슝둔 그림 에세이, 스물 아홉 나는 유쾌하게 죽기로 했다
- 문화/독서와 기록
- 2016. 8. 24. 07:30
50만 명이 읽고, 1300만 명이 보고 감동한 치유 일기
우리 삶은 길게 이어질 것 같지만, 우리에게 죽음이라는 이별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온다. 뉴스를 통해서 한 패스트푸드 점에서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다 차에 치여 죽은 20대의 소식을 듣거나 휴가를 맞아서 여행을 떠난 일가족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그렇게 안타까울 수가 없다.
사실, 이건 거짓말이다. 눈앞에 다가오지 않은 죽음에 대해 우리는 안타깝다는 동정심을 가질 수 있겠지만, '나도 저렇게 될지도 몰라.'라며 직접적인 감정을 느끼면서 괴로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런 일은 어디까지 타인의 일에 불과하고, 우리는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일만으로도 벅차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가장 큰 고통은 타인의 고통이 아니라 자신의 고통이다. 우리는 자신이 아플 때 세상에서 가장 아프다고 느끼고, 우리 자신이 슬플 때 세상에서 가장 비참하게 느낀다. 우스운 건 우리 자신이 행복할 때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지 않고, 불행하지 않다고 느끼거나 심지어 불행하다고 느낀다는 거다.
아마 나와 이 글을 읽는 독자도 여기서 예외가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항상 그렇게 자신을 먼저 생각하면서도 자신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는 드물다. 만약 이런 상황에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는 병까지 걸린다면, 우리는 과연 어떤 여생을 어떻게 보내게 될까?
쉽게 상상이 가지 않지만, 오늘 소개할 책 <스물아홉 나는, 유쾌하게 죽기로 했다>의 저자 슝둔은 바로 그런 상황에 놓였던 인물이다. 이 책은 그녀가 '비호지킨 림프종'이라는 진단을 받고 나서 병원에서 치료받는 일상을 그림 에세이로 그린 작품이다. (비호지킨 림프종은 백혈구에 생긴 암이다.)
스물아홉 나는 유쾌하게 죽기로 했다, ⓒ노지
스물아홉 나는 유쾌하게 죽기로 했다, ⓒ노지
스물아홉 나는 유쾌하게 죽기로 했다, ⓒ노지
솔직히 책을 통해서 커다랗게 감동을 했다거나 눈물이 나왔다고 말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녀의 책은 감동에 젖어 눈물을 흘리는 것보다 힘든 투병 생활을 유쾌하게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호쾌한 그녀의 모습은 도저히 환자의 모습이라고 쉽게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재치있게 그려졌다.
그래서 책을 읽는 동안 그녀가 이 병을 통해서 비참한 시간을 보낸 것이 아니라 유쾌하게 보내면서 즐겁게 지낸 듯한 기분을 얻었다. 만약 내가 저자 슝둔의 이야기를 미리 알지 못했지만, 분명히 마지막에는 '이렇게 잘 치료받고, 잘살고 있답니다.'고 말하는 저자의 맺음말을 기대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림에 그려진 아무것도 아닌 일상인 것 같은 그녀의 투병기는 솔직히 놀랍다. 생존 확률이 낮고, 완치확률마저 낮은 비호지킨 림프종에 겪으며 그린 이야기는 전혀 가식이 없다. 가식이 없기 때문에 병원에서 연재를 한 그녀의 작품은 많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고, 긍정의 아이콘이 될 수 있었다.
그녀가 겪은 림프종은 절대 가벼운 병이 아니다. 계속되는 항암 치료와 함께 몸을 제대로 눕지도 못해서 자는 것조차 어려운 그 과정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을 수반할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너무나 유쾌하게 그 장면을 그려내고, 자신이 겪은 일이 아무것도 아닌 일인 듯이 웃으면서 말한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을까?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를 읽었지만, 마지막 장에 그녀에게 남겨진 메시지를 읽으면서 비로소 느껴지는 그녀의 용기는 감탄이 저절로 나왔다. 지금의 나는 일상 속 평범한 두려움에도 얼마나 뒷걸음질을 치고, 망설이고 있는가. 그저 웃으면서 넘길 수 있으면 좋을 것을.
그녀의 이야기는 영화 <꺼져버려 종양군>으로 만들어져 많은 감동을 주었다고 한다. 지금 작가는 세상에 남아있지 못했지만, 그녀가 전하고자 한 메시지는 많은 사람에게 오랫동안 남아있을 것이다. 나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저 내가 내 인생을 유쾌하게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슝둔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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