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무거울 때 곁에 두고 읽는 장자의 삶
- 문화/독서와 기록
- 2015. 10. 14. 07:30
내 마음이 무거운 까닭은 세상에 대한 욕심이 지나치기 때문이다.
오늘처럼 가을 하늘이 지나치게 푸른 모습을 보여줄 때, 하늘을 올려다보면 종종 마음이 무거워질 때가 있다. 왜냐하면, 너무 평화로워 보이는 하늘이 오르락내리락하는 내 삶과 너무 다르게 느껴져 스스로 '나는 왜 이렇게 사는 걸까…?'는 자조 섞인 한탄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가 벚꽃 피는 날에 술을 마시고, 푸른 가을 하늘 아래에서 술을 마시는 이유는 '절경'을 안주로 삼아 술맛을 돋우는 게 아니라 그런 한탄을 잊고자 함이 아닐까? 어디까지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부정할 수 없는 하나의 가능성이라고 생각한다. 홀로 하늘을 바라본 나는 그런 기분이 들었다.
지금 우리가 사는 한국은 속된 말로 '헬조선'으로 불리고 있다. 정말 지옥 같은 나라라는 말이다. 청년 세대에게 한국은 좀처럼 편안히 휴식을 취할 수 없는 나라다. 가을 하늘을 바라보며 시 한 구절이라도 떠올리고 있으려면, "뭐하냐? 공부나 해! 그런 스펙으로 취업이나 하겠어?" 같은 질타를 받는다.
이미 우리나라에 옛날 뛰어난 시인들 같은 감성을 지닐 수 있는 환경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연휴마다 자연을 찾아서 휴식을 즐기려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지만, 그 사람들의 얼굴은 정말 휴식을 즐기는 모습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하니까 거의 강박적으로 타인을 따라 행동하는 것 같다.
그냥 이렇게 쉬면 되는데, ⓒ노지
그래서 우리는 연휴에 휴식을 취하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면, 더욱 지쳐버린다. 연휴 동안 기력을 보충한 것이 아니라 기력을 소비하면서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의 행동을 하느라 방전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처럼 행복해야 한다, 즐겨야 한다, 그런 강박 관념은 무거운 짐일 수밖에 없다.
우리 한국에서 그토록 많은 사람이 술을 마시면서 시간을 보내는 이유는 정신적으로 그런 짐을 덜어내고 싶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알코올이 우리의 뇌에 침투하여 짧은 시간 동안 내가 짊어진 짐을 잊게 해주는 마법은 너무나 매력적일 테니까. '한국의 여가 생활=술'이라는 공식은 그 탓이 아닐까?
술을 마시지 않는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지나친 타당성이 떨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 또한 가끔은 마시지 않는 술이라도 마시면서 잠시나마 오늘의 고통을 잊고 싶었던 때가 있다. 어쩌면 이렇게 살아가는 게 한국의 슬픈 어른으로서, 헬조선에서 사는 청년으로서 삶이 아닐까 싶다.
너무 부정적인 생각인 걸까?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늘처럼 가을 햇살이 눈부신 하늘 아래에서 하늘을 쳐다보고 있노라면,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격차는 벌어지기만 하고, 사람이 사람 대우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는 이 나라에서 무엇을 볼 수 있을까.
곁에 두고 읽는 장자, ⓒ노지
얼마 전부터 <곁에 두고 읽는 장자>이라는 책을 읽고 있다. 우리가 익히 아는 장자는 노자와 마찬가지로 무위를 말했던 사람으로, 호탕하고 자유분방한 성인으로 여겨지고 있다. 인과 예를 중시했던 공자와 다른 방식으로 도를 말했기에 사람들 사이에서 의견이 엇갈리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러나 인과 예를 중요하게 여겼던 공자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버림을 말했던 장자의 이야기도 한번은 귀 기울여 들어볼 필요가 있다. 특히, 오늘날 빠르게 흘러가는 세상 속에서 우리처럼 마음의 짐이 지나치게 무거울 때는, 한 번쯤은 장자가 말했던 아주 단순한 말 속에서 여유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배로 강을 건너는데 빈 배가 떠내려 와 뱃전에 부딪쳤다. 성질 급한 뱃사람이라도 빈 배에다 화를 내지는 않는다. 만약 그쪽 배에 한 사람이라도 타고 있으면 저리 비키라고 불같이 소리 지를 것이다 한 번 소리쳐 못 들으면 두 번, 세 번 소리치고 욕까지 해댈 것이다. 빈 배일 때는 아무 감정이 없지만 사람이 타고 있으면 분노가 일어난다. 사람들이 모두 자기를 텅 비우고 빈 배가 되어 인생의 강을 건넌다면 누가 그를 해치겠는가!
