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세상에서 책과 애니메이션이 사라진다면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잊고 지낸 소중한 기억을 품은 소설


 봄비가 내리는 일에 익숙해질 요즘, 우리는 졸업식과 입학식 풍경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됩니다. 자전거를 타고 길을 가다 보면 한 손 가득히 꽃다발을 든 중∙고등학생의 모습이 종종 볼 수 있었죠. 그 모습을 보다가 문득 얼떨떨한 기분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제 모습이 떠올라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습니다.


 졸업식 때 찍은 사진은 두고두고 추억이 된다고 합니다. 사진은 우리가 그때의 기억을 손쉽게 떠올릴 수 있도록 해줍니다. 만약 세상에서 사진이 사라진다면, 우리는 어떻게 그때 그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게 될까요? 어쩌면 우리는 다시 일기를 적을지도 모르고, 사진 대신 그림을 그릴지도 몰라요.


 사진 덕분에 우리는 소중한 기억을 간직할 수 있습니다. 사진 한 장을 통해서 잊어버린 소중한 기억을 떠올리고, 잊어서는 안 될 마음을 떠올리기도 합니다. 저는 '기억이라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임시 저장을 해두는 저장 매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사진 이외에도 우리의 추억이 담긴 물건이 많겠죠?


 여러분은 어떤 것을 보면 소중한 기억이 떠오르시나요? 전화……? 영화……? 시계……? 고양이……?


 방금 제가 한 말을 통해서 어떤 책을 떠올리신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언급한 전화, 영화, 시계, 고양이는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의 주인공이 하루 더 사는 대신 세상에서 없애버린 것들이거든요.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은 영화로도 만들어진 무척 감동적인 소설입니다.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의 주인공인 나, 사토 타케루는 자전거 사고로 찾아간 병원에서 시한부 선고를 받습니다. 이때 그의 나이는 고작 서른 살에 불과했습니다. 그는 슬픔이 가슴에 사무쳐 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할 수 없는 절망에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잠시 후 주인공이 눈을 뜨니 주인공 앞에는 그와 똑같은 모습을 인물이 있었습니다. 주인공은 '도플갱어인가?'하고 의심했는데, 낯선 인물은 상상도 못 했던 자기소개를 했습니다. 자신과 똑같이 생긴 인물은 "나는 악마예요!"라며 쾌활하게 대답했던 것이죠. 그 악마는 주인공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합니다.


 "이 세상에서 뭐든 한 가지만 없앤다. 그 대신 당신은 하루치 생명을 얻는 겁니다."


 언뜻 보면 악마가 한 제안은 굉장히 매력적인 제안으로 보입니다. 이 세상에서 뭐든 한 가지만 없애는 것으로 하루치 생명을 연장할 수 있다면 손해 보는 일이 없는 것처럼 여겨지거든요. 잘 생각해보면 우리 주변에 놓여있지만, 우리가 필요로 하지 않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것들을 하나씩 없애다 보면 오히려 병에 걸리기 전보다 더 오래 살지도 모르니까요.


 주인공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알로하(악마)의 말대로 이난은 몇 만 년에 걸쳐 무수한 잡동사니를 만들어왔다. 뭔가가 사라진다고 해도 아무도 곤란하지 않을 테고, 오히려 세상이 단순해져서 모두 내게 고마워할 게 틀림없다. (본문 27)


 하지만 여기에 한 가지 변수가 있었습니다. 주인공이 무엇을 없애고 싶다고 말하면 악마가 최종적으로 그걸 없앨지 말지 결정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주인공은 처음 초콜릿을 없애려고 했지만, 초콜릿 맛에 반한 악마가 다른 것을 없애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처음 세상에서 사라진 것은 전화였습니다.


 만약 오늘날 우리에게 전화가 사라진다면 어떤 풍경이 그려지게 될까요? 우리는 편하게 연락을 주고받을 수 없게 되어 약속을 잡기도 어렵고, 배달 음식을 시키는 일조차 어려워질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막상 전화가 없어짐으로써 우리는 전화가 뺏어간 여유를 되찾을 수도 있습니다. 바로 이렇게 말이죠.


평일 오전 시간이라 그런지 전차 안은 많은 승객으로 붐볐다. 평소 같으면 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휴대전화를 보고 있을 것이다. 오늘은 달랐다. 모두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거나 창밖의 경치를 바라보는 등 각자의 시간을 자유로이 즐기고 있었다. 기분 탓인지 그 표정이 밝아 보였다. (본문 50)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우리는 전화가 있어서 편리한 점도 있지만, 전화가 있기에 불편한 점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거의 강박증에 가까울 정도로 우리는 수시로 스마트 폰을 만지작거리며 SNS를 봅니다. 스마트폰은 등장한 지 불과 몇 년 만에 인간을 지배해버리게 된 것이죠.


