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과 강철의 숲, 한폭의 그림이 된 피아노 조율
- 문화/독서와 기록
- 2016. 12. 30. 07:30
내가 쓰는 글과 내가 연주하는 피아노 음은 그림으로 그릴 수 있을까
일본에서 교류 일정을 보내는 중에 나는 <양과 강철의 숲>이라는 책을 읽었다. 이 책은 2016년 일본 서점대상 1위, 2016년 일본 상반기 소설 베스트셀러 1위, 2016년 일본 상반기 오리콘차트 소설 분야 1위를 기록한 굉장한 책이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책의 소재는 피아노 조율이다. 피아니스트가 무대 위에서 화려하게 빛나는 주인공이라면, 피아노 조율은 그 주인공의 빛이 더욱 반짝일 수 있도록 해주는 또 다른 주인공이다. <양과 강철의 숲>을 읽으면서 '이렇게 색을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구나!'라며 놀랐고, 저자의 문장에 깊이 매료되었다.
책에서 '하라 다미키'라는 일본이 시인이자 소설가의 이름을 통해 그가 추구한 '밝고 조용하고 맑고 그리운 문체, 조금은 응석을 부리는 것 같으면서도 엄격하고 깊은 것을 담고 있는 문체. 꿈처럼 아름답지만, 현실처럼 분명한 문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 책이 추구한 문체는 바로 그런 문체였다.
아래에서 책의 한 장면을 소개하고 싶다. 이 장면은 한 청년으로부터 피아노 조율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피아노를 조율한 이후 청년이 연주한 곡을 듣는 장면이다.
위아래로 쥐색 트레이닝복을 입고, 머리는 자다가 일어난 모양새를 하고, 커다란 몸을 구부정하게 기울이고 연주했다. 속도가 너무 느려서 몰랐는데 쇼팽의 <강아지 왈츠>였다.
노래는 한동안 형상을 이루지 못했다. 그런데 차츰 강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조율 도구를 정리하던 나는 놀라서 청년의 뒷모습을 보았다. 커다란 개다. 쇼팽의 강아지는 몰티즈 정도의 작은 개였을 텐데 이 청년의 강아지는 이를테면 아키타나 래브라도 레트리버처럼 몸집이 크고 조금 어수룩한 강아지다. 속도는 느리고 소리 하나하나가 모이지 않았지만 청년이 어린아이처럼 혹은 강이지처럼 잔뜩 신이 나서 연주하고 있다는 감각이 전해졌다. 때때로 건반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뭔가 흥얼거리는 것처럼도 보였다.
이런 강아지도 있다. 이런 피아노도 있다. (본문 165)
양과 강철의 숲, ⓒ노지
책을 읽으면 문득 그림이 그려지는 위와 같은 문체는 일본에서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에도 책을 손에서 쉽사리 놓지 못하게 했다. 책을 읽을수록 문장의 그리는 풍경에 빠져들었고, 주인공 도무라가 한눈에 반한 아티도리의 조율을 넘어서 자신만의 조율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굉장히 인상 깊게 읽었다.
나 또한 피아노를 배우면서 음의 색을 상상해보는 일은 해본 적이 있다. 오래 전부터 내가 '다음에 기회가 되면 꼭 피아노를 배워야지.'라고 생각만 하다가 피아노 레슨학원에 등록하도록 한 건 <4월은 너의 거짓말>이라는 애니메이션이다. <4월은 너의 거짓말>은 피아노를 통해 감정의 색을 정말 잘 표현했었다.
그 이미지에 반한 나는 피아노를 당장 배우기 위해서 레슨을 시작했고, 나는 무작정 악보를 참고해서 피아노 연주를 하기보다 조금이라도 더 이미지를 그리려고 애쓰고 있다. 이미지를 그리는 일은 기술이 필요한 일이라 솔직히 잘 안 되지만, 그러한 분명한 비전이 있기에 나는 2년째 계속 연습을 하고 있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그냥 어떤 목적으로 글을 쓰기보다 책을 읽으면서 떠오른 내면의 풍경을, 평소 어떤 문제에 대해 생각하면서 그린 내면의 풍경을 옮기기 위해서 글을 쓰고자 한다. 비록 감정이 다채롭지 않아 잘되지 않지만, 그래도 조금은 더 나은 표현을 위해 스스로 조율을 해가고 있다.
책을 읽어보면 이런 장면을 만난다.
가즈네는 무언가를 꾹 참고 피아노를 치지 않는다. 노력한다는 생각도 없이 노력하고 있기에 의미가 있다. 노력한다고 생각하면서 하는 노력은 보상을 받으려는 마음이 있어서 소심학게 끝난다. 자기 머리로 생각하고 있는 범위 안에서 노력하고 그 대가를 회수하려고 하다 보니 그저 노력에 그치고 만다. 하지만 그 노력을 노력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서 하게 되면 사상을 뛰어넘는 가능성이 펼쳐진다.
가즈네는 부러울 만큼 고결한 정신으로 피아노를 마주한다. 피아노를 마주하는 동시에 이 세상과 마주한다. (본문 220)
이런 가즈네를 바라보면서 피아니스트가 되기로 한 가즈네의 피아노를 위해서 주인공 도무라는 조율을 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그의 조율은 소리가 맑게 변하면서 굉장히 좋아지는데, 이후 그는 다양한 사람의 피아노 조율을 하면서 다시 한번 가즈네가 연주할 피아노를 조율하며 크게 성장한다.
책을 읽으며 '나는 어떻게 성장해가고 있을까? 오늘, 내가 쓰는 글에서 내가 추구하는 이미지는 무엇일까?' 하고 곰곰이 생각도 해보았다. 아직 나에겐 자연스럽게 이미지를 상상해볼 수 있도록 하는 문체는 어렵다. 책 <양과 강철의 숲>을 읽으며 글에 색을 입히는 풍경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또한, 주인공 이야기만 아니라 그에게 강렬한 인상을 준 쌍둥이 고등학생 소녀 유니와 가즈네의 모습 또한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가즈네의 "피아노로 먹고살 생각은 없어. 피아노와 함께 살아갈 거야."라는 말은 읽자마자 무릎을 탁 내리쳤다. 피아노를 좋아하는 걸 더 어떻게 확실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책을 읽으면 "재능이란 무지막지하게 좋아하는 감정이 아닐까? 무슨 일이 있어도 그 대상에서 떨어지지 않은 집념이나 투지나, 그 비슷한 무언가. 나는 그렇게 생각해."라는 말을 만난다. 나에게 있어 종종 재능이 있다고 말하는 글쓰기. 일본에서 오늘도 글을 쓰는 난 확실히 재능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 (웃음)
<양과 강철의 숲>은 산골 마을에서 자란 주인공 도무라가 내면에 그렸던 이미지를 피아노의 음을 통해서 떠올리고, 최종적으로 자신이 직접 조율한 피아노를 통해서 완성 단계에 이르는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피아노 음과 함께 한 <양과 강철의 숲>. 꼭 한 번 읽어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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