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도 꽃이다, 친구 없는 게 뭐 어때서요
- 문화/독서와 기록
- 2016. 9. 2. 07:30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이야기를 담은 조정래 장편 소설
대학에 다니면서 나는 곧잘 어머니로부터 "점집에 가니까 너는 시험만 치면 합격한다고 하더라. 사법고시를 치든, 행정고시를 치든 시험을 쳐서 공무원을 해라."는 말을 들었다. 한때 나도 판검사를 꿈으로 가지기도 했던 적이 있었지만, 나는 자유롭게 지낼 수 없는 감옥에 갇히는 일은 절대 하기 싫었다.
지금도 종종 어머니가 '공무원을 해라.'고 말씀하신다. 그때는 그냥 사람들이 모두 공무원이 좋다고 하니 공무원이 되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 말에 다른 한이 서려 있는 것을 나는 안다. 어머니의 사업상 공무원의 비위를 맞추느라 애써야 했고, 자식인 나는 달라지길 바랐을 것이다.
어머니의 일을 도우면서 '을'의 처지에 있는 사람이 얼마나 힘든지 보았다. 그때마다 '내가 공무원이 되어서 이런 일을 겪지 않아야 하겠다'는 생각보다 오히려 공무원들과 거래 업체들의 갑질을 보면 절대 그렇게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일한 자리 위에서 옹졸한 인간이 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어떻게 살더라도 사람으로 살고 싶었다. 자유롭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었다. 가난하더라도 오늘 웃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오늘 이렇게 책을 읽고, 오늘 이렇게 글을 쓰고, 오늘 이렇게 다짐을 한다. 나는 절대 사람임을 포기하지 않고, 사람의 기본을 잊지 않게 노라고.
내가 이런 바람을 가슴에 품었던 건 중학교 시절이었다. 당시에 학교 폭력을 당했던 나는 공부를 잘하는 아이라고 가해자를 감싸던 학교의 모습을 통해 모든 걸 버렸다. 우리 사회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곳이 아닌, 오로지 짐승처럼 덤벼들어 결과로 모든 게 결정되는 사회라는 것을 알았다.
중학교에 얻은 그 깨달음은 고등학교에 가서 잠시 잊어버렸지만, 대학교에 들어와 다시 혼자 지내면서 우리 사회에서 들리고 직접 다시 겪은 일을 통해 다시금 상처를 통해 떠올릴 수 있었다. 그 상처를 통해 느낀 아픔을 우리 사회에서 일어난 문제에 대변하는 심정으로 쓴 글이 '교육' 카테고리 글이다.
그리고 오늘 이 글은 <풀꽃도 꽃이다>는 소설을 읽고 적게 되었다. 아직 소설은 1권을 다 읽지 못했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는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학교 폭력은 어느 사이에 사라지지 않았고, 더욱 은밀하게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 아이들은 여전히 무한 경쟁에 내몰려 괴물이 되어가고 있었다.
풀꽃도 꽃이다 1권, ⓒ노지
대학에 돌아와서 주변의 어린 대학생들을 보면 참 뭐가 그리도 신나서 떠드는지 모르겠다. 강의 시간이 되어도 교수님이 오지 않으면, 마치 중·고등학교처럼 쉴새 없이 떠들어댄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아직 철이 덜 들었다고 생각했다. 그 모습을 보며 한편으로는 '아직도 바뀐 게 없다'고 생각했다.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 공부에 이 목숨 하나를 바쳐야 했던 초·중·고등학교 시절과 전혀 달라진 게 없었기 때문이다. 대학에 들어온 학생들은 모두 하나같이 취업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린다. 그러면서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결과에 오히려 초·중·고 시절보다 더 괴로워하며 스스로를 망치기도 한다.
