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센티 아트, 헬요일을 월요일로 바꿔줄 책 한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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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는 이 책을 '유치하다.'며 비웃었지만, 나는 이 책에서 웃음을 얻었다.


 책 읽기. 단순히 이 말은 우리가 책을 읽고 있다는 행동을 뜻한다. 하지만 같은 책 읽기라도 우리가 어떤 목적으로 읽는가에 따라 책 읽기가 가지는 의미가 변한다. 중요한 시험을 앞둔 학생들이 버스와 지하철에서 읽는 책 읽기는 공부이고, 연애를 하는 사람의 책 읽기는 사랑인 것처럼 말이다.


 나에게 있어 책 읽기는 친구와 나누는 대화와 같다. 그리고 나에게 있어 책 읽기는 떠나지 못하는 여행을 떠나 는 여행과 같다. 매번 홀로 책을 읽으면서 책의 주인공에게 말을 걸기도 했고, 주인공의 이야기에 혼자 답을 하기도 했고, 주인공이 떠난 여행지에 발을 내딛는 상상을 해보기도 했다.


 누군가에게 이런 행동은 바보처럼 여겨질지도 모르지만, 책은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모두 특별한 의미를 가지게 된다. 그래서 나는 책 읽기가 좋다. 단순히 책을 읽는 것 이외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고, 게임을 하게 되면 '왜 이런 쓸데없는 짓을!' 하며 종종 자책하지만 책은 그런 게 없으니까.


 때때로 어떤 사람은 내가 고전과 인문학을 위주로 읽지 않는다고 하여 도움이 되지 않는 책 읽기라고 비판하기도 하지만, 나는 그런 의견에 전혀 동의할 수가 없다. 그냥 내 마음이 아플 때, 웃음을 줄 수 있는 책을 만났다면, 이미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행동이니까. 괜히 남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일 센티 아트, ⓒ노지


 오늘부터 시작할 월요일을 맞아 나는 <일 센티 아트>라는 책을 소개하려고 한다. 이 책의 전 시리즈를 소개했을 때, 어떤 사람으로부터 '이 책은 그냥 여성이 좋아할 수 있는 책이지, 쓸모있는 책이 아니다.'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확실히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 의견에 고개를 끄덕이고 싶지 않다.


 책 <일 센티> 시리즈는 우리가 보통 손에 들고 있는 책과 다른 책이다. 이 책은 글보다 그림이 더 많고, 어떤 페이지에서는 저자가 독자에게 어떤 행동을 강요하기도 한다. 그런데도 웃으면서 이 책을 잡고 읽을 수 있는 이유는 재미있고, 스마트폰으로 본 짧은 웃긴 영상보다 더 여운이 남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웃음은 어떤 의미인지 한 번 생각해보자. 개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우리는 '그저 웃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보면서 웃지만, 진심으로 내 마음이 따뜻해지는 웃음은 종종 찾아보기 어려울 때가 있다. 아이의 티 없는 웃음을 바라보다 나도 모르게 미소를 머금는 미소는 바로 후자의 미소다.


 그리고 <일 센티 아트>는 바로 그 후자의 미소를 우리가 지을 수 있게 해준다. 글쎄, 어디까지 개인적인 이야기라 성급한 일반화는 오류로 비판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책을 읽으면서 글귀 하나하나와 일러스트에 푹 빠져서 천천히 온기를 느끼며 미소를 머금은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는 A와 B를 비교할 때

그것이 객관적 비교일 것이라는 함정에 빠지곤 한다.


자기 자신이

냉철한 심사 위원이나 팩트에만 집중하는 과학자가 된 듯,

비교 조건 외 다른 모든 조건을 통제한 실험실 안에 있는 듯,

비교 대상인 A와 B를 완벽하게 꿰뚫고 있는 듯

착각한다.


그러나 정작 A와 B를 비교할 때

A의 장점은 빠뜨린 채

B의 장점을 미화하거나,

A의 의미는 생각지도 않은 채

B의 의미를 확대해석하는 오류에 쉽게 빠지곤 한다.

혹은 애초에 동일선상에 놓을 수 없는 두 가지를 비교하는 실수를 범하기도 한다.


