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인문학 수업 연결, 인문학과 내 삶을 잇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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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학’이라는 장르가 우리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인식이 널리 퍼진 건 오래전의 일이 아니다. 지금도 문과 계열은 여전히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팽배하고, 문과 계열로 대학 전공을 가지면 “너 그래서 뭐 먹고 살려고? 공무원 시험 칠 거야?”라는 질문을 시도 때도 없이 받는 게 일상이다.


 그런 이유로 먹고사는 게 바빴던 우리 한국 사회에서는 인문학의 필요성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없었다. 프레젠테이션의 대개로 불리는 스티브 잡스가 새로운 제품을 발표할 때 ‘인문학의 영감’을 말하기 전까지, 한국에서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도서와 강의가 유행하기 전까지는.


 비록 한 시대를 열었다고 해도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사람은 극소수에 해당할 것이다. 하지만 유행을 쉽게 따라가는 한국 사회에서 인문학은 ‘성공을 위한 열쇠’로 주목을 받으면서 한국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와 만나 짧은 기간 동안 빠르게 성장했다.


 사실 어떻게 본다면 알맹이 없이 껍데기만 성장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래도 이렇게 인문학이 대중 속으로 들어오기 위해서 다양한 형태로 가공되어 ‘쉽게 이해하는 인문학’이 만들어지고, ‘인문학’의 기본이라고 말할 수 있는 ‘질문’이 우리 사회에 퍼지면서 스스로 변화를 주도하는 시민 사회가 생겼다.



 물론, 이 모든 게 인문학 덕분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인문학 열풍이 그동안 질문하지 않던 우리 사회에 ‘왜?’라는 질문을 하게 하며 변화를 위한 씨앗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인문학’이라는 건 근본적으로 ‘왜?’라는 질문을 통해 오늘을 고민하고, 미래를 바라보게 하는 눈이기 때문이다.


 오늘 읽은 책 <퇴근길 인문학 수업>의 네 번째 이야기 ‘연결’에는 바로 그렇게 어떻게 인문학적 사고를 통해 ‘우리의 오늘을 어떻게 바라보고, 내일을 어떻게 변화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다룬다.


 <퇴근길 인문학 수업 연결>은 총 12명의 저자가 각자의 분야에 대해 한 장을 맡아서 다루고 있고, 그 장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읽을 수 있는 분량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목이 ‘퇴근길 인문학’인 만큼, 퇴근길에 지하철에서 읽을 수 있게 되어 있는데 굳이 그 분량을 철두철미하게 지키지 않아도 된다.


 각 장은 크게 세 개의 파트 인문학 코드, 리더의 교양, 시장과 문화로 구성되어 있다. 또, 장마다 네 개의 세부 카테고리로 나누어져 각 저자가 자신의 분야를 중심으로 인문학을 주제로 다루면서 다양한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아마 이 중에서 흥미 있는 분야와 흥미 없는 분야도 있을 거다.


 개인적으로 나는 첫 번째 장에서 다룬 ‘인간의 삶과 미래 기술(이종관)’과 두 번째 장에서 다룬 ‘이야기는 어떻게 산업이 되었나(정창권)’ 두 분야를 흥미롭게 읽었다.



 지금 우리 한국 사회는 저출산 사회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에 곳곳에서 인력이 부족해지고 있다. 하지만 그 인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서 ‘합리적인 방법’은 억지로 출산율을 높이는 게 아니라 사람을 대신할 수 있는 기술을 만드는 일이다. 그 기술은 점차 사람을 대체하며 우리 사회를 지배해가고 있다.


 그렇게 새로운 기술로 만들어진 첨단 소프트웨어와 기기가 사람을 대체하게 되면서 사람들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덕분에 손으로 직접 하나하나 일을 하던 사람들은 ‘이제 뭘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고민에 빠지고, 오늘날 사람들은 그래도 월급을 꼬박꼬박 받을 수 있는 공무원을 선호한다.


 하지만 공무원을 직접으로 삼아 일 한다고 해도 그렇게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왜냐하면, 그 일이 진정으로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 아닐 수도 있고, 그 일을 통해서 내가 어떤 가치 실현을 할 수 있는 비전(목표)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책을 읽으면 아래와 같은 글을 만날 수 있다.


