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뿐인 내 편 소양자는 왜 또 사기를 당했을까
- 문화/문화와 방송
- 2018. 12. 22. 09:51
사기를 당하는 사람의 분명한 이유
주말 안방극장을 차지하고 있는 드라마 <하나뿐인 내 편>은 막장 요소와 코믹 요소를 적절히 결합해 시청자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매주 소폭 상승하는 시청률은 드라마의 뻔한 설정과 전개에 질린 시청자가 눈을 떼지 못한다는 증거다. 그야말로 한국 드라마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해야 할까?
<하나뿐인 내 편>에는 출생의 비밀을 가진 히로인, 그리고 그 히로인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히로인을 지키기 위해서 전면적으로 나서는 재벌 연인이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드라마 제목에 걸맞는 ‘하나뿐인 내 편’이라고 말할 수 있는 유이의 아버지 역할을 맡은 최수종의 연기와 존재감이 인상적이다.
덕분에 드라마가 방영될 때마다 실시간 검색어에 ‘최수종’이라는 이름이 내려온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드라마에 별 관심이 없어도 실시간 검색어에 ‘최수종’이라는 키워드가 올라와 ‘뭐지?’라며 클릭을 해본 사람이 적지 않을 거다. ‘최수종’이라는 이름은 연기의 표본이라고 말할 정도로 영향력이 있으니까.
하지만 오늘 나는 ‘최수종’이라는 인물이 아니라 ‘임예진’이라는 인물이 연기하는 ‘소양자’라는 캐릭터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하고자 한다.
<하나뿐인 내 편>에서 ‘소양자’라는 캐릭터는 주연 김도란(유이)를 도맡아 키운 계모 역할의 캐릭터로, 반전을 가진 좋은 엄마가 아니라 욕심이 눈이 먼 전형적인 계모 캐릭터로 그려지고 있다. 그녀가 보여주는 돈에 대한 욕심은 시청자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정도로 너무나 직설적이다.
남편 김동철이 죽은 이후 소양자는 김도란을 쫓아낸 이후 자신의 딸과 둘이서 잘 먹고 잘살겠다며 집을 팔아서 카페를 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 부동산 매매 계약은 사기였고, 소양자와 김미란은 쫄당 망한 상태에서 거리로 쫓겨나 사채 업자를 피해 도망치며 거리를 전전하다, 도란이에게 들러붙는다.
도란이가 시집을 갈 때는 기어코 시집으로부터 ‘3억’이라는 거금을 받았는데, 3억에 만족하지 않은 소양자는 또 한 번 대박의 꿈을 꾸면서 귀를 간질거린 유혹에 넘어가 버리고 만다. 건물을 사서 임대 방사를 하겠다는 투자 사기에 당해 약 3억에 가까운 금액을 또 몽땅 날려버릴 위기에 처한 거다.
소양자가 이렇게 사기를 당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불편한 사실을 두 가지 정도 엿볼 수 있다. 그중 한 가지 불편한 사실은 ‘한국은 여전히 부자가 되려면 건물을 사서 임대 장사를 하는 형태’를 취할 수밖에 없다는 점, 또 한 가지는 ‘조금만 더’라는 욕심이 기어코 사람을 파멸로 몰아간다는 사실이다.
돈이 생기면 일단 건물부터 사고 보겠다는 건 중장년 세대만의 생각이 아니다. 나와 같은 청년층 세대는 물론, 심지어 아이들조차 ‘조물주보다 건물주가 더 위대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요즘도 조금 조용하다 싶으면 건물주의 갑질 문제와 높은 임대료로 쫓겨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얼마 전에도 뉴스를 통해 경리단길을 비롯해 특화 거리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이 오른 임대료에 버티지 못해 하나둘 가게를 폐업하는 모습이 보도된 적이 있다. 그들은 젊은 사람들이 없어지면서 방문하는 사람들이 줄어들자, 임대료를 감당하기 어렵다고 건물주에게 하소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건물주는 한사코 ‘여기는 이름 있는 거리라 그 정도 안 받으면 수지가 안 맞아.’라고 주장하며 임대료 삭감은 귓등으로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건물주는 ‘잘 팔리는 거리’라는 믿음 하나로 지금보다 더 벌기 위해서 천정부지로 임대료를 올리고, 그 임대료에 버티지 못하는 사람들을 쫓아낸다.
그런데 건물주가 ‘조금만 더 크게 벌고 싶다’는 자신의 욕심을 위해서 거리에 특색을 입히기 위해서 노력한 사람들을 쫓아내는 일이 똑바로 된 일로 볼 수 있을까?
거리를 만드는 데에 기여한 사람들이 쫓겨나면서 거리는 특색을 잃어버리게 되고, 임대료를 감당하기 위해서 올라가는 메뉴의 가격은 소비자에게 부담이 된다. 더욱이 임대료가 올라가니 생산비를 줄이기 위해서 고용을 줄이거나 재료를 연장해 사용한 탓에 제품 품질이 떨어지는 악순환도 일어난다.
소비자는 그 사소한 차이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처음에는 몰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발길을 옮기는 사람이 줄어들고, 당연히 발길이 줄어드는 만큼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파산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 끝내 높은 임대료를 부담할 수 없는 적자 상황에서 ‘파산’이라는 선택을 해버린다.
이러한 악순환은 시작점은 ‘조금만 더 크게 돈을 벌고 싶다.’라는 욕심을 품은 건물주다. 서로 상생을 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든 커다란 빨대를 꽂아 단물을 쭉쭉 빨아먹고 살려는 그 욕심이 마이너스 흐름을 만들어버리는 거다. 결국, 사람은 과유불급의 정도를 지키지 못한다면, 망할 수밖에 없다.
<하나뿐인 내 편>에서 등장하는 소양자 캐릭터가 딱 그렇게 전형적으로 망하는 캐릭터다. 가진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지금 가진 것을 어떻게 활용해서 자신에게 투자할 것인지 바른 고민을 하지 않고, 오로지 일확천금을 벌고 싶다는 욕심을 절제하지 못하면서 계속 사기꾼들의 말에 속는 거다.
서민들 사이에서는 소양자가 겪는 사기가 빈번하게 일어난다. 흔히 말하는 다단계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누구 한 명이 크게 성공했다 혹은 돈을 한 달에 몇천씩 번다는 소문을 들으면 ‘나도 한 번 해서 부자가 되보자.’라며 달려들었다가 나중에 소개한 비슷한 사람끼리 손가락질하며 싸우게 된다.
자신이 욕심에 눈이 멀어 사기인지 아닌지 객관적인 시선으로 판단해보지도 않고, 오로지 일확천금을 벌고 싶다는 욕심으로 시작한 일에서 손해를 보니 다른 사람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이 못된 놈!” “천벌 받을 놈!”이라며 욕이란 욕만 하고 있다. 모든 사건의 발단이 자신이 품은 허영심인 걸 모른 채.
그래서 소양자 같은 캐릭터는 늘 사기를 당할 수밖에 없다. 한 번 당한 일을 통해서 배우지 못하는 캐릭터는, 일에 대한 욕심이 아니라 결과에 대한 욕심만 부리며 과정 없이 일확천금을 바라는 캐릭터는 실패해 지옥 바닥을 구르는 게 운명이다. 과연 소양자 캐릭터는 개과천선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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