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적 정치, 각자도생 정치를 알기 위한 책
- 문화/독서와 기록
- 2017. 5. 11. 07:30
'서민적 정치' 19대 대선이 끝난 지금 우리가 읽어야 할 책, 우리가 몰랐던 정치를 제대로 알기 위한 책
지난 5월 10일 문재인 대통령 후보는 정식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되었다. 사상 초유의 현직 대통령 파면으로 치러진 이번 조기 대선은 이미 시작부터 문재인 후보의 승리가 예상되었다. 하지만 5인 구도로 진행된 선거의 특성상 표가 나누어지면 마지막까지 어떤 결과가 나올지 쉽게 안심할 수 없었다.
아마 많은 사람이 불안과 초조함이 뒤섞인 감정으로 10일 개표 방송을 손꼽아 기다렸을 것이다. 빠른 19대 대통령 선거는 단순히 정치의 연장이 아니라 우리 시민의 힘으로 만들어낸 선거였다. 너무나 잘못된 정치를 바로 잡고, 상식이 무너진 세상에서 상식을 바로 세우기 위한 선거였던 거다.
다행히 우리의 작은 불안과 달리 19대 대통령 선거는 예상보다 일찍 문재인 후보의 승리로 끝이 났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였지만, 마지막까지 쉽게 안심할 수 없었던 터라 9일 개표 방송을 보다가 잠들고 깨어난 10일 아침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야 제대로 단추가 맞춰진 느낌이다. (웃음)
19대 대통령 선거는 선거 자체에도 큰 의미가 있지만, 무엇보다 그동안 정치에 무관심하다고 비판 받은 20대를 비롯하여 정치와 사회 문제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는 시민층이 늘어났다는 점에 있다. 이번 19대 대통령 선거에서도 세대 격차가 전과 비교해서 그나마 줄어든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 안도하기에는 이르다. 우리는 앞으로 계속해서 정치와 사회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주장할 필요가 있다. 정치라는 것은 우리가 관심을 멀리하게 되면, 다시 도루묵이 되어 산으로 향하게 된다. 우리가 지지한 정당과 대통령이 잘해낼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정치를 좀 더 제대로 알 필요가 있다. 인터넷 뉴스를 통해서 아찔한 노출이라는 문구가 적힌 기사를 읽는 게 아니라 정치와 사회 카테고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또한, 책을 읽으면서 기사를 보는 안목 또한 기를 필요가 있다. 오늘 나는 그 과정을 위해 책 한 권을 소개하고자 한다.
바로, 위 사진에서 볼 수 있는 <서민적 정치>라는 제목의 책이다. 아마 '서민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사람이 제법 있을 것이다. 그는 기생충 학자로 유명하고, <서민적 글쓰기>를 통해서 글쓰기를 말하기도 했다. 얼마 전에는 JTBC 장수 프로그램 <김제동의 톡 투유>에 출연하기도 한 스타 교수다(?).
서민 교수는 늘 모든 현안을 무겁게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가볍고 재미있게 이야기한다. 비록 그의 글이 가벼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절대 그 내용이 가볍지만은 않다. 우리가 진정으로 보아야 할 점을 명확히 이야기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쉽게 문제의 핵심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이번 책도 그랬다.
<서민적 정치>의 들어가는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P는 자신이 아무것도 모르는 일자무식임을 감추고자 했다. 최순실을 가까이하고 책을 멀리했으며, 되도록 말을 하지 않으려고 애썼던 것이다. 어쩌다 말을 할 기회가 있으면 "참 나쁜 사람", "대전은요?" 같은 한두 단어만 던졌고, 누가 질문만 하면 쌩하고 도망쳤다. 손석희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MBC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손석희의 시선 집중>에서 손 아나운서가 추가 질문을 하자 "지금 저하고 싸움하시는 거예요?"라고 답한 사건은 유명한 일화다. 그 결과 P는 지금도 정치에 문맹이다. 짐작하다시피 P는 박근혜, 이런 분이 대통령이 됐으니 자신에게는 물론이고 국민에게도 불행이었다. (본문 6)
여기서 덧붙일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간단명료하게 박근혜 전 대통령 한 사람을 완벽하게 정리했다. <서민적 정치>는 서민 교수의 이러한 특색있는 글 스타일로 지난 19대 대선이 있기 전까지의 상황과 함께 우리 정치 사회가 겪는 문제를 냉정하게 진단하고 있다. 아래에서 한 개의 글을 더 읽어보자.
