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남, 돈과 행복의 답을 찾아가는 소설

반응형

"부자가 되면 정말 행복할까?", 복권 3억 엔에 당첨된 가즈오의 돈과 행복의 정답을 찾아가는 여정


 살면서 단 한 번도 부자가 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나는 지금도 부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고, 당첨될 일이 극히 희박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매주 복권을 산다.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돈'에 욕심을 품지 않는 일은 어렵다. 돈은 우리가 사는 삶의 질을 결정하고, 우리 자체를 결정하기도 한다.


 가령 오늘 우리가 300억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300억은 평소 통장에 100만 원이 넘는 일이 힘든 나에게 상상도 하지 못할 돈이다. 그런데 지금 구치소에 있는 '최 씨'는 숨겨진 자산만 몇조 원에 달한다고 한다. 도대체 천억을 넘어서 조에 달하는 돈이 어느 정도인지 상상하는 일조차 무척 어렵다.


 우리는 그 정도의 돈이 있으면 돈에 대한 욕심이 없어질 것 같다. 하지만 이미 돈이 살아가는 데에 전부가 되어버린 사람은 그 욕심을 버리지 못한다. 최 씨는 박 씨를 통해서 더 많은 돈을 추구하다가 결국은 철창에 갇히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그렇다고 최 씨와 박 씨가 그 일에 대해 후회를 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그 두 사람은 자신이 가진 돈을 풀어서 움직이면 철장에서 나오는 일이 쉽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더욱이 철장 안에 있어도 그들은 가진 돈을 통해서 특별해질 수 있고, 사회적 손가락질을 받는다고 해도 자신의 막대한 돈에 작은 흠집을 나는 정도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른바 괴물이다. 처음에는 돈이 있으면 행복하다고 생각해 악착같이 돈을 모았지만, 언젠가 돈이 곧 삶 자체가 되어버렸다. 매일 같이 막대한 돈을 사용하면서 원하는 것을 얻는 일상은 오늘날 우리가 원하는 일상이다. 그런데 만약 그 일상에서 평화로움과 행복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면?


 내가 말하는 건 궤변이다. 단 한 번도 아무리 사용해도 마르지 않는 돈을 가져보지 못한 내가 '돈과 행복'에 대해 논하는 건 박 씨가 다시 정치를 하겠다며 나서는 것과 같다. 한때는 돈을 흥청망청 쓰며 '다시 벌면 돼'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는 것만으로 돈과 행복에 관해 이야기할 자격은 없다.


 그래서 오늘은 <억남>이라는 소설 한 권을 통해서 돈과 행복에 대해 짧게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 책은 과거에 읽은 <만약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의 기획자 가와무라 겐키가 집필한 책이다. 단지 전에 읽은 작가의 작품이라 궁금했고, 돈으로 어떤 이야기를 적었을지 궁금해서 책을 읽었다.



 <억남>의 주인공은 동생이 진 3,000만 엔의 빚을 갚느라 딸과 아내와 별거를 하고, 매일 같이 일을 하고 또 일을 해야 하는 불행하다고 말할 수 있는 '가즈오'라는 인물이다. 그런데 그에게 뜻하지 않은 행운이 그를 찾아온다. 우연히 건네받은 추첨권으로 받은 복권이 당첨돼 3억 엔을 받게 된 것이다.


 3억 엔이 있으면 그는 3,000만 엔의 빚을 청산하고, 가족과 다시 함께 모여 오손도손 행복하게 살 수 있었다. 그런데 가즈오는 3억 엔이라는 돈을 처음 손에 쥐었기에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몰랐다. 그가 3억 엔의 돈을 가지고 누린 사치라고는 조금 비싼 우유, 조금 비싼 점심, 조금 비싼 빵이 전부였다.


"돈은 주조된 자유다."

예전에 도스토옙스키는 말했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자유를 손에 넣을 수는 있다.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자유. 싫은 것을 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

고층 맨션에서 살고 싶다거나 고급 외제 차를 굴리고 싶다는 생각 따위는 해본 적도 없다. 그것이 행복한 생활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막대한 빚을 지고 빈궁한 가운데서도 정말 괜한 오기가 아니라 순수하게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3억 엔의 돈을 손에 넣은 지금, 가즈오는 깨달았다. 자신은 자유를 얻은 것이라고. 가장 싼 우유가 아니라 가장 맛있는 우유를, 가장 싼 빵이 아니라 가장 먹고 싶은 빵을 살 수 있는 자유를.