나는 내가 지금 다니는 대학의 모습이 학교 폭력으로 문제가 된 초중고등학교와 전혀 다르지 않다고 본다. 학생들의 눈을 통해서 살아가는 즐거움을 보는 것보다 성적에 연연하고, 현실에 체념하는 모습을 더 흔히 볼 수 있다. 과연 이 학생들이 다음에 부모가 되었을 때, 지금과 달라질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풀꽃도 꽃이다>를 읽어보면 정말 놀라운 장면이 많다. 작가가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사례를 수집하여 이런 글을 적을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학교 폭력을 당하는 아이의 절박한 심정이 너무나 잘 그려져 있고, 욕심이 가득한 부모 밑에서 괴로워하는 아이의 심정이 잘 그려져 있다.
작가가 강교민 교사를 통해 인용한 말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변산공동체학교'를 열어 아이들과 함께 낙원을 꾸미고자 하는 윤구병 선생도 어느 강연에서 아이들을 구속, 속박해서 죽음의 상황으로 몰고 가는 우리나라의 비인간적인 교육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손발을 묶어놓고 몸을 묶어놓으면 사람은 죽습니다. 예수님이 살던 시절에 로마 교황청이 반란군들을 잡아다가 손발을 묶어놨어요. 그렇게 죽인 것이었죠. 우리 아이들이 지금 교실에서 열 시간, 열두 시간 동안 묶여 십자가 처형을 받고 있는 거예요. 어머니들은 사랑의 이름으로, 교육자들은 교육의 이음으로 그런 짓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이건 유대인의 집단 학살보다 훨씬 더 큰 범죄입니다.' 우리의 교육은 이 정도로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그런데도 엄마들은 '내 자식만 탈 나지 않으면 상관없다', '내 자식에게 무슨 일이 날 리 없다' 하는 무모함으로 무한 경쟁의 질주에 열을 올리느라고 딴것은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참 대단들 하십니다." (본문 142)
딱 한 부분인데 정말 우리 사회의 교육 문제를 정면으로 지적하고 있다. 윗글은 강교민 교사가 자살하려고 했던 한 아이의 어머니와 만나는 장면의 대사이다. <풀꽃도 꽃이다>는 강교민 교사의 설교만 늘어놓지 않고, 문제가 되는 어머니와 아버지와 그 아이에 대한 세밀한 심리까지 정확히 묘사한다.
책을 읽는 동안 그런 경험이 있었던 나는 너무나 책에 쉽게 빠져들었다. 책을 읽으면서 한탄 섞인 한숨을 내쉬기도 하고,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기도 하고, 점점 푸르게 변해가는 가을 하늘을 바라보며 샤프를 만지작거리기도 했다. 내가 쓰는 샤프는 2009년도 수능 때 받은 나를 증명하는 샤프다.
수능시험. 단지 그 시험 하나를 잘 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버리고, 얼마나 많이 부모님과 갈등을 빚고, 얼마나 많이 뜨거운 괴로움을 삼켰는가. '2009 수학 능력 시험'이라는 글자가 지워져 가는 샤프를 보면 나는 지나면 이렇게 사라질 것에 지지리도 목숨을 건 바보 같다는 생각을 한다.
아직은 글자가 남아있던 때(책은 조벽 교수의 '인성이 실력이다'), ⓒ미우
학교 폭력과 성적 집착은 떼려고 해도 뗄 수 없는 사이다. 그리고 그것은 가정불화로 당연하게 이어지는 소재다. 지나고 다면 사라질 바보 같은 일에 집착하고, 또 집착한다. 그것을 이 악물고 버티면서 사람이 된다고 하지만,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 괴물을 만들어서 괴물을 사회로 내보내는 것 같다.
<풀꽃도 꽃이다>를 읽어보면 이런 장면이 있다.
