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가격, 대한민국 청년의 자화상을 담은 보고서
- 문화/독서와 기록
- 2017. 3. 28. 07:28
청춘이 사라진 시대, 당신이 지닌 청춘의 가격은 얼마입니까?
조기 대선 날짜가 가까워지면서 많은 여야당 후보가 서로에 대해 견제를 함과 동시에 다양한 공약을 제시하고 있다. 그중에서는 김진태 의원처럼 허튼소리만 하는 사람도 있지만, 안철수 의원처럼 조금 더 현실적인 고민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들 모두 각자 지지층을 향해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아마 이번 대선에서 중요한 이슈 중 하나는 청년 일자리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이명박 정부 이후 박근혜 정부까지 중동으로 나가라고 말할 정도로 청년 일자리는 힘들었다. 문재인 전 의원은 일자리 몇백만 개 창출이라는 공약을 종종 말하지만, 사실 나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이렇게 경기가 내려가는 상황 속에서 어떻게 일자리를 확 늘릴 수 있겠는가? 일자리가 몇백 몇 천개가 만들어지면 분명히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 일자리가 비정규직에다가 안전하지도 않은 일자리로 채워지고, 거품을 일으켜 눈 가리개를 씌우는 정책이라면? 사회와 청년이 원하는 건 그런 게 아니다.
우리 청년 세대가 원하는 것은 눈높이를 낮추라는 어른의 잔소리가 아니라 지금 우리 청년의 목소리를 반영한 정책과 일자리다. 청년의 눈높이가 높아서 취업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마저 어려운 저질의 일자리가 너무나 많다는 사실을 나는 정치인들에게 호소하고 싶다.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책은 <청춘의 가격>이라는 책이다. 이 책은 여러 명의 공동 저자가 직접 청춘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그 이야기를 토대로 여러 통계를 인용해서 하나의 에피소드를 만들었다. 책을 읽고 있으면 한숨이 저절로 쉬어지고,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고민밖에 없다는 게 너무나 답답했다.
이 책은 단순히 청춘을 위로하는 책도, 비판하는 책도 아니다. 우리 청춘이 겪는 문제는 청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역설하며 오늘 청년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보여준다. 책을 읽으면서 정말 현실적인 정책을 수립하기 위해서 대선 주자와 캠프에서 한번 참고해줬으면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 책은 이제 막 대학에 입학한 20세부터 취업·연애·결혼의 단계를 지나온(또는 지나고 있는) 35세까지를 청년의 범위로 정하고 있다. 다시 그들을 연애 및 결혼, 주거, 여가, 노동 시장과 노동 환경을 주제로 분류해 실제 청년들과 인터뷰를 통해 그들이 겪는 청춘의 현실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책을 읽으면서 한숨이 나온 이유는 특별하지 않다. 책 속의 이야기는 오늘 이렇게 글을 쓰는 나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나는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28살의 청춘이다. 이 청춘을 불살라서 내 꿈을 이루기 위해서 비지땀을 흘러야 하는 시기이지만, 도무지 꿈에 손을 뻗기 쉽지 않다는 걸 실감하고 있다.
<청춘의 가격> 첫 장은 '나는 생활하는가 생존하는가'라는 제목으로 시작한다. '나는 생활하는가 생존하는가'라는 문장은 우리 청년의 현실을 고스란히 담은 것 같다. 우리는 생활하기 위해서 살아가고자 하지만, 생존하기 위해서 경쟁하고 있다. 너무나 좁은 인 서울과 좋은 일자리를 얻기 위해서.
사람들은 청년들에게 꿈을 꾸라고 말하지만, 우리 사회는 인간적인 생활에 대한 청년의 꿈을 이용하고 있을 뿐이다. 인턴을 통해서 경험을 쌓으라고 하면서 열정페이로 임금을 제대로 챙겨주지 않을 때가 많다. 그저 청년들의 단물만 쏙 빼 먹고, 청년들이 미래를 위해 투자할 자원을 산산조각낸다.
'나는 생활하는가 생존하는가' 이야기 마지막은 아래와 같이 정리한다.
청년에게 자신의 미래에 투자하라고 윽박지르지 말자. 투자를 하려면 투자할 자원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자산이 없다는 바로 그 이유로 투자하기 위한 자원의 축적은 상대적으로 더 요원하다. 투자를 위해 많지 않은 임금의 상당 부분이 저축하고 배를 곯으며 말단의 일들을 하다가 사고를 당하게 된다고 한들 누가 책임을 져주던가? 그렇다고 중동으로 떠나라고 어르지도 말자. 벌에 쏘일 사람이 없어진다고 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 벌은 남아 있는 우리 주위를 맴돌다 결국 우리를 쏘고야 만다. 청년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생활을 돌려주고 꿈을 꾸게 하는 공동체의 투자이다. 꿈은 생존이 아닌 생활 속에 있다. (본문 57)
지금 청년은 생존의 위기에 봉착해 있다. 화장실과 부엌이 함께 있는 원룸에서 생활하면서 대학에 다니고, 월세를 내기 위해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점 관리까지 해야 한다. 더욱이 요즘 우리가 사는 시대는 '졸업=취업' 공식은 와장창 깨진 지 오래다. 대학 졸업을 하면 다시 공부하는 청년이 적지 않다.
