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읽기 좋은 에세이, 사랑은 수많은 이름으로 불어온다
- 문화/독서와 기록
- 2017. 4. 4. 07:30
벚꽃에 취해 읽기 좋은 에세이, 책 읽기는 바로 여기에서 시작!
책을 읽으면서 글을 쓰다 보면 종종 우리 주변의 평범한 이야기를 간단명료하면서도 울림이 있는 필체로 풀어내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런 글을 읽으면서 '왜 나는 이런 글을 쓰지 못하는 걸까?'라며 아쉬움이 들기도 하고, 괜히 작가의 능력을 시샘하기도 합니다.
가장 좋은 글은 짧고, 의미 전달이 분명하면서도 읽는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읽는 여러 문학 소설에 다양한 단어를 수집해서 쓴 글은 때때로 커다란 상을 받기도 합니다. 상을 받는 이유는 그 작가의 글이 뛰어났다는 것보다 먼저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이겠죠.
서툰 글을 쓰더라도 그 글에 진심이 담겨 있으면 독자는 감동하게 됩니다. 제가 쓰고 싶은 글은 그런 글입니다. 비록 형식적으로 완벽을 추구하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제가 쓰는 글에 진심을 담아서 '하고 싶은 메시지'를 분명히 전하고 싶은 글. 지금도 저는 그 글을 쓰기 위해서 매일 노력하고 있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이나 문학 선생님은 종종 좋은 글쓰기를 위해서는 고전 문학을 읽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고전 문학을 읽어야 생각이 깊어지고, 더 나은 글쓰기를 위한 시작점에 설 수 있다고 말하죠. 물론, 저도 어느 정도 그 의견에 공감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꼭 어려운 고전을 읽어야만 하는 걸까요?
저는 비록 모두가 인정하는 고전을 읽지 않더라도 우리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좋은 책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글이 사람에게 다가오는 이유는 우리의 마음이 그 글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어려운 고전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고전을 읽는다고 뭐가 될까요?
그냥 읽는 고전은 고리타분하고 어려운 책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 고전이 좋은 단어와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해도 우리가 마음으로 느껴지는 게 없으면 공허할 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책 읽기에 관한 질문을 받을 때는 항상 "내가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부터 시작하세요."라고 말합니다.
오늘 여기서 제가 소개하고 싶은 <사랑은 수많은 이름으로 불어온다>라는 책은 바로 그런 책입니다. 청민 작가의 이야기는 우리가 살아가는 풍경 속에 담긴 저자의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책을 읽다 보면 저도 모르게 우리는 저자의 이야기에서 우리 주변을 둘러보게 되고, 마음을 깊이 투영하게 됩니다.
<사랑은 수많은 이름으로 불어온다>를 만나게 된 것은 작은 인연이 있던 출판사의 소개를 받은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책의 제목부터 굉장히 서정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는데요, 책에서 제일 먼저 읽은 '끝이라는 단어'라는 제목의 짧은 글을 읽으면서 금방 책에 빠져들 수 있었습니다.
'끝이라는 단어'의 이야기는 저자가 대학에서 룸메이트로 지냈던 지인의 교통사고 소식을 들은 이야기입니다. 자세히 알려고 하지 않았던 그 사람의 이야기를 그때 비로소 물어보고, 그 사람이 부모님이랑 마지막 인사도 하지 못한 채 누워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더욱이 며칠 뒤 그 사람의 부고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저자는 카페에서 지진 사고를 겪은 이후 그 사람을 문득 떠올리며 지금 자신의 마음을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카페에서 지진을 겪고 나니 그 애 생각이 폭풍처럼 밀려 들어왔다. 그 애가 떠나던 날, 그 애는 부모에게도 친구에게도 심지어 자기 자신과도 작별하지 못했을 것이다. 만약 카페에서 겪은 지진이 나를 삼켰다면 나도 그 애처럼 작별 인사를 남기지 못했겠지. 끝이라는 단어는 너무나 쉽게, 아무것도 아닌 어느 날 내게 찾아왔다. 두 번의 지진과 함께, 지진을 떠올리며 글을 쓰는 내내, 다급하게 엄마에게 전화를 걸던 순간이 떠올라 쉽게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만약 지진이 더 세게 카페를 흔들었다면, 그래서 엄마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전할 수 없었다면, 나는 '내가 죽는 것'과 '엄마에게 마음을 전하지 못한 것' 중 어느 쪽을 더 안타까워했을까.
