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를 연습하며 배운 삶의 원칙 세 가지
- 일상/사는 이야기
- 2015. 11. 10. 07:30
피아노 연습은 부단히 실패를 마주하고, 다시 시작하는 일이었다.
어릴 때 나는 음악을 싫어했다. 학교에서 치는 수행 평가에서는 언제나 최하점을 맞았고, 지필 고사도 흥미가 없어서 높은 점수를 받지 못했다. 자연히 점수가 따라주지 않고, 매번 수업 시간마다 비판을 받았기에 자연스럽게 나는 '음악'이란 장르 자체를 싫어하게 되었다.
하지만 유독 음악이라는 전체 장르 중에서 싫어하지 않고, 항상 좋아했던 장르가 바로 피아노와 바이올린이다. 피아노 건반을 통해서 나오는 따뜻한 멜로디, 그리고 바이올린의 잔잔한 멜로디는 항상 '언젠가 직접 연주해보고 싶다.'는 마음을 강하게 품도록 했다. 피아노와 바이올린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동경은 했지만, 쉽게 행동으로 옮기지 못해 '언젠가 배우고 싶다.'는 실체를 가지지 못한 목표이자 꿈으로 남아있었다. 그런데 20대 중반이 되어서야 나는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애니메이션과 만화를 통해 본 피아노를 치는 주인공의 모습과 들은 멜로디가 '지금 당장' 도전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동안 많은 책을 읽으면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바로 도전하라.'는 말이 마음속에 쌓여있던 것과 애니메이션과 만화를 통해 본 피아노에 담기는 마음이 자아내는 연주가 피아노 학원의 문을 두드리게 했다. 그렇게 책 읽기, 애니메이션 보기, 사진 찍기 외 취미 활동이 늘어났다.
피아노, ⓒ노지
피아노를 배우는 과정을 절대 쉽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했기에 너무 어려웠다. 쉬운 악보를 소화하지 못하는 나 자신에게 실망하기도 했고, 역시 재능이 없으면 무엇이든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좋아하는 일이기에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고 싶었고, 포기하지 않았다.
그 결과, 나는 지금 드디어 그렇게 치고 싶었던 클래식의 문턱에 손을 댈 수 있게 되었다.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연주하고 싶었던 곡 세 개도 연주할 수 있게 되었고, 아직 서툴긴 해도 나름 만족할 수 있는 연주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욕심이 커서 사실은 만족하지 못하고 있지만 말이다.
클래식도 이제 처음 시작했기에 너무 멀다. 지금 배우고 있는 곡은 모차르트의 터키 행진곡인데, 아주 대중적인 곡이지만 절대 쉽지 않은 곡이다. 빠른 템포로 이루어지는 곡이기 때문에 손가락 기술이 상당히 필요하고, 음을 하나씩 잘 표현하는 게 중요하다. 도대체 얼마나 연습을 해야 하는 걸까?
지금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계속해서 유튜브 영상을 통해서 터키 행진곡을 들으며 음을 익히고 있다. 그리고 동영상으로 보는 연주자의 손과 리듬을 통해서 나의 습관을 수정하려고 한다. 왼손과 오른손이 섞이게 되면 음이 카오스가 되어버리지만, 오른손은 악보를 어느 정도 칠 수 있게 되었다.
모차르트의 터키 행진곡, ⓒ노지
이렇게 피아노를 배우면서 나는 세 가지 원칙을 배웠다. 첫 번째, 안 되는 것은 없으니 다시 처음부터 천천히 시작하라. 두 번째, 실수한 부분에서 다시 시작하라. 세 번째, 자만하지 말고 꾸준히 연습 시간을 지켜라. 이 세 가지 원칙은 우리의 삶에도 적용할 수 있는 원칙이라고 생각한다.
첫 번째, 안 되는 것은 없으니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라. 이 원칙은 피아노를 배우면서 가장 먼저 깨달은 부분이다. 처음에는 악보를 도저히 연주할 수 없어 '쉬운 곡으로 바꿔볼까;' 하고 생각했지만, 다시 처음부터 곡을 천천히 연습하면서 조금씩 곡을 연주할 수 있을 때 배운 원칙이었다.
우리는 보통 우리가 하는 다른 일에서도 마음대로 되지 않아 조바심을 낼 때가 많다. 그때는 다시 처음부터 천천히 시작하면 된다. 옛말에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괜히 되지 않는 일에 악을 부리면서 급하게 하려고 하면, 더 힘들어질 뿐이다. 피아노 연습에서 정말 중요했다.
그리고 두 번째 원칙, 실수한 부분에서 다시 시작하라. 이 원칙은 피아노 악보를 연주하는 데에 가장 필요한 덕목이었다. 실수한 부분이 사소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서 '다음에 고치자.' 하고 넘어가게 되면,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된다. 실수한 그 부분에서 무조건 다시 바로 잡아야 했다.
