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간의 義와 禮가 사라져버린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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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간의 의와 예가 사라져버린 학교



 며칠전 뉴스에서는 여학생과 여교사가 서로의 머리채를 잡아당기면서 실랑이를 벌었던 일화가 보도되었다. 이 일화는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도 오르면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아마, 그 기사를 본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처럼 '도대체 우리교육이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왔는가?'라고 한탄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로부터 우리나라의 학교와 교육에서 선생님과 학생들 사이에서는 신(信), 의(義), 예(禮)가 있었다. 학생들은 선생님을 무서워 하면서도 존경심을 가지고 선생님을 따랐고, 선생님들은 학생들을 엄하게 대하면서도 사랑으로 대했다. 학생과 선생님 사이의 관계는 언제나 예의범절에서 조금의 지나침도 부족함도 없었고, 마땅한 도리에 따라서 서로간의 예(禮)를 지켰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나라의 학교와 교육의 상태를 살펴보면, 조금도 그러한 모습을 볼 수가 없다. 신(信), 의(義), 예(禮) 세가지 중 한 가지는 거녕 서로간의 불신과 모멸감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감정만이 싹트고 있는 실정이다. 선생님이 학생들을 상대로 도리에 어긋난 행동을 하는 선생님이 있는 반면에, 학생이 선생님을 상대로 도리에 어긋난 행동을 하는 학생도 있다.

 이러한 일은 오늘 어제의 일이 아니다. 몇 년전부터 꾸준히 계속해서 이러한 문제가 일어났고, 그때마다 계속해서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노력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계속해서 그러한 문제가 해결되기는 거녕 더욱 심해지고 있다. 왜 그런 것일까?

 나는 그 원인이 서로간의 소통의 부재라고 생각한다. 선생님과 학생과 학부모들 서로 간의 진실된 소통이 없기 때문에, 문제의 본질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채 상황만 악화시키고 있다고 생각한다. 선생님은 선생님의 독자노선으로, 학생은 학생의 독자노선으로, 학부모는 학부모의 독자노선으로 자신이 맞이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니, 적절한 해결책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가끔 학교에서 학부모 간담회를 한다고는 하지만, 사실상 그러한 간담회의 의미는 퇴색이 되어버린지 옛날이다. 서로간에 탁 터놓고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그런 자리가 아닌 이상, 학부모와 학생, 선생님들이 서로간의 신의를 확인을 할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상황이 된 것에는 우리나라의 교육형식을 그 원인으로 손꼽을 수가 있다. 우리나라의 교육은 일방통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늘 위쪽에서 아랫쪽으로 시키는 형식을 유지하고 있다. 아이들은 늘 부모와 선생님들에 의해서 책상에만 앉아 있어야 되고, 조금의 친구들과 이런저런 소박한 행복을 즐길 틈도 주어지지 않는다. 

 프랑스의 언론보도에서도 이러한 한국 교육의 문제점을 보도했었는데, 그 기사의 제목이 가관이었다. '입 다물고 공부만 해!'라는 제목이 사용된 프랑스 언론의 기사에서 우리는 많은 공감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공부를 하는 대부분의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진실로 자신의 꿈을 위해서 또는 자신이 나아갈 길을 위해서 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책상 앞에 앉아서 영어단어를 외우는 등의 공부를 하는 것은 단순히 '혼날까봐.'라는 이유로 정의될 수가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거나 좋아하는 음악을 하고 싶다 또는 좋아하는 운동을 하고 싶다고 말하면, 부모님들은 '입 다물고 공부나 해라!'라고 소리를 치신다. 그렇게 아이들의 꿈을 잊어버리게 하고, 아이들과의 소통의 문을 닫어버리는 것이다. 

 아이들은 부모님들에 의해서 계속해서 그렇게 길러지면서, 학교에서도 그렇게 행동을 하게 된다. 선생님과의 소통이 없어져버리게 되는 것이다. 아이들은 선생님들 단순히 지식을 전달해주는 사람으로써 인식을 하지, 인생의 멘토나 스승이라고는 전혀 인식을 하지 못한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자신의 괴로움이나 고민거리가 있으면, 대부분은 선생님이나 부모님과 의논하기 보다는 같은 처지에 있는 친구들과 의논을 하게 된다. 이 또한 아이들 스스로에게는 악영향을 미친다. 똑같은 처지의 친구들이 서로 모여서 고민을 해보아도 마땅한 답이 나오지가 않기 때문에, 아이들은 더욱 심리적으로 많은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이에 더해 <누벨 옵세르바퇴르>는 "서울의 한 의료센터에서는 매월 우울증과 스트레스, 과로로 인한 폐해, 수면장애에 시달리는 1000여명의 아이들이 치료를 받는다. 한국 정부에 따르면, 2009년 한 해 동안 202명의 초·중·고 학생이 목숨을 끊었다"고 보도했다. 이 소식을 전해온 프랑스 리옹의 한국인 유학생 박연수씨는 "프랑스 방송이 한국 아이들의 삶을 그대로 보여준 것 같다"며 "프랑스에도 경쟁이 있고, 청년실업 스트레스가 있지만 쫓아가지 못하는 아이를 '낙오자'나 '패배자'로 단정 짓기 전에 이 아이가 왜 '그 길을 쫓아가지 못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먼저 한다"고 말했다.

-기사 인용문 (출처)

 그러한 상황이 돌고 돌면서, 결국에는 학생과 선생님, 부모님들 사이에서는 신의가 무너져버렸고, 서로간의 예(禮)조차 볼 수 없는 사태에 이르렀다.

 아이들에게 마음을 가르쳐 건강한 정신과 육체를 소유한 한 사람으로써 길러내기를 포기하고, 아이들을 단순히 공부하는 기계로만 키우고 있는 부모님과 선생님들이 이러한 상황을 초래했다. 그리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되게 시행이 되고 있는 교육정책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회배경도 한 몫을 제대로 해주었다. 

 서로 간의 예(禮)와 의(義)가 사라져버린 우리의 학교. 도대체 이 나라의 교육이 어디까지 곤두박질을 치게 될련지 되레 걱정만이 앞선다. 비록 내가 조금 유교적인 성향에서 보았을지도 모르나, 현재의 교육 상태를 생각하면 그저 한숨만이 나올 뿐이다. 내가 이전에 이러한 교육의 해결책으로 몇 가지를 이야기를 했었는데, 그 이야기들을 아래의 관련추천글의 링크를 통해서 확인을 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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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으로 대한민국의 유명한 강사 중 한 명인 이범 선생님의 교육현실을 꼬집은 동영상 한 편을 올리면서 글을 마무리 짓겠다. 아래의 이범 선생님의 강의를 통해서 교육의 문제와 현실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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