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하기 위해서 방학에도 학원을 찾는 학부모와 아이들
- 시사/학교와 교육
- 2015. 1. 20. 07:30
한국 학생들의 행복을 떨어뜨리지만, 그래도 피하지 못하는 선행학습, 도대체 왜?
지금은 겨울 방학을 맞아 많은 아이가 학교와 공부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리는 그런 시기이지만, 사실 우리에게 겨울 방학은 이름 그대로 '방학'이라고 말하기에 어려운 면이 많다. 왜냐하면, 겨울 방학이라고 해봤자 단순히 학교에 나가지 않는 것뿐이고, 학원의 스케줄이 늘어나면서 방학이나 일상이나 똑같기 때문이다. 특히 고등학생은 방학 보충 수업 때문에 방학 같은 기분을 맛보지도 못한다.
아마 이런 경험을 한국의 거의 모든 성인 남녀가 해보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나도 중학교 때까지만 하더라도 늘 방학마다 학원에 나가서 오전부터 오후까지 어이지는 수업을 받아야 했고(종합학원 방학 특별 프로그램), 고등학교 때에는 방학마다 오전에 있는 학교 방학 보충 수업을 듣기 위해 학교에 가야 했다. 실질적으로 '마음껏 놀 수 있는 방학'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때보다 더 학력 경쟁이 치열해지고, 욕심이 커진 요즘 시대에는 그저 모든 아이가 '학교와 학원, 그리고 집' 이 세 곳을 다니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오죽하면,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집이 '그저 잠만 자는 곳.'이라는 말이 나오겠는가? 이미 우리 한국에서 아이들의 자유와 행복,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창의적 생각을 기대하는 건 어려운 부분일지도 모른다. 모두 획일적인 교육에서 꼼짝 못 하고 있으니까.
얼마 전에 <JTBC 뉴스룸>에서는 방학은 맞은 학원가의 모습을 보여준 적이 있었는데, 아이들을 태우고 가려는 학원 버스와 학부모의 차가 뒤엉켜 정말 엉망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아이와 학부모를 상대로 수강료를 뻥튀기해서 이익을 갈취하는 학원이 있다고 하는데, 정말 우리 한국의 모습은 이 성적 경쟁에 지나친 탐욕을 가지고 아이들을 대하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
ⓒ비정상회담
지난주에 방송되었던 <비정상회담>에서는 과목별 사교육을 시키는 것에 대한 안건이 논의되었었는데, 각국을 대표하는 비정상 대표들의 대화를 통해 정말 여러 가지를 들을 수 있었다. 정말 지겹도록 듣는 한국 청소년 행복지수가 OECD 국가 중 꼴찌라는 말, 그래도 우리 한국은 이를 바로 잡으려고 하지 않기에 또 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청소년 행복지수가 떨어지는 원인이 도대체 무엇일까?
…쉽게 생각해보자. 청소년의 행복지수가 올라가기 위해서는 가장 무엇보다 청소년의 자유가 필요하다. 자유로운 시간을 통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만족도를 높여가는 그런 과정의 교육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어떤가? 그런 건 '사치'에 불과하다. 개인적으로 따로 배우고 싶은 것은 늘 '나중에 대학가고, 대학 졸업하고, 취업하고, 안정적인 생활을 하게 되면' 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언제 그런 시기가 올까? 아이들에게 그런 말을 하면서 교육을 하는 어른도 그런 말을 하면서 오늘의 행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일로 미루면서 여태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는가. 그러면서도 지금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모른다. 그저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해서, 좋은 직장에 취업하지 못해서 자신이 그렇게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성공의 기준을 오직 '물질적 가치'로만 환산하기 때문에 그렇다.
방학 때는 정말 즐겁게 놀면서 다른 일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왜 우리는 방학 동안에도 많은 학습만 해야 하는 걸까? 이건 그냥 어른이 만든 욕심이다. '남들이 놀 때 조금이라도 더 해두면 도움이 된다.'이라는 생각과 '분명히 이 시장은 장사가 된다.'는 두 개의 공급과 수요가 만나서 만들어진 사교육 시장과 학력 지상주의를 오랫동안 뿌리 뽑지 못한 한국의 태생적 한계라고 말할 수 있다.
ⓒ비정상회담
하지만 솔직히 우리는 이 구조적 비정상을 잘 알고 있지만, 부정할 수가 없다. 무엇보다 사교육을 통해 선행 학습의 효과를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더 포기할 수 없다. 그 선행 학습의 효과로 얻을 수 있는 명문대 졸업장은 한국에서 거의 필수적인 무기라고 말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가? <비정상회담>에서 장위안이 말한 성공에 필요한 조건은 중국과 일본, 한국의 거의 공통된 점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도 부모의 재력으로 혜택을 보는 사람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 아이들은 모두 막대한 사교육을 통해서 성적을 높이는 방법을 터득하고, 이후 직장 생활도 다른 사람보다 훨씬 앞에서 출발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남들이 평생을 걸쳐도 모으기 어려운 자본을 손에 넣어서 막 휘두르는, 소위 우리나라에서 논란이 되는 '갑(甲)'이 되어 아래 사람을 무시하는 그런 인재가 되는 것이다.
