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도 우파도 없는 절망에 중독된 한국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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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좌파가 말하는 한국 정치, <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


 지금 한국은 박근혜 대통령과 여당의 싸움으로 정치권이 상당히 시끄럽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들이 투표로 심판할 것입니다."이라고 말한 발언에 대해 많은 사람(적어도 주변에서 볼 수 있는 SNS 사람들)이 코웃음dmf 치면서 "박근혜 대통령 당신이 심판당할 것이다."이라고 말하지만, 과연 그럴까?


 나는 지금 우리가 당장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하고 있지만, 막상 선거철이 오면 거의 명명백백하게 또 한 번 새누리당과 박근혜 대통령 측에 힘이 실릴 확률이 높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공고한 콘크리트 지지층을 가지고 있더라도 흔들릴 것 같지만, 야당 새정치는 그 이상으로 무능하기 때문이다.


 선거가 치러질 때마다 나는 김해를 찾는 야권과 여권의 핵심 인사가 연설을 하는 곳을 찾는다. 단순히 뉴스를 통해 그들의 이야기를 보는 게 아니라 직접 내 귀와 두 눈으로 보기 위해서다. 그렇게 현장에 발을 옮겨서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 이번에도 새누리당이 압승하겠구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새정치 쪽은 매해 '이명박은 나쁜 사람, 박근혜는 더 나쁜 사람, 우리가 심판해야 합니다!' 같은 의견이 지지부진하게 이어지지만, 새누리 쪽은 매해 '여러분을 위해 경제 정책을 펴고, 우리 지역을 더 발전시키겠습니다.'이라며 공약을 먼저 내세우고 지지를 호소한다.


박근혜 대선 유세 현장, ⓒ노지


 물론, 새누리 쪽이 대외적으로 내세우는 공약은 거의 지켜지는 것이 없지만, 새누리는 유권자가 무엇을 듣고 싶어하는지 알고 있다. 똑바로 실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적은 정권 심판론보다 일단 유권자에게 사탕을 물리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모르면, 새정치는 앞으로도 이 모양일 거다.


 얼마 전에 읽은 <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 책은 우리가 마주한 지금의 정치 모습을 정말 지독하게 읽을 수 있었다. 여기서 말하는 내가 한 '지독하게 읽을 수 있었다.'는 말의 의미는 그동안 우리가 애써 외면했던 낯부끄러운 민낯이 아니라 보고 싶은 것만 본 우리에 시커먼 덩어리였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어떤 인격을 가진 사람이냐는 것이 고려 대상이 되지 않는 것 같다. 정치인의 덕목이 무엇이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필자는 똑똑한 것뿐 아니라 남을 위한 삶을 살아왔는지, 공직에 헌신하려는 의지가 있는지가 우선시되어야 한다고 대답하겠다. 선거철이 아닐 때도 요란한 홍보 없이 봉사활동을 한 적이 있는가? 여느 정치인처럼 국회의원 자리가 목표인가, 아니면 나라와 국민을 위해 일하려는 마음이 더 큰가? 침묵을 지키는 것이 편한 때도 굴하지 않고 소신 어린 발언을 했는가?

2012년 총선 때 나는 공덕역 근처에 살았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유세 기간 동안 매일같이 우스꽝스러운 음악을 귀가 찢어지게 틀어댔고 중간 중간에 자신들의 후보가 얼마나 훌륭한지 연설을 늘어놓았다. 자기네 후보가 서울대 출신이라고 계속 떠들어대는 것은 특히나 짜증스러웠다. 필자라면 내 지역구 후보가 서울대를 나왔는지 아닌지에는 관심 없다. 그보다는 해당 부호가 지역 구민에게 얼마나 헌신할 준비가 됐는지 따질 것이다. 유세중에 정치인들은 뻔뻔할 정도로 학벌을 팔아댄다. '서울 법대' '하버드 경제학과' 등이 찍힌 명함을 뿌린다. 학벌을 파는 것이 효과 없다면 그렇게 할 리가 없다. 문제의 근원은 후보의 학벌로 그 사람의 윤리 수준이나 후보가 내세우는 정책을 간단히 판단해버리는 유권자에게 있다. (p84)


 윗글은 학력 지상주의에 빠진 한국이 후보자를 선택할 때에도 학력을 신경 쓰는 모습을 보여준다. 지나치게 과잉 학력을 획득했음에도 그 사람의 됨됨이를 보지 못하는 한국 시민은 그 수준에 맞는 정치인을 획득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고학력이면서도 무능력한 인물이 장관과 총리로 있는 게 아닌가?


