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좋을 그림, 여행을 기억하는 만년필 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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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하면서 그곳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건 작은 꿈이었다.


 여행은 우리를 무척 설레게 하는 단어다. 지금 우리가 마주하는 가을은 여행하기 좋은 날로 손꼽히는 계절인데, 이미 몇 여행사에서 가을 단풍을 구경할 수 있는 여행 패키지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가까운 경주부터 시작해서 멀리 일본의 기요미즈테라까지 한 번 여행을 떠나고 싶다.


 그러나 여행이라는 것은 우리를 설레게 하지만, 한편으로 작은 쓸쓸함을 느끼게 하기도 한다.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사람은 언제나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이라는 게 우리의 공통된 인식이다. 나처럼, 블로그를 통해 겨우 몇십만 원의 수익이 전부인 사람에게 여행을 거의 사치에 가까운 행동이다.


 그래서 나는 내 두 발로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대신, 책을 읽으면서 그곳에 여행을 다닌 사람의 감성과 눈을 빌려서 여행한다. 때때로 여행지에 가보지 못했지만, 인터넷을 통해 그곳의 모습을 찾아보면서 상상으로 여행한다. 그곳의 카페에 가보고, 음식을 먹어보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언젠가 여행을 하면서 그곳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건 내 꿈이다. 무료함과 나태한 일상이 반복되는 이곳에서 벗어나 내가 모르는 새로운 곳에서 일상을 기록하는 일은 상상만 해도 즐겁다. 그리고 거기에 피아노 한 대만 있다면, 작은 곡을 연주하며 일상이 주는 평화로움을 맛보고 싶다.


평화로운 풍경, ⓒ노지


 바보 같은 상상이지만, 이런 상상을 누구나 한 번쯤은 해보지 않았을까? 우리가 마주하는 칙칙한 일상은 언제나 우리에게서 신선함을 뺏어간다. 예전에는 여자 친구를 기다리는 긴장감을 맛보며 첫 데이트를 즐긴 커플도 서로에게 익숙해지는 순간, 조금씩 불협화음을 내면서 서로가 밉상이 된다.


 일상에 무엇이 일어날지 알고, 무엇이 일어나지 않을지 아는 것은 정말 따분한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조금이라도 억지로 웃고자 개그콘서트를 보고, 내가 즐길 수 있는 일을 찾아 한다. 취미 생활조차 하지 않는 사람은 단순히 술을 마시며 시간을 보내는데, 나는 정말 그러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친구와 술을 마시면서 호탕하게 한 번쯤은 노는 것은 분명히 매력적인 일일 것이다. 그러나 매일 술을 마시는 것 이외에 취미 생활이 없다면, 그것은 이미 인생의 말로를 향해 내딛는 잘못된 첫발이 아닐까? 술은 우리가 외로움과 허무를 잊게 해주지만, 그건 '그 순간' 잊어버린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점점 술에 의존하게 되면 사람은 술 없이 살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망자가 되어버린다. 그래서 술은 우리가 항상 경계해도 부족하지 않는 물질이다. 술을 마시지 않는 내가 즐거움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어디까지 개인의 차이다. 나는 무료함을 달래고자 늘 책을 읽는다.


아무래도 좋을 그림, ⓒ노지


 위 사진의 <아무래도 좋을 그림>은 그렇게 만난 한 권의 책이다. 요즘처럼 가을 하늘을 종종 올려다보며 '어디 무작정 여행을 떠나고 싶다'고 생각할 때, 혼자 가을 햇볕을 쬐며 읽기 좋은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정말 편안한 기분으로 글과 그림을 읽어볼 수 있었다.


 책의 표지를 보면 만년필의 이미지를 볼 수 있다. 책의 작가는 여행을 다니면서 만년필로 스케치하며 작은 글귀를 더하는 취미를 가진 사람이었는데, 그가 그린 만년필 그림과 작은 글을 읽는 시가는 정말 한적했다. 조용히 혼자 차 한 잔을 마시며 생각에 빠지는 게 이런 기분일까?


 투박한 정교함이 묻은 만년필 그림은 사진으로 그 현장의 풍경을 보는 것과 다른 느낌을 준다. 과거에 몇 번이나 여행 에세이를 읽으면서 오늘의 따분한 시간을 보낸 적이 있는데, 사진으로 보면 바로 확 와 닿는 그곳의 풍경이 만년필은 천천히 선을 따라가며 풍경을 감상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리고 절대 어렵지 않은 저자가 덧붙인 솔직한 마음의 이야기는 때때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나도 여행을 떠나 가끔은 이런 글을 기록해보고 싶다.'는 욕심을 품게 했다. 7년 동안 네이버 파워블로그를 유지했다고 하니, 나도 블로그 7년 연속 우수블로거가 되면 이런 책을 만들 경험이 쌓일 수 있을까?


