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도 꽃이다 2, 학교란 어떤 장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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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단연코 이 책을 당신에게 권해주고 싶다.


 학교란 무엇인가. 대외적으로 학교는 지식을 넓혀가는 학문의 장소다. 대내적으로 학교는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한 장소다. 학교란 친구가 있는 곳이다. 학교란 경쟁자가 있는 곳이다. 학교란 사람이 있는 곳이다. 학교란 괴물이 있는 곳이다. 학교란 배려가 있는 곳이다. 학교란 배척이 있는 곳이다.


 학교란 무엇인가. 나는 이 질문에 도무지 대답할 수가 없다. 학교란 우리 모두에게 너무 다른 존재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 있어 학교란 지옥이라는 말 이외에 묘사할 수 있는 단어가 없는 것 같다. 학교에서 내 꿈을 꾸고, 내 시간을 가지는 일은 무척 어렵다. 모든 꿈과 시간이 타인에게 만들어진다.


학생이라는 죄로

학교라는 교도소에서

교실이라는 감옥에 갇혀

출석부라는 죄수 명단에 올라

교복이라는 죄수복을 입고

공부라는 벌을 받고

졸업이라는 석방을 기다린다


 오죽하면 아이들이 이런 말을 만들었을까. 공부하기 싫어서 반항하는 짓이라고 누구는 말한다. 공부 못하는 아이들이 학교에 적응하지 못한 탓이라고 말한다. 그렇지 않다. 아이들이 이렇게 학교를 교도소로 느끼게 되어버린 이유는 아이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없기 때문이다. 오직 어른의 욕심뿐이다.


 학부모는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다 내 자식 잘되라고 하는 일이야! 이게 뭐 잘못된 일이야!?"라고 주장한다. 부모의 경쟁의식이 아이들의 피를 말리고, 필요한 인성교육을 뒷전으로 미루었다. 아이들은 공부하는 기계가 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발견한 아이는 부모와 갈등을 빚다 가출을 감행한다.


 우리 사회는 가출 청소년을 문제아로 취급한다. 그러나 진짜 문제아는 자신의 욕심을 먼저 '사랑'이라는 이름의 폭력으로 내세운 부모이고, 그런 부모가 늘어나라 수밖에 없게 한 사회이다. 무조건 사회를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그 사회 속에서 바뀌지 않는, 바꾸지 못한 우리가 잘못한 것이다.


 <풀꽃도 꽃이다 2>를 읽어보면 이런 장면이 있다. 아래의 장면은 가출한 오빠를 걱정해 담임 선생님께 연락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다.


"느네 엄마만 그러시겠니. 자식 잘되기를 바라다 보니까 모든 엄마들이 다 몸이 달아 그렇게 사랑이 넘치는 거지."

이소정은 제자를 위로하고 부모의 체면을 살리느라고 이렇게 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소리 나지 않게 한숨을 길게 내쉬고 있었다.

"아니에요, 선생님. 그건 사랑이 아니라 억지고 억압이에요. 엄마들은 강제로 애들을 공부 기계 만들어 자기들 욕심 채우려고 하는 거예요. 오빠가 가난하게 살든 말든 오빠가 하고 싶은 걸 하게 응원해 줘야 그게 사랑이지, 왜 방해하고 엄마 뜻대로 하려다가 결국 가출하게 만들어요. 엄마가 밉고, 오빠가 불쌍해요."

한솔비가 또 울먹거렸다. (본문 80)


 내 이야기는 아니다. 남의 이야기다.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알게 모르게 이런 장면을 되풀이한다. 가출 청소년의 비율은 해를 거듭할수록 높아지고 있고, 그 원인이 학업 스트레스로 인한 부모님과 충돌이다. 특히 그 충돌 원인에는 엄마와 싸우고 가출하는 학생이 많다고 한다.


 가출 청소년의 엄마는 항상 모든 게 아이를 위해서 한 일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자식이 억장이 무너지는 이 엄마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고, 나를 철저하게 배신한 거라고 주장한다. 끊임없이 자기 정당화를 하고, 아이를 자신의 소유물로 여긴다. 이 사고를 벗어나지 못하면, 갈등이 해결될 수가 없다.


 특히 무한 경쟁주의 속에서 1등을 해야 한다며 집착하고, 마치 내 아이는 1등을 할 수 있는데 노력을 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믿는 부모는 가면 갈수록 아이에 대한 학대가 심해진다. 우리 사회에서 학업 스트레스로 부모를 살해한 사건이 종종 보도된다. 그 사건의 원인을 똑바로 보면 여기에 있다.



 <풀꽃도 꽃이다 2>를 읽으면서 나는 꽤 공감한 말이 있다.