그와 동시에 아연해지기도 했다. 기껏해야 그 정도의 일이었던가. 도스토옙스키가 설파한 돈에 의해 주어지는 자유라는 것이 나에게는 우유나 빵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는가. 가즈오는 슈퍼마켓에 늘어선 수많은 상품들을 바라보며 한참이나 멍하니 서 있었다. (본문 42)


 아마 나라도 가즈오와 똑같은 행동을 하지 않았을까? 30억 정도의 돈이 있으면 막상 해보고 싶은 일이 구체적으로 떠오르는 일이 없다. 겨우 평소 돈이 아까워 먹지 못한 고급 식당에 가서 음식을 먹거나 <윤식당>을 보고 알게된 길리 트라왕간에 가보거나 더 많은 책을 놓기 위한 집을 사는 것 정도다.


 가즈오는 어떻게 돈을 써야 행복할 수 있을지 알고 싶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알아본 복권 당첨자의 실패한 길은 걷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수백억대의 부자가 되었다고 하는 친구 쓰쿠모에게 15년 만에 연락을 한다. 쓰쿠모는 주식과 자신의 사업으로 150억이 넘는 실시간 수익을 얻고 있었다.


 쓰쿠모는 가즈오에게 "복권 당첨자는 지난 10년 동안 5천 명이 넘어. 너는 전혀, 전혀 특별하지 않아. 라며 현실을 직면하게 한다. 또한, 그는 인터넷에 올라온 실패의 길은 걸은 당첨자의 이야기는 당첨을 시샘하는 사람들이 적은 소수의 사례이고, 지금 당장 돈을 찾아서 현금으로 직접 돈을 보라고 말한다.


 가즈오는 쓰쿠모의 말대로 여행 가방에 현금 3억 엔을 넣어서 가지고 온다. 가즈오는 쓰쿠모의 집에서 그와 광란의 파티를 하며 비로소 '돈'을 실감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예기치 못한 사태가 벌어진다. 백억 대의 부자인 쓰구모가 가즈오의 전부라고 말할 수 있는 3억 엔을 가지고 자취를 감춘 거다.



 소설 <억남>의 본격적인 이야기 시작은 여기서부터다. 가즈오는 쓰쿠모의 행방을 찾기 위해서 그가 함께 일했던 사람들을 차례로 만난다. 그들은 모두 각자 나름대로 돈과 행복에 대한 답을 찾아 살아가고 있었다. 도와코, 모모세, 센주 세 사람의 이야기는 각자의 가치를 엿볼 수 있어 무척 흥미로웠다.


 그중 도와코의 이야기를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대학을 졸업할 때쯤에는 내 용모에 어울리는 옷차림이나 태도에 더해서 남자가 좋아할 만한 애교, 게다가 소박함까지도 일부러 지어낼 수 있었어요. 부유한 남자들이 점점 더 내게로 모여들더군요. 그들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원하지 않는지, 나는 충분히 파악해낼 능력이 있었어요. 그들 중 몇몇 부유한 남자들과 사귀었어요. 전전했다, 라는 표현이 더 적합할지도 모르겠네요. 결혼할 마음이 생겨서 실제로 얘기가 상당히 진척된 적도 있었어요. 근데 그중 어느 것도 이뤄지지 않았죠."

"……왜죠?"

"결혼 얘기가 나오고 신혼집을 구하고 결혼식장을 잡고, 그러다 보면 내가 그 남자를 사랑했는지 아니면 그의 부유함을 사랑했는지 점점 알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항상 내 쪽에서 도망치는 거예요.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돈을 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돈으로 살 수 없는 사랑을 원하는 나 자신이 추하고 미웠으니까요." (본문 98)


 이 이야기는 결국 우리 욕심 자체에 질문을 던지는 이야기다. 우리가 새콤한 맛이 파인애플을 좋아한다고 생각해보자. 우리는 파인애플을 좋아해서 새콤한 맛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도 있고, 새콤한 맛을 좋아해서 파인애플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우리는 무엇을 좋아해서 파인애플을 좋아한 걸까?


