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상처받은 인간다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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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반장 중에서

 어제 언제나처럼 저녁을 먹으면서 오후 6시 30분에 시작하는 JTBC <사건반장> 채널을 틀어서 시청했다. <사건반장>에서 다루는 여러 가지 사건은 오늘날 화제가 되고 있는 사건부터 시작해서 우리가 정말 함께 분노하고 눈여겨보아야 할 사건이 많은데, 특히 11일(수) 저녁에 <사건반장>을 통해 볼 수 있는 몇 가지 사건은 충격적이었다.

 

 한 가지 사건은 10대 중학생들 세 명이 동급생 한 명을 모텔로 데리고 와서 감금 폭행을 했을 뿐만 아니라 성적 수치심을 줄 수 있는 행동을 강요하는 순간을 실시간 영상으로 찍어서 업로드를 했다고 한다. 참, 요즘 아이들 무섭다는 이야기가 괜히 나온 게 아니라고 생각이 들 수 없는 데다가 도대체 저 아이들의 부모님의 얼굴이 궁금해졌다.

 

 하지만 해당 사건 다음에 들을 수 있는 한 기업에서 있었던 면접에서 어른들이 여성 지원자에게 한 어처구니 없는 면접도 기가 막혔다. 면접을 보러 온 여성에게 일과 전혀 상관없는 질문을 던지고, 제로투를 춰보라는 등 어처구니없는 요구를 했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무엇보다 화가 난 건 가해자들은 처벌조차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건 소식을 비일비재하게 듣다 보면 '우리가 사는 세상에 인간다움이라는 것은 남아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한다. 다행히 이렇게 인간다움을 의심하게 하는 사건이 있으면서도 인간다움을 보여주는 훈훈한 소식도 있어 가슴을 쓸어내릴 때가 있다. 어떻게 보다면 오늘날만큼 인간다움을 의심하고 걱정했던 시절이 있을까 싶다.

 

 어젯밤 읽은 <상처받은 인간다움에게>라는 책의 저자는 들어가는 글에서 아래와 같은 질문을 던진다.

 

오늘의 인류는 어느 때보다 많은 것을 생산하면서도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이 배고프고, 소외되고 있다. 세상은 팬데믹 속에서 괴로워하고, 모든 것이 멈춰 선 듯하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진실되게 행복한지, 우리의 인간성은 상처받지 않았는지를 물어야 한다. 톨스토이는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라고 했는데, 진정 그럴까? (본문 7)

 

상처 받은 인간다움에게 표지

 책의 제목부터 오늘날 우리에게 메시지를 던지는 듯한 이 책은 수녀이자 미국의 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저자의 이야기가 정리된 책이다. 책은 크게 세 장으로 나누어 첫 번째 장에서는 개인의 삶과 관련된 문제를 다루었고, 두 번째 장에서는 외부 환경과 타인의 관계와 관련된 문제, 세 번째 장에서는 시대와 관련된 문제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문제를 다룬다고 해도 JTBC <사건반장>처럼 크고 작은 사건을 나열하며 우리는 인간다움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다. 어디까지 저자가 마주한 삶의 단면들을 통해 저자가 어떻게 생각을 했는지 이야기를 정리하면서 책을 읽는 독자에게 '당신은 바라보는 인간다움은 어떠한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해 주었다.

 

 첫 번째 장에서 읽어볼 수 있는 한 글을 옮겨 본다면 다음과 같다.

 

내가 가르치는 대학의 학생 중 절반이 가난한 이민자 가정의 자녀들이다. 이들은 자신감도 별로 없고 어떻게 공부하는지도 잘 모른다. 또 이들의 부모는 노동이 아닌 대학을 택한 자녀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이들은 자연스레 어떤 주제를 놓고 토론을 해본 적도 없고, 수업을 따라가기 버거우면 쉽게 포기한다. 그렇다면 과연 이들이 과제를 수행하지 못했다 하여 게으르다고 할 수 있을까? 개관적으로 채점을 하자면 이들에게 최고 점수인 A를 줄 수는 없지만, 나는 아주 안정된 상황에서 보기 좋게 과제를 내고 발표도 잘하는 학생만이 부지런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려고 한다.

컴퓨터로 비대면 수업을 하면서, 나는 오히려 우리 학생들의 힘든 상황을 좀 더 많이 알게 되었다. 어떤 학생들은 집에 와이파이가 없어 길거리 커피숍 창문에 기대어 수업에 들어오기도 하고, 생계를 위해 캐셔로 일하며 노트북을 무음으로 해놓고 카운터에서 수업을 듣는다. 집에서 어린 동생들을 돌보며 수업을 듣는 학생도 있다. 가난이란 이렇다. 그러니 이 기회의 나라 미국에서 가난한 자는 게으른 자이며 '게으른 자는 먹지도 말라'는 성서의 구절을 예외 없이 누구에게나 적용한다면, 이것이야말로 바보스럽다 못해 진정 게으른 것이다. (본문 91)

 

 저자의 이야기는 미국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한국과 조금 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비대면 수업이 적극적으로 시행되었든 그 시기에는 우리 한국에서도 위와 같은 문제를 볼 수 있었다. 다른 어떤 나라보다 인터넷 보급률이 높은 한국이기에 '집에 인터넷 없는 사람도 있어?' 싶었지만, 실제로 그런 가구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인터넷은 되더라도 비대면 수업을 들을 수 있는 컴퓨터와 태블릿 PC가 한두 대밖에 없는 집에서는 아이들이 함께 수업을 들을 수 없는 문제도 있었다. 그냥 학교에 나가서 같은 공간에서 수업을 들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불평등은 해소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수업에 참여하지 못함으로 발생하는 인간다움의 결여도 예방할 수 있다.