다정한 남편의 수입과 무뚝뚝한 옆집 남자의 수입을 비교하고,

가난한 자유와 부유한 구속을 비교하고,

'좋아하는 일인가?'라는 질문을 빠뜨린 채 연봉을 비교하고,

미래의 가능성을 제외한 채 현재를 비교한다

건강한 몸과 소중한 가족이라는 핵심 요소는 빠뜨린 채,

나머지 중요하지 않은 요소들을

또한 신중하고 심각하게 비교하곤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자주 비교를 하고, 비교의 결론을 내리고

그 결론에 따라

괴로워하거나 노여워하거나

슬퍼하거나 후회하지만,

그럴 필요 없다.


그 비교는 절대적 진리가 아닌

또 다른 관점에서 보면 쉽게 다바뀌거나,

상황과 기분에 따라서 뒤집어질 수 있는

아주 주관적인 한순간의 의견일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비교와 사랑에 빠지지 말라

또한 당신의 행복과 불행을

비교에 맡기지 말라. (본문 78)


 <일센티 아트>에서 읽은 비교에 관한 글을 옮겨보았다. 긴 글이 아니고, 짧은 글이지만, 글에서 전해지는 따뜻함은 잠시나마 마음의 얼음 덩어리가 녹는 듯한 느낌을 준다. 우리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비교를 하면서 타인에게 상처를 주거나 자신에게 상처를 주었는가.


 이제 그런 비교에서 벗어날 때다. 우리는 종종 책 읽기에 두는 의미를 비교하면서 '책을 읽는 모습은 지적으로 보여야 해'이라는 착각에 빠져서 내가 웃을 수 있는 책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에 집착할 때가 있다. 그것은 절대 진짜 책 읽기라고 말할 수 없다. 그냥 책 읽는 행위를 흉내를 낼 뿐이다.


 그러니 책을 읽는 것부터 비교는 그만두자. 내가 읽는 책과 남이 읽는 책을 비교하는 일은 너무 어리석은 일이다. 야구 선수가 야구 기술 책을 읽고, 인문학자가 인문학을 읽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평범한 사람이 내가 굳이 전문서적을 읽을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평범한 책을 읽으면 된다.


'자기 에너지' 절약


당신을 신경 쓰이게 하는 사람 모두를

신경 쓸 필요는 없다.


물 절약, 전기에너지 절약처럼

때로는 자기 에너지 절약도 필요하다. (본분 106)



 유치해도 좋다는 생각으로 나는 이 책을 즐겁게 읽었다. 내가 만화책을 읽는다고 하여 그 행동이 스마트폰으로 가십 거리를 읽는 행동보다 못할 리가 없다. 차라리 선정적인 동영상을 보는 것보다 꿈을 좇아 노력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는 만화책이 오히려 더 나을 때도 있다. 비교는 때때로 그렇다.


 나는 <일 센티 아트>가 사람들에게 만화책처럼 다가갈 수 있으면 좋겠다. 어려운 전문 서적을 무작정 읽는 것은 분명히 자기 발전을 위해서 좋은 일이고, 경제학과 인문학을 읽는 것은 우리 사회를 똑바로 보는 데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먼저 내 마음의 짐을 덜어내는 게 먼지이지 않을까.


 오늘 소개한 <일 센티 아트>는 분명히 당신이 짊어진 무거운 마음의 짐을 덜어낼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마지막으로 책에서 읽은 한 부분을 남긴다. 이 글이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는 당신에게 작은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오늘 무기력한 나에게 이 글을 추천한다!


아무것도 먹기 싫어지거나

하기 싫어지거나

의지를 잃고 무기력해진다.

욕구 상실의 상태가 영원히 지속되리라는 생각까지 든다.


그러나

어떠한 욕구도 남아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에도,

우리의 몸과 마음속에서 욕구는 탄성에 따라 이미 회복되는 중이다.


그럴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섣불리 좌절의 결론을 내리기보다

일단 기다리는 것.


일주일 후 다시 치킨이 먹고 싶은 것처럼

몇 개월이 지난 어느 날 문득 다시 사랑이 하고 싶어질 것이다.

다시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일어서고 싶을 것이다.


상처만 회복되는 것이 아니다.

욕구도 회복된다.

그것이 우리가 가진 놀랍고도 불가사의한 힘이다. (본문 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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