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책 같은 책과 책 같지 않은 책이 있다?
- 일상/사는 이야기
- 2015. 2. 23. 07:30
책에 대한 편견과 색깔론, 그냥 내가 재미있고 유익하게 읽으면 되지 않을까요?
우리가 평소에 지나가다 읽게 되는 책은 여러 가지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책은 단순히 사전적 의미로 '어떤 생각이나 사실을 글이나 그림 따위로 나타낸 종이를 겹쳐서 한데 꿰맨 물건' 1이라는 의미를 지니지만, 우리에게 책은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게 있어 책은 살아가는 즐거움인데, 여기서 한 번 생각해보자. '책'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일까?
지금 당장 입에서 나오는 건 "그냥 책이지!"이라는 대답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좀 더 눈을 감고 천천히 여러 가지 상상을 해보자. 따뜻한 카페에서 홍차를 한 잔 따라 마시면서 책의 페이지를 넘기는 어떤 가련한 여학생의 이미지부터 시작해서 어머니가 아이와 마주 않아서 동화책을 읽어주는 이미지, 읽은 책으로 토론을 나누는 이미지, 숨소리와 필기 소리만 들리는 도서관의 이미지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책은 이렇게 단순히 우리가 어떤 정보를 터득하기 위해서 읽는 정보 습득 수단을 넘어서 우리의 일상 속에서 하나의 이미지를 만드는 가치 있는 존재다. 책은 오래전부터 사람과 함께 하면서 우리가 문화를 계승하고, 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게 해주었다. 책은 그렇게 단순히 지식 정보 전달을 넘어 사람의 생활, 감정을 기록해서 공유할 수 있는 멋진 작품이 되기도 했다.
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 ⓒ노지
우리가 읽은 책은 인문학, 경제학, 소설, 시, 수필, 실용서, 만화 등 그 장르가 다양하다. 이 다양한 장르의 책은 저마다 필요한 사람에게 다른 이미지를 만들어주는 소중한 계기가 되어 그 사람의 인생을 더 사는 맛이 있도록 해준다. 그저 잿빛이었던 내게 다가온 책은 조금씩 내가 장밋빛은 아니더라도 무채색에서 색감을 더해주는 소중한 계기가 되었었다. 아마 그런 사람이 더러 있지 않을까?
책은 어떤 사람에게는 세상을 보는 시선을 넓혀주기도 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따뜻한 위로가 되어주기도 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유일한 친구가 되어주기도 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꿈을 꿀 수 있게 해주기도 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지금 살아가는 용기가 되어주기도 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발로 떠나지 못하는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세계 일주 여행이 되어주기도 한다.
그래서 책은 그 존재로 가치가 있고, 우리가 책을 읽는 시간 자체가 소중하다. 하지만 종종 책을 읽는 사람 중에서 '책과 책 같지 않은 책'으로 나누어서 책을 읽는 행위가 가진 가치에 대해 차별을 하는 사람이 있다. '책 같지도 않은 책을 왜 읽는 거야? 저런 책을 읽으면서 책을 읽는다고 말할 수 있어?'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는데, 혹시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서도 있을지도 모른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대체로 여러 종류의 책을 읽지만, 정말 학구열이 높은 사람들은 인문과 고전, 경제학 등 전문 서적과 교양서적을 위주로 읽는다. 그래서 사람들이 '책'으로 떠올리는 이미지는 언제나 어려운 책을 읽으면서 내 지식의 좁음을 알고, 어려운 지식을 배워가는 과정을 떠올린다. 좋게 말하면, 배움을 추구하는 것이지만… 조금 부정적으로 말하면, 잘난 척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명랑한 갱이 지구를 돌린다, ⓒ노지
위에서 볼 수 있는 책 이미지는 내가 간간이 읽는 소설의 이미지다. 이사카 코타로의 소설은 소설 자체에서 현대 사회에 대한 비판을 유쾌하게 그려내고 있어 정말 읽는 즐거움이 큰데, 앞에서 말한 '책을 읽는 행위를 통해 잘난 척'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책은 썩 내키지 않는 책일 것이다. 그들에게 책은 책 페이지마다 그림은 찾아보기가 어렵고, 글은 작은 폰트로 빽빽하게 적혀 있는 책일 테니까.