사람의 일은 단순히 생존을 위해 먹이를 구하는 동물의 행동과는 다른 차원에 속한다. 경제학에서는 일을 노동으로 정의하고 있어 생산요소와 비용에 불과하다. 그러나 사람의 삶을 전체적으로 성찰해보면 일은 사람의 품격, 개인의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실존적 처신이다. 일이 실존적 처신이라면 일 없는 상태는 사람의 실존적 삶에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 그중에서도 철학적으로 가장 심각한 건 사람의 삶이 병리적 상황에 빠질 위험이다. 사람이 탈실존적으로 처신하여 살아가는 존재가 된다면 경제적 궁핌보다 더 위험한 사태가 예상된다. 미래라는 시간 국면이 상실되는 권태에 빠져 중독자로 전락할 수 있는 것이다. (본문 44)


 짧은 글이지만 이 글은 우리에게 많은 걸 시사한다. 경제학적으로 본다면 일을 한다는 건 단순히 생산과 소비에 불과하다. 하지만 우리에게 일은 경제학적으로 생산과 소비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자아실현이라는 궁극적 가치와 이어지는 수단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한사코 고민한다.


 지난주 <한끼줍쇼>에서 볼 수 있었던 옥탑방에 살고 있던 한 사진작가의 이야기가 문득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는 어떤 회사에 소속된 사진가로 일을 하다 나만의 것을 찾고 싶어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일의 방향을 바꾸었다. 어떻게 보면 바보 같고 무모하지만 그게 자신에게는 중요한 일이었다.



 만약 지금 내가 하는 일에 어떠한 사람의 품격, 개인과 사회적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면 사람은 권태감에 빠져서 정말 어긋난 일에 빠질 수도 있다. 흔히 음주 가무가 일상이 되어 있는 한국 사회에서는 술에 집착하거나 유흥에 빠질 수도 있고, 또 물질 욕구가 강해 도박에 빠지거나 사기를 당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가면서 ‘나는 왜? 나는 무엇을? 나는 어떻게?’라는 질문을 하며 그 답을 찾기 위한 일을 할 필요가 있다. 물론, 그 일이 경제적 일과 연결되면 좋겠지만, 만약 그렇게 연결하기가 어려울 경우에는 취미 생활을 통해서라도 찾아야 한다. 그렇게 해야 사람은 나로서 살아갈 수 있다.


 결국, <퇴근길 인문학 수업 연결>에서 여러 명의 저자가 말하는 이야기의 주제도 그랬다.


거장의 작품을 소유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은 회화와 초상화, 조각 등 정교하고 섬세한 수공업의 발달을 가져왔다. 이를 만들던 천민 장인들의 사회적 입지도 확고해졌다. 유명세를 치른 사람의 이름을 걸고 만든 금은 세공품이나 벽화는 명품이 되었다. 스타 장인은 이렇게 탄생했다. 무지한 수공업 장인이 사회적 변화에 힘입어 예술가로 탈바꿈한 것이다. 이탈리아어에서 ‘아르테Arte’는 예술이라는 뜻으로 영어의 ‘아트art’’와 같다. 즉, 에술이자 기술을 뜻한다. 예술과 명품은 동격이며, 장인과 예술가는 한배에서 태어난 형제와 같다. (본문 373)


 장인과 예술가는 한배에서 태어난 형제와 같은 것처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도 한배에서 태어나 자기 일을 찾아가는 중이다. 그 일을 찾아가며 내일의 변화를 끌어오는 계기는 바깥에 있는 게 아니라 나에게 질문을 하고, 질문에 대한 답을 강요하는 게 아니라 자연히 찾는 데에 있다.


 퇴근길 인문학 수업이라고 하더라도 퇴근길이 아니라 잠자기 전에 30분,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정신을 차리기 위한 30분에 읽으면 좋은 책 <퇴근길 인문학 수업> 시리즈의 나온 네 번째 도서 ‘연결’ . 오늘 나에게 할 질문과 배우고 생각할 이야기가 필요한 사람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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