그 청년들이 공부하는 곳은 공무원 시험이다. 특별한 경력 없이 시험에서 좋은 점수만 얻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공무원은 9급 공무원 시험부터 7급 공무원 등 다양한 분야에 포진되어 있다.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이 어려운 청년들이 선택한 공무원은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한 선택지가 되어버렸다.
청년들이 생존의 위기를 겪는 이유는 어려운 취업도 이유가 있지만, 취업하기 전부터 빚을 끌어안고 있는 탓이기도 하다. 여전히 반값등록금이 실천되지 못한 대학등록금은 많은 대학생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대학등록금과 함께 월세와 보증금을 비롯하여 생활비까지 해야 하니 보통 문제가 아니다.
통계청의 가계금융.복지조사를 살펴보면 2010년 빚이 있는 30세 미만 가구의 신용대출 중간값은 870만원 이었는데 2012년 1,220만 원으로 급격하게 증가한 뒤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1,220만 원은 1년치 대학등록금(700-1,000만 원)에 임대보증금(200-500)원을 합친 수준이다. (본문 150)
이 책은 위와 같이 여러 도표를 활용해 지금 청년들이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보다 확연히 알 수 있게 해준다. 우리 청년에게 필요한 것은 눈높이를 낮춰서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 아니다. 청년 세대가 필요로 하는 것은 불확실성을 걷어내는 것이고,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선택지가 주어지는 것이다.
<청춘의 가격>은 서문 '청년은 푸르러야 한다'에서 시작해 '나는 생활하는가 생존하는가', '즐겁지 않은 나의 집 (1인 가구의 애환)', '시골 청년 상경 분투기', '홀가분한 후퇴', '노동 시장 밖의 청년들' 순으로 이야기를 정리한다. 책을 읽는 동안 몇 번이나 가슴을 치게 하는 답답함이 우두커니 비 오는 하늘만 바라보게 했다.
여러 이야기 중에서 따로 소개하고 싶은 한 인터뷰 내용 중 일부를 가져오면 다음과 같다.
Q. 청년 세대가 노동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어떤 정책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요?
A. 가장 어려운 문제예요. 어제인가 그제인가 경향신문 보도를 보니까 현재의 청년 일자리 정책은 전부 다 교육 쪽으로 몰려 있었어요. 하지만 그 교육을 받는다고 취업된다는 보장은 없어요. 두 번째는 일자리인데, 저번에 예비군 훈련 받으러 동사무소에 가보니 거기에도 일자리 소개가 붙어 있었어요. 그런데 좋은 일자리는 없었습니다. 임금이 턱없이 낮은 일자리만 계속 보여주고, 조금 좋아 보이는 자리는 모조리 경력직을 요구했습니다. 국가에서 펼치는 정책조차도 빈틈이 너무 많아요. 청년들이 눈이 높아서 그렇다고 책망하는 한편으로, 국가는 계속 저임금.저질의 일자리만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본문205)
Q. 청년 고용 정책이 왜 청년들의 현실과 맞지 않는 것일까요?
A. 나라에서는 청년들의 눈이 높아졌다고 얘기하는데, 사실 눈이 높아진 것은 부모 세대입니다. 제 부모님도 그러셨어요. 제가 대학원을 그만두고 공사장에 가서 일을 하겠다고 하니, 아무 말도 못하셨죠. 저는 이게 제 부모님뿐만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대기업-정규직'이라는 고정관념을 가진 사람이 많아요. (본문 206)
이 두 개의 질문과 답을 일반화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부분인 건 분명하다. 나는 어머니께 요즘 따라 더욱 '법원 공무원 시험 쳐라. 너는 공무원이 딱이다.', '사법고시라도 준비해보는 건 어떠냐?' 등의 말을 듣고 있다. 블로그 글로 먹고사는 일이 어려워지자 더욱 걱정이신 거다.
나 또한 이렇게 살다간 미래는커녕, 오늘 살아남기도 힘들 것 같다는 걱정이 늘었다. 그래서 어머니 말대로 사법고시가 완전히 폐지되기 전에 내가 좋아하는 법 공부를 해볼까 생각해보기도 하고, 법원 공무원 시험이나 행정고시를 살짝 고민해보기도 했다. 솔직히 이것도 현실성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나는 민법이나 형법과 법 사례 공부를 좋아하는 것이지, 공직 자리에 앉아서 전문적으로 생활하고 싶지는 않다. 생존과 생활 둘 중 어느 것을 선택해야만 하는 건 비극이다. 생존을 포기하면 생활할 수조차 없다니! 그렇다고 해서 생활을 포기하면 우리는 살아도 사는 것이 될 수 없다. 그렇지 않은가?
아마 나만 아니라 많은 또래의 청년들이 비슷한 내외적 갈등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오늘 읽은 <청춘의 가격>이 보여준 것은 아주 사소한 우리 청년이 살아가는 하나의 단면이다.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온전히 독자의 몫이다. 적어도 이 책을 통해 청년이 게으르지 않다는 걸 알아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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