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통판사 천종호 판사의 소년재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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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종호 판사의 진심어린 고백,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


 우리나라에서 청소년 범죄는 이제 그냥 우습게 볼 수 없는 범죄가 되어버렸다. 한 대구 중학생의 자살 사건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어른들이 청소년 범죄에 눈을 두게 되었고, 어른들은 청소년들이 저지르는 그 범죄의 비인격성과 집단성에 혀를 내둘렀다. 특히 조금도 자기 일에 대해 반성하지 않는, 반성하지 못하는 청소년들의 모습도 큰 충격을 주었다.


 많은 어른이 이런 범죄에 연루되는 청소년을 가리켜 "태생부터 잘못된 놈"이라며 나무라거나 "부모가 도대체 어떻게 교육했길래 애가 저 모양이야?"이라며 그 부모를 향해 욕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난 말하고 싶다. 태어날 때부터 못돼먹은 청소년은 없고, 그런 가해자의 부모를 욕하는 자신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다고 말이다.


 요즘 아이들이 등장하는 예능 프로그램 《아빠! 어디가?》와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통해 볼 수 있는 아이들의 모습은 정말 순진하면서 착하다. 많은 사람이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귀엽다', '어쩜, 저렇게 순진할까?' 등의 생각을 한다. 그런데 거짓 모든 아이가 어릴 때에는 그런 모습이었다. 하지만 자라면서 사랑을 받지 못하면서(혹은 잘못된 방법으로)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아이들은 우리가 지금 뉴스를 통해 볼 수 있는 청소년 범죄에 연루되는 가해 학생이 되거나 피해 학생이 되는 것이고, 우리 어른은 그 학생들의 부모가 되는 것이다. 이게 바로 어른이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불편한 진실의 모습이다.


 그러나 어른들은 그 사실을 좀처럼 잘 모른다. 그리고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나는 내 방식대로 아이를 잘 가르치고 있다. 우리 아이가 나쁜 길로 빠져든 것은 좋지 않은 아이와 어울렸기 때문이다. 우리도 피해자다." 등의 사고방식을 고집하면서 제 아이의 목을 자신의 손으로 조르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그래서 아이들은 숨 막히는 곳에서 도망치려다 사고를 저지르게 되는 거다.


아직 희망을 버릴 때가 아닙니다.

비행내용의 참담함에 분노하고 비행소년들을 비난하기 전에

왜 어린 소년들이 비행으로 치닫게 되었는지

우리 사회가 어떻게 그들을 내몰았는지

반드시 되물어야 합니다. (페이지 262)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 ⓒ노지


 위에서 볼 수 있는 책은 얼마 전에 내가 읽은 천종호 판사님이 소년 법정에서 범죄를 저지른 10대 청소년을 재판하면서 겪은 이야기를 적은 책이다. 천종호 판사님의 이름을 알게 된 건 SBS에서 방영된 <학교의 눈물>이라는 프로그램이 계기가 되었는데, 나는 이 책을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을 통해 우연히 알게 되었다. 그리고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구매해서 읽었다.


 나는 천종호 판사님의 진심 어린 고백이 담긴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를 읽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다. 책을 읽으면서 많은 사람이 잘 알지 못하는 청소년 범죄가 어떤 일을 계기로 벌어지며, 우리가 10대에게 해줘야 하는 일은 무엇인지 잘 알 수 있었다. 아마 책을 읽는 사람마다 '아...' 하며 안타까운 탄식을 흘리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는 범죄를 저지른 10대 소년들이 얼마나 지독하고, 악랄한 인간인지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저 그들이 얼마나 아픈 상처를 가지고 있고, 제 상처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처럼 내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잘 전해준다. 그리고 그들을 더 궁지로 모는 어른들의 몹쓸 편견과 태도도 천종호 판사님께서 날카롭게 잘 지적하고 있다.


어느 소년의 어머니가 재판부에 제출한 탄원서 중에는 "무조건 철주 측에서 돈을 요구하는 대로 다 지불해야 하는 게 법으로 지정되어 있습니까? 너무 어이없이 많은 것을 요구하니 기가 막히고 당장 빚을 내서 줘야 할 형편이야 걱정이 태산입니다. 가해자가 1인당 260만 원씩 요구하고 있습니다. 철주는 정상적으로 아무 문제없이 학교생활을 잘 하고 있고, 우리 아이와도 친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라는 내용도 있었다.

부모들의 태도가 실망스러웠지만 철주와 가해소년들과의 관계회복을 출발점으로 하여 전체 학생들과의 화해를 도모하지 않으면 철주가 학교에 다시 돌아가더라도 제대로 적응하기 어려울 것 같아 먼저 경청상담교육센터에 소년들에 대한 상담 조사를 명하였다. 상담 후 가해소년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철주와 그 가족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었는지 깨닫고 자기 잘못을 깊이 뉘우쳤다. 하지만 가해소년들의 부모들은 여전히 철주와 그 가족의 심정은 헤아려볼 생각도 하지 않고 오로지 합의금 조정에만 관심을 보이며 불만만 토로하였다. 뿐만 아니라 철주를 찾아가 무릎 꿇고 사죄라도 해보라는 경청상담교육센터의 요청도 묵살해버렸다.

