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학교 폭력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학교
- 시사/학교와 교육
- 2015. 1. 31. 07:30
1년 간 이루어진 공포의 학교 폭력, 그런데 무작정 화해하라고요?
학교 폭력에 대한 보도가 이루어지고 제법 시간이 흘렀음에도, 한국에서 학교 폭력을 대하는 학교와 학부모의 태도는 거의 변한 것이 없다. 부모는 자신의 아이가 가해자로 지목되면, 잘못을 뉘우치면서 반성을 하기는커녕 말도 안되는 변명을 하거나 오히려 피해자를 정신 이상자로 몰아 비난을 한다.
또한, 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학교는 학교 폭력 사건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기보다 학교 명예 실추를 이유로 숨기는 데에 급급하고, 학교 폭력 피해자가 폭력 사실을 경찰에 신고하면 그제야 조금 조사를 하거나 대책을 마련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시간이 흐르면 피해자를 강제 전학 시켜버리는 일이 벌어진다.
한국의 학교 폭력은 그렇게 어른들의 이기심에 의해 늘 가해자는 없는데, 피해자만 있는 폭력이 되어가고 있다. 피해자는 어디에 도움의 손길을 요청해도 제대로 도움을 받지 못하고, 인터넷과 언론으로 공론화를 시키더라도 딱 그 순간만 도움을 받다가 시간이 지나면 토사구팽당해버리고 만다.
한때 심각하게 학교 폭력을 당했던 한 사람으로서 나는 여전히 바뀌지 않는 이런 모습을 보며 '증오스럽다.'이라고 말할 수 있는 감정까지 품는다. 왜냐하면, 나는 이런 모습을 아무리 나와 같은 사람이 지적하더라도 절대 바뀌지 않을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욕먹는 건 피해자다.
ⓒ중앙일보
얼마 전에 뉴스를 통해서 학교 폭력이 일어난 학교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를 상대로 진상 조사를 똑바로 하지 않고, 그냥 가해자와 피해자를 화해시키는 데에 급급한 학교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 학교의 선생님은 "선생님이 화해를 시켜야지. 그대로 원수지간으로 만들 수 없잖아요?"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화해. 화해는 분명히 좋은 것이고, 학교 폭력의 잘못을 바로잡는 과정에서 꼭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 학교의 선생님은 화해의 의미를 잘못 알고 있다. '화해'라는 건 그냥 어른이 시켜서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가해자가 진심으로 잘못을 뉘우쳐 용서를 빌 때,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해당 학교의 선생님은 그 사실을 똑바로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학교 폭력이 신고되어서 크게 보도가 되면,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는 사실만 머릿속에서 계산하면서 가해자와 피해자를 그냥 화해시키는 데에 급급했다. 정신과 진료를 받으며 두려움에 떠는 피해자를 억지로 데려와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일전에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이라는 천종호 판사님의 책을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 이 책에는 진정한 의미의 화해가 무엇인지 읽어볼 수 있는 한 사례가 있었다. 비록 책이 적혀진 대로 다 옮기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선으로 중요한 부분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가해소년들이 윤희를 때린 이유는 제각각이다. 경미와 정희는 윤희가 걸레라며 자신들에 대해 나쁜 소문을 내고 다녔기 때문에 화가 나서 윤희를 때렸다지만 다른 아이들은 별다른 감정도 없으면서 경미와 정희가 윤희를 때리는 것을 보고 그냥 부화뇌동하였을 뿐이다. 그들이 윤희를 때린 이유는 단지 '싸가지가 없어서' '평소 감정이 안 좋아서' '여자 친구에 대해 안 좋은 소문을 내서'였다. 심지어 어떤 아이들은 아무런 이유 없이 '친구들이 때리니까 분위기에 휩쓸려서' 때렸다고 했다. 결국 경미와 정희를 제외한 아이들은 사건 당일과 같은 폭력적인 분위기만 아니었다면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혹시 윤희를 때려야 할 나름의 이유가 분명하게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토록 심하게 때릴 필요까지는 없었다. 이들은 나중에 자신들이 저지른 일에 대해 스스로도 몸서리칠 정도로 심하게 폭력을 행사했다.
이런 상황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한마디로 가해소년들은 비이성적이고 광포한 상태에서 폭력을 행사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이렇게 된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집단이라는 상황에 있었다.
보통의 사건은 보호관찰소의 결정전 조사나 비행예방센터의 상담조사로 충분하였을 터이나 위 사건에서는 가해자들 중 일부가 윤희와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었으므로 윤희와 가해소년들과의 관계회복이 되지 않는 한 앞으로도 원만한 학교생활을 할 수가 없다고 판단되어 경청상담교육센터에 상담을 의뢰하였다.