우리 사회는 진보적인 의견에 대해서만 편향이란 딱지를 붙이는 경향이 있다. 이 세상에 편향되지 않은 사람은 없다. 세월호 참사에 대해 침묵하는 것 역시 또 다른 편향이다. 꼭 세월호 참사가 아니더라도 선생님이 사회 문제에 대해 아이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토론 시간이 정규 과목으로 편성되어 아이들과 사회적 이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더 좋겠지만, 그게 어렵다면 선생님의 생각을 듣는 것도 나름의 의미는 있다. 수업이 끝난 뒤 아이들끼리 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가치관을 키울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아이들이 게임이나 연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괜찮고, 사회적 이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나쁜가? 18세 선거권이 논의되는 마당에, 학부모가 사회와 격리된 순진무구한 학생을 원하는 것은 모순이다. (본문 16)
이미 끝나버린 19대 대선 때에도 색깔론은 어김없이 등장했다. 주적 논란부터 시작해서 끊임없이 북한을 끌고 들어와 보수와 진보의 프레임을 나누고, 정치 현안과 동떨어진 이야기를 하면서 토론 주제를 산으로 끌고 가는 게 부지기수였다. 우리 한국의 정치는 아직도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 거다.
지난 촛불 집회에서는 "이게 나라냐!?"라고 외치는 청소년들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청소년들은 우리가 마냥 어린아이로 취급할 대상이 아니다. 청소년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처럼, 그들은 이미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판단 가능한 힘을 가지고 있다. 청소년은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 가결이 있고 나서 한 고등학교에서 박사모 회원인 듯한 교장 선생님이 종업식 때 아이들을 앉혀 놓고 탄핵 소추가 부당하다며 일방적인 주장을 편 적이 있다. 학교의 청소년들은 그것을 가만히 듣고 있지 않았다. 청소년들은 교장 선생님을 향해 자신의 의견을 분명하게 말했다.
중2병을 겪는 중학교 시절을 지나면, 청소년들은 이미 자신만의 뚜렷한 가치 기준을 가지고 있다. 그저 어른들이 어리다며 아이들의 의사를 존중하지 않고, 아이들과 같은 선에서 소통하려 하지 않을 뿐이다. 정치는 오늘을 위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미래의 우리 아이들을 위한 것임을 잊어선 안 된다.
서민 교수는 서민적 정치의 출발점은 "타인과 의견을 나누고, 책을 읽으며 세상과 사람에 대해 생각할 때 시작한다."고 말한다. JTBC에서 19대 대통령 대선 개표 당일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시민들이 바라는 대통령 상으로 '미국의 버라 오바마 같은 소통하는 대통령'이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었다.
지난 이명박 정부를 통해서 한국은 부분적 언론 자유국가로 추락했으며, 박근혜 정부에 들어서는 '소통이라는 단어가 자취를 감춰버렸다. 심지어 블랙리스트를 통해서 현 정부를 비판한 문화인들을 배제하고, 틀에 짜 맞춰진 기자회견을 통해 망신을 사기도 했다. 그야말로 불통의 극치였다.
이러한 박근혜 정부의 불통과 무능한 모습은 여러 사회 문제 대처 능력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는데, <서민적 정치>에서 서민 교수는 이를 이렇게 정리한다.
지난 대선에서 우리 국민들은 위기관리보다 자기관리를 더 중시하는 대통령을 뽑았다. 자지관리가 뛰어난 대통령을 보는 일은 무척 즐겁지만, 이것 한 가지는 명심하자. 박근혜 정부는 우리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주지 못했다. 세월호 참사 때도 메르스 사태 때도 정부의 대처는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안전은 스스로 지킨다는 각오로 버텨야 했다. 각자도생은 트렌드가 아니라 일상이었다. 살아남는 것보다 더 중요한 개는 없으니 말이다.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 이후 세월호 참사는 다시금 조명되기 시작했다. 이제야 세월호 침몰 원인과 사건 당일 7시간 동안 대통령의 행적에 대한 진상을 밝히라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메르스 사태는 시간이 가면서 사그라들었지만, 세월호 참사는 벌써 3년을 넘기고 있다. 정부는 이미 우리를 혼자서도 생존할 수 있는 강인한 인간으로 만들어 줬다. 국가에 바라는 것 없이 모든 일을 제힘으로 알아서 해결하는 인간형. 결국 사람들은 이제 국가에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다. 덕분에 경기 불황으로 삶의 수준이 밑바닥까지 떨어졌어도 국가에 의존하지 않고, 심지어 큰 재난이 났을 때 국가가 나를 구해줄 것이라는 기대를 버린 지 오래다. (본문 54)
각자도생. 각자 살길은 각자가 찾아야 한다는 이 말은 지난 박근혜 정부 시절 우리가 뼈에 사무치도록 깨달은 사실이었다. 국가적 재난 앞에 정부는 무능했으며, 책임지는 모습과 진심으로 고개를 숙이는 모습도 볼 수 없었다. 오히려 반발하는 시민을 향해 이념 프레임을 붙이며 몰아세우기 바빴다.
