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i를 담아서, 소설로 살아가는 소년소녀의 이야기

 나는 어릴 때부터 소설을 읽는 일을 좋아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소설을 읽는 일 외에 의존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초중학교 시절은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이 너무나 괴로웠다. 집에서도 숨이 꽉꽉 막히는 듯한 답답함을 느끼면서 나는 어딘가로 남몰래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런 일을 실천할 수 있을 정도로 나는 용기가 있지 않았다. 그런 내가 선택한 일은 소설을 읽으면서 현실과 다른 세계를 여행하는 일이었다. 소설을 읽으면서 오늘 내가 머무르는  곳이 아니라 낯선 곳을 상상하고 여행하는 일은 숨 막혀 죽어버릴 것 같은 나의 도피처가 되었다.


 그 당시에 읽은 J.K 롤링의 <해리포터> 시리즈는 두고두고 읽었고,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소설과 수필 등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조금씩 책을 읽는 범위를 넓혀갔다. 지금은 그 당시에 읽었던 책들을 대다수 버리고 말았기 때문에 정확히 내가 어떤 소설을 읽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기억하는 건 이사카 코타로의 소설 <마왕>을 읽고 후기를 썼다는 사실 뿐이다. 그 이외에도 많은 소설을 읽었지만, 지금 책장에 꽂혀 있지 않은 책은 기억에서 점차 흐릿해지며 사라지고 말았다. 지금은 소설이나 다른 책을 읽을 때마다 블로그와 유튜브 영상으로 기록하고 있어도 가끔 그렇다.


 기억이라는 건 기억할 때도 있지만 언제가 잊히는 법이고, 또 잊고 있다가 문득 떠오르는 법이다. 아마 사람들은 이런 걸 가리켜서 ‘추억’이라고 말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29년이라는 인생을 살아온 나에게 추억은 오로지 하나, 소설을 읽은 그 순간순간의 기억들뿐이다. 나는 소설을 읽으면서 오늘을 살아올 수 있었고, 소설을 읽은 덕분에 오늘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나에게 소설은 도망칠 수 있는 곳이자 살아가는 이유이기도 했다.



 오늘 읽은 사노 테츠야의 소설 <이 세상에 i를 담아서>라는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과 히로인 두 사람도 그런 사람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사람들과 자연히 어울리지 못한 그들이 추구한 건 소설을 읽고 소설을 써 내려가며 세상을 담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소설로 세상을 바꾸고자 했다.


“나한테는 아무것도 남지 않아도 돼.”

요시노는 꾸임없이 목소리로 그렇게 대답했다.

“전부 소설에 남으면 되니까.”

말을 마친 요시노는 왠지 노려보듯 나를 쳐다봤다. 의식적으로 노력보는 것은 아닌 듯했다. 그렇지만 강렬한 눈초리였다.

“있잖아.”

숨을 한 번 깊이 들이마신다.

“난 소설로 이 세상을 바꾸고 싶어.”

사방의 밤공기를 뒤흔들어놓듯, 요시노는 그 한마디를 토해냈다.

“이 살기 힘든 세상을 부수고, 뭔가 다른 세상을 만들고 싶어.”

요시노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나는 이해했다.

맞다. 이유는 모르지만, 이 현실은 살기 힘들다.

하지만 한편으로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는 생각도 들었다.

소설로 세상을 바꾸고 싶다니.

그런다고 바뀔 리 없잖아. (본문 57)


 소설로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허무맹랑한 이야기. 어떤 사람은 어림없는 소리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제로 J.K 롤링이 쓴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은 세상을 크게 바꾸면서 소설 세계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그리고 지금의 세계는 공상 소설로 시작한 상상을 조금씩 실현되고 있는 중이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소설을 통해 세상을 바꾼다는 것도 아예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더욱이 한 편의 소설은 그 소설을 읽은 사람의 세계관을 뒤흔들 때가 종종 있다. 오늘 읽은 소설 <이 세상에 i를 담아서>의 주인공 소메이와 히로인 요시노와 마시로 세 사람도 그렇게 세계관이 흔들렸다.


 정확히 말한다면 세계관이 흔들린 게 아니라 어떤 소설을 읽기 전과 읽은 후의 자신이 커다랗게 바뀌어버린 거다. 그렇게 달라진 그 세 사람은 각자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며 만남을 가지게 되었고, 주인공 소메이는 쓸 수 없었던 소설을 다시 쓰게 되면서 마시로와 함께 내일로 가는 문을 열 수 있었다.



 사노 테츠야의 이 소설 <이 세상에 i를 담아서>는 그런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다. 책을 읽으면서 주인공 소메이와 첫 번째 히로인 요시노 두 사람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고, 소메이와 두 번째 히로인 마시로 두 사람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호기심으로 살짝 마음이 들뜨게 된다.


 그리고 그 끝에서 만난 것은 오늘을 살아가고자 하는 모두의 이야기다. 이 소설 <이 세상에 i를 담아서>의 진정한 피날레는 주인공과 히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작가 후기라고 생각한다. 소설을 다 읽은 후에 읽은 작가 후기는 소설을 다시금 곱씹으면서 소설을 온전하게 내 마음속에 넣을 수 있었다.


표면상으로는 현실과 무관해 보이는 시간의 활용법 속에 이 현실을 바꿔놓을 계기가 숨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눈앞의 현실을 단순히 받아들이며 살아가기만 해서는 현실을 바꿀 수 없습니다. 허수와 소설이 현실을 바꿔놓을지도 모르듯, 그런 눈앞의 노력이 언젠가 자신과 타인의 현실을 바꿔놓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노력이 진정 가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본문 285)


 어릴 적에 내가 한 눈앞의 노력은 오늘을 버티기 위해서 소설을 읽는 일이었다. 만 29살이 된 지금의 나는 똑같이 오늘을 살아가기 위해서 소설을 읽고 글을 쓴다. 내가 쓰는 글은 소설이 아니라 단순하게 소설을 읽고 느낀 감상을 담아 소개하는 글이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 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아마 나는 앞으로도 이렇게 살아갈 것이다. 이렇게 살아가며 내가 해내지 못한 일을 이루어낸 사람들에게 질투하고, 미워하고, 또 그런 나 자신을 스스로 자책하다 다시금 소설을 집어 들고 이야기를 읽으면서 오늘을 살아갈 것이다. 나는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으니까. 이런 나도 언젠가 사랑을 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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