지금 당장 해야만 하는 것들을 하나씩 떠올리다가, 끝에 가서야 생각했다. 사랑한다고. 엄마와 아빠를 정말 많이 사랑한다고. 나는 언제나, 그 말을 해야만 했다. (본문 27)
저자의 이야기는 무척 명료했습니다. 어려운 한자어도 거의 없었고, 독자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제일 먼저 하면서 저자의 글에 깊이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런 글이 정말 좋은 글이 아닐까요? 저는 이 글을 읽으면서 저는 '끝'이라는 말을 곰곰이 되씹어보았고, 그때의 경험을 떠올려보았습니다.
아마 저자가 겪었던 지진을 기억하고 계실 거에요. 저도 당시 지진을 겪었지만, 솔직히 그때 저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피아노 레슨을 받던 도중 지진이 난 터라 황급히 건물 밖에서 도망치기는 했지만, 끝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었죠. 지진이 일어났을 때 사고가 생겼다면 정말 어땠을까요?
상상만 하더라도 오싹합니다. 아무 일도 없었기 때문에 오늘 우리는 이렇게 글을 쓰거나 읽을 수 있으니까요. 당시 미처 여기까지 생각에 미치지 못했었는데,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오늘의 무사함을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은 수많은 이름으로 불어온다>는 내내 이런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그중에서 제가 무척 가슴에 남은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잠시 그 이야기를 해볼게요.
걔가 한순간에 변한 계기가 있어. 언제나처럼 새벽 늦게까지 만화책을 보고 있는데 거실에서 바스락바스락 소리가 나더래. 걔네 엄마가 새벽기도 가려고 옷 챙겨 입는 소리였지. 걔는 엄마 잔소리를 듣기 싫어서 자는 척을 했대. 방에 불이 켜져 잇는 걸 보고 그 친구 엄마가 방문을 열었지. 걔네 엄마는 바닥에 널브러진 만화책을 정리해서 책상 위에 올려 두고 침대 옆에 앉았대. 그러고는 기도를 했대. 평소에 말하지 못했던 솔직한 이야기들이 자연스럽게 나온 거야.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내게 있어 넌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사람인지. 걔네 엄마는 한참을 울며 구구절절 기도를 한 거지. 걔는 끝까지 자는 척을 했고. 눈물이 나서 막 미칠 지경인데 꾸욱 참다가, 엄마가 나가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아주 대성통곡을 했다더라. 걘 지금까지 엄마가 자기를 미워한 줄 알았던 거지. 자길 낳은 걸 후회하고 한심하다고 여기는 줄만 알았던 거야. 근데 엄마가 자기를 그렇게 사랑하다니! 그때 정신을 차렸대. 엄마의 마음을 알고서야.
그날 이후, 당연히 커터칼은 사라졌고, 더 이상 돈을 빌리지도 않더라구. (본문 69)
이 글에서 등장하는 '걔'는 학교에서 크고 작은 문제를 일으키던 소년이었습니다. 그 소년이 바뀌게 된 계기를 읽으면서 저는 정말 힘들게 보냈던 중학교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그 시절의 나를 옆에서 지탱해주신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라 눈시울이 붉어지는 걸,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심지어 2개월 만에 책을 다시 읽은 지금도 말이죠.
우리도 이런 이야기를 한두 개 정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직접 겪었거나 우연히 들었거나. <사랑은 수많은 이름으로 불어온다>는 이렇게 저자의 살아온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읽다 보면 문득 내 모습이 보입니다. 이게 바로 공감하는 책 읽기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마음으로 책의 이야기를 좀 더 많이 소개하고 싶은데, 에세이라는 특성상 한 부분을 잘라서 소개하기가 어렵다는 게 무척 아쉽습니다. 특별하지 않은 일상의 한 조각들을 모아서 만들어진 책 <사랑은 수많은 이름으로 불어온다>. 오늘 여러분은 어떤 이름의 사랑을 마주하고 계신가요?
꽃이 피어날 봄을 맞아 오늘 소개한 <사랑은 수많은 이름으로 불어온다>를 읽어 보거나 벚꽃이 화려하게 피어나는 오늘, 가까운 사람에게 선물을 해보는 건 어떨까요? 적어두지 않으면 잊히고 말 소중한 마음과 기억을 떠올릴 수 있는 책인 만큼, 여러분의 마음이 수많은 사랑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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