아무래도 좋을 그림, ⓒ노지


 그림을 좋아한다고 해도 잘 그리지 못하고, 피아노를 좋아한다고 해도 잘 치지 못하고, 여행을 떠나고 싶다고 해도 떠나지 못하는 게 나라는 인간이다. 이런 내가 그런 경험을 하게 되는 일은 과감한 실천력을 좀 더 강하게 품고, 무작정 어디로 떠날 수 있을 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삶이라는 긴 여행 속에서도 나는 단조로운 일상을 견디지 못해 종종 새로운 일을 벌이지 못해 안달일 때가 있다. 피아노는 그런 단조로운 일상에 조금 더 재미를 더해주었지만, 매일 피아노를 치면서 감정을 쏟아부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 내가 하는 블로그 활동에 좀 더 특색을 더하려고 하고 있다.


 그런 탓인지 나는 <아무래도 좋은 그림>의 저자처럼 블로그가 평범한 일상이 아니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일상적인 취미 생활을 넘어서 의무감을 느끼는 일이 되어버린 블로그. 매일 어떤 글을 쓸지 고민하고, 매일 우리 사회의 문제와 내가 가진 문제를 고민하는 과정은 과연 빛나고 있을까?


 아마 신 나는 기분으로 글을 쓸 때는 빛나고 있을 테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답답함에 찌푸리는 모습일 것으로 생각한다. <아무래도 좋은 그림>을 읽고, 서평을 쓰기 위해서 이렇게 있는 이야기 없는 이야기를 술술 풀어가는 지금은 조금 들뜬 기분이다. 이런 기분으로 계속 글을 쓸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어쨌든, <아무래도 좋은 그림>을 읽는 동안 나는 이 책의 서평으로 '아무래도 좋은 서평'을 써보고 싶었다. 그래서 오늘 이 책의 서평은 아무래도 좋을 내 이야기가 담겨 있다. 애초에 책 서평을 쓰는 데에 거창한 의무감을 품는 것보다 자연스럽게 내 생각과 삶을 빗대어 말하는 게 더 좋은 글이 된다.


 나는 책을 다 읽은 후에 이 서평을 쓰는 동안 저자의 블로그를 들어가 보았는데, 블로그를 방문하는 많은 사람과 편하게 소통을 하는 블로그를 볼 수 있었다. 내 블로그는 저자의 누적 방문자 수의 3배에 달하는 방문자를 가졌지만, 이런 소통은 없다. 나는 그동안 지나치게 고집쟁이로 있었던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내 스타일이라고 지레 어깨를 으쓱하며 화창한 가을 하늘 아래에서 읽은 <아무래도 좋은 그림>의 이야기를 마친다. 마지막으로 내가 고집하는 스타일을 위해서 책에서 읽은 '그곳의 일상을 보라'는 제목이 적힌 글을 남긴다. 이 글이 글을 읽는 당신의 마음에 닿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동년배들에 비해 외국을 많이 다니다 보니 '좋은 여행법'에 대해 물어오는 이들이 가끔 있다. 그런 게 있을 리 만무. 그래도 이왕 떠나는 여행 무언가 특별하길 바라는 이들에게 나의 대답은 언제나 한결같았다.

"그곳의 일상을 보라."

파리의 에펠탑이나 북경의 자금성을 보고 오는 여행을 타박하려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그것을' 보는 여행이 아니라 '그것만' 보는 여행이다.

...(중략)...

에펠탑만 쫓았던 사진은 여행에서 돌아온 후에도 에펠탑에 올라가려고 줄 섰던 이야기 외에는 떠올릴 게 없다. 돌아와 주변 사람들에게 파리에서 만났던 수많은 '경이로움'에 대해 얘기할 가능성은 언감생심 거의 없다.

여행은 어쩌면 파리의 에펠탑을 보는 것보다 에펠탑을 보러 가는 과정에 있다. 그 속에 담겨 있는 일상의 아름다움에 조용히 천착하는 것이, 적어도 내겐 여행이다. 시장은 이런 일상이 모인 가장 대표적인 공간이다. 그래서일까. 이국의 시장에서 나는 약간 '하이(하이)' 상태가 된다.


우리의 삶은 결국 직접 보면 아무것도 아니라서 지나칠지도 모를 수많은 일상이 모여서 이루어진다. 누가 내게 여행이 뭐냐고 물어온다면 그건 이 세상의 사소한 것들을 들여다보는 가치를 깨닫는 과정이라 말하고 싶다. (본문 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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