빈 배에다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를 사람은 없다, 마찬가지로 자기를 비운 사람은 남의 원망을 듣지 않는다. 무심한 빈 배는 아무런 해도 받지 않고 유유히 인생의 강을 건널 수 있다. 내 안에 품은 것이 없으면 인생의 풍랑으로부터도 자유롭다. 이런 선시가 있다.
'한 물결이 일어나니 만 물결이 따라 이네.'
한 물결이 일어나지 않으면 만 물결도 일지 않는다. 내 안의 작은 것 하나가 인생의 큰 풍파를 부르는 법이다. 인생에 풍파가 일어난다는 것은 내 마음이 뭔가를 붙들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대의 인생길은 풍파가 심한가. 물결과 싸우지 말고 그대의 마음을 재워라. 요동치는 것은 물결이 아니라 그대의 마음이다. 욕심이 사나우면 인생의 풍랑도 사납다.
세상살이가 힘들다고 느껴지는가. 마음속에 짊어진 것을 내려 놓으라. 마음이 얹어지면 종이 한 장도 무겁다. 실오라기 같은 향기가 발걸음을 묶기도 하는 것이 인생이다. 그대의 마음은 지금 무엇에 매여 있는가. (본문 132)
윗글은 <곁에 두고 읽는 장자>의 '무위의 세계 : 멈추고, 비우고, 내려놓아라'에서 읽은 글이다. 아주 단순한 논리를 말하지만, 우리는 이 단순함을 실천하는 것으로 달라질 수 있다. 휴식 시간이라고 말할 수 없었던 휴식 시간에 정말 휴식을 취하면서 마음을 억누르는 무거운 짐을 덜 수 있다.
뭐, 솔직히 이런 말을 하더라도 오늘 하루를 버티는 삶이 어려운 사람에게는 허울 좋은 말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눈을 감으면, 밀린 월세와 앞으로 갚아야 할 대출금이 떠오르는 사람에게 어찌 가만히 유유자적하게 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현실이라는 것은 더욱 냉랭하게 다가오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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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무조건 욕심을 버리고, 걱정을 덜어야 한다고 말할 수 없다. 지금 나도 눈을 감으면, 지금 우리 집이 껴안고 있는 문제가 떠올라 오히려 마음이 무거워진다. 파란 가을 하늘을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쉬게 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우리 사회 이런 고민을 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부자는 더 부자가 되지 못해서 마음이 무겁고, 사기꾼은 자신의 거짓말이 들킬까 걱정되어 마음이 무겁고, 가난한 자는 가난해서 마음이 무겁다. 아마 우리나라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이 하고 싶었던 국정 교과서가 무산될까 마음이 무거워 어쭙잖은 변명을 한 뒤에 미국으로 떠난 것일지도 모른다.
세상 사람 모두가 그렇게 살고 있다. 장자는 우리가 사는 이런 모습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그는 장대한 이상적인 국가를 말하는 게 아니라 멈추고, 비우고, 내려놓으라고 말한다. 나는 <곁에 두고 있는 장자>를 읽으며 자유를 품는다는 것이 진정 무엇인지 생각해볼 수 있었다.
장자는 덕충부편에서 '흐르는 물은 거울로 삼을 수 없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제 모습을 비춰보려면 고요히 멈춰 있는 수면을 찾아야 한다. 마음의 풍랑을 가라앉히고 조용히 자기 내면을 들여다볼 때 사람들은 비로소 참모습과 마주할 수 있다.
흐르는 물처럼 늘 변하는 겉모습은 사람을 비추는 거울이 될 수 없다. 장자는 덕이 충만한 사람은 불완전한 형체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천지의 근본인 참된 경지를 알면 사물의 변화에 구애받지 않는 평온한 경지에 이른다는 것이다. (본문 142)
인생은 큰일이 아니라 사소한 일들이 결정한다고 한다. 큰 것을 가졌다고 그 인생이 대단해지는 것은 아니다. 태산 같은 재물이라도 인생의 행복을 더하지는 못한다.
재산을 과시하기 위해 사치를 일삼은 석숭은 남의 얘기가 아니다. 더 큰 아파트, 더 비싼 차, 더 나은 명품을 가졌다고 우쭐거리는 이들이 우리 주위에 숱하다.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그 석숭은 바로 우리의 모습임을 알 수 있다.
그대에게 재물은 무엇으로 보이는가. 그대 인생의 진짜 보물은 무엇인가. 장자는 삶을 소중히 하면 이익이 가볍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반면에 재물을 중시하면 삶을 경시하게 된다고도 했다.
재물이 쌓일수록 재물을 잃어버릴 근심도 커진다. 재물은 그대 인생의 보물이 아니다. 조금 더 멀리 보라. 큰 재물은 큰 속박일 뿐이다. 소유에 얽매이지 마라. 그러면 그대의 인생이 자유로워질 것이다. (본문 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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