'엄마, 이게 뭐야, 엄마. 오빠가 만화가 되게 내버려두지 왜 그렇게 심하게 했어. 엄마가 오빠한테 쏘아댄 말들이 얼마나 끔찍스러웠는지 알아? 엄마는 화가 나서 그랬겠지만 그 말들은 너무 무시무시하고 정떨어지는 소리였어. 너 같은 건 내 자식이 아니야! 왜 너 같은 게 태어났는지 모르겠어! 죽어, 차라리 나가 죽어! 엄마가 이렇게 소리쳐댔으니 어떻게 오빠가 가출을 안 할 수 있었겠어.' (본문 88)


 오빠를 걱정하는 동생의 묘사가 너무나 어른스러워 놀랐다. 작가가 어떻게 이 세심한 부분을 파고 들을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나 또한 비슷한 경험이 있다. 아니, 지금 이 글을 읽는 독자도 분명히 비슷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부모님이 화가 나서 말하는 저런 무시무시한 말은 너무 흔한 말이었다.


 '겨우 이것밖에 못 해? 멍청하게.' 'XX는 잘하는데 넌 왜 이 모양이냐.', '너 커서 뭐가 될래?', '그따위로 할 거면 다 집어치워!', '차라리 나가 죽어.' 이런 말. 나는 이런 말을 안 들어본 사람이 있는지 궁금하다. 가출하지 않았다고 참을만 한 게 아니다. 가출을 하지 않았더라도 마음은 무너져 내렸을 것이다.


 한때 나에게 큰 욕심을 가졌던 부모님은 이런 말을 거침없이 내뱉었다. 하지만 나에게 신경을 쓸 수 없을 정도로 부모님의 갈등이 깊어져 서로에 대해 공격만 했다. 시간이 흘러서 나는 어떨결에 자유를 얻게 되었지만, 그때 들었던 말은 정말 나를 비참하게 했다. 가슴에 비수가 꽂힌 것 같았다.


 <풀꽃도 꽃이다 1>도 그랬지만, <풀꽃도 꽃이다 2>를 읽어가면서 나는 이 이야기가 내 이야기인 것 같았다. 어릴 적에 겪은 그 아픔이 그대로 그려져 있었고, 지금도 가슴 한구석에서 때때로 눈물을 몰래 훔치게 하는 좌절이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토록 바랐던 손을 내밀어주지 않은 어른이 있었다.


 <풀꽃도 꽃이다>는 성적과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사람을 중요하게 여기는 몇 명의 선생님이 등장한다. 대화를 통해서 부모의 욕심이 왜 잘못인지 말해주고, 무너질 수 있었던 아이의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워주고, 어른이 무시한 아이 본인의 의견을 존중해줬다. '결과'가 아니라 '사람'을 보았다.



 도대체 학교란 무엇인가. 학교에서 주인은 어른이 아니다. 어른과 아이 모두 주인이다. 그런데 우리는 늘 어른의 의견을 일방적으로 강요하고, 아이들을 향해 "어린놈이 뭘 알아!?"라고 윽박지를 뿐이다. 웃긴 것은 이런 모습이 초·중·고등학교만 아니라 대학교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나는 대학에서 바뀌지 않는 일제식 암기 수업에 정말 질렸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과제에 연연하지 않고 좋아하는 과목을 즐길 수 있는 과목을 듣고자 했다. 하지만 그런 강의는 좀처럼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대학은 학문의 전당이 아니라 이미 취업 양성 학원에 불과했다.


 <풀꽃도 꽃이다 2>를 읽어보면 대안 학교와 혁신 학교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경쟁의 장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토의하고, 자유롭게 공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대안 학교와 혁신 학교는 진보 교육감의 지원을 받아 많은 성장을 했다. 하지만 혁신학교는 교육부와 극성 학부모에 의해 벽을 만나고 있다.


 책을 읽어보면 이렇게 그 모습을 묘사한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거예요? 학생도 학부모도 다 좋아하고, 실제로 효과도 커지고 있는데."

"그게 잘난 교육부가 하는 짓이다. 무조건 일본식으로 통제만 하는 것이 옳은 교육 방식이라고 믿고 있는 교육부의 눈에는 혁신학교들이 하는 모든 게 마땅찮고 눈에 거슬리는 거지. 이건 참 국가적으로 심각한 문제다." (본문 319)


 도쿄대학교 교육학 박사인 사토 마나부 교수는 OECD 34개국 중에서 주입식 교육을 하는 데는 일본과 한국뿐이라고 지적한다. 엄연한 이 사실을 두고도 아직 교육부는 묵묵부답이다. 제 좋을대로 규제를 풀기 위해서 '선진국은 이렇게 한다.'고 말하면서 정작 중요한 건 외면만 하는 꼴이다.


 나는 <풀꽃도 꽃이다 2>를 읽어보면서 중학생과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대안 학교가 아니라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대안 대학교도 생겼으면 했다. 맨날 말로 창의, 창조를 강조하면서 현실은 중고등학교와 마찬가지로 일제식 주입만 하는 대학이 무슨 대학인가. 비싼 돈 내고 다니는 학원이나 다름없었다.