"차암, 초등학교 4학년밖에 안 된 것들이 어떻게 그렇게 꼭 어른들처럼 빈부를 따지는지 모르겠어요. 그래서는 안 된다고, 돈으로 사람 차별하는 건 도둑질을 하거나 폭행을 가하는 것과 똑같은 나쁜 짓이라고 가르쳤는데도 아무 효과가 없었던 거예요. 온통 돈에 미친 우리나라의 천민자본주의와, 돈이면 사족을 못 쓰는 언행이 애들을 그렇게 물들여놨나 봐요. 애들의 그 약고 눈치 빠른 게 끔찍하고 소름 끼쳐요." (본문 240)
초등학교 아이들의 세계는 순진하지도 않았고, 건강하거나 명랑하지도 않았다. 꼭 어른들이 일삼아 가르친 것처럼, 아니면 아이들이 몰래 엿보아 배운 것처럼 어른들 세계의 판박이 그대로였다. 강한 자들끼리 패거리를 짜서 조직적인 세력을 만들고, 여러 약한 자들을 골라내 지배하고 괴롭히며 자기네 권력을 과시하는 그 악랄함. (본문 249)
나는 이 장면을 <학교의 눈물> 방송을 통해 본 적이 있다. 천종호 판사가 아이들을 처벌하고 나서 방송진과 인터뷰를 통해서 "어른들의 문화가 지금 아이들 학교 내에서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서열, 세력, 권력…."이라는 말을 했었다. 그 말이 있고 3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지금 달라진 게 전혀 없다. 오히려 더 나빠졌다.
<풀꽃도 꽃이다>에서 읽은 장면처럼 오히려 저학년으로 빠르게 퍼지면서 중·고등학생들의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우리가 종종 뉴스를 통해서 듣는 임대 아파트와 분양 아파트 차별은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다. 주변에 그런 게 없을 것 같지만, 애써 외면하며 '그런 일은 없어.'라며 태연한 척을 하는 거다.
소설을 읽으면서 곳곳에 언급된 현실 사례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읽은 문장은 너무 무거웠다. 한때 학교폭력을 겪으면서 극단적인 생각마저 해보았기 때문에 나는 잘 알 수 있었다. 이것은 절대 쉽게 쓰인 소설이 아니라 엄청난 자료 수집을 통해 고쳐진 소설이고, 가상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것을.
벌써 나이가 스물일곱이 되어 대학에 다니는 나에게도 어머니는 "너 학교에서 친구는 있느냐? 왕따 당하는 거 아니냐?"는 종종 걱정스러운 말씀을 토로한다. 어렸을 적에 어머니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겼을 그 학폭 사건을 떠올리면 지금도 너무 죄송하다. 그래서 지금도 그런 걱정을 하시는 것 같다.
나는 웃으면서 "나이가 다른데 친구는 무슨. 나는 친구 필요 없다."고 말한다. 어머니 걱정을 덜기 위해서는 "친구 많다."고 말하는 게 옳겠지만, 나는 그런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대학에서 딱히 친구가 필요한 적은 없었고, 지금도 혼자서 학교와 집을 오가며 잘 다니고 있어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왜 굳이 친구가 필요한가. 친구가 없는 게 뭐 어때서. 지금 당장 친구가 없더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하다 보면 친구는 자연히 생기게 된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너무나 다르다. 나이는 둘째치고, 바라보는 것과 알고 있는 게 다르다. 사람에 대한 신뢰가 회복되지 않은 난, 지금 회복해나가는 중이다.
책에 인용된 교육가 밀은 "인생은 연극이다. 그런데 그 연극은 극작가도, 연출가도, 주인공도 자기 자신이면서, 단 1회의 공연일 뿐이다."고 말했다고 한다. 진짜 친구처럼 대할 수 없는 사람을 친구라고 부르며 지내는 것보다 내가 살아가는 방식을 통해 내 삶을 추구하는 게 나는 옳다고 생각한다.
<풀꽃도 꽃이다>는 그런 소설이었다. 어떤 정해진 답을 제시하지 않고, 우리는 지금 어떤 이야기에 등장한 주인공인지 보여준다. 나는 가해 학생일 수도 있고, 피해 학생일 수도 있고, 전형적인 한국의 엄마일 수도 있고, 아빠일 수도 있고, 교육을 통해 사람을 보는 교사일 수도 있다.
어떤 배역을 가졌더라도 이 소설은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며 더 나은 내일을 고민하도록 할 것이다.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우리들의 이야기가 담긴 조정래 작가의 장편 소설 <풀꽃도 꽃이다>. 아직 책을 만나보지 않았다면, 이 글을 통해서 꼭 한 번 이 책과 만날 수 있는 인연이 생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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