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악플보다 더 가슴 아픈 무거운 댓글
- 시사/사회와 정치
- 2014. 12. 18. 07:30
단순히 저를 욕하고 조롱하는 악플보다 더 가슴 아픈 댓글을 소개합니다.
우리는 쉽게 인터넷 기사를 통해 '악플러 고소 사건' 혹은 '악플러 때문에 고통을 호소하는 연예인'의 이야기를 읽어볼 수 있다. 악플은 그렇게 나와 먼 이야기가 아니고, 어떤 기사를 읽더라도 쉽게 볼 수 있는 댓글이다. 나도 블로그를 운영하다 보면 그런 악플러를 만나게 되는데, 늘 여러 블로그를 돌아다니면서 악플을 다는 사람도 있고, 집요하게 한 블로그를 괴롭히는 악플러도 있다.
나도 정말 집요하게 내가 올리는 글에 한동안 억지 주장이 들어간 악플을 달면서 괴롭히는 악플러 때문에 마음고생을 한 적이 있다. 험담에 상처를 입었다고 말하기보다 자꾸 반복해서 비슷한 댓글을 여기저기 남기면서 조롱을 하는 모습이 심히 짜증이 났기 때문이다. 악플을 지우고, 아이피를 차단해도 아이피를 변경해서 들어오니… 말 다 했다.
블로그를 운영하는 초창기에는 악플 때문에 정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악플러와 논쟁을 벌이기도 하고, 차단해도 들어와서 글을 남기기에 그냥 댓글 창을 닫아버린 적도 있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지금은 해탈에 이르렀다. 소위 '관심을 받지 못해 안달이 난 사람'의 행동에 일일이 대처하다가는 끝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방치하고, 일절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런 식으로 가만히 있다 보면, 악플러는 스스로 지쳐서 그런 댓글을 다는 것을 멈춘다. 우리가 길을 가다 벽을 마주 보게 되면 '아, 벽이네.' 하고 말하면서 다른 곳으로 돌아가듯이 악플은 벽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벽을 부수려고 하면, 정말 갖은 고초를 다 겪는다. 차라리 안 하는 게 낫다. 아하하.
악플의 괴로움, ⓒ4월은 너의 거짓말(애니)
그리고 블로그에는 악플만이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글이 달린다. 내 블로그에는 내가 겪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는 이야기가 많아 종종 나를 응원해주는 댓글이 달리기도 하고, 나처럼 같은 아픔을 겪은 사람들이 공감한다는 댓글을 남겨주기도 한다. 이런 댓글을 보면 정말 힘이 난다!
그 이외에도 몇 댓글은 천천히 읽으면서 깊은 생각에 빠지게 하는 댓글도 있는데, 그 댓글들은 종종 악플보다 더 가슴을 아프게 하는 댓글이다. 가슴을 아프게 한다고 해서 악플인 게 아니다. 그저 절절한 사연이나 우리의 슬픈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까움이 가슴을 먹먹하게 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최근 블로그에 달린 몇 개의 댓글 중에서 긴 한숨을 내시면서 안쓰러운 기분을 느끼게 했던 댓글 두 개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 댓글을 읽으면서 나는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한국 속에서 여전히 변화하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이 정말 아프게 느껴졌다.
위에서 읽을 수 있는 댓글은 3년 전에 작성한 <부모의 어떤 말이 아이를 망치게 할까>이라는 글에 달린 댓글이다. 위 댓글을 읽어보면 여전히 성적을 가지고 아이를 타박하는 부모님이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비록 요즘에는 성적 평가를 넘어서 좀 더 아이를 배려하는 부모가 늘고 있다고 하지만, 바뀌지 않는 사람도 적지 않은 것이다.
지난 11월에 치러진 수능 시험이 물수능이라는 것이 사람들의 공통된 의견이 되고, 지방에서 만점자가 나오자 대치동의 한 버스에서는 '수능 수학 만점자 전국 확산 결사 반대!!'이라는 광고가 달린 것을 인터넷에 퍼지면서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정말 기가 막히는 노이즈 마케팅에 해당하는 광고였는데, 어쩌면 이런 광고가 아이를 숨 막히게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 댓글을 계기로 3년 전에 작성했던 그 글에 달린 댓글을 하나씩 읽어보았는데, 댓글을 단 것으로 추정되는 청소년이 말하는 "이 글을 보고 있는 부모님의 아이들이 부러워요."이라는 말이 정말 너무 가슴 아프게 여겨졌다. 부모님의 성적 위주 타박에 버티면서 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성적만 보고 아이를 대하는 건 정말 바뀌어야 한다.
[시사 이야기/학교와 교육] - 수능일에 반복되는 슬픔, 올해는 제발 없었으면…
위에서 읽을 수 있는 댓글은 최근에 작성했던 <분신 경비원 사망, 차별주의가 낳은 끔찍한 비극>이라는 글에 달린 댓글이다. 위 댓글을 읽어보면 결국 차별주의를 만드는 건 못난 어른이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차별주의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계획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런 평범한 일상 속에서 만들어진다.
어른들은 너무 쉽게 아이들을 스스로 평가하면서 "못 사는 동네 애랑 놀지 마!"이라고 말하지만, 그 말로 가치관을 형성하게 될 아이들은 결코 쉬운 일이 될 수 없다. 한 사람의 인생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는 가치관 형성 시기에는 부모가 정말 조심해야 한다. 그래서 교육은 힘들다고 말한다. 단순히 가르치는 것을 잘하는 게 아니라 배우면서 가르쳐야 하니까.
분신자살을 한 경비원이 있는 그 아파트에서는 또 아파트 주민이 경비원 아저씨를 폭행하는 일이 벌어졌다고 한다. 이 정도가 되면 이미 그 아파트는 '몰상식한 사람이 사는 곳'이라는 사회적 낙인이 자동으로 찍힐 정도다. 그 아파트의 모든 사람이 그렇지는 않을 거다. 하지만 차별주의는 여기서 물꼬를 트고, '배려와 존중'이 사라질 때, 극한의 감정이 되어버린다.
[시사 이야기/사회와 정치] - 아이들에게 차별을 가르치는 못난 어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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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말한 댓글 두 개를 읽으면서 나는 그냥 단순히 나를 괴롭히는 악플보다 더 마음이 아팠다. 댓글을 다는 아이도 '어른의 그 행동은 잘못된 행동'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데, 왜 어른들은 자신의 행동의 잘못되었음을 알지 못하는 걸까? 늘 먼저 나서서 아이에게 차별을 가르치고, 성적으로 타박하면서 아이의 가치관이 어긋나게 유도하는 걸까?
그래서 나는 우리 사회가 걱정된다. 하지만 위 댓글을 읽으면서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비록 아직도 어른이 잘못을 반복하고 있지만, 자신의 눈으로 판단할 수 있는 아이들은 스스로 생각하면서 판단을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아픔을 알고, 잘못을 아는 것으로도 이미 개선의 여지가 있다고 판단할 수 있는 희망적인 모습이다.
'그 부모에 그 자식'이라는 말처럼, 그대로 부모의 잘못된 행동과 가치관을 이어받아 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마치 지금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어 나라를 뒤흔들고 있는 한 대통령이나 대한항공 땅콩 리턴 사건의 주인공이나 분신 경비원 자살 아파트의 다른 경비원 아저씨를 '기분 나쁘게 쳐다봤다'는 이유로 잔인하게 폭행한 인물처럼. 이건 어쩔 수 없다. 세상에 선(善)이 있으면 악(惡)도 있기 마련이니까. 우리 세상은 그렇게 만들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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