화이트 앨범2 악보, ⓒ노지
위 빨간 박스는 내가 사소하다고 생각해서 넘어갔다가 뒤늦게 바로 잡은 부분이다. 처음에는 '그냥 파 한 번 안치고 다시 치면 되겠지.'하고 넘어갔지만, 자꾸 파를 두 번 치거나 파를 한 번 치게 되면 다음 부분이 완전히 헝클어졌다. 이 부분을 똑바로 수정하기 위해서 열 번 이상 다시 반복해야 했다.
지금 우리의 평균 수명은 상당히 늘었지만,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은 여전히 우리에게 중요한 격언 중 하나다. 한번 잘못 들인 습관은 쉽게 고칠 수 없다. 잘못된 습관은 바로, 그 자리에서 고치는 게 중요하다. 실수한 부분을 간과하고 넘어가면, 똑같은 실수를 해버리게 되니까.
피아노를 연습하면서 배운 세 번째 원칙, '자만하지 말고 꾸준히 연습 시간을 지켜라'는 그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도 중요했다. 피아노를 배우면서 익힌 곡을 자만해서 연습 시간에 몇 번 연습하지 않게 되면, 다음날에 손가락이 곡을 연주하지 못하는 상황을 몇 번이나 마주했었다.
아무리 익숙해졌다고 생각해도 연습 시간을 똑바로 지키지 않으면, 피아노를 치는 손가락은 금방 무뎌졌다. 작은 자만은 결국 실력 저하를 가져오는 최대의 요인이었고, 실수를 반복하게 하는 어리석은 내 모습을 보여주었다. 분명히 우리 인생에서도 자만은 우리의 가장 큰 오점을 만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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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피아노를 연습하면서 배운 이 세 가지 원칙은 우리의 삶에도 적용될 수 있는 원칙이라고 생각한다. 도저히 일이 안된다고 화를 내는 게 아니라 다시 처음부터 천천히 시작하고, 내가 실수한 부분에서 다시 시작해서 실수를 바로 잡고, 절대 자만하지 않는 것. 단순하지만, 아주 명료한 원칙이다.
우리의 삶은 우리가 평소에 실천하는 사소한 원칙과 행동으로 이루어진다. 만약 내가 어떤 일이 잘되지 않는다고 금방 포기하고, 실수한 부분은 가볍게 넘어가고, 자만하여 공부하지 않는다면 과연 내 인생은 어떻게 될까. 굳이 길게 상상하지 않아도 제대로 된 인생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피아노를 배우는 일은 부단히 같은 곡을 반복해서 연습하고, 실수하는 일이다. 실수를 반복하면서 실수를 줄여가고, 절대 자만하지 않고 연습 시간을 꾸준히 지키는 것. 피아노 연주 실력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은 그것뿐이다. 절대 요행은 없으며, 노력만이 내가 치고 싶은 곡을 연주할 수 있게 해주었다.
한창 또래 아이들과 뛰어놀 나이에 펄만은 학교 연습실에서 하루 4-5시간씩 주어진 연주곡을 끊임없이 반복 연주하는 과제물을 받았다. 이런 연습에 불만이나 불평을 하지 않았다. 훗날 인터뷰에서 펄만은 이렇게 말했다.
"악기를 공부하는 대다수의 학생이 가장 싫어하는 것 중의 하나가 한 곡을 지정해 반복 연주하는 연습입니다. 저 또한 똑같은 곡을 하루에도 수십 번도 더 연습해야 한다는 것이 넌더리나게 싫었던 적이 많았습니다."
펄만은 이런 고된 연습이 있었기에 탄탄한 기본기를 갖추게 됐고 이것이 바탕이 되어 세계 최고의 기량을 갖춘 바이올린 연주자가 될 수 있었다.
"연습은 음악가의 길로 접어들면서 생긴 후천적 습관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거의 본능이 되었습니다. 연주 공연을 할 때 성공이냐 실패냐의 판정은 결국 연주회를 앞두고 얼마만큼 연습을 했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본문 84)
세계적인 바이올린 연주자 펄만의 사례는 연습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해준다. 우리의 삶 또한 마찬가지다. 부단히 노력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삶은 나아질 수가 없다. 오늘 내가 연습하는 '터키 행진곡'과 내년 이맘때까지 꼭 치고 싶은 쇼팽의 'Winter Wind'는 나에게 더 많은 연습을 요구할 것이다.
절대 쉽지 않겠지만, 나는 좋아하는 일에서만큼은 포기하고 싶지 않다. 곡이 잘 안 되면, 다시 처음부터 천천히 연습하고, 실수한 부분은 몇백 번이라도 반복해서 바로 잡고, 절대 자만하여 연습 시간을 줄이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취미 생활이지만, 이것은 내가 가진 삶의 원칙이기도 하니까.
오늘도 남이 들으면 코웃음이 나오는 실력으로 피아노의 건반을 두드리며, 나는 언젠가 콘서트 홀 혹은 콩쿠르에 출전하는 미래의 나를 상상하며 슬쩍 웃어본다. 그 꿈이 현실이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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