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우리 곁의 행복을 말하다

우리 곁에 있는 잊은 가치를 되살리는 감동적인 소설,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사람의 인생은 참으로 덧없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오늘 아무리 열심히 우리가 산다고 해도 우리는 최순실 사건에 개입된 사람들처럼 막대한 부와 권력을 누릴 수가 없다. 우리는 겨우 천 원 단위로 돈을 따지지만 그들은 몇백 억 단위로 돈을 따진다. 그들과 우리는 같은 땅 위에 있지만, 너무 다르다.


 우리는 성공해서 행복하기 위해 삶을 열심히 살고자 노력한다. 사람들에게 "뭐가 있으면 행복할 것 같나요?"라고 물으면 대다수가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으면 행복할 것 같습니다."라고 답할 것이다. 돈은 그렇게 우리의 행복을 방해하는 원수이자 행복을 위해 필요한 조건이 되었다. 돈이 곧 행복이었다.


 하지만 사욕을 추구한 사람들은 이윽고 오늘날 터진 최순실 박근혜 사건처럼 추락할 때가 온다. 진정한 의미의 성공은 그렇게 검게 칠해진 성공이 아니다. 진정한 의미의 행복은 그렇게 타인의 눈물로 만들어진 행복이 아니다. 나는 진정한 성공과 행복이란 지금 있는 소중함을 아는 것으로 생각한다.


 오늘 읽은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이라는 책은 우리가 비로소 잃어버렸을 때 느끼는 사소한 가치의 소중함을 되새김질하는 소설이다. 이 작품은 일본에서 영화로 만들어져 커다란 인기를 얻었다. 그리고 영화의 원작 소설 또한 많은 사람의 감동을 주었는데, 우연히 이 책을 나는 오늘 읽게 되었다.



 책의 제목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만 본다면 도대체 이 작품의 내용이 무엇인지 쉽게 짐작할 수 없게 한다. '도대체 어떤 내용일까?' 하는 궁금증으로 책을 펼치면 갑작스러운 상황을 맞닥뜨린다. 주인공이 뇌종양 4기에 걸렸다. 남은 생명은 길어야 반년, 자칫하면 일주일도 장담할 수 없단다.


 주인공의 의사의 판정을 듣고 거리로 뛰쳐나가 "으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풀썩 주저 앉지는 않았다. 뜻밖에 덤덤하게 지내는 모습이 그려졌지만, 그래도 자신이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를 슬프게 했다. 그때 바로 그의 눈앞에 그와 똑같은 모습을 한 악마가 나타나 한 가지 제안을 한다.


"이 세상에 뭐든 한 가지만 없앤다. 그 대신 당신은 하루 치 생명을 얻는 겁니다."


 느닷없는 제안에 주인공은 당황했지만, 그는 악마의 제안을 따르기로 한다. 악마가 제일 먼저 세상에서 없앤 것은 '전화'다. 오늘날 우리가 누구나 다 주머니에 넣어서 다니고, 누구나 다 지금도 곁에 두고 있을(혹은 지금 스마트폰으로 이 글을 읽고 있을지도 모른다) 전화를 없는 세상이 그렇게 만들어졌다.


 우리는 당장 눈앞의 '전화'라고 부를 수 있는 기계가 사라진다면 굉장히 당혹스러울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 사람은 전화가 없다고 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의 '세상에서 전화가 사라진다면' 이야기는 무덤덤하게 책을 읽어가면서도 흠칫 놀라는 장면이 그려졌다.


평일 오전 시간이라 그런지 전차 안은 많은 승객으로 붐볐다. 평소 같으면 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휴대전화를 보고 있을 것이다. 오늘은 달랐다. 모두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거나 창밖의 경치를 바라보는 등 각자의 시간을 자유로이 즐기고 있었다. 기분 탓인지 그 표정이 밝아 보였다.

사람들은 왜 휴대전화를 볼 때, 그토록 심각하고 불행한 표정을 지을까? 새삼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전차 안의 평화로운 분위기를 바라보고 있으니, 나는 왠지 단순히 내 생명을 얻는 데 그친 게 아니라 세상에도 멋진 일을 해준 것 같은 기분이 차츰 들었다. (본문 51)


 생각해보면 휴대전화는 늘 우리가 지나쳐가는 소중한 시간을 빼앗아 갔다.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거나 생각에 빠질 수 있는 시간을 빼앗는다. 휴대전화로 우리가 접속하는 인터넷은 건강한 이야기보다 가십거리로 넘쳐난다. 우리가 항상 접속하는 SNS는 이유 없이 들어가는 마약 같은 존재다.


 휴대전화가 없으면 우리는 어쩌면 좀 더 자유로운 시간을 즐겁게 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각자의 시간을 자유롭게 보내면서 타인이 어떤 일상을 보내는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올려 자랑하기 위해서 화려한 음식을 먹는 게 아니라 정말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어도 된다.


 와우! 책을 읽으면서 휴대전화가 없는 삶을 생각해보니 뜻밖에 나쁜 일만 가득한 건 아니었다. 약속 시각을 정하거나 쉽게 연락을 주고받는 일이 없다고 하니 그건 불편하다. 어쩌면 우리는 몇 안 되는 그 기능을 위해서 휴대전화에 너무 많은 건 뺏긴 건 아닐까? 나는 책을 읽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주인공 또한 그런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는 헤어진 여자친구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휴대전화로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를 나눈 여자친구와 일상을 떠올리며 그는 문득 전화의 가치를 되새김질한다. 우리에게 있어 '어떤 것'은 항상 잃는 것과 얻는 것이 공존했다.