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 ⓒ노지


 나는 <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 책을 읽는 동안 가슴을 치게 되는 답답함 때문에 책을 쉽게 쉽게 다음 장으로 넘길 수가 없었다. 저자 전 이코노미스트 특파원 다니엘 튜더 씨가 말하는 한국 정치계에서 볼 수 있는 문제는, 아니, 좀 더 근본적인 한국 사회의 문제는 확실히 내가 느꼈던 문제였기 때문이다.


 지난 2012년 총선에서도 나는 김해에서 김경수가 아니라 김태호가 당선되었던 이유에 관해 <김해을 김태호 당선, 김경수 무엇이 부족했나?> 글을 통해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어디까지 무능한 야당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줬던 김경수는 고정 지지층을 가진 김태호에게 밀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 2015년 정치 판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세월호 사고 이후 치러진 선거에서 새정치는 분명히 새누리보다 압도적인 우위에 놓여 있었지만, 선거 결과는 새정치의 참패였다. 새정치 대표가 무능했다고 말하기보다 새정치 자체가 무능했던 거다. 그런 바보를 지지할 사람은 적다.


7월 30일 재·보궐 선거 다음 날인 2014년 7월 31일 조선일보는 새정치연합의 참패 원인을 분석하며 고소해하는 듯한 사설을 실었다. 사설에서는, 새정치연합 대변인이 순천에서 발견된 유병언의 시신에 대해 의구심을 품는 등 선거 전날까지도 세월호 비극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패인의 하나로 지목했다. 같은 날 리얼미터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6퍼센트가 세월호 참사 심판론이나 정권 심판론에 기댄 새정치연합의 잘못된 선거 전략을 참패 원인으로 꼽았다. 새정치연합의 동기가 무엇이었든 간에 마지막 순간인 선거 하루 전날까지 힘써야 할 일은 따로 있었다. 왜 새정치연합을 뽑아야 하는지 유권자를 설득하는 일이었다.

새정치연합은 유권자를 설득하는 일에 늘 젬병이다. 새누리당을 비판하고 정부 인사들의 스캔들을 공격하는 등 어부지리식 승리에만 기댈 뿐이다. 포지티브 선거를 통해 왜 새정치연합을 선택해야 하는지 보여주지 못한다. 포지티브 선거가 가능하려면 더 나은 나라를 위한 비전을 제시하는 정책 기반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새정치연합은 차기 정부라기보다는 만년 야당처럼 행동한다. 만년 야당처럼 행동하면 야당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이 새정치연합의 비극이다. (p123)


시민과 인사하는 김태호 의원, ⓒ노지


 새누리당을 비판할 때마다 종종 내가 꺼내는 말은 '과거 군사 정부 시절의 영광에 빠진 노인분들이 지나치게 밀어주기 때문에 힘들다.'이라는 말이다. 새누리당은 유권자가 듣고 싶어하는 말을 파악해서 사탕 발린 거짓말로 표현하는 데에도 능숙하지만, 감성을 자극하는 데에도 고단수이다.


 새누리당의 영향을 받아 언제나 여당의 의견에 반대하는 모습만 보여줄 뿐인 새정치도 새누리와 비슷한 모습을 보여주는 정당이다. 하지만 새정치는 유권자가 듣고 싶어하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유권자가 마음을 움직이도록 감성도 자극하지 못하고, 그냥 두루뭉술하게 심판론만 꺼내 들 뿐이다.


2012년 대선에 얽힌 일화를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월스트리트저널 기자도 필자와 마찬가지로 민주당 당사를 방문해 고위 당 관계자 두 명을 만났다. 필자의 친구이기도 한 그 기자는 선거 캠페인, 정책과 경제, 남북관계 등에 대한 문재인 후보의 시각을 포함해 다양한 질문으로 무장하고 당사를 찾았다.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질문들이었다. 그는 인터뷰 당사자가 단단히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되는, 만만치 않은 상대로 악명 높은 기자였다.

