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 걸음으로 운동장 두 바퀴가 체벌이라구요?
- 시사/학교와 교육
- 2015. 10. 9. 07:30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체벌은 폭력일까? 교육일까? 사랑일까?
학교에서 일어나는 폭력은 그 종류가 다양하다. 학생과 학생 사이에서 일어나는 폭력이 있고, 학생과 선생님 사이에서 일어나는 폭력이 있고, 선생님과 학부모 사이에서 일어나는 폭력까지 있다. '폭력'이라는 것은 지나치게 부당한 일임에도 우리의 일상 속에서 사라지지 못한다.
폭력은 타인에게 두려움을 심어주고, 그 두려움을 이용해서 타인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오래전부터 폭력을 이용한 문화를 형성해왔다. 특히 공동체 의식이 거의 강제에 가까웠던 한국에서는 그 문화가 심했다.
문화. 과연 이런 것을 문화로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것은 잘못된 행동의 반복에 불과하다. 제일 먼저 군기를 잡는다면서 벌어지는 교내 선·후배 간의 기합 혹은 선생님이 신입생에게 가하는 엄중한 경고가 폭력으로 변질하여 이어지는 모습은 우리가 철저히 고쳐야 할 일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이런 잘못된 모습에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반응한다. 선생님이 아이들을 바로 잡기 위해서 두려움을 심어주고, 공포를 이용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학교 선·후배 사이에서도 질서 유지 혹은 유대를 위한 개뿔 같은 변명으로 자신의 행동을 옹호한다.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고통스러운 오리걸음, ⓒ청소년 인권단체 아수나로
얼마 전에 어머니의 사무실에서 작은 잔업을 하다가 사촌 동생이 실수로 교복 넥타이를 매고 가지 않았다고 오리걸음으로 학교 운동장 2~5바퀴를 돌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그건 체벌이 아니라 폭력이다. 오리걸음으로 운동장 도는 건 체벌이 아니라 폭력이야!'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내가 오리 걸음으로 학교 운동장을 도는 것에 화를 냈던 이유는 중학교 시절에 내가 그런 체벌을 받다가 쓰러진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개인의 잘못과 상관없이 반의 단체 책임을 물어서 억울하게 오리 걸음으로 운동장을 2바퀴 돌아야 했는데, 반바퀴 정도를 돌다가 몸에 경련을 일으키면서 쓰러졌었다.
그 이후 우리 학교에서는 오리걸음 체벌이 없어졌는데, 그래서 나는 오리 걸음은 체벌의 수단이 아니라 폭력의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그때가 벌써 10년 전이지만, 그 이후로 교육과 관련한 사건 사고 뉴스에서는 자주 과잉 체벌이 문제가 되는 기사를 읽어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과잉 체벌이 때때로 지적을 받기는 했지만, 제대로 수정이 되었다는 기사는 읽지 못했다. 단지 교육부가 해당 학교에 '권고 조치'를 내릴 뿐이었고, 과잉 체벌을 한 교사는 마땅한 징계를 받거나 형사적 처벌을 받지 않았다. 오히려 피해 학생에 징계가 내려지는 억울한 일을 당했다.
지금은 관심 밖의 체벌, ⓒYTN 화면
이런 체벌에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모두 한결같이 '나도 그 당시에 그 정도는 했다.'라면서 반박한다. 그런 경험을 겪었기에 지금도 그런 제도의 유용성 때문에 필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나는 그런 제도가 필요해서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이기심에서 나온 것 같다.
'나도 그 시절에 고통스러웠다. 그러니 너도 고통을 느낄 필요가 있다.'이라고 주장하는 것 같다. 물론, 이것은 내 개인적인 의견이다. 하지만 체벌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과잉 체벌은 엄연한 폭력 행위이고, 그 폭력 행위가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정당화되는 건 폭력을 권장할 뿐이다.
학교에서 만들어진 일진과 폭력의 세습은 어른들의 그런 행동에서도 영향을 받는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는 걸까? 지금은 빠르게 열기가 식었지만, 여전히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던 '인분 교수' 사건은 체벌과 폭력의 경계를 구분하지 못한 일종의 사이코패스에 가까운 사건이었다.
아마 우리 사회에서 이 같은 폭력이 벌어지는 곳을 찾는 일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많은 학교에서 '체벌'이라는 이름으로 선생님이 아이에게 폭력에 가까운 행위를 강요하고, 아이들은 그것을 그대로 배워서 자신들의 후배에게 강요하고, 직장에 들어가거나 부모가 되어서도 반복해버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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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우리 주변에서는 장소와 때를 가리지 않고, 눈에 보이는 폭력과 보이지 않는 폭력이 있다. 폭력에 지나치게 익숙해진 우리 사회는 폭력을 하나의 병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폭력을 그냥 하나의 현상으로 여길 뿐이다. 종종 뉴스를 통해 보는 폭력 사건에 무덤덤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도대체 언제부터 우리 사회가 선·후배 사이에서 군기를 잡는다면서 벌이는 여러 가혹 행위가 하나의 문화가 되었고, 학교에서 내리는 과잉 체벌이 교육에 필요한 필요악이라는 말이 붙게 되었을까. 폭력에 무뎌진 사회는 결코 폭력이라는 잔인함을 바로 잡을 수 없다.
폭력의 연쇄 고리는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한번 폭력에 무뎌지고, 익숙해지기 시작하는 순간에, 폭력은 그 끝을 모르고 잔인해지면서 치닫게 된다. 과연 우리는 폭력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걸까? 어려운 문제이지만, 우리는 문제에 대한 고민을 멈춰서는 안 된다. 그래야 잘못을 줄여갈 수가 있다.
이 문제에 대한 이상적인 답을 찾는 것은 분명히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그리고 보기 싫은 진실을 마주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진실이 부끄럽다고, 혹은 보기 싫다고 하여 외면하는 순간, 우리는 사람임에도 사람이 아닌 사람으로 이 잔인한 세상을 살아가는 괴물이 되어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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