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세상 6회, 어른의 부끄러움을 보여주다

 사람은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누구나 실수를 하기 마련이다. 실수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니다. 진짜 잘못된 건 실수한 이후 그 실수를 반성하지 않고, 자신의 실수로 인해 누군가 피해를 보았을 경우엔  진심으로 잘못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며 사과를 하지 않고서는 사람은 절대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는 자신의 실수, 혹은 잘못으로 누군가가 피해를 보았을 경우에 진심으로 고개 숙여 사과하면서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는 일이 드물다. 아니, 평범한 사람들에게 이 모습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이름 있는 정치인, 연예인은 그렇지가 않다.


 굳이 그들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조차 껄끄러운 일이니, 오늘은 드라마 <아름다운 세상 6회>에서 다루어진 에피소드를 가지고 잠시 ‘어른의 부끄러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학교 폭력과 친구의 돌이킬 수 없는 잘못으로 혼수상태에 빠진 한 아이의 부모님이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 동분서주 뛰어다니는 모습을 그린 드라마 <아름다운 세상>. 이 드라마는 제목과 너무나 대조되는 아름답지 못한 이야기로 시청자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듯한 고통을 느끼게 하고 있다.


 지난 <아름다운 세상 6회>에서는 학교에서 일어난 잘못에 수수방관하는 어른들의 모습, 그리고 ‘동요하지 않고, 진실을 알려 하지 않는 게 최선’이라 여기는 어른들의 모습이 그려지며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아마 그런 어른들의 모습은 우리가 낯설지 않게 볼 수 있는 주변 어른의 모습일 것이다.


 물론, 자신 주변에 진짜 어른이 있어서, 잘못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누구보다 앞장서서 고개를 숙이면서 진상 규명을 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접하는 학교 폭력 사건만 아니라 내부 고발 사건은 모두 불편한 진실이 아니라 편한 거짓을 추구한다.


 특히 문제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사람들은 잘못에 대해 끝까지 책임을 회피하며 합의 같은 어정쩡한 마무리를 지으며 ‘우리는 할 도리를 다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렇게 하면 뒤에서  딴소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저 좋지 않았던 일로 여기며 잘못을 그냥 넘길 수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 <아름다운 세상 6화>에서 선호의 어머니 강인하는 남편을 향해 “그 애들이 얼마나 잔인한 짓을 했는지 가르쳐 줘야지. 두 번 다시 같은 잘못을 하지 않도록. 지금 그대로면 그 아이들은 “아, 겨우 교내 봉사 3일로 끝나는 구나.”라고 넘어갈 거 아냐!???”라고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호소하는 장면이 있다.



 어른이 해야 할 일은 바로 그렇게 애들이 얼마나 잘못했는지 가르쳐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사회는 아이들의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지고 반성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부모보다 “괜찮아. 엄마(아빠)가 다 해결해줄게. 넌 아무 잘못도 안 했어.”라고 잘못된 선택을 하는 부모도 적지 않다.


 드라마 <아름다운 세상> 성재의 부모님이 바로 그런 인물이다. 성재의 부모님은 자기 아들이 한 일이 사소한 실수라는 건 인정하지만, 크게 책임을 지고 반성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성재의 부모님이 아이에게 가르친 건 잘못을 반성하는 일이 아니라 후속 조치를 하는 방법이었다.


 성재 부모님만 아니라 기찬이 부모님도 똑같았고, 오로지 영철이 부모님만 잘못을 진심으로 반성하며 책임을 지고자 했다. 그리고 가장 무서운 인물은 준석이 부모님이다. 아버지는 준석이에게 어떤 식으로 대처해야 할지 시나리오를 세워줄 뿐만 아니라 뒤에서 청소를 하고, 어머니는 자살 위장까지 했다.


 잘못이 밝혀질 걸 두려워하면서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지는 모습과 반성 없이, 오로지 ‘불행한 사고’로 취급하며 그들은 한사코 깔끔한 뒷처리를 하고자 했다. 감성적이 아니라 이성적, 경제적으로 따진다면 분명히 그들의 사고가 옳다. 하지만 거기에는 결코 사람의 기본적인 도덕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드라마 <아름다운 세상 6회>에서 학교 교장, 교감, 담임과 앉은 테이블에서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 앞에서 선호의 아버지 무진은 “그래서 부끄럽습니다. 어른이 어른답지 못해서 아이들이 피해보는 것 같아서....”라고 말한다. 이 말에 따끔할 어른이 적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부끄러워도 고개를 숙이고 사는 게 ‘사회생활을 잘 하는 법’이라고 배웠고, 삶을 융통성 있게 사는 거라고 배우며 어른이 되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에는 ‘도덕적인 사람이 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배우지만,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서서히 그 가치관이 변질되어버린다.


 조금씩 우리는 ‘합리적인 사람이 되는 게 가장 중요하다.’라는 걸 살면서 학년이 올라가면서 배우게 되고, 대학을 졸업해서 사회로 나아갈 때는 “도덕은 밥을 먹여주지 않지만, 합리적인 사고는 우리에게 밥을 먹여준다.”라는 원칙이 몸에 배인 상태가 된다.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부끄러움에 무뎌지는 거다.



 내가 오래전에 읽은 학교 폭력 사건을 다룬 <십자가>라는 소설을 읽어보면 이런 장면이 있다.


“하지만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어. 너희가 아니라 너희를 감싸려고 하는 어른들을.”

“지금 장난하냐고 말하고 싶었어.”

“생각해봐. 같은 반 학생이 죽었어. 더구나 자살이고. 더구나 왕따 때문이야. 그런데 동요하지 않을 리가 없고, 동요하지 않는 게 더 이상하잖아? 그렇게 생각 안 해? 그런 때는 동요해야 하는 거고, 동요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안 그래? 인간은 가까운 사람이 죽으면 동요하게 돼 있어. 충격을 받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고민하고, 괴로워하고, 슬퍼하고……. 그 고민과 괴로움을 가르쳐주는 게 학교가 아닐까? 그게 어른들의 역할이 아닐까?” (본문 271-272 편집 각색)


 지난 토요일 밤에 방영된 드라마 <아름다운 세상 6회>를 보고 ‘어른의 부끄러움과 역할’을 머릿속에서 고민하다 문득 오래전에 읽은 <십자가>라는 소설에서 읽은 이 대사가 떠올랐다. 그래서 책장 한구석에 있는 책을 꺼내서 다시 이 부분을 읽었고, 분명히 드라마와 어울리는 메시지가 있다고 여겼다.


 그래서 이렇게 글을 옮긴 거다. 위 대사를 읽어보면 대사를 말한 이가 딱 선호의 아버지 심정이고, 드라마 <아름다운 세상>을 통해 보는 어른들을 향해 일침을 가할 수 있는 대사이지 않을까?


 오늘날 정치, 연예계, 경제계의 이름 있는 많은 인물이 부끄러운 모습을 당당하게 여기며 정말 뻔뻔하게 잘도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다. 부디 그런 사람들에게 이 드라마 <아름다운 세상>을 보여주며 “참, 아름다운 세상에서 아름답게 살고 계시네요.”라고 한 마디 해주고 싶다. 진심 100%, 200%로 말이다.


 앞으로 드라마 <아름다운 세상>은 어른들의 부끄러운 모습을 어떻게 보여주고, 그 부끄러움을 반성하며 잘못을 뉘우치고 진심으로 사과하는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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