19대 대선을 앞두고 대통령 권한 대행 황교안 총리가 세월호 당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기록을 대통령 기록물로 봉인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로 인해 우리가 그토록 요구한 세월호 7시간 행적의 비밀은 30년 동안 미제로 남게 되었다. 상황이 이 지경이니 '이게 나라냐?'는 말이 나오는 건 당연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는 노래 가사처럼, 진실을 포기하지 않은 덕분에 대통령의 파면을 이끌어냈다. 19대 대선을 앞당겨 우리는 새로운 정치의 출발선에 설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정치다.
<서민적 정치>는 이렇게 우리의 정치 현황을 하나하나 자세히 정리한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게 읽은 글은 바로 아래의 글이다.
2007년을 떠올려 보자. 노무현 전 대통령의 5년은 즐거움보다 아쉬움이 많았다. 무엇보다 진보진영의 기대를 충족시켜 주지 못했는데, 그에 실망한 유권자들이 등을 돌렸고 결국 노무현 전 대통령은 한나라당 후보였던 이명박 후보에게 정권을 내주고 만다. 그것도 사상 최대인 530만표 차이로 말이다. 당시 나는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했다. 이명박 정권이 봉하마을로 내려간 전임 대통령을 핍박해서 죽일 만큼 잔인하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노무현 정부가 실패했다는 데 어느 정도 동의했기 떄문이다. 즉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심판을 이끈 이는 그에게 실망한 진보진영 유권자들이었다. 그런데 실패 차원이 아니라 나라를 나락으로 끌어내린 이명박 정부가 박근혜 정부에 무난히 정권을 넘겨주다니, 좀 너무한 게 아닐까. 왜 진보는 나름의 심판을 하는데, 보수 쪽 유권자들은 그러지 않을까?
돌이켜 보면 보수진영은 원래부터 제대로 된 심판을 할 마음이 없었다. 그들은 자기네 권력자가 아무리 잘못하 게 많아도 자기편에 대한 신임을 거두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로 인해 국가의 총체적 무능이 드러났어도 그로부터 두 달이 채 안 돼 열린 지방 선거가 여당의 압승으로 끝난 것이 대표적인 예다. (본문 154)
이 짧은 글은 오늘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19대 대통령 선거에서도 자칭 보수를 말하는 사람들의 지지는 변하지 않았다. 약 24%에 달하는 지지 세력은 늘 푸른 소나무처럼 한결같았으며, TK 지역의 충성도는 그 지역 출신 사람들이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 수가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특히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성주에서도 압도적으로 사드 배치를 주장한 후보에게 표가 쏠렸으니 할 말 다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 모습을 비꼬아 '사드 배치 철회는 문재인에게 요구하고, 표는 홍준표에게 주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참, 한국의 이런 모습은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다.
이 이외에도 <서민적 정치>에서 한 가지 더 소개하고 싶은 글은 아래의 글이다.
<내 깡패 같은 애인>이란 영화가 있다. 지방대라는 이유로 취업을 못하는 세진(정유미)이 조폭인 동철(박중훈)과 사귀면서 용기를 얻는 내용인데, … 이 영화는 상영 종료 후 오히려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명작'이 됐다. 오래 간직하고 싶은 장면이 많아서인데, 두 개만 예를 들어보자. 세진은 숱하게 면접을 보지만, 그녀가 지방대 출신이라는 시실에 이미 X표를 친 면접관들은 '춤을 춰 보라'는 식으로 그녀를 조롱하기만 할 뿐, 진지한 질문은 하지 않는다. 영화 마지막 장면, 세진은 동철의 도움으로 한 회사에서 면접을 본다. 면접관의 어떤 질문에도 능숙하게 답변하는 세진을 보며 면접관을 고개를 갸웃거린다. 학점도 좋고 자격도 충분한데 왜 다른 면접에서 번번이 떨어졌느냐고 묻는 면접관에게 세진은 이렇게 답한다. "지금까지는 아무도 이런 것을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이게 가슴을 찡하게 대사라면, 동철이 세진을 위로하는 다음 대사는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든다.
"우리나라 백수들은 참 착해요. 텔레비전에서 보니까 프랑스 백수들은 일자리를 달라고 다 때려 부수고 개지랄을 떨던데, 우리나라 백수들은 다 지 탓인 줄 알아요. 정부가 잘못해서 그런 건데. 야, 너 취직 안 된다고 욕하고 그러지 마. 니 탓 아니니까 당당하게 살아. 힘내."