나는 그렇게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 막히는 책을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 비록 그런 책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책 읽기를 즐기는 사람이 읽는 데에는 꽤 어려움이 있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는 사람마다 다 선호도가 다른 법이다. 그런데 그것을 일부러 차별해서 다른 사람이 읽는 책을 가리켜 '책 같지 않은 책을 읽는다.'고 말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군주론>이라는 책을 원서로 읽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이 조금 더 해석해놓은 <군주론>을 읽을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군주론>을 만화책으로 읽을 수도 있다. 어떤 장르의 책을 통해 읽더라도 자신에게 맞고, 책 읽기를 통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게 아닐까? 굳이 읽히지도 않는 어려운 책만 책 취급하며 읽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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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정말 다양한 종류의 책이 있고, 책이 사람에게 가지는 의미도 저마다 다르고, 책이 사람과 섞여 만드는 이미지도 천차만별이다. 그런데 그 다양성을 외면하면서 '요즘 책은 책 같지도 않다.'이라는 말을 하는 지식인의 판단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요즘처럼 스마트폰과 태블릿 PC 등으로 짧은 뉴스를 읽는 것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작은 글이 빽빽하게 적힌 책은 종이 수면제일 뿐이다.
요즘 우리 도서 시장에서는 짧은 글과 함께 여백을 가진 책이 자주 등장한다. 우리가 익히 아는 혜민 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라는 책과 글과 일러스트로 마치 책이 아닌 책을 읽는 듯한 <1CM 첫 번째 이야기>와 <1CM +>가 바로 그렇다. 비록 책 같지 않은 책일지도 모르지만, 책을 읽는 사람이 짧은 시간 동안 여운에 빠지면서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책이라고 난 생각한다.
이런 책들이 만드는 이미지는 용광로에서 갓 만들어지는 철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열 같은 학구열의 이미지가 아니라 따뜻한 봄 햇볕을 쬐면서 '날씨 좋다.' 하며 잠시 하늘을 쳐다보는 이미지다. 잠시 눈을 감고 그런 이미지를 상상해보는 것으로도 겨울의 추위가, 우리가 살기 어려워하는 아픔이 잊히는 책이 정말 많다. 점점 더 삭막해지는 세상에서 사람들의 여유를 찾아주고 싶은 마음이 이런 책을 탄생하게 하지 않았을까?
괴테가 읽어주는 인생, ⓒ노지
대학 수능 시험을 쳐다보고 매진해야 했던 청소년 시기의 우리에게 책은 그저 단순히 지식과 정보 수단에 불과했다. 하지만 책은 우리 인류와 긴 시간을 함께 하면서 감성을 전달하면서 사람이 가진 감정을 더 풍요롭게 해주는 역할을 해왔다. 그리고 그 표현 방식이 글만 빽빽한 방식에서 탈피해 좀 더 여유롭게, 사람들이 책을 읽으면서 즐거움과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바뀌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책을 읽더라도 내 마음에 새겨지는 문장 하나를 발견한다면, 내가 웃으면서 그 순간을 즐길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가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고전과 인문이 좋은 책이라 말해지고, 진짜 책 같은 책의 표본으로 여겨지더라도 내가 책을 읽으면서 '어렵다.' 이외 다른 것을 생각하지 못한다면, 책을 읽는 의미가 없다. 그러니 책을 차별해서 '있어 보이는 책'을 읽는 게 아니라 '내가 읽고 싶은 책'을 먼저 읽자.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읽으면서 이미지를 하나씩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짧은 문장으로 이루어진 책에서 여백을 우리의 생각으로 채우면서 점점 더 많은 문장을 이어가는 멋진 경험을 할 수 있다. 그게 바로 독서다. 그냥 무작정 어려운 책을 펼쳐서 내려오는 눈꺼풀과 씨름을 하는 게 아니라 책을 읽는 시간 동안 내 소중한 시간을 시간 도둑이 훔쳐가게 하는 것이다.
비록 지식인에게 우리가 손에 쥔 책이 우스워 보일지도 모르지만, 지금 손에 쥔 책이 더 없이 지금의 내게 좋은 책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나는 이 글을 읽는 사람에게 묻고 싶다. 지금 당신은 책 같은 책을 읽는다면서 무거운 눈꺼풀을 들기 위해 아등바등하고 있나요? 아니면, 언제 내 시간을 시간 도둑이 훔쳐갔는지 모르는 책을 읽고 있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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