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열정페이는 어떻게 우리를 좀먹는가
- 시사/사회와 정치
- 2015. 8. 19. 07:30
우리 사회의 질을 떨어뜨리고, 우리를 분노하게 하는 열정페이
많은 청년이 좋은 기업에 취업하기 위해서 거치는 단계 중 한 계단이 바로 인턴으로 기업에 들어가서 경험을 쌓는 일이다. 좋은 기업에서 오랫동안 일한 경력이 있을수록 취업에 유리한 입지를 선점할 수 있어서 대기업 인턴 모집에는 거의 입사 경쟁에 버금갈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다.
그렇게 대기업에 인턴으로 들어가서 일정 기간 꾸준히 근무하게 되면, 곧장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제도도 있어 많은 사람이 몰릴 수밖에 없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 인턴 제도가 상당히 좋은 제도인 것 같다. 경험을 쌓는 동시에 소득도 올리고, 잘하면 정규직 채용까지 볼 수 있으니까.
그런데 우리 현실은 그런 기대치를 크게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인턴으로 근무하는 청년에게 정규직에 맞먹을 정도로 무리한 일을 시키는 기업이 부지기수이고, 임금도 제대로 주지 않을 때가 많다. 특히 정규직으로 채용해야 하는 시기가 다가오면 갖은 이유를 들이대면서 해고를 해버린다.
이후 다시 또 다른 인턴을 고용하여서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데, 자연스럽게 우리는 '인턴은 노예다.' 같은 불합리한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우리는 이런 불의에 저항해야 하지만, '너 아니라도 할 사람은 많다.'고 말하는 갑의 횡포에 그저 '내가 부족하니까.'이라며 자괴감에 빠질 뿐이다.
ⓒ김제동 톡 투유
지난 일요일(16일)에 방영되었던 <김제동의 톡 투유>에서는 우리 사회의 '분노'를 말하면서 청년의 열정페이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학생들에게 스펙을 명목으로 열정페이를 강요하는 기업의 담당자는 대체로 불합리한 대우를 "너 여기에 돈 벌러 왔니?"이라는 말로 받아들이게 한다고 한다.
김난도 교수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말에 많은 청년이 공감했던 이유는 그런 경험을 통해서 아픔을 겪어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단지 아프다고 말하는 것을 숨기는 게 아니라 진짜 아프다고 말해야 하고, 그 아픔을 해소하기 위해서 근본적인 문제를 고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열정페이는 단순히 청년 세대에게 큰 짐을 안길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경쟁력이 떨어지는 외부 불경제 효과를 유발할 수 있다.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을 하는 기업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면서 부당한 대우를 거듭 반복해서 받게 되면, 그 일에 흥미를 잃을뿐더러 기업에 대해 혐오감이 생기게 된다.
그리고 이는 해당 직종에 근무하려는 새로운 인재가 줄어드는 흐름으로 이어지고, 인재가 적어지면서 자연스럽게 경쟁력을 잃어버리게 된다. 경쟁력을 잃어버린 기업의 부채비율은 높아지고, 고용 감축을 통한 정책을 통해 또 한 번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면서 마이너스 흐름이 되는 것이다.
ⓒ김제동 톡 투유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대한 사람들의 요구는 경제적으로 보면 당연한 요구다. 소득이 생겨야 소비가 생기고, 비정규직으로 일한 기업에서 정규직으로 채용되는 일이 꾸준히 발생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더 좋은 인재가 들어올 수 있어 기업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아주 당연한 과정이 아닌가?
물론, 내 생각이 경제를 모르는 한 사람으로서 안일하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소득이 증가한다고 소비가 증가한다는 것은 일반적인 경제 상식에 불과하니까. 좀 더 복잡한 경제적 요소가 얽혀 소득이 증가하더라도 소비가 늘어나지 않는 정체에 빠질 수도 있는 확률도 꽤 높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것은 열정페이가 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열정 페이는 확실히 우리 사회를 좀먹는 하나의 바이러스다. 많은 청년이 열정페이를 통한 인턴을 겪으면서 정규직을 목표로 하기보다 '내가 기대했던 건 이런 게 아니었어.' 하면서 고개를 돌려버리는 경우가 많다.
한국의 청년 중 상당수가 해외로 이민을 가서 삶의 질을 높이고 싶은 욕심을 품는 데에는 바로 이런 과정이 있지 않았을까? 한국에서 인턴으로 일해보니 "너희 여기 돈 벌러 왔어?" 하고 말하는 상사의 꾸지람에 실망하게 되고, 막대한 업무와 개인의 인권이 보장되지 않아 아예 포기를 해버렸으니까.
인분교수, ⓒ그것이 알고 싶다
위 이