실제로 그럴까? 2010년 프랑스 사르코지 정부는 퇴직 연령을 60세에서 62세로 연장했다. 그리고 65세부터 받기 시작하는 연금의 수령 연령을 67세로 높였다. 이에 수많은 이들이 거리로 나서서 사르코지를 규탄했다. 그중에는 일자리가 줄어들 것을 걱정한 대학생과 고교생도 있었다. 한 고교생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람들은 67세에 은퇴하길 원하지 않아요. 그렇게 되면 공부만 오래하고 일자리 찾기는 어려워질 겁니다." 2016년에는 노동법 개정에 반대하는 시위가 프랑스 전역을 뒤덮었는데, 이에 관한 기사 일부를 보자.
해고 요건 완화, 초과 근무 연장 등을 담ㅇ느 노동법 개정에 반대하는 시위가 9일 프랑스 전역에서 거세게 일어났다. 고등학생들도 시위에 동참하면서 100곳의 학교가 수업을 중단해야 했다. …… (중략) 올해 18살인 고등학생 알빈드는 "법안은 완전히 기만적"이라며 "우리는 내일의 노동자이며, 이 법안은 노동자를 돕는 것이 아니라 부자들에게 혜택을 주고 있다"라고 밝혔다.
고교생이 일자리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사 표현을 하는 프랑스와 달리 우리나라는 취업을 목전에 둔 대학생도 거리로 나서지 않는다. 왜 일까? 취업은 내가 못난 탓이지, 국가 탓이 아니라고 생각해서다. (본문 195)
솔직히 옮기는 게 쉽지 않은 긴 글이지만, 이 글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무척 크다고 생각했다. 대학 캠퍼스 내에서 오늘 이 글을 쓰면서 주변을 둘러보면, 한가롭게 대화를 나누는 캠퍼스 커플이나 스마트폰을 뚫을 기세로 레이저 눈빛을 쏘는 학생, 책상에 앉아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을 볼 수 있다.
글을 쓰는 나를 포함해 대학 캠퍼스에 있는 모두가 얼마 지나지 않아 취업 전선에 뛰어들 것이다. 하지만 과연 우리가 취업 전선에 뛰어드는 그 날은 우리에게 행복한 날일까? 취업 전선에 뛰어드는 순간부터 우리는 한가롭게 대화를 나누지 못하고, 스마트폰을 잠시라도 쳐다보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19대 대선에서도 청년 일자리 문제는 큰 사안으로 다루어졌고, 어떤 후보는 노동의 유연성을 위해서 해고를 쉽게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흔히 말하는 '개소리'를 하기도 했다. 노동이 당당한 나라를 꿈꾼 심상정 후보의 지지는 낮았지만, 프랑스와 독일 같은 모델을 꿈꾼 가장 선진적인 후보였다.
하지만 한국에서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는 일은 아직 힘들 것 같다. 나의 친척 중에서도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어 최저임금을 올리면 나라가 망한다.'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 그만큼 한국은 노동 가치에 있어 평가절하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불공정 거래를 잡는 일이 불가능하다고 여긴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까지고 우리 자신의 능력을 탓하고, 실패를 반복하는 사이에 돌이킬 수 없는 길을 선택하기도 한다. '억울하면 명문대를 가고, 좋은 스펙을 얻고, 그래도 안 되면 공무원 시험공부나 해!' 논리가 공식이 되어버린 한국 사회. 이를 가리켜 우리는 헬 조선이라는 이름을 붙여 부르고 있다.
<서민적 정치> 책 한 권을 소개하는 데에 이 정도로 글이 길어질 것이라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짧은 글이 좋은 글이라고 하지만, 나는 아직 글을 짧게 쓰는 능력이 부족한 것 같다. 이번 19대 대선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나 많았다. 따로 하기에는 어울리지 않아 이렇게 길게 글을 써버리고 말았다.
<서민적 정치>는 정치에 대해 잘 알지 못한 독자가 읽기에 무척 좋은 책이다. 우리 정치의 현재를 진단하는 동시에 우리 정치가 가진 과제를 똑바로 알 수 있도록 해주었다. 특히 19대 대선을 통해서 앞으로 몇 번이나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내릴 과제와 정책에 대해 고민도 해볼 수 있었다.
우리가 지금 당장은 19대 대선과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 사건으로 정치에 관심을 두고 있지만, 시간이 흐르면 또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다. <서민적 정치>는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딱 지금 읽기 좋은 책이다. 이 책이 꾸준히 우리 정치에 적극적인 관심을 두는 시민이 되는 데에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플라톤의 이 말을 남기고 싶다.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당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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