 주인공은 전화가 없어지고 자유로워진 사람들의 표정을 보며 전화를 없애기를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시간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주인공은 헤어진 여자 친구를 만나게 되는데, 그녀와 짧은 시간을 함께 보내다가 그녀와 과거에 보낸 추억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 계기는 바로 '전화'였죠.


세상에서 전화가 사라졌다. 그런데 나는 그로 인해 무엇을 잃었을까?

나의 기억과 인간관계를 맡겨두었던 것이 갑자기 사라져버린 듯 한 불안감에 사로잡힌 건 분명하다.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 불편했다. 시계탑 밑에서 혼자 기다릴 때의 불안감은 상상을 넘어섰다.

전화와 휴대전화의 발명으로 사람들은 길이 엇갈리지 않게 되었고, 만날 약속을 하는 의미를 잃었다. 그러나 연락이 닳지 않는 안타까움, 기다리는 시간의 따뜻한 마음이 그칠 모를 정도로 엄습했던 한기와 함께 내 안에 강력히 남아 있었다.

(본문 78)


 그 사실을 깨달은 앞에 다시 악마가 나타납니다. 악마는 다음으로 없앨 것은 영화라고 주인공에게 말합니다. 주인공은 영화를 없애기 전에 딱 한 편의 영화를 볼 수 있었는데, 그 영화를 헤어진 여자 친구를 다시 만나 보면서 또 소중한 추억을 떠올립니다. 영화를 없애는 순간에는 어머니가 떠올랐죠.


 그의 어머니는 "소중한 것 대부분은 잃어버린 후에야 깨닫는 법이야."라고 자주 말했었습니다. 그는 영화를 잃고 나서 수많은 영화가 얼마나 자신을 지탱해주고 형성해왔는지 깨닫게 됩니다. 악마는 그 앞에서 쾌활하게 웃으며 다음으로 시계를 없앤다고 주인공에게 말합니다.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은 주인공이 이렇게 세상에서 하나씩 없애는 동안 주인공이 없앤 어떤 것에 담긴 소중한 기억을 떠올리는 이야기입니다. 무심코 책을 읽다 보면 주인공이 없앤 것에 '나는 어땠을까?'는 상상을 하게 되고, 그 상상 속에서 잊어버리고 있었던 추억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만약 영화가 없었으면 저는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영화를 보지 못했을 것이고, 소설 <해리포터> 시리즈 또한 읽지 못했을 거예요. 우리 주변에는 아무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무언가가 많지만, 알고 보면 그 무언가에는 우리의 추억이 담겨있을지도 모르는 법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저는 '책과 애니메이션'입니다. 책은 친구가 거의 없던 저에게 유일한 친구이자 제가 바라보는 세계를 넓혀준 소중한 존재입니다. 또, 애니메이션은 웃을 일이 거의 없던 저에게 웃음을 되찾아주고 꿈을 꿀 수 있도록 해준 소중한 존재입니다. 책과 애니메이션은 이렇게 저를 지탱해주고 오늘의 저를 만들어주었습니다.


 만약 책과 애니메이션을 없애버리게 된다면, 저는 세상에서 소중한 기억을 떠올릴 수 있는 모든 걸 잃어버린 게 될 거에요. 오늘처럼 매일 아침 피아노 연습을 하는 저도 없었을 것이고, 오늘 이렇게 여러분께 소개할 글을 쓰는 저도 없었을 테죠. 여러분께 있어 소중한 기억이 담긴 무언가는 무엇인가요?


 책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을 통해, 혹은 이 글을 통해 바쁜 삶 탓에 잠시 잊고 지낸 소중한 기억을 꺼내실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사랑하는 사람이나 혹은 사랑했던 사람, 혹은 사랑했던 책, 혹은 음악 그 어떤 것이라도 말이죠. 잠시 잊은 소중한 기억을 떠오르셨다면, 이 글은 충분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책과 애니메이션을 사랑하는 블로거 노지를 응원하는 방법 [링크]


* 이 글은 팟캐스토로 들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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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3)

  • 2017.03.05 15:29 신고

    세상에서 책이 사라진다는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하네요... ㅠㅠ 전 책으로 정신장애, 정신이상을 어느정도 극복해 냈는데 책이 없어지면 이전의 삶으로 되돌아가게 될까봐... ㅠㅠ

    • 2017.03.05 23:31 신고

      저도 마찬가지랍니다... 책은 정말 소중한 존재죠!!

  • 2017.03.06 12:22 신고

    흠....저는 책과 음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힘들었던 어린 시절을 음악을 통해 극복해내고 최근들어서는 독서를 통하여 또 새로운 삶을 열고 살게 되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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