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일본 문학을 즐겨 읽게 되었을까
- 문화/독서와 기록
- 2017. 5. 13. 07:30
책을 읽는 데에 이유는 필요하지 않다. 그냥 자연스럽게 읽을 뿐이다.
책을 읽다 보면 사람의 습관이라는 게 참 무섭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제법 다양한 장르의 책을 골고루 읽는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돌아보면 항상 내 손에는 일본 작가의 책이 손에 쥐어져 있다. 가벼운 재미로 읽는 라이트 노벨이 아니라 평범한 추리 소설, 에세이, 공부방법 등 모든 분야에서 그렇다.
아직 중학교에 들어가지 않았을 때부터 재미있게 읽은 소설은 <해리포터>와 <셜록홈즈>라는 외국 판타지 추리 소설이었다. 중학교에 들어가 힘들게 시간을 보낼 때는 <연탄길>이라는 책을 읽으며 스스로 위로했었다. 처음에는 그렇게 다양한 번역서와 교과서를 통해 알게 된 한국 문학을 읽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나는 일본 소설과 에세이 등 일본 문학을 주로 읽게 되었다. 솔직히 어쩌다 내가 일본 소설을 자주 읽게 되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머릿속에 분명히 떠오르는 일본 작가는 이사카 코타로다. 이사카 코타로의 <사신 치바>와 <마왕>은 그동안 접한 한국 문학과 다른 재미가 있었다.
아마 한국 작품에 점점 흥미를 잃어버린 까닭은 시험 공부를 하면서 '암기'가 목적이 되어버린 탓이 아닐까 싶다. 종종 마음에 드는 작품은 문학 교과서에서 따로 표시를 해두고, 책을 구매해서 읽거나 학교 도서관에서 읽은 적은 있다. 하지만 점점 나는 이상하게 한국 문학과 점점 먼 길을 걸어가게 되었다.
라이트 노벨을 즐겨 읽으면서 평소 관심을 둔 일본 작가 이사카 코타로의 <사막>, <명랑한 갱이 지구를 돌린다> 등의 작품을 읽은 탓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판단하기에 이상할 정도로 일본 문학 작품이 책장에 많이 꽂혀 있다. 블로그를 통한 서평단 활동이 아니었으면 좀처럼 다른 책을 읽지 못했을 거다.
한국 문학 작품을 읽으면서 재미없다고 생각한 적은 별로 없다. 장강명 작기의 <한국이 싫어서>를 비롯해서 <표백>, <댓글부대>를 무척 재미있게 읽었고, 김훈의 <라면을 끓이며>이라는 에세이를 비롯하여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책을 찾아 읽었다. 그런데도 내 주변에는 일본 작품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참 묘했다. 지나치게 나의 책 취향이 한쪽으로 치우쳤다고 생각해, 나는 조금 더 다양한 장르의 책을 읽기 위해서 노력했다. <강신주의 감정수업>을 비롯하여 때때로 유명해진 인문학 도서를 찾아 읽기도 했고, 매해 인터넷 서점에서 선정하는 올해의 책 중에서 흥미가 생기는 책을 찾아 읽기도 했다.
그 과정을 통해서 재미있는 책도 만났고, 유익한 책도 만났지만, 솔직히 재미없는 책도 적지 않게 만났다. 지금 내 책장에 꽂힌 많은 책 중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질리지 않고 읽은 책은 대부분 일본 도서가 많다. 지금도 5월에 읽으려고 구매한 책 세 권 모두가 일본 작가의 책이라는 게 신기하다.
한 권은 애니메이션 <빙과>를 만난 이후 원작 소설을 통해 읽게 된 요네자와 호노부 작가의 <가을철 한정 구리킨톤 사건>이고, 또 다른 한 권은 <만약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의 기획자가 집필한 <억남>이라는 소설이고, 또 다른 한 권은 <90일 완성 돈 버는 평생 습관>이라는 일본 경제서다.
절대 의도하고 책을 구매한 게 아님에도 자연스럽게 일본 작가의 책이 쌓였다. 내가 이렇게 일본 문학을 즐겨 읽게 된 이유는 역시 일본 애니메이션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한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통해 본 감정적인 이야기는 일본 소설에서도 그대로 묻어났다. 매번 눈이 가는 책도 일본 소설이 많았다.
한국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책이 생산되고, 많은 책이 독자들의 선택을 받은 일본 도서 시장은 해외로 번역되어 판매되는 작품도 많았다. 게다가 일본 도서는 라이트 노벨과 일반 소설 장르를 가리지 않고,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지거나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해서 책에 손을 대는 일이 무척 쉬웠다.
위 사진에서 볼 수 있는 이사카 코타로의 소설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 로커>, <골든 슬럼버> 두 작품은 영화로 만들어진 대표적인 작품이고, <만약 고교야구 여자 매니저가 피터 드러커를 읽는다면>은 일본에서 애니메이션과 드라마로 만들어지기도 한 작품이다. 모두 내가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나는 대학에서 일본어를 전공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일본 문화를 접할 일도 많은 데다가 기존 라이트 노벨과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경향도 짙어 점점 일본 문학이 더 손에 타게 된 듯하다. 무엇보다 일본 문학이 한국 도서 시장 내에서도 상위권에 자주 오르며 눈에 들어오는 일이 많기도 하고.
이렇게 한쪽으로 편중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나는 일부러 한국 문학 작품을 읽으려고 하기도 한다. 현재는 문학동네에서 발매한 2017년 제8회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을 읽고 있다. 이 책에서 읽는 한국 젊은 작가의 이야기는 확실히 한국 사회의 모습이 담겨져 있다는 느낌이다.
빨리 읽고 싶은 요네자와 호노부 <가을헐 한정 구리칸톤 사건> 소설과 다른 느낌이지만, 한국 사회와 정서를 엿볼 수 있는 한국 문학 또한 무척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누군가 나에게 '당신은 어떤 소설을 쓰고 싶은가?'라고 묻는다면, 역시 내가 쓰고 싶은 소설은 한국보다 일본 문학을 닮지 않을까 싶다.
대학에서 일본 문학의 특징을 공부하면서 일본 문학이 서정적이고, 소박하면서도 사람의 감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실제로 내가 읽은 일본 소설 대다수가 그랬고, 올해 극장을 찾아가 본 <너의이름은>과 <목소리의 형태> 두 애니메이션 또한 그랬다. 어디에나 그 특징이 담겨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일본 라이트 노벨, 애니메이션, 만화를 넘어 일본 문학 전체를 즐겨서 읽는 게 아닌가 싶다. 한국 문학도 절대 그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재미있게 읽지만, 역시 늘 손에 두는 것은 자연스럽게 일본 소설인 것 같다. 역시 어릴 때 힘이 되어준 일본 애니메이션의 영향은 무시할 수 없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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