교육에서 빈익부 부익부 현상이 벌어지고, 그 현상은 또 사회에서도 이어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더 교육에 투자해서 사회에서는 출발선을 바꿀 수 있는, 목적지를 더 높일 수 있는 결과를 만들고자 한다. 결국, 이 과정에서 죽어 나가는 건 아이들뿐이다. 아이들이 어른의 욕심에 의해서 휘둘리고, 가치관이 왜곡되어 '진정한 의미의 성공'을 생각해보지도 못한 채… 주어진 길을 따라 뛰게 된다. 그것도 쉬지도 못한 채 전력질주로.
ⓒ비정상회담
<비정상회담>에서는 이런 한국의 과정을 가지고 논의를 하는 서양의 다양한 관점을 볼 수 있었는데, 특히 이탈리아 비정상 대표인 알베르토가 말한 '교육의 목적이 과연 성공인가?'이라는 질문에 우리는 무엇이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아마 한국 사람이나 중국 사람 모두 교육의 목적은 성공이라고 말할 것이다. 성공하기 위해서 공부를 하고, 성공하기 위해서 지금의 자유를 포기해야 한다고 말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우리는 언제나 '왜?'이라는 질문을 하지 않는다. 그냥 성공이 좋은 거니까, 남들이 다 하니까, 그런 어중간한 이유로 모든 것을 한다. 그래서 그 과정에 어떤 재미와 행복도 찾지 못하고, 늘 방황하면서 가치관의 충돌을 빚는다. 그 충돌이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학교 폭력, 사회 폭력 등으로 나타난다. 괜히 폭력 교사가 나오는 게 아니다. 바로, 여기서 철저히 갈라지는 것이다.
겨울 방학에 놀지 않고, 철저하게 선행 학습을 통해 남보다 더 빨리 많은 것을 배운 아이들이 분명히 시험에서 좋은 결과를 나타낸다. 하지만 과연 그렇게 공부만 한 아이들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보낸 아이들보다 시간을 가치 있게 썼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다. 절대 그렇게 단정할 수 없다. 보는 관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 있겠지만, 더 많은 배움을 얻은 건 하고 싶은 일을 한 아이들이다.
사람이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는 무엇보다 경험이 중요하다. 여러 경험을 통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고,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알게 되고,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내가 무엇을 싫어하는지, 나는 사랑을 언제 처음 했는지… 그런 것을 배워야 한다. 이 과정이 바로 사람이 되는 과정이다. 하지만 우리처럼 획일적인 교육 내에서는 이런 것을 모두 거부한다. 그냥 문제집만 풀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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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가 어찌 행복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런 아이가 어른이 되어서 부모가 된다면, 자신의 아이에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똑같다. 언제나 성공하기 위해서 공부만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오늘 내가 이루지 못한 꿈을 자신의 아이에게 맡겨서 '너는 열심히 공부해서 성공해야 한다.'는 무거운 짐을 들게 한다. 정작 그 '성공'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데 말이다.
아이들은 부모가 억지로 떠넘긴 그 짐을 짊어진 채, 오늘 하루도 가장 긴 시간을 학원에서 공부하는 데에 보내고 있다. 친구와 함께 3주에 걸쳐서 여행을 떠나는 다른 나라의 청소년과 달리 하루 동안 소설책을 읽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 이 답답한 세상에서, 오직 삭막함만 느껴지는 건물 속에서 함께 슬퍼하면서 문제집을 풀고 있다. 상상만 하더라도 무거운 침묵이 흐르지 않는가?
물론, 나는 내 생각을 타인에게 강요할 수 없다. 타인이 어떤 가치를 가장 최우선 가치로 두고 삶을 살 것인지는 개인의 선택이니까. 나는 그렇게 오늘 행복하지 못하는 것은 올바른 걸음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오늘 행복하지 않아야 내일 행복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의 생각을 고칠 수 없다. 억지로 그렇게 할 생각도 없다. 그저 모두 개인의 인생일 뿐이니까.
그럼에도 내가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다. 과거에 그런 식으로 삶을 살았던 사람으로서, 아무것도 남기지 못했던 그 시절과 달리 오늘 하루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사는 나는… 조금 불편한 생활을 하더라도 불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집이 좁아서 책이 겹겹이 책장에 들어가 있어도, 돈이 없어서 작은 전자 피아노로 피아노를 치더라도… 의미 없이 도서관에서 공부했던 시절에 비해 훨씬 낫다. (비록 빚이 있지만)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우리가 진정한 의미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방학에도 학원을 찾는 것이 아니라, 방학이기에 학원이 아니라 다른 곳을 찾아야 한다고. 지금 이 글을 읽는 독자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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