가해소년들은 자신의 부모와 함께 3개월 동안 지속적으로 상담을 받았다. 상담 초기에 가해소년들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는 했지만 윤희가 겪는 고통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들의 부모들도 윤희와 그 가족들이 겪는 고통과 충격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합의가 되지 않을 경우 금전공탁을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자신들이 왜 부모상담까지 받아야 하느냐며 강한 불만을 품었다. 하지만 상담이 진행되면서 가해소년들과 그 부모들은 점차 윤희와 윤희의 가족이 겪은 고통을 이해하게 되었고, 단순히 금전배상만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 후 피해자 측과 가해자 측이 합의를 위해 2011년 7월 중순 경청 상담교육센터에 모이기로 하였다. 그런데 이날 윤희는 참석하지 않고, 그의 어머니만 참석하였다. 윤희 어머니 역시 가해소년들과 그 부모들을 대면하지 않으려 했으나, 국선보조인의 끈질긴 설득 끝에 겨우 화해의 장에 나오게 되었던 것이다. 가해소년들은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진심으로 용서를 구했고, 소년의 부모들도 거듭 미안하다고 하며 윤희 어머니를 껴안았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윤희 어머니는 당황스러워했으나 그런 과정을 거치는 사이 마음이 조금 움직이는 듯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일주일 후, 최종적으로 합의서를 작성하기 위해 윤희를 포함한 당사자들이 모두 모였다. 가해자들과 대면한 윤희는 몹시 불안해하며 손을 떨었는데, 그 모습을 본 가해자들과 부모들은 죄책감으로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그러다가 장시간에 걸친 합의가 끝나고 사죄의 선물로 사 온 책을 받아든 윤희가 순간 희미하게 웃음을 띠우자, 가해자와 부모들도 조금 안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마침내 윤희 어머니는 가해소년들에게 개별적으로 용서의 말을 전했고 윤희 역시 떨리는 목소리로 완전히 회복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용서해보겠다고 말했다. 가해소년들은 모두 고개를 숙이고 눈시울을 붉히고 말았다.
한 소년은 자신들을 다시 만난 윤희가 벌벌 떠는 걸 보면서 그날 폭행을 말리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며 진심으로 미안해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 용서받지 못할 짓을 한 자신을 용서해준 윤희 어머니에 대해 마음 깊이 고마워했다. (p155)
학교폭력, 특히 집단적 학교폭력사건의 해결에 있어서는 이와 같은 관계회복을 도모하는 화해적 분쟁해결이 무엇보다 중시되어야 한다. 참된 관계회복을 위하여 대책과 방법을 세우지 않는 분쟁해결은 미봉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화해를 위한 시도조차 없이 처벌이 내려진 경우 가해자로서는 법에서 정해진 벌을 모두 받았다는 생각에 화해의 장에 서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피해자가 원하더라도 진정한 사죄를 받아내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진정한 사죄와 용서를 내용으로 하는 화해적 분쟁해결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피해자가 다시 건강한 학교생활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p159)
상당히 긴 글이지만, 이 글을 다 옮기면서 말하고 싶었던 건 오직 하나이다. 학교 폭력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화해가 중요하지만, 화해는 그냥 무작정 억지로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진심으로 잘못을 뉘우쳐서 용서를 구하고, 그 용서를 피해자가 받아줄 때 비로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내가 글에서 이야기한 학교의 선생님은 이것을 알지 못했다. 아니, 알았다고 하더라도 이른 시일 내에 사건을 처리하기 위해서 그냥 무시했을지도 모른다. 1년 동안 지속해서 폭행을 당한 피해자의 손과 1년 동안 지속해서 폭행한 가해자의 손을 마주 잡게 한다고 끝이 날 수가 없는 게 폭력이다.
그렇게 어른이 억지로 두 사람의 손을 마주 잡게 하면서 '오늘로 용서하고, 다시 친구로 지내라.' 하고 말한다고 두 사람의 관계가 회복될 수 있을까? …절대 그렇지 않다. 가해자는 뒤돌아서자마자 피해자를 향해 "너 때문에 이런 일까지 해야 하잖아!" 하면서 발길질을 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피해자는 1년 동안 당한 폭행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서 심리적 안정을 취해야 하는데, 피해자를 억지로 불러내서 이렇게 일을 처리하는 건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혹 행위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 군대도 대체로 이렇게 문제가 해결되는데, 정말 여기저기 폭력이 없는 곳이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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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어른도 직장 혹은 군대에서 당한 부당한 폭력은 쉽게 잊지 못한다. 더욱이 그것으로 깊은 상처를 입은 경우에는 그 반작용이 크게 일어난다. 자신의 가족에게 폭행을 하거나 연인에게 폭행을 하거나 술에 취해 일반인에게 폭행을 하는 일이 벌어진다. 하물며, 청소년은 어떻겠는가?
학교폭력 사건이 집중 보도가 되고 나서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한국의 학교폭력 대처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학교의 교사와 가정의 부모는 아직도 아이들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로 취급하거나 장난이 조금 심했을 뿐, 화해하고 다시 친하게 지내라고 말하고 있으니까.
학교폭력은 단순히 처벌만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왜 이런 처벌을 받는가?', '왜 네 행동이 잘못되었는가?', '왜 부모의 지금 행동이 잘못되었는가?'를 똑바로 지적하고 고칠 수 있어야 하는 문제다. 그 과정을 무시하는 건 교육을 외면하는 것이고, 교육을 포기하는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
천종호 판사님은 "살다 보면 누구나 실수를 할 때가 있습니다. 실수를 하지 않도록 지도하는 것이 교육이라면, 실수로 인해 발생한 사태를 수습해나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도 역시 교육입니다."이라는 말씀을 하셨다. 이 말은 지금 학교폭력을 대하는 사람들이 깊이 새겨들어야 할 말이 아닐까 싶다.
아직도 학교 폭력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어른들로 인해 상처를 받고, 그 상처를 안은 채 세상을 적신 눈으로 살아가는 아이들이 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은 언제 가해자가 될지도 모르고, 언제 세상과 이별을 선택할지도 모른다. 그 마음을 고쳐주는 일이, 다독여주는 일이 우리 어른이 해야 할 일이다.
[문화 이야기/독서와 기록] - 호통판사 천종호 판사의 소년재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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