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한 권력의 횡포에 맞선 나의 형 체 게바라를 읽다
- 문화/독서와 기록
- 2017. 2. 10. 07:30
<나의 형, 체 가바라>, 체 게바라의 가치로 오늘 한국을 고민하다
체 게바라. 한때 세계에서 이름이 거론되며 많은 배움과 놀라운 준 아르헨티나 정치가의 이름이다. 나 또한 그의 이름을 몇 번 지나가다 들은 적이 있다. 종종 그의 사진으로 보이는 걸 블로그 프로필 이미지로 사용한 사람도 본 적이 있다. 하지만 나에게 '체 게바라'는 이름은 단순히 그 정도에 불과했다.
종종 읽는 책에서 '체 게바라'라는 이름이 나와 흥미를 둔 적은 있지만, 적극적으로 그가 어떤 일을 한 인물인지 찾아보려고 하지 않았다. 그 당시에 나는 아직 정치에 흥미를 똑바로 두지 못했을 수도 있고, 그저 대학 생활과 병행하는 블로그에 글을 쓰는 일이 중요해 크게 신경을 쓰지 않은 탓도 있다.
하지만 꼭 읽어보아야 할 이야기는 반드시 만나는 법이다. 이번에 우연히 <나의 형, 체 게바라>라는 책을 통해서 그동안 이름만 들었던 '체 게바라'의 이야기를 읽게 되었다. 단순한 정치 혁명가가 아니라 시대의 불의에 저항한 그의 이야기는 놀라웠고, 후세대에 전한 그가 가슴에 품은 뜻은 절절했다.
책<나의 형, 체 게바라>를 읽는 동안 나는 오늘 우리가 직면한 정치와 사회 문제를 마주할 수 있었다. 현재 특검의 대면 조사를 거부한 권력 횡포의 주범인 박근혜 대통령, 그 박근혜 대통령의 그림자 속에서 사리사욕을 취한 최순실, 그리고 그 두 사람의 연극 속에서 춤춘 다양한 인물들이 떠올랐다.
오늘 한국은 너무나 처참한 정치의 몰골을 마주하고 있다.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계속 나와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버릴 수준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 했나 자괴감이 든다."고 말했지만, 자괴감이 드는 건 대통령이 아니라 우리 시민들이다. 우리가 이러려고 세금을 냈는지 자괴감이 든다.
<나의 형, 체 게바라>는 체 게바라의 동생이 보고 들은 그의 일대기와 함께 동생의 이야기 또한 상세히 적혀있다. 책에서 읽을 수 있는 아르헨티나의 상황과 권력의 횡포에 대항한 체 게바라의 모습과 그가 품은 비전은 오늘날 우리에게 큰 메시지를 던졌다. 책을 읽는 동안 몇 번이나 깊은 사색에 잠겼다.
책을 읽다 보면 얼마 가지 않아 이런 이야기를 만난다.
내 마음 속에 그 무엇이 무르익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문명의 폭력에 대한 증오가 나를 못 견디게 한다. 견디기 힘든 소음으로 나라를 뒤덮고 있는 민중의 무지에 나는 분노한다. 이 모든 것은 내가 알고 있는 진정한 평화와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본문 115)
체 게바라가 여행을 통해서 본 모습은 그가 사는 시대에 대한 회의감이다. 나는 이 말을 통해서 오늘 우리 사회에서 태극기를 들고 광장에 모인 민중이 떠올랐다. 가짜 뉴스를 만들어서 진실인 마냥 보도하며 거짓으로 진실을 가리고, 그런 거짓 주장을 밑바탕으로 삼아 목에 힘주는 정치인들이 말이다.
만약 체 게바라가 오늘날 한국 사회를 본다면 저 때와 똑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오늘 우리가 보는 것은 우리가 이때까지 배운 것과 정반대의 모습이다. 정치는 시민을 위하지 못하고, 오랜 세월 동안 이어져 온 정경유착은 우리 사회를 뿌리부터 썩게 했다. 그 실체가 지금 드러난 박근혜 최순실 사건이다.
<나의 형, 체 게바라>는 책을 읽는 동안 몇 번이고 현실을 고민하게 했다. 체 게바라가 바라보고 가족에게 전한 이야기, 가족으로서 체 게바라를 본 이야기는 아마 시중에 나온 다른 '체 게바라'의 이야기와 사뭇 다를 것이다. 미처 알지 못한 체 게바라가 살았던 시대의 이야기는 책 속에서 생생히 살아있었다.
체 게바라의 삶을 그리면서 자연스럽게 오늘날 세계가 직면한 문제를 고민하는 챕터 15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에서 저자의 이야기 또한 굉장히 인상적이다. 그 부분에서 개인적으로 상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을 옮겨보면 아래와 같다.
우리에게 제시되는 유일한 목표는 계속 더 많이 소유하라는 것이다. 식인종과도 같은 소비가 우리의 종교가 되었다. 그러면 우리는 점점 더 많이 생산한다. 그런데 무엇을 위해, 어떤 목적으로 그렇게 하는가. 이 모든 것은 앞서 말했듯이 글로벌 독점기업들을 배불리기 위해서다. 이들은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을 고려하는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믿게끔 한다. 공립학교를 지어 읽고 쓰는 것을 가르치고, 중산층에게 소수 지배집단이 군림하는 기업의 행정직을 맡기기도 한다.
그러는 동안 이 소수 지배집단은 자기 아이들은 고급 교육 과정을 거치게 하는 등 미리 정해진 틀대로 찍어낸 지도자로 만들어낸다. 결국 우리는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모델을 끊임없이 반복할 미래의 정치 권력자들을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이따금 그런 사람들 중 하나가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신분을 떨치고 나와 독립적인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러면 소수 지배집단은 깜짝 놀란다. 그러고는 그가 계속 천박한 신분의 사람들을 억제하도록 온갖 수단을 제공한다. (본문 334)
오늘날 우리 사회는 타고난 재력이 없으면 위로 올라가기 어렵다. 아니, 위로 올라가기 어렵다고 말하는 것보다 최소한의 인간적 존중을 받으며 살아가기가 어렵다. 흙수저와 금수저로 나누어지는 사회에서 우리는 다시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지 않지만, 수저 사회는 여전히 우리가 마주한 현실이다.
최순실 사건이 보여준 특정 계층이 누린 압도적인 특권. 우리는 자본주의 소비 사회가 지향하는 능력주의 속에서 '억울하면 노력해서 성공해라'는 말을 듣는다. 취업하기 어려운 사회를 비판하니 '창업해라'는 말을 정치인들에게 듣는다. 애초부터 바라보는 세계가 너무나 다른 까닭에 현실은 잔혹하다.
체 게바라의 사상과 이념은 공산주의가 아니다. 공정하지 못한 사회의 잘못을 수정하고자 했으며, 권력의 횡포에 맞서 대항하고자 했다. 오늘날 체 게바라의 모습은 곳곳에서 사용되어 횡포에 대항하는 평화의 상징으로 이용되고 있다. 그의 이념은 불변하는 가치로 언제까지나 남아있으리라 믿는다.
오늘 이 복잡한 사회 속에서 '가치'를 고민하는 사람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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