 파인애플은 그냥 맛있게 먹으면 되니까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런데 이 파인애플이 사람과 돈으로 바뀌게 되면 그 이름이 가지는 가치가 완전히 달라진다. 과거 쓰구모의 동료였던 도와코라는 여성은 그 가치 사이에서 심각한 고민을 했었고, 지금도 현재의 소박한 남편을 만나서도 하고 있었다.


 <억남>의 이야기가 이어지면서 등장하는 모모세, 센주 두 사람 또한 마찬가지다. 두 사람은 돈을 벌 마음이 없었어도 계속 자신의 능력 덕분에 돈을 벌고 있었고, 그들의 눈은 삶이 행복해서 활기찬 눈이 아니라 좀비처럼 생기 없는 눈빛으로 세상을 보고 있었다. 도대체 돈과 행복은 무슨 관계인 걸까?



 주인공 가즈오가 쓰구모와 함께 한 돈과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무엇을 느꼈는지 독자는 어렴풋이 추측할 뿐이다. 소설 <억남>은 가즈오가 별거하는 딸의 발표회를 앞두고 아내 마사코를 만나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그곳에서 가즈오는 마사코와 대화하며 진짜 행복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이를테면." 마사코는 조용히 말을 이었다. "이를테먼 당신이 오늘 이 자리에 큰돈을 들고 왔다고 할까. 발레가 끝나고 회장을 나가 우리는 빚을 갚고 원하는 것을 전부 사 들고 집에 돌아갈 거야. 그러면 더 이상 필요한 건 없겠지. 근데 결코 일이 그렇게 되지는 않아."

가즈오는 침묵했다. 전황이 보이지 않아 그저 멍하나 서 있는 병사처럼.

그런 가즈오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듯 마사코는 담담히 말했다.

"왜냐하면 인간이란 내일을 살아가기 위해 '뭔가에 욕심을 내는' 동물이기 때문이야. 맛있는 것을 먹고 싶다, 어딘가에 가고 싶다, 뭔가를 갖고 싶다. 그런 바람 때문에 우리는 살아갈 수 있어. 예전에 나는 도서관에서 당신이 골라준 책을 한 권 한 권 읽는 것으로 내일로, 모레로 나아갔어. 다음에 어떤 책을 읽을지 상상하는 것으로 삶이 계속 이어졌어. 그때 우리는 책을 빌리고 빌려주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꼈어. 나는 책을 한 권 한 권 대출하면서 마음속 책장을 채워나갔고. 그리고 그 책장이 가득해졌을 때 나는 정말로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었어. 그게 바로 당신이야." (본문 236)


 마사코는 가즈오에게 "새로운 책장에 다시 책을 한 권씩 채워가기로 마음을 정했어. 마도카와 함께 내일을 살아가기 위해서."라는 말을 최종적으로 전한다. 마사코의 행복은 욕심을 돈에 뺏긴 가즈오와 함께 하는 일상이 아니라고 말하는 듯했다. 가즈오는 끝까지 마사코의 말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가즈오는 마지막에 이르러 쓰쿠모와 재회하게 된다. 쓰쿠모는 가즈오가 '돈과 행복의 정답'을 고민하는 그를 위해 각자 나름의 찾은 돈과 행복의 정답을 도와코와 모모세, 그리고 센주를 만나게 해서 그가 돈이 사람을 어떻게 바꿔버리는지 알아주기를 바랐다고 가즈오 앞에서 털어놓았다.


 그래서 답을 찾았냐는 쓰쿠모의 질문에 가즈오는 "아직 모르겠어. 하지만 그 답은 인간 속에 있는 거겠지?"라고 되묻고, 쓰쿠모는 아래와 같이 답한다.