 악마는 두 번째로 세상에서 영화를 없앤다. 영화를 좋아했던 주인공에게 영화를 없애는 일은 분명히 슬픈 일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주인공은 그 사실을 처음에 체감하지 못했다. 인생 최후의 마지막 한 편 영화를 보고 나서 그는 수많은 영화가 얼마나 그를 지탱해주고 형성시켰는지 깨닫는다.


 "소중한 것 대부분은 잃어버린 후에야 깨닫는 법이야."


 어머니가 영호를 보면서 자주 한 말을 떠올리면서. 아마 이 이야기는 남의 일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항상 소중한 것 대부분은 잃어버린 후에야 깨닫는다. 그래서 자기계발서 같은 책을 읽어보면 '지금 당장 소중한 꿈을 위해 행동하라!'고 말하는 책이 많다. 그런데 그런 책에서 말하는 소중한 꿈은 무엇일까?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은 그 고민을 우리가 스스로 하게 한다. 악마가 세 번째로 없앤 것은 시계다. 시계가 없어지면 우리는 지금이 몇 시 몇 분인지 알 수 없고, 오늘이 월요일인지 화요일인지알 수 없게 된다. 단순히 시간의 개념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 시간을 만든 인간의 규칙이 없어지는 거다.


 책의 주인공은 이렇게 느낀다.


시계가 사라진 세상에서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러자 내 안에서 여러 가지 인간의 규칙이 와해되어 갔다 시간과 마찬가지로 색이나 온도라는 척도도 존재하지 않음을 알아차렸다. 모두 다 인간의 체감에 인간이 '이름'을 붙였을 뿐이다.

요컨대 '인간 이외의 모든 세상'에서 본다면, 일 년도 하루도 일 초도 존재하지 않으며, 파랑도 빨강도 노랑도, 체온도 기온도 존재하지 않는다. 거기에는 오로지 인간이 어떻게 느끼느냐만 존재한다. (p132)


 시계를 없앤 세 번째 장에서는 악마가 주인공이 기르는 고양이 양배추(이름)가 주인공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했다. 주인공과 고양이가 나누는 장면을 읽고 있으면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가 저절로 떠오른다. 특히 고양이의 말투가 옛 시대극의 말투라 무척 재미있게 다가왔다.


 세 번째 장에서 읽은 고양이의 시선으로 본 인간이 정한 규칙의 가치와 무가치에 대한 재정리는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주인공은 고양이와 이야기를 나누며 오늘의 시간과 과거로 지나간 시간과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시간 속에서 후회를 발견한다. 나 또한 그랬다. 시간은 늘 후회라는 또 다른 이름이니까.


내가 살아온 삼십 년간, 과연 정말로 소중한 일을 해왔을까? 정말로 먹고 싶은 것을 먹고,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고, 소중한 사람에게 소중한 말을 해왔을까?

나는 어머니에게 거는 전화 한 통보다 당장 눈앞의 수신 목록으로 전화를 거는 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 정말로 소중한 것을 뒤로 미루고,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눈앞의 것을 우선하며 하루하루를 살아온 것이다.

눈앞의 것에 쫓기면 쫓길수록 정말로 소중한 것을 할 시간은 사라져간다. 그리고 끔찍하게도 그 소중한 시간이 사라져 가는 것을 전혀 알아채지 못한다. 시간의 흐름에서 잠깐만 멈춰서 보면, 어떤 전화가 내 인생에서 더 중요한지 금방 알았을 텐데.

그리고 당장 눈앞에 닥친 본질적이지 않은 무수한 일에만 쫓겨온 결과, 인생 마지막 시점에 '이건 아니었는데'라며 한탄하는 것이다. (본문 136)



 시계를 없앤 이후 악마는 네 번째로 고양이를 없애기로 한다. 네 번째 장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은 글을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고양이 양배추와 주인공이 나누는 대화에서 주인공이 돌아보는 지나간 시간 속의 가치는 너무나 절절했다. 마치 쇼팽 발라드 G 단조 1번 마지막 부분처럼….


 "인간이 고양이를 키우는 게 아니라 고양이가 인간의 곁에 있어 줄 뿐이야."라는 어머니의 말은 네 번째 이야기의 주제이자 크게 보면 이 책의 주제라고 말할 수 있다. 저자는 다섯 번째 장인 '세상에서 내가 사라진다면'에서 악마가 스스로 말하는 자신의 정체와 주인공이 보낸 삶을 포개듯이 정리한다.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마지막 결말은 자전거를 타고 옆 마을로 가는 주인공의 모습으로 마무리된다. 만약 영화라면 여기서 엔딩 음악이 나오며 주인공이 자전거를 타는 모습이 점점 멀어져가는 모습일 것이다.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했고, 지나친 기억 속의 소중함을 알 수 있었던 소설이었다.


 이 글을 마치는 시점에 글이 쉽게 마무리되지 않아 정명훈이 연주하는 모차르트 작을 별 변주곡을 듣고 있다. 작은 별 변주곡의 시작은 우리에게 익숙한 작은 별이지만, 뒤로 갈수록 감정이 무척 풍부해진다. 마지막에 이르러 박자는 다시 빨라지기 시작하며 힘 있게 마무리된다. 마치 이 소설의 결말처럼.


 아직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을 만나보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꼭 한 번 만나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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