은, 아이의 눈물은, 지금도 어른의 잘못으로 반복되고 있다.'라고….



 얼마 전에도 10대 가출 소녀들이 20대 어른의 회유에 넘어가 성매매를 하다 자신의 후배를 데리고 와서 똑같이 고통을 주고, 그 후배가 죽어버리자 시체까지 유기한 일이 있었다. 그 일은 특수한 사례가 아니다. 제대로 잘못을 고치지 못한 아이가, 제대로 상처를 치유하지 못한 아이가 여전히 우리 학교와 사회에는 많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아이는 비참한 어른으로 성장해버린다. 이게 진실이다.


 여전히 학교의 슬픔은, 학교의 눈물은 현재 진행형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다시금 이 책을 읽으면서 학교의 눈물을 마주하게 된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게 있어 학교란, 그냥 단순히 즐겁게 웃고 떠들며 지냈던 곳이 아니다.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떠안은 곳이기도 하고, 지금도 그 시절을 떠올리면 눈물이 맺히는 곳이다.


 그래서 나는 책을 읽는 동안 많은 울분이 터져 나왔다. 왜 어른은 아이의 문제를 그렇게 가볍게 보는지, 왜 아이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지, 왜 아이의 상처를 대수롭지 않은 일로 여기는지…. 지금도 많은 어른이 그런 식으로 아이의 문제를 받아들이고, 성적과 겉모습만을 보며 '우리 아이는 절대 그런 아이가 아니다.'라고 철석같이 믿으며 현실을 부정하고 있다.


제보 전화를 걸어온 가해 학생 가족들에게 또 한 가지 특이한 공통점이 있었다. 무의식중에 자신의 아이를 피해자라고 표현하고, 상대편 아이를 가해자라고 말한다는 점이었다. "가해자 부모들이 합의금을 너무 과하게 요구해서…"라거나 "그 가해자 아이의 진술서를 보니…"라는 식이다. 우리가 아무리 "피해자 부모님 말씀이죠?" "아, 피해 학생의 진술서요"라고 지적을 해줘도 "네, 맞아요."하고는 또 피해 학생을 가해자라고 말하곤 했다. 자신의 아이가 가해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서 일까? 아니면 조사과정에서 억울했던 점 때문에 스스로를 억울한 피해자라고 느끼는 것일까? 한 명도 아니고 여러 명의 가해 학생 부모들이 똑같은 실수를 하는 것을 보며 우리는 소년법정에서 깨달았던 섬뜩한 질문을 다시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우리 아이가 누군가를 괴롭히거나, 학교폭력 가해자가 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예상치 못한 이런 질문이 현실로 바뀌자 부모들이 무척 당혹스러워 하고 있다는 사실을 제보전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당혹감은 아이가 연루된 학교폭력 사건을 현명하게 해결하는 데 걸림돌이 될 것이 분명했다. 실제로 자신의 아이를 무의식중에 피해자로 언급하는 많은 가해 학생의 부모는 학교폭력자치위원회의 결과에 불복하고 피해 학생 부모들과 더 큰 갈등을 겪고 있었다. "내 아이는 절대 그런 짓을 할 리가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으니 아이를 학교폭력 회복 프로젝트에 참여시킬 생각도 전혀 없었다. 잘못한 것이 없으니 바로잡거나 회복할 것도 없다는 의미였다. 학교폭력을 둘러싼 현실은 점점 더 명확해졌지만, 우리가 구상하는 학교폭력 회복 프로젝트는 점점 더 짙은 안개에 휩싸여갔다. (p66)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책 《학교의 눈물》은 방송으로 보았던 《학교의 눈물》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이의 시선으로 볼 수 있었던 이야기와 함께 관찰자 시선에서 볼 수 있었던 이야기를 읽어볼 수 있어 좀 더 그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를 가슴으로 알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어른들이 모르는 아이들의 세계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알기 위해서, 부모라면 마땅히 알아야 할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기 위해서 이 책 《학교의 눈물》은 꼭 읽어보라고 말하고 싶다. 절대적으로 지금 이런 시대를 사는 우리이기에 이 책은 반드시 읽어보아야만 하는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모든 문제가 있는 아이의 원인에는 문제가 있는 부모가 있다. 이 사실을 부정하고 싶겠지만, 이건 명백한 진실이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나는 어떤 어른이었는지, 나는 어떤 아이였는지, 나는 아이에게 어떤 부모였는지를….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잘못을 보고, 고치기 위해서 노력해야만 한다.


 《학교의 눈물》은 그 과정에서 훌륭히 멋진 교과서가 되어줄 것이다. 방송을 보지 못했다면, 지금 당장 책을 구매해서 읽어보도록 하자. 이 책에서 읽을 수 있는 게 진짜 '현실'이라는 이름표를 붙일 수 있는 학교의 모습이자 우리의 모습이다. 마지막으로 이전에 방송으로 《학교의 눈물》을 보고 쓴 글의 링크를 남긴다.


[문화 이야기/방송과 행사] - 전 학교 폭력 피해자가 본 학교의 눈물

[문화 이야기/방송과 행사] - 소나기 학교를 통해 전한 아이들의 아픔

[문화 이야기/방송과 행사] - 학교 폭력 피해자가 본 학교의 눈물 3편

[문화 이야기/방송과 행사] - 학교의 눈물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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