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개의 학원을 다니며 나를 포기한 8살 소녀
- 시사/학교와 교육
- 2016. 10. 14. 07:30
우리 아이가 살기 위해서 공부는 아이 자신의 삶보다 더 중요한가요?
내가 다니는 대학교는 이제 슬슬 중간고사 기간으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중간고사가 다가온다는 발표가 있기 전부터 많은 학생이 시험 범위와 공부방식에 대한 질문을 교수님께 던지는 모습을 너무나 쉽게 볼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대학에서는 성적이 좋지 않으면 장학금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장학금을 받아서 조금 더 등록금에 대한 부담을 덜고 대학에 다니기 위해서는 장학금이 필수다. 정치인이 대학생들을 위해 약속한 반값등록금은 실천되지 못했고, 학자금 대출을 갚지 못해서 고생하는 선배의 이야기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에 대학생들은 초조할 수밖에 없다.
특히 학점을 빠르게 채우고, 조기졸업과 함께 취업을 할 수 있으면 금상첨화다. 요즘에는 지방대학교만 아니라 서울에 있는 이름 있는 대학도 비슷한 상황이다. 옛날에는 그저 서울의 알아주는 하늘 대학교에 들어가면 충분했지만, 이제는 공부는 끊임없이 반복하면서 결과를 위해 나를 포기해야 한다.
나의 삶을 포기하는 모습은 대학에서만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이미 그런 삶은 유치원때부터 시작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미 초등학교에 들어오면 아이들은 눈에서 빛을 잃어버린다. 그냥 공부하는 기계가 되어버린 아이들은 사는 낙이 오로지 결과를 만들어내어 약간의 휴식을 취하는 것이 전부다.
얼마 전에 페이스북을 통해서 11개의 학원에 다니는 8살 한 소녀의 이야기를 우연히 읽었다. 페이스북 링크 공유된 기사를 읽어보면서 이미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임에도 가슴이 답답해지고, 소녀의 모습을 보면서 눈물이 맺히는 듯했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나를 포기한 소녀의 모습은 안타까웠다.
공유된 영상을 보면 8살의 소녀는 엄마에게 "그럼 나는 언제 놀아?"라고 물어보지만, 엄마는 무심하게 "못 놀 수도 있겠네."라며 차갑게 대답한다. 영상을 보면서 '너무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사를 끝까지 읽어보면, 8살 소녀의 엄마 또한 어릴 때부터 비슷한 상황에서 교육을 받았다고 말한다.
나는 책을 통해서 읽은 '사랑받는 적이 없는 사람이 부모가 되면, 역시 사랑을 주지 못한다'는 말이 여기서 떠올랐다. 열심히 입혀주고, 먹여주고, 공부를 시켜준 것이 사랑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사람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그게 전부가 아니다. 사람에게 진짜 중요한 것은 '나로 살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보면 어디에도 나로 살아가는 모습은 쉽게 찾을 수 없다. 그저 부모님이 어릴 때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말한 기준을 채우기 위해서 공부하는 기계로 살아가고, 대학에 들어가서는 모두가 하나같이 말하는 공무원이나 취업을 하기 위해서 다시 공부에 집착한다.
나는 이런 모습이 무척 안타깝다. 우리의 삶에서 공부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의 삶에서 공부가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다. 뭐, 아직 대학교에 다니면서 공부를 하는 학생이 이런 말을 한다는 게 우스운 이야기이지만, 나는 공부에 집착하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배우는 걸 즐기고 있다.
대학에서 나는 중간고사를 앞두고 있지만, 하루 24시간을 악착같이 공부하는 데에 사용하지 않는다. 아침에는 늘 똑같이 책을 읽고, 피아노 연습을 하는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오후에 2시간 정도 강의과정에서 배운 걸 잠시 복습을 하고, 다음날에 있는 시험을 친다. 나에게 있어 시험공부는 그게 전부다.
비록 성적이 모두 A+는 받지 못하지만, 평소 강의시간에 집중하면 A 혹은 B+, 못해도 B 정도는 이렇게 해도 충분히 받을 수 있다(평균). 이 정도 성적이면 소액 장학금도 받을 수 있는 수준이라 나는 무리해서 내 삶의 시간을 갉아먹으려고 하지 않는다. 너무 바보 같은 일이니까. 꼭 그렇게 해야 할까?
8살 소녀가 엄마가 시킨 대로 한자 공부를 하는 모습을 보면, 소녀는 '엄마 사랑해요'라는 가사가 나오는 동요를 들으면서 눈물을 훔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공부에 내 삶이 갉아 먹히는 것이 끔찍하게 싫은데, 도대체 저 8살의 가녀린 소녀에게는 얼마나 힘들까? 상상도 못 할 정도다.
나는 이 소녀가 '엄마 사랑해요'라는 가사가 나오는 동요를 들으며 눈물을 훔친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 가지는 놀지도 못한 채, 공부만 해야 하는 자신에 대한 힘겨움. 또 한 가지는 엄마를 싫어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자신에 대한 애달픔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소녀는 운 것 같았다.
<풀꽃도 꽃이다> 책을 읽어보면 엄아의 집착에 대해 괴로워하는 중학생은 "엄마들 사랑? 그거 자식들 죽이는 독약이에요."이라고 말한다. 8살의 소녀는 아직 어려서 자신에게 맡겨진 짐에 눈물을 몰래 훔치면서 괴로워할 뿐이지만, 이런 모습은 점점 더 아이를 힘들게 하면서 부모와 멀어지게 한다.
