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소설 소년이 온다, 잊지 말아야 할 그 기억

오늘날 다시 번지는 그 날의 그림자를 우리는 잊어선 안 된다


 내가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해서 배운 건 중학교 때의 역사 시간이었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은 많은 희생자가 나왔고, 언론을 장악한 군부 정부가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알 수 있게 해주었다. 하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중학교 때 배운 그 역사를 '역사가 아니라 암기할 지식'으로 여길 뿐이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없고, 그저 눈앞에 있는 시험을 잘 치기 위해서 무슨 일이 왜 일어났는지 이유를 외우는 것만 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고등학교에 들어가 한국사 수업을 들었지만, 내내 딴짓을 하느라 잘 고등학교 때 선생님은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말씀하셨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대학교에 와서도 나는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턱없이 좁았다. 나는 지금 내가 걸어서 학교에 가는 길과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종종 옆길로 빠지는 길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블로그 활동을 통해서 정치와 사회 문제를 논하는 글을 읽었고, 문학 소설을 읽으면서 그동안 보지 못한 것을 보게 되었다.


 학교라는 폐쇄적인 공간에서 폭력을 당한 이후로 나는 시스템과 어른, 나아가 사람을 불신했다. 나는 이게 나와 같은 경험을 가진 사람의 부정적인 경험이라고 생각했지만, 우리의 역사는 나 한 사람의 아픔은 아픔이 아닐 정도로 큰 아픔을 가지고 있었다. 그 아픔이 오늘날 우리나라를 만들었다.


 독재 정권에 저항하여 민주주의의 목소리를 높이고, 정부가 치밀하게 감추는 진실을 전달하기 위해서 애를 쓰고, 냉혹한 군화에 밟히는 수모를 겪더라도 꺾이지 않는 진실을 후세에 전달하고자 한 모든 사람이 오늘날 우리나라를 만들었다. 비록 그들은 여전히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지만….



 한강의 <채식주의자> 책을 사면서 <소년이 온다>도 함께 샀다. 어떤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지 알지 못했지만, <채식주의자>를 사면서 추천 목록으로 올라와 있어서 <소년이 온다>를 샀다. 책을 사놓고도 읽는 데에 긴 시간이 걸렸지만, 책을 읽기 시작하자 나는 하는 일을 모두 멈출 수밖에 없었다.


 책의 이야기는 광주 민주화 운동을 그리고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기억을 통해서 엿보는 광주의 처참한 현실은 '잔혹하다, 잔인하다, 처참하다….' 같은 아는 단어를 전부 사용해도 표현할 수 없다. 이것이 누군가는 거짓말이라고 말하며 폭동이라 말하지만, 광주 민주화 운동은 우리가 살아온 역사다.


 '정부가 언론을 조작할 일이 없다, 뉴스를 믿지 않으면 무엇을 믿으란 말이야?'라고 생각했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 나서 나는 그런 건 허구에 불과하다는 걸 깨달았다. 우리가 알아야 하는 진실은 스피커에서 나오는 거짓말이 아니라 그곳의 사람들에서 나오는 아픔이었다.


 <소년이 온다>를 읽으면서 작가의 표현에 놀라면서도 끔찍한 그림이 머릿속에서 그려졌다. 더위가 가시는 듯한 8월 말미에 혹독한 겨울이 찾아온 듯했다. 겨울은 너무 고상한 표현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그저 갖은 비명이 메아리치는 듯했다. 무서웠다. 소름이 돋았다.


썩어가는 내 옆구리를 생각해.

거길 관통한 총알을 생각해.

처음엔 차디찬 몽둥이 같았던 그것,

순식간에 뱃속을 휘젓는 불덩이가 된 그것,

그게 반대편 옆구리에 만들어놓은, 내 모든 따뜻한 피를 흘러가게 한 구멍을 생각해.

그걸 쏘아보낸 총구를 생각해.

차디찬 방아쇠를 생각해.

그걸 당긴 따뜻한 손가락을 생각해.

나를 조준한 눈을 생각해.

쏘라고 명령한 사람의 눈을 생각해.