 대학에도 나름의 자율성이 있고, 대학생 본인이 조금 더 넓게 보면 새로운 기회는 있다. 그런데 막대한 대학 등록금의 부담과 좋은 직장에 취직해야 한다는 무게는 대학생들의 시야를 좁게 만든다. 옆에 있는 그 기회는 금수저들에게 돌아가고, 돈 없는 대학생은 아르바이트를 하며 취업만 보아야 한다.


 웃긴 건 대학의 목표가 취업이 된 사실이 아니다. 취업을 목표로 하면서 영어 인증 졸업시험제도를 도입해 자율성을 빼앗는 일이 허다하다. 대학교에 들어와서 자유롭게 공부를 하기보다 중고등학교의 연장선에 해당하는 공부를 하고, 학업 스트레스와 취업 스트레스를 동시에 받으며 더 괴로워한다.


 그러니 어찌 대학생 사이에서 술독에 빠지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술이라도 퍼 마시며 고달픈 현실을 잊고자 하고, 그렇게 홧김에 또 잘못일 저지른다. 점수를 안 준다고 교수를 뒤에서 씹는다. 강의 시간에 질문하는 학생 때문에 시간이 길어져 그 학생을 씹는다. 이게 우리 대학의 현실이다.



 <풀꽃도 꽃이다>는 단순한 소설이 아니다. 책의 띠지에 적힌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우리들의 이야기'라는 말 그대로 우리의 이야기다. 나는 소설을 읽으면서 수많은 나를 만났다. 자살을 결심했던 나, 학대를 당했던 나, 학폭을 당했던 나, 성적 지상주의에 물든 선생님께 발길질을 당한 나.


 하지만 그 반대로 사람을 먼저 말씀한 선생님을 다시 떠올렸다. 강교민 선생님 같은 분이 고등학교에 계셨고(김재철 선생님), 인터넷 강의를 통해 만난 선생님(이충권 선생님) 또한 늘 '선의후이'를 강조하며 사람이 먼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공부는 그다음이었다. 사람, 그다음이 공부라고 했다.


 나는 지금 공부보다 사람이 되기를 먼저 선택했다. 사람은 나에게 있어 상처를 준 아픔이지만, 사람을 이해하고자 했다. 책을 통해서 나는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 고민했다. 책을 통해서 나는 어떤 철학을 가지고 내 인생을 살 것인지 고민했다. A급이 아니라 B급이라도 나는 나로서 여기에 서 있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책을 읽고 글을 쓴다. 만약 지나온 과정이 없었다면, 나는 오늘 이 책 <풀꽃도 꽃이다>를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이 좋은 책을 만나지 못하는 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이 책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의 이야기다. 너무나 무겁고 안타까운 우리가 걸어온 이야기다.


 학원가는 여전히 암기 교육으로 줄기차게 호황을 누리고, 교육부와 보수적인 부모들은 여전히 아이에게 자유를 주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동안 줄기차게 문제가 일어나고, 바로 자신의 그늘 아래에서 문제가 일어나고 있음에도 말이다. 이 치열한 세상 속에서 당신은 풀꽃으로 살아갈 수 있겠는가?


 나는 이 책을 꼭 읽어보라고 권해주고 싶다. 학부모, 학생, 교육부 직원 등 '교육'이라는 글자가 조금이라도 엮이고, 어떻게 해야 더 '사람답게 살 수 있을까'는 고민을 한다면 분명히 멋진 경험이 될 것이다. 책은 단순히 정보를 습득하는 것이 아니다. 살아가는 지혜를 얻고, 올바른 철학을 길러내는 일이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나는 딱 한 가지 생각만 했다. 그저 깨끗한 시골에 내려가 잠시 쏟아질 듯한 밤하늘의 별을 보고 싶다고. 나는 대학 공부와 상관없이 내가 배우고 싶어서 시작한 피아노에서 모차르트의 작은 별 변주곡을 배우고 있다. 그 밤하늘 아래에서 듣는 작은 별 변주곡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그 모습을 머릿속으로 상상해보았다. 그리고 간절히 기도했다. 부디 다음 주부터 다시 시작할 일제 암기식 대학 강의를 그만 듣는 날이 어서 오기를. 석방까지 아직 2년이 더 남았다. 2년이라는 시간 동안 교도소에서 나는 줄기차게 책을 읽어나갈 생각이다. 2년 동안 '진짜'를 찾아 나갈 생각이다.


 만약 진짜를 찾을 수 있다면, 그 비싼 등록금을 낸 보답을 받을 수 있겠지.


 진짜를 찾기 위한 길을 걷는 블로거 노지를 응원하는 방법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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