나는 그 부모들의 태도가 심리기일까지도 바뀌지 않으면 특단의 조치를 취하기로 마음먹었다. 세상에는 역지사지하는 마음만 가지고도 해결할 수 있는 일이 많다. 그런데 아무리 상대방의 입장에서 사건을 보라고, 그래야 해결의 실마리가 보인다고 말해줘도 이를 따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럴 때 나는 생각할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간혹 강경한 수단을 쓰기도 한다.

2012년 2월, 심리가 열렸다.

가해소년들의 부모들은 그때까지도 여전히 입장을 바꾸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부득이하게 가해소년들을 소년분류심사원에 임시위탁시키겠다고 한 뒤 3주 뒤로 기일을 연기했다. 3주 동안 자식들을 격리된 공간에 보내는 것은 보통 부모들로서는 충격적인 일이다. 그제야 발등에 불이 떨어진 가해소년들의 부모들은 부랴부랴 철주 가족을 찾아가 사죄하고 용서를 받은 뒤 합의서를 제출하였다. 이에 더 이상 소년들을 위탁시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고 기일을 며칠 앞당겨 소년들에 대한 심리를 진행하였다. 그리고 그 아이들에게 정신심리치료 수강을 조건으로 보호자들에게 보호를 의뢰하는 처분을 내렸다.

그런데 재판을 마치자마자 법정 밖에서 어느 소년의 어머니가 자신들이 철주에게 준 돈은 피해배상금이 아니라 철주가 불쌍해서 장학금으로 준 것이라고 큰 소리로 말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나 또한 홍두깨로 뒤통수를 맞은 듯 어떨떨한 기분이었다.

그렇다면 그사이 철주를 찾아가 용서를 빈 것은 무엇이고, 또 합의서에 기재된 내용은 다 무엇이란 말인가? 그렇게라도 해서 구겨진 체면을 세우고 상처받은 자존심을 회복하고 싶었던 것인가? 그 모습이 너무나 옹색하고 초라하게 느껴졌다. 아이들에게 가장 영향력 있는 멘토는 다름 아닌 부모다. 아이들은 부모들이 보여주는 대로 자라간다. 법정에서 나오자마자 그런 소리를 하는 어머니를 보며 아이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살다보면 누구나 실수를 할 때가 있다. 실수를 하지 않도록 지도하는 것이 교육이라면, 실수로 인해 발생한 사태를 수습해나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도 역시 교육이다. 사태의 심각성과 책임을 인정하고 그것을 올바르게 수습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것은 그들에게 또 다른 성장의 기회를 제공하는 살아 있는 교육이다. 진정한 사죄와 용서를 통해 한 뼘 더 성장할 수 있었던 아들의 기회를 그 어머니가 빼앗은 것 같아 씁쓸하고 뒷맛이 개운치 않았다. (p136)


학교의 눈물, ⓒSBS


"중수 어머님은 왜 들어오지 않습니까?"

내 물음에 국선보조인이 민망하다는 듯 대답햇다.

"중수가 철창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바로 가버렸습니다."

아들이 철창에 갇혔는데 외면하고 그냥 가버렸단 말인가. 나는 즉시 국선보조인에게 말했다.

"중수 어머니를 빨리 법정으로 돌아오라고 해주세요!"

국선보조인은 부랴부랴 중수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고, 얼마 뒤 중수 어머니가 법정으로 들어오기에 물었다.

"어머님, 중수가 네 번이나 개명을 한 것이 중수의 장래를 위한 것이었습니까? 아니면 어머님의 체면을 위한 것이었습니까?"

중수 어머니는 답변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네 번이나 개명을 한 아이가 과연 정체성이 제대로 형성되고 있을까요? 아드님이 보호처분을 세 번씩이나 받게 된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가정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아이가 겪어야 될 혼란은 생각해보셨습니까?"

중수 어머니는 여전히 입을 다문 채 눈을 내리깔고 말이 없었다.

그래서 중수 어머니에게 호통을 쳤다.

"중수가 소년원에 가게 되면 당분간은 아이를 볼 수 없게 됩니다. 오늘 법원에서 소년원으로 가기까지는 시간적 여유가 있습니다. 그동안만이라도 아들과 함께 있을 수는 없었나요? 저희 세대들은 이런 어머니상을 가슴에 품고 있습니다. 학업이나 군복무로 어머니와 헤어져야 할 때 동구 밖까지 따라 나오셔서 버스가 먼지 속에 사라져 보이지 않을 때까지 울며 손을 흔들고 서 계시는 어머니를요.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가슴에 담고 있었기에 어떤 어려움도 극복하고 참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어떠셨습니까? 단 몇 분도 곁에 있지 못하고 아들을 철창 속에 내버려두고 떠나셨더군요. 중수가 소년원으로 가는 차에 탈 때까지 아드님을 위해 철창을 붙잡고 통곡하고 계셨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렇게 하셨다면 그 모습은 아드님의 가슴에 깊이 새겨졌을 겁니다. 그리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아드님이 방황을 끝냈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중수 어머니는 남의 집안일에 당신이 무슨 참견이냐는 듯 듣는 내내 마뜩찮은 표정만 짓고 있었다.