그들의 얼굴을 보고 싶다, 잠든 그들의 눈꺼풀 위로 어른거리고 싶다, 꿈속으로 불쑥 들어가고 싶다, 그 이마, 그 눈꺼풀들을 건너다니며 어른거리고 싶다. 그들이 악몽 속에서 피 흐르는 내 눈을 볼 때까지. 내 목소리를 들을 때까지, 왜 나를 쐈지, 왜 나를 죽였지. (본문 58)


우리는 이따금 만나 함께 술을 마셨습니다. 서로가 자격증 시험에 떨어지고, 교통사고를 내고, 빚이 생기고, 다치거나 병을 얻고, 정 많고 서글서글한 여자를 만나 잠시 모든 고통이 끝났다고 믿고, 그러나 자신의 손으로 모든 걸 무너뜨려 다시 혼자가 되는 비슷한 경로를 거울 속 일그러진 얼굴처럼 지켜보는 사이 십년이 흘렀습니다. 하루하루의 불면과 악몽, 하루하루의 진통제와 수면유도제 속에서 우리는 더이상 젊지 않았습니다. 더이상 누구도 우리를 위해 염려하거나 눈물 흘리지 않았습니다. 우리 자신조차 우리를 경멸했습니다. 우리들의 몸속에 그 여름의 조사실이 있었습니다. 검정색 모나미 볼펜이 있었습니다. 하얗게 드러난 손가락뼈가 있었습니다. 흐느끼며 애원하고 구걸하는 낯익은 음성이 있었습니다. (본문 126)


 우리는 광주 민주화 운동의 기억을 잊어선 안 된다. 많은 사람이 '정의'이라는 이름으로 뭉치지 않은, 단순히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서로를 지탱한 그 시절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 시절을 돌이켜보며 반성하지 않으면, 우리는 또다시 무고한 사람들의 피눈물과 고통으로 역사를 넘어서야 한다.


 그런데 우리 한국의 일부는 그렇지 않다. 아직도 그 시절의 권력을 손에 쥐었던 사람들은 광주 민주화 운동을 가리켜 광주 폭동이라고 말한다. 북한군이 개입한 빨갱이 폭동이라고 말한다. 박정희의 신임을 받은 전두환과 다른 박정희의 진짜 딸 박근혜에게 목소리를 높이면 무조건 빨갱이라고 말한다.


 그 시절 권력을 지녔던 사람들은 마치 시대가 돌아온 것처럼 행동한다. 왜 죽었는지 원인을 밝혀내라는 잃어버린 세월을 대신 짊어진 사람들에 대해서는 다시 매질이 대답을 대신했다. 시민들의 목소리에 묵묵부답하고, 북한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오늘 정부는 그때와 무엇이 다른가.



 김제동은 말한다. 역사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마음이라고. 신채호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우리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무시하고, 미래를 포기하려는 듯한 오늘의 모습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지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예외적인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진실로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된다. 광주 민주화 운동은 엄연한 현실이다. 그곳에는 잔인한 진압을 부추기는 상부의 명령과 그런데도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은 사람이 있었다. 살아남은 자들은 증언하고, 살았던 자들 또한 그 증거를 명백히 공개했다.


 우리는 독일을 본받아야 한다. 끊임없이 과거의 잘못된 역사를 반성하고, 잘못된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철저하게 역사를 가르치는 독일을 본받아야 한다. 지금처럼 건국절 논란을 일으키고, 시대적 상황으로 어쩔 수 없다고 변명을 해서는 안 된다. 도대체 이 나라의 역사를 무엇으로 보는가.


 너무나 어려서 제대로 알지 못했던 진실, 아픔, 기억. 지금도 솔직히 제대로 알지 못한다. 나와는 거리가 떨어져 있었고, 시대는 달라졌다. 하지만 민주주의에 몸담은 한 대통령이 서거하셨고, 알 수 없는 이유로 배가 침몰해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고, 정부는 답이 없었다. 나는 오늘을 통해 어제를 보았다.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는 두 발을 땅에 붙이며 가을 하늘을 올려다보는 우리를 그 시대 속으로 데려간다. 듣기 싫은 끔찍한 비명이 귀에 들리고, 발포하는 총소리가 들리고, 박자를 맞춰 저벅저벅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린다. <소년이 온다>는 독자의 마음을 세차게 흔든다. 단호히 말하고 싶다. 꼭 책을 읽어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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