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 소중한 기억의 심장을 뛰게 한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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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서 온 편지가 후회스러운 일상을 조금씩 움직인다


 요즘 신카이 마코토의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이 국내에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습니다.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저 또한 <너의 이름은>을 보았습니다. 저는 단순히 극장에서 애니메이션만 보지 않고, 메가박스에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참석하는 시사회에 초대를 받아 정말 멋진 시간을 보냈습니다.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은 주인공 타키와 미츠하 두 사람이 잠에 빠졌을 때 몸이 바뀌어 일어나는 해프닝으로 즐겁게 시작했다가 점점 고조되는 긴장감과 깊어지는 마음이 절절한 결말로 마무리되며 많은 사람에게 감동은 주었습니다. 그래서 애니메이션임에도 국내외에서 엄청난 인기몰이를 하고 있죠.


 사실 <너의 이름은>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하고 싶지만, 오늘은 <너의 이름은>과 닮았지만, 그 소재와 방향이 조금 다른 작품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오늘 소개할 작품의 이름은 <오렌지>입니다. 일본에서 애니메이션과 만화로 엄청난 감동을 줬던 그 작품이 소설로 나와 한국에도 발매가 되었습니다.


 <오렌지>는 <너의 이름은>과 마찬가지로 시공을 뛰어넘어서 이어진 소중한 마음을 소재로 한 작품입니다. 소설 <오렌지>는 주인공 나호가 10년 후 미래의 자신에게 받은 편지로 이야기가 시작합니다. 미호는 처음에 그 편지를 조금 의심했었지만, 편지에 적힌 대로 일이 일어나자 편지를 믿게 됩니다.


 미호가 받은 편지에 적힌 대로 나호의 반에 카케루가 전학을 오게 되고, 미호는 미래에 있는 10년 뒤의 나가 부탁한 대로 후회를 하지 않기 위해 행동합니다. 그녀가 카케루를 좋아하게 되는 것까지 똑같았는데, 그녀가 받은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편지를 쓴 가장 큰 목적을 알려줄게. 스물여섯 살이 된 지금 내게는 후회되는 일들이 아주 많아 이 편지를 쓴 것은 열여석 살의 나는 이런 후회를 평생 안고 살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야. 10년 뒤인 지금 카케루는 이곳에 없어. 소중한 것을 잃지 마. 카케루를 잘 지켜봐줘. (본문 38)


 나호는 편지를 읽으면서 '카게루는 이곳에 없다고? 그게 무슨 뜻이지? 소중한 것을 잃지 말라니…, 카케루 말인가? 미래에, 내가 카케루를 잃는다는 뜻인가?'는 의문을 품게 됩니다. 나호는 편지에 적힌 대로 카케루를 신경 쓰지만, 일이 마음대로 풀리지 않아 괴로워하기도 하고, 방황하기도 합니다.



 소설 <오렌지>는 나호의 감정을 보여주다가 시점을 옮겨 카케루의 시점에서 카케루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여주기도 하고, 나호의 친구 중 한 명인 스와의 시점으로 옮겨 또 다른 각도에서 사건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굉장히 주인공들의 감정에 깊이 공감할 수 있게 됩니다.


 나호는 차차 시간이 지나면서 편지에 적힌 '카케루는 이곳에 없어. 소중한 것을 잃지 마.'라는 말의 의미를 알게 됩니다. 그 의미의 작은 단서는 카케루와 스와의 대화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그 대화를 조금만 옮겨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번엔 정말, 후회하고 싶지 않아."

카케루는 단어를 하나하나 골라서 쥐어짜듯이 말했다.

"선택지 중에 어떤 걸 골라야 틀리지 않을지를 모르겠어. 그동안 많은 선택을 했는데, 틀려서 후회한 적이 많거든."

"많은 선택?"

"우에다 선배와 사귄 것도 그중 하나고 말이야."

카케루는 쓴웃음을 짓는다.

"그 때문에 나호에게 피해를 줬어. 내가 잘못 선택해서 실수를 하고, 또 후회할 일을 만들고 싶진 않아.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게 될까 봐 무서워. 그러느니 선택하지 않는 게 낫다는 생각도 들고."

고개를 숙인 채 한숨을 쉬는 카케루를 보며 스와도 마음이 답답해졌다. 이 개운치 않은 기분이 안타까움이라는 걸까.

"카케루, 난 그건 답이 아니라고 봐. 그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변하지 않잖아."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도 돼."

자포자기하듯 대답하는 카케루를 보며 스와는 가슴 속 깊이 아픔을 느꼈다.

"카케루, 힘내."

뭔가를 삼키듯이 끄덕이며 고개를 쳐든 카케루는 그저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쓸쓸한 미소였다. 스와는 카케루의 마음 속 깊은 바닥을 전부 헤아릴 수가 없었다. (본문 143)


 스와가 카케루와 대화하며 느낀 마음속 깊은 바닥을 전부 헤아릴 수 없는 카케루의 쓸쓸한 웃음은 나호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는 진실이 담겨 있는 모습 중 하나입니다.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카케루에게 꽤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저 또한 그와 비슷한 고민을 안고 살았던 적이 있거든요.


 아마 저만 아니라 오늘 이 글을 읽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눈앞에 놓인 여러 선택지 중에서 어떤 걸 골라야 할지 몰라 헤맬 때가 많습니다. 때때로 어떤 선택으로 우리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상처를 받거나 상처를 입히기도 합니다. 그래서 선택하는 일은 무서운 일입니다.


 저에게 있어 사람과 만나는 일, 사람과 눈을 마주치며 거리를 좁혀 대화하는 일이 무척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대학에서는 일절 말하지 않고 다니는 주의를 취하다고 조금씩 선택지를 바꾸는 노력을 했는데요, 그 덕분에 조금은 변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았으면 없었던 일이겠죠.


