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행복지수 마저 조작하는 나라, 부끄럽지 않나요?
- 시사/학교와 교육
- 2015. 1. 30. 07:30
부끄러움을 모를 때, 사람은 사람이 아니게 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청소년 행복지수가 OECD 국가 중 꼴찌라는 이야기는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많은 청소년이 자신의 시간을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보내지 못하고 있고, 어른들에게 성공을 강요 받으면서 오늘을 포기해야 내일을 즐길 수 있다는 말을 귀가 아플 정도로 듣고 있다.
해마다 청소년 자살률을 늘어만 가고, 입시 경쟁과 과도한 성적(결과) 집착 주의에 연연하는 어른에게 보이는 폭력과 보이지 않는 폭력으로 끙끙 앓고 있다. 청소년은 다친 마음을 비행(非行)으로 보여주거나 눈물로 어른들에게 호소해보기도 하지만, 어른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다.
'어쩔 수 없다.', '내가 살 때는 그때보다 더 힘들었어.' 등의 말을 하면서 등을 토닥여 주기는커녕, 오히려 채찍질하면서 엄살 피우지 말라고 한다. 그래서 일부 청소년은 자신보다 약한 친구를 괴롭히고, 친구를 죽음으로 몰아넣더라도 '나는 공부를 열심히 한 모범생이었는데, 장난으로 한 게 죽을 줄은 몰랐다. 선처해달라'고 말한다.
이 정도면 막장 드라마보다 더 막장이다. 사람을 사람답게 가르칠 수 있어야 하는 교육이 아니라 부끄러움을 잊어버린 교육을 통해 괴물을 만들고 있다고 말해도 부족함이 없다. 더욱이 어른은 이런 교육의 부작용이 나타나더라도 덮거나 외면하고 있어 우리 교육은 늘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비정상회담
그런데 얼마전에는 여성가족부에서 청소년 행복지수가 작년과 비교하면 조금 올랐다는 발표를 했는데, 알고보디 그건 여성가족부가 꼼수를 써서 조작한 통계 발표였다. 조사에서 중산층 이상의 비중을 늘리고, 빈곤층의 비중은 줄였던 것이었다. 이 사건을 전해 들으면서 정말 말문이 턱 하니 막혔다.
학교 폭력을 감추는 것으로 모자라서 이제는 청소년 행복지수마저 조작해서 울고 있는 청소년의 모습을 웃는 청소년의 모습으로 왜곡하려는 모습은 심히 짜증이 날 정도였다. 매번 문제는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우리가 보기에는 문제가 없는데? 네 눈이 문제 있는 거 아니냐?'이라는 말하는 것 같았다.
못난 어른이 이렇게 모든 것을 멋대로 해석해서 청소년의 행복 지수까지 조작하면서 지나친 입시 경쟁에 시달리는 청소년을 외면한다. 그러니까 10대 청소년 사이에서 발생하는 학교 폭력을 비롯한 청소년의 자살률이 줄어들 수가 없다. 청소년이 행복해하면, 그들은 너무 불안해한다. 도대체 왜?
나는 그 이유를 '기득권의 이익'에서 찾고 싶다. 못난 어른은 청소년 세대가 공부에만 집중하고, 사회를 똑바로 볼 수 있는 안목을 기를 수 없어야 이후에 자신이 원하는 대로 다룰 수 있기 때문이다. 사교육 시장에서 청소년을 상대로 돈을 벌고, 사회에서는 그들을 착취하면서 돈을 벌어야 하니까.
지금 20대를 보라. 20대는 이미 회생이 불가능할 정도로 무너졌다. 높은 대학 등록금 때문에 이미 신용불량자가 되어 제대로 사회에 진출도 못 하고 있다. 그런 대학생이 바깥을 바라보지 않고, 도서관에서 토익 공부만 하고 있으니 못난 어른이 나라를 멋대로 주무르고 있다. 그래서 나라가 이 꼴이다.
ⓒJTBC 뉴스룸
대구 중학생 자살 사고 이후 학교 폭력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많은 대책이 강구되었지만, 그건 모두 한순간의 관심과 대책으로 끝나버리고 말았다. 여전히 우리 학교에서는 소외된 부분이 많고, 청소년은 어른의 탐욕 속에서 이기적이고 감정을 잃은 괴물로 성장하고 있다. 정상이라고 생각하는가?
어제저녁 뉴스를 통해 경남의 어떤 중학교의 학급에서 동급생을 무차별 구타하는 동영상이 논란이 되어 경남 교육청에서 조사에 들어갔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동영상에서 폭행하는 아이와 폭행을 당하는 아이를 주변에서는 그냥 보고만 있을 뿐, 아무도 말리거나 도와주려고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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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우리 학교의 모습이다. 학교 10곳이 있다면, 10곳에서 모두 볼 수 있는 아주 흔한 모습이다. 나는 학교를 긍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폭력이 없는 학교는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학교에 다니는 청소년 중 상당수가 폭력에 무뎌진, 부끄러움과 잘못을 모르는 소시오패스가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 청소년은 학교가 곧 사회의 모습인 것을 안다. 부당함에 저항하는 순간 자신이 모난 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눈으로 보았고, 학교로부터는 '그냥 공부만 잘하면 된다.'는 교육을 받았다. 그래서 아이들은 잘못을 잘못이라고 지적하지 않고, 느끼지도 않는다. 그냥 지켜보며 실실 웃을 뿐이다.
부끄러움을 가르치지 않고, 잘못을 잘못이라고 지적하지 않는 사회. 어른은 이 그릇된 사회를 청소년에게도 그대로 물려주고 있다. 그래서 청소년은 늘 불행하다. 행복해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비참한 세상에서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못한다. 행복은 그저 사치에 불과하니까.
오늘도 청소년과 대학생 대다수가 학원과 도서관의 책상 앞에 앉아 공부만 하고 있다. 오직, 좋은 대학과 좋은 직장에 가기 위해서 오늘을 살지 않는다. 내일은 더 좋은 날이 올 것이라 믿지만, 내일은 더 시커먼 하루가 시작한다. 우리의 학교는, 청소년의 일상은, 20대의 일상은 그렇게 돌아가고 있다.
"선생님! 지나갈 거라는 게 일이 시작된 후 점점 심해지기만 했어요. 괜찮아, 애들이 널 때리지는 않잖아. 때리더라고요. 욕하고 때리고 침뱉고 발로 차고. 사람들은 다 지나간다는 식으로 얘기하는데요. 그럼 자살한 학생들은 왜 자살했겠어요? 그것도 다 지나갈 텐데 왜 죽었을까요? 나아기지는 뭐가 나아져요. 괜찮아지기는 뭐가 괜찮아져요? 제 인생은 어릴 때부터 계속 나빠지기만 했어요. 엄마랑 관계는 더 안 좋아지고 친구들 관계도 점점 나빠지는데 어른들은 버티라고만 해요. 좋아지겠지. 좀 참고 견뎌봐라. 밝은 미래 따위가 올거라면 그게 대체 언제 온다는 거죠? 내가 죽기 전에요? 백발 할머니 돼서?" (p117_학교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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