막상 만나보니 당 관계자들은 월스트리트저널 기자가 준비해간 질문에는 전혀 관심 없고, 1980년대 본인들의 활약상에 대해서만 말하고 싶어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인생에서 결정적인 경험이 된 학생운동 이야기로 논의의 초점을 바꾸기로 아예 작정한 듯했다. 한국의 현재나 미래에 대한 내용은 거의 없었다. (p135)


 윗글은 새정치가 어떤 모습을 가졌는지 보여주는 전형적인 모습이다. 모든 새정치 의원과 핵심층이 이렇다고 단정 지을 수 없지만, 새정치 또한 새누리와 비슷하게, 아니, 오히려 '과하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지난 과거에 사로잡혀서 오늘의 현실과 내일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있다.


혁신 카드였던 안철수는 실패, ⓒ노지


 젊은 세대는 이런 세대의 사람을 '꼰대'라고 비꼬면서 비판한다. 그들이 과거에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는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과거 그들이 무엇을 겪었는지가 아니라 오늘 무엇을 하고 있는지, 내일 우리를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그게 중요하다. 근데 그걸 모른다.


 그래서 새정치는 늘 선거가 치러질 때마다 패배할 수밖에 없는 전략으로 성공이라는 헛된 꿈을 꾸면서 시간을 보낸다. 많은 사람이 새누리가 공약을 절대 제대로 실천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더라도 그 사실을 잠시 잊은 채, 다시 한 번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필자는 개인적으로 새누리당을 지지하지 않으나(솔직히 말해 지지 정당이 없다), 새누리당이 한국에서 정치공학에 가장 뛰어난 정당이라는 점은 인정한다. 특히 국회의원 선거에서 이자스민을 비례후보로 공천한 것은 매우 영리한 전략이었다. 새누리당은 미래 지향적 기지를 발휘해 지지층의 저변을 확대했다. (…생략)

반명 (계속 존재할 수 있다면) 새정치연합은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386 세대 주류 남성 의원들은 계속 1980년대에 머무르며 진부한 싸움에 매달리고, 완고하게 반항하며 자기들끼리 다투거나 새누리당의 추진안이 맘에 들지 않을 때마다 국회에서 퇴장할 것이다. 새누리당은 든든한 노인 유권자를 등에 업은 40퍼센트의 '콘크리트 지지율'을 유지하는 한편, 프로페셔널하고 합리적인 모습으로 중도 유권자들까지 흡수할 것이다. 게다가 이자스민 공천과 같은 기발한 움직임으로 추가 표까지 싹쓸이할 것이다. 이런 방식이라면 선거에서 계속 승리하고도 남을 것이다. (p140)


 새누리와 새정치 모두 제대로 박힌 철학은 없지만, 새누리는 이기는 법을 알고 새정치는 이기는 법을 모른다. 그게 지금 한국 정치의 현실이다. 더욱이 유권자는 이미 정치에 실망해서 투표할 의지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유권자를 움직이지 않는 이상 정권 교체와 개선은 확률 제로에 가깝다.



 다니엘 튜더 씨의 <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 책은 이렇게 우리가 애써 외면했던 우리 정치의 현실을 똑바로 마주하게 해준다. 그리고 답답함에 하늘을 쳐다보다 깊은 한숨을 내쉬고, '도대체 내가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는 고민을 하게 한다. 그래서 이 책은 정말 좋은 책이었다.


 나는 이 책을 정치에 관심을 두고 있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보라고 말하고 싶다. 특히 새정치 정당 내에서 어떤 변화를 이끌고 싶은 사람이라면, 무조건 읽어야 한다. 바보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고, 정말 이길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힌트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 책을 새누리당을 지지하거나 새누리당에 소속한 사람이 읽고 실천을 한다면, 그것만큼 또 무서운 일은 없다. 왜냐하면, 지금도 이기는 정당인 새누리당은 완벽하게 이길 수밖에 없는 정당으로 자리를 잡아 완벽하게 일당 체제를 갖추는 데에 한층 더 강한 추진력을 얻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렇게 인터넷 블로그를 통해 책을 말하고, 내가 바라보는 관점에서 사회와 정치를 비판하는 일뿐이지만, 좀 더 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어쨌든,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나는 이 책 <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이 올해가 가기 전에 우리가 꼭 읽어보아야 할 책이라고 강력히 말하고 싶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이야기하자면 끝이 없어서 어쩔 수가 없다. 다니엘 튜더 씨가 말하는 우리 정치의 힌트와 잘못을 얼굴을 붉히며 읽어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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