나는 예정대로 중수에게 2년간의 보호관찰을 조건으로 8호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판결 이후에도 안타깝고 씁쓸한 마음이 떠나지 않았다. 중수가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더욱 단단한 자아를 형성하여 다시는 이 법정에 서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p200)


 조금 긴 글이지만, 위 두 글을 옮긴 이유는 정말 꼭 이 이야기만은 사람들이 읽어보았으면 했기 때문이다. 비록 책에 담긴 많은 사례 중 두 개에 불과하지만, 이 두 이야기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의미는 크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TV에서만 볼 줄 알았던 그런 무심한 부모가, 정말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자식을 교육하는지 의심이 드는 그런 부모가 이렇게 흔하다는 사실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이야기는 절대 남의 이야기가 될 수 없다. 학교 폭력은 남의 이야기로만 머무르지 않기 때문이다. 당장 내 아이가 피해자가 될 수 있고, 가해자가 될 수 있다. 심지어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바뀌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아이들은 저마다 어른이 내몬 전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악바리를 쓰면서 살고 있고, 어른의 욕심과 편견이 아이들을 더 심하게 무너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가슴의 먹먹함을 쉽게 풀 수 없었다. 책을 읽는 동안 내가 피해자로 당해야만 했던 중학교 시절의 학교 폭력이 머리를 스쳤고, 어릴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나를 괴롭힌 가정 폭력이 머리를 스쳤다. 지금은 겨우겨우 조금씩 웃으면서 살고 있지만, 사람이 싫고 무서웠던 그 시절은 여전히 내 가슴 속에 남아 지워지지 않고 있다.


 그래서 학교 폭력은, 가정 폭력은, 정말 무서운 거다. 많은 청소년 범죄가 빠르게 이루어지는 가정 해체와 함께 발생하고 있고, 비록 가정이 멀쩡하다고 하더라도 가정 교육이 똑바로 되지 못한 아이들은 집단으로 비인격성의 학교 폭력을 저지르기도 한다. 우리는 이 사실을 외면해서도 안 되고, 절대 가볍게 보기만 해서도 안 된다. 왜냐하면, 우리 어른의 잘못이니까.


 나는 천종호 판사님께서 집필한 이 책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가 많은 사람에게 읽히게 되었으면 좋겠다. 특히 아이를 기르는 부모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 아이를 가르치는 교사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꼭 이 책을 읽어보고 편견 없이 아이를 바라볼 수 있었으면 한다. 더욱이 우리 사회에서 교육의 방향을 제시하는 정치인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책에서 읽을 수 있었던 가슴이 아려오는 작은 사연과 글을 남긴다.


편지를 다 읽고 난 혜수는 울면서 다시 말했다.

"판사님, 죄송합니다."

혜수는 나에게 쓴 편지에도 유난히 죄송하다는 말을 많이 썼었다. 그런데 연거푸 죄송하다는 말을 들으니 안쓰럽다 못해 마음이 애잔해졌다.

나는 그런 혜수를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무엇이 그리 죄송하더냐.

무책임한 부모 밑에서 태어난 게 죄가 아닌데…….

꿈 많은 소녀의 소원이 겨우 가족이 모여 밥 한 끼 먹는 것이라는데, 

그 작은 소원조차 들어주지 못하는 부모를 원망조차 할 줄 모르는 여린 너의 마음이 무슨 죄가 있느냐.

사괴해야 할 사람은 네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 어른들이란다.

오히려 우리가 미안하다.

외로운 네가 방황할 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지 않은 우리가,

어린 네가 죽고 싶을 만큼 힘들어할 때 손 내밀어주지 못한 우리가,

너에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지 못한 우리가……' (p252)


비행소년들이 처산 상황은 참으로 열악하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힘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삶의 질곡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나쁜 선택으로 내몰린다. 법정에서 소년들의 처지를 이해해주고 그들의 숨은 가능성을 알아봐주는 일은 혹독한 겨울을 녹이는 한 줄기 봄기운과도 같다. 많은 소년들이 재판을 통해 진심으로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하는데, 그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러나 금희와 은희처럼 강퍅하고 부조리한 현실의 벽 앞에서 끝내 좌절하는 소년들 또한 부지기수다. 그럴 떄마다 나 자신의 한계를 느끼지만, 그렇다고 해서 소년들과 소통을 멈출 수 없는 일이다. 소년은 우리 사회의 미래의 주인공이며, 비행소년들 역시 대한민국의 소년들이기 때문이다.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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