 

 혹자는 학교에 나가서 학교 폭력을 당하는 일이 없어 오히려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요즘에는 또 직접 물리적인 폭력을 가하는 것이 아니라 SNS 매체를 통해 '능욕주의'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학교 폭력을 벌이는 경우도 잦아 오히려 더 괴롭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참, 이렇게 본다면 우리의 삶은 늘 심각한 문제가 있는 듯하다.

 

 이러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우리는 인간다움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고, 어떻게 배워야 하고, 어떻게 인간다움을 지키면서 평범한 한 사람으로 살아가야 할까?

 

상처 받은 인간다움에게 중에서

 <상처받은 인간다움에게>라는 책은 그러한 질문에 명확한 답은 될 수 없더라도 우리가 자신만의 답을 찾기 위한 글을 읽어볼 수 있는 책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특정 페이지에서는 오랫동안 시선이 머무르기도 했고, 평범한 하루를 보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당장 실천해보고 싶은 욕심도 컸다. 첫 번째 장에서 읽은 한 글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일상에서 만나는 아름다움은 우리에게 깊은 삶의 신비로 시선을 돌리게 한다. 그렇다면 나는 하루 중 어떤 하루를 좋아하는가 한번 적어보기로 한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 구름을 헤치고 나오는 빛을 바라볼 때, 부엌의 식탁에 앉아 하루의 첫 커피를 내릴 때, 그리고 그 커피 향이 집 안을 가득 채울 때, 옆집의 강아지가 내게 반갑다고 격하게 인사할 때, 나무의 새로운 얼굴이 보일 때, 누군가 친절하게 아침 인사를 할 때 내가 만나는 일상은 아름다워진다.

오늘 해야 할 일들을 적고, 그 중간 쉬는 시간을 상상할 때, 친구와 반가운 통화를 할 때, 책을 읽다 마음에 드는 문장에 줄을 치고 노트에 옮겨 적을 때, 갑자기 하늘이 흐려지고 빗방울이 창문을 두드릴 때,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수업을 하고 나올 때, 내 일상은 활기를 되찾는다.

싫은 사람과의 갈등은 되도록이면 피하는 대신 길가에 나서서 나무의 향기를 맡을 때, 너무 일에만 파묻혀 있지 않고 다른 쪽으로 일부러 시선을 돌릴 때, 해가 질 무렵 어느 집에선가 매캐한 연기 냄새가 날 때, 혹은 늦게 서둘러 집에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하늘을 봤는데 별이 반짝거릴 때, 내 일상은 내가 이 세상에 잠시 머무는 나그네이니 잠시 숨을 좀 돌리라고 나의 등을 토닥거린다. (본문 56)

 

 이 글에서 읽어볼 수 있는 저자의 이야기는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다. 정말 우리가 평범히 '오늘, 하루'라는 시간을 보내면서 몇 번이나 겪거나 혹은 겪을 수 있는 일상의 단면들이다. 누군가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상의 단면들도 잠시 멈춰 서서 그 의미를 곱씹어 본다면 대단히 가치 있고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내게 살아가는 힘이 되어주기도 한다.

 

 나는 늘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책을 읽으면서 연습장에 좋은 문장 혹은 마음에 드는 페이지를 일부 메모하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책을 읽지 못하는 하루가 있을 때는 그렇게 하루가 불안할 수가 없는데, 그런 불안을 달래기 위해서 나는 지금 당장 책을 들고 읽을 수 없어도 스마트폰으로 부지런히 기사를 찾아 읽었다.

 

 나에게 무엇을 읽고 생각하는 행위는 나의 인간다움을 지키는 일이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죽는 것보다 더 큰 고통이었던 학교 폭력을 당했던 어린 시절에도 나는 책을 읽으면서 나를 가까스로 지탱하며 살았다. 책을 통해 만난 이야기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나거나 다양한 강의 영상을 통해 만났을 때는 지금까지 살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누군가는 코웃음 칠 수도 있는 그런 일들이 나에게는 상처받은 인간다움을 치유하는 일들이었다. 오늘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상처받은 나의 인간다움을 치유할 방법을 가지고 있는가? 만약 가지고 있지 않다면, 어떻게 상처받은 나의 인간다움을 위해 눈물을 흘려야 할지 모르겠다면, 나는 <상처받은 인간다움에게>라는 책의 일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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