"그건 정답이기도 하고 정답이 아니기도 해. 즉 돈과 행복에 대한 정답은 한 가지가 아니라는 얘기야. 인간 한 사람 한 사람 모두에게 다 답이 있는 것이지. 그렇기 때문에 나는 만일 인간을 믿느냐 마느냐의 갈림길에 선다면 믿는 쪽으로 가자고 다시 한 번 결심하게 됐어."

쓰쿠모는 가즈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말을 이었다.

"내가 그렇게 결심하게 된 건 다 네 덕분이야. 나도 99까지는 답을 찾아냈었어. 하지만 마지막 한 조각이 어떻게도 채워지지 않았어. 그 한 조각을 채워준 건 가즈오 너야. 나는 동료들이 너와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그 얘기를 모두 듣고 왔어. 돈과 격투하면서도 나에 대한 믿음을 끝까지 버리지 않으려고 했던 네 마음이 내 마음까지 움직인 거야. 덕분에 다시 누군가를 믿어보고 싶어졌어. 나는 이제 드디어 돈의 여행을 끝내고 집에 돌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역시 우리는 둘이 합쳐야 비로소 백, 완전체가 되는 모양이야." (본문 260)


 사람을 믿는 것. 사실 갑작스레 돈이 들어오면 가장 어려운 일은 누군가를 믿는 일이다. 돈이 많은 사람 중 일부는 사람을 믿지 못해 마지막까지도 외롭게 살아간다. 그들의 손에 돈은 있을지언정, 진심으로 함께 웃거나 슬퍼해 줄 사람이 없다. 돈에 대한 욕심이 사람을 잃어버리게 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삶은 결코 행복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돈을 손에 넣고 싶어 하지만, 반면에 돈 대신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것도 있다. <억남>은 독자에게 '돈과 행복의 정답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독자는 가즈오의 여정을 통해서 그 답을 얻을 수도 있고, 끝끝내 얻지 못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막대한 돈을 손에 넣은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돈과 행복에 대해 고민하더라도, 차라리 지금 돈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심정이 솔직한 마음일 것이다. 소설은 언제나 '이야기'이기에 우리를 상상하게 하고, <억남>의 저자 또한 꾸준한 작품 활동을 통해 돈을 벌었으니까.


 <억남>은 우리가 돈과 행복에 대해 고만하면서도 끝내 우리가 커다란 돈을 손에 넣어보지 못하면, 끝끝내 답을 찾을 수 없었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억남>의 마지막 장면인 가즈오가 잃어버린 것을 되찾고 싶은 욕심으로 달리는 장면은 어쩌면 지금 답을 찾고자 하는 우리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오늘도 여전히 '돈이 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는 나와 이 글을 읽는 독자에게 소설 <억남>을 추천한다. 이 소설이 오히려 돈과 행복에 대해 더 고민하게 하거나 '이것도 다 돈이 있어서 가능한 고민이지' 라며 혀를 찰 수도 있겠지만, 책을 읽기 전과 읽은 후에는 분명히 무언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돈에 욕심을 뺏기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저 나는 오늘 금요일(19일)에 가는 피아노 학원의 레슨비(15만 원)가 있었으면 좋겠고, 주말 동안 타지에서 편히 뒹굴 수 있는 돈(60만 원)이 있었으면 좋겠고, 다음 2학기 등록금(300만 원)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뿐이다. 나는 돈에 눈이 먼 걸까? (웃음)


 마지막으로 주인공 가즈오가 딸 마나코의 발표회를 보면서 느낀 감정을 남기고 싶다.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의 목숨을 이어주고, 내일로 또 내일로 살아가게 해주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부드러운 대형 목욕 타월, 바람에 흔들리는 레이스 커튼, 베란다에서 펄럭이는 빨래, 나란히 꽂혀 있는 칫솔, 막 구워낸 빵, 달콤한 사과, 방금 내린 커피, 한 송이 튤립, 웃는 얼굴의 가족 사진, 기분 좋은 음악.

그 모든 것을 어쩌면 돈으로 사들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거기에 담겨 있는 행복은 누군가와 함께하지 않고서는 가질 수 없다. 혼자서는 어렵다, 누군가와 공유하지 않고서는, 그런 행복한 한때는. (본문 241)



반응형
그리드형(광고전용)

이 글을 공유하기

댓글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