 카케루는 마치 저의 옛 모습이자 아직도 남아있는 저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카케루가 이렇게 깊은 망설임과 고독을 가진 이유는 그가 과거에 한 선택지로 인해 소중한 사람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상처가 '내가 선택한 일이 또 누군가를 괴롭힐지도 몰라.'는 두려움을 그에게 주었습니다.


 누군가와 함께 있지 못하고, 혼자서 괴로움을 끌어안은 채 어디에도 표출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는 건 심적으로 사람을 궁지에 몰아넣게 됩니다. 그때는 자살이라는 말이 문득 머리에 지나가기도 하고, '그냥 세상이 이대로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카케루는 그런 상태에 가까웠습니다.


 나호는 카케루의 모습을 걱정하며 편지에 적힌 10년 후 미래의 나가 당부한 '카케루를 후회에서 구해주기를 바란다. 그렇게 했다면 카케루의 사고를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편지에서 읽고, 당일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어 맨 뒷장부터 읽게 됩니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2월 25일. 평소와 다를 것 없는 날이었다. 밤에 평소처럼 방에서 일기를 쓰고 있는데 스와한테 '카케루가 사고를 당했다'는 연락이 왔다. '카케루가 죽었다'고, 사고가 난 것은 밤 8시가 지났을 무렵. 카케루네 집 근처 사거리. 카케루가 자전거를 탄 채 달리던 트럭 앞으로 뛰어든 모양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카케루가 그 사고를 피하게 하는 것이 카케루를 구하는 일이 아니다.

* 카케루가 죽음을 선택하지 않도록 만들 것.

* 카케루가 짊어진 짐을 가볍게 해줄 것.

* 카케루의 고민을 함게 안아줄 것.

*카케루를 혼자 두지 말 것.

그리고

*카케루의 마음을 구원해줄 것.


마지막 한 줄의 소원은 특히 더 큰 글씨로 적혀 있다. 그리고 편지는 이렇게 매듭지어져 있었다.


카케루의 죽음이 사고가 아니라 자살이었다는 걸 우리는 10년 뒤에야 알았다. 우리의 후회는 단 하나. 카케루를 죽게 해버린 일이다. (본문 162)


 이 편지를 읽고 나호는 머릿속이 하얘져서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습니다. 사고가 아니라 자살이라는 사실에 놀랐고, 미래의 나가 말한 '그 사고를 피하게 하는 일이 카케루를 구하는 일이 아니다.'고 강조한 말을 읽으면서 어떻게 해야 카케루의 마음을 구원할 수 있을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라면 소중한 친구의 마음을 구하기 위해서 어떻게 하실 것 같나요? 제가 나호이 입장이라고 해도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을 거예요. 한 사람의 마음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그 상처의 깊이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절대 할 수가 없습니다. 괜히 오지랖을 떨다가 더 괴로워질 수도 있죠.


 나호는 혼자서 괴로워하다 스와에게 "스와, 도와줬으면 좋겠어. 카케루를 함께 구해줘."라고 부탁하게 됩니다. 거기서 나호는 스와 또한 10년 뒤 미래의 나한테서 편지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스와만 아니라 함께 다니는 친구 타카코, 아즈, 하기타 모두 10년 후 미래의 나한테서 편지를 받았죠.


 <오렌지> 후반부에는 모두 편지가 말하는 대로에서 벗어나 지금 당장 후회하지 않는 선택을 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좀 더 강하게 실천을 하게 됩니다. 이야기의 마지막에 이르러 친구들은 카케루의 마음을 구원하게 되는데요, 그 과정에 이르는 이야기가 굉장히 감동적이었습니다.


 소설에서는 애니메이션과 만화에서 볼 수 없었던 '구원받지 못했던 세계의 카케루의 독백'도 읽을 수 있어 결말에 대한 깊이를 더했습니다. 책을 다 읽고 마지막 한 장을 덮을 때,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 있는 것을 문득 느낄 수 있는 결말이었습니다. 오렌지빛으로 물든 노을이 한층 더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신카이 마코토의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을 통해 아름다운 사랑에 감동하셨다면, 이번에 닮은 소설 <오렌지>를 통해 아름다운 우정과 사랑에 감동해보는 건 어떨까요? 책을 읽어보면 친구라는 존재는 정말 더없이 소중하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책의 마지막 장면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친구들의 수다를 귓가로 들으며 카케루는 자신이 쓴 편지의 내용을 다시 떠올렸다.


10년 뒤의 모두에게.

모두 잘 지내?

10년 뒤에도 다들 여전히 사이좋게 웃고 있니? 하루하루가 즐거워?

10년 뒤의 나는 지금 뭘 하고 있을까? 축구는 계속하고 있을까? 나호와 결혼을 했을까?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고 있을까?


멍하니 생각에 잠겨 걷는데 나호가 웃는 얼굴로 다가와 나란히 걷는다. 이제는 나호가 곁에 있기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오렌지색 하늘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는 카케루에게 나호도 기쁜 목소리로 말을 건다.

"카케루, 무척 기뻐 보여."

"응."

카케루는 웃는 얼굴로 말했다.

"나, 죽지 않기를 정말 잘했어."

그 말에 앞에서 걸어가고 있던 모두가 돌아보았다.

진심이 담긴 카케루의 말에 모두 그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평소와 똑같은 미소다.

'있잖아, 카케루. 이걸 꼭 기억해줘. 만약 또다시 네가 혼자 울고 있으면, 우리가 구해줄게. 몇 번이라도, 몇 번이라도.' (본문 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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