"예, 그런 잘못은 지원이 엄마만 저지른 것이 아닙니다. 청소년 학생을 자식으로 둔 거의 모든 부모들이 '내 자식은 앞서야 한다', '내 자식만은 뒤쳐지게 해서는 안 된다', '남들 다 하는데 나만 안 해서야 되나' 하는 욕심을 부려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는 겁니다. 그런 욕망과 경쟁이 식 앞에서 애들이 개성이나 적성, 능력과 의견 같은 것은 무시되거나 묵살되기 예사입니다." (본문 133)
"예, 모성이 자기희생적이고 헌신적인 강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위대하고 숭고하다고 칭송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모성은 맹목적이고 저돌적이라는 문제점도 내포하고 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또 지나친 집착과 편협함을 보이는 약점도 있습니다. 안정된 미래를 위해 아이들에게 무작정 공부시키면 몰두하고 집중하는 것, 그곳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이런 말 바로 하긴 좀 뭐합니다만, 애기가 나왔으니 굳이 피할 것은 없을 것 같습니다. 엄마들의 그 과도한 집착과 무절제한 몰두가 아이들을 벼랑 끝으로 몰아 자살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습니다. 듣기 거북하시겠지만 지원이 엄마가 그중 한 사람이고, 그런 엄마들이 이 땅에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
강교민의 눈초리는 엄하고 매서웠다.
"……."
여자는 그 눈길에 밀리듯 고개를 수그렸다.
"놀라지 마십시오. 공부 때문에, 성적을 비관해 자살하는 애들이 1년에 얼만지 아십니까?"
"……."
"연간 500명을 넘어 하루 평균 1.5명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 애들을 죽게 한 게 누굽니까?"
"……."
"그 위대하고 거룩한 모성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또 있습니다. 죽는 애들만 그렇지 지금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는 애들의 수는 얼마이겠습니까. 그보다 몇 배 많은 애들이 엄마들의 극성스런 성화 속에서 죽음을 향한 행진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런데도 자식의 행복한 미래를 위해서 희생하는 엄마의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본문 140)
윗글은 소설 <풀꽃도 꽃이다 1>에서 읽은 이야기다. 소설의 한 장면이지만, 이 장면은 지금 우리가 현실로 맞닥뜨리고 있는 장면이다. 아이들 공부에 극성스런 모습을 보여주는 한국 엄마들의 전형적인 모습이자 이번에 페이스북 기사 공유를 통해서 읽은 엄마의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누가 이런 걸 정상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자신이 어릴 때 그렇게 컸다고, 자식에게도 똑같이 그런 일을 시키는 일은 너무 어리석은 일이다. 자신이 어릴 때 그만큼 괴로워했으면, 이제는 행복해지는 방향으로 나아가도 되지 않을까? 내가 너무 이상적인 생각을 고집 피우며 말하는 걸까? 불가능할 걸까?
자식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다. 각자 자신이 살고 싶은 삶이 있고, 하고 싶은 일이 있고, 마땅히 자신의 시간을 자신이 사용할 당연한 권리가 있다. 그런데 많은 부모가 자식에게 '넌 너무 이것 해야 한다, 저것 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의무만 강요하면서 권리를 모조리 뺏고 있다. 마치 노예를 대하듯이.
비유가 지나칠지도 모르지만, 나는 이번 8살 소녀의 모습을 보면서 딱 그렇다고 생각했다. 대학에 와서도 내 삶에 대한 권리를 잃어버린 학생들이 시험에 집착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반대로 지방대에 들어왔다고 포기한 학생들도 볼 수 있다. 참, 같은 20대로서 가슴의 답답함이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오늘 이 글은 대학생으로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억지로 하는 것보다 조정래의 장편 소설 <풀꽃도 꽃이다>에서 읽은 한 개의 시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박노해의 '부모로서 해줄 단 세 가지'라는 시를 통해서 오늘날 많은 사람이 다시 한 번 부모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부모로서 해줄 단 세 가지 (박노해)
내가 부모로서 해줄 것은 단 세 가지였다
첫째는 아이가 자연의 대지를 딛고
동무들과 마음껏 뛰놀고 맘껏 잠자고 맘껏 해보며
그 속에서 고유한 자기 개성을 찾아갈 수 있도록
자유로운 공기 속에 놓아두는 일이다
둘째는 '안 되는 건 안 된다'를 새겨주는 일이다
살생을 해서는 안 되고
약자를 괴롭혀서는 안 되고
물자를 낭비해서는 안 되고
거짓에 침묵동조해서는 안 된다
안 되는 건 안 된다! 는 것을
뼛속 깊이 새겨주는 일이다
셋째는 평생 가는 좋은 습관을 물려주는 일이다
자기 앞가림을 자기 스스로 해나가는 습관과
채식 위주로 뭐든 잘 먹고 많이 걷는 몸생활과
늘 정돈된 몸가짐으로 예의를 지키는 습관과
아름다움을 가려보고 감동할 줄 아는 능력과
책을 읽고 일기를 쓰고 홀로 고요히 머무는 습관과
우애와 환대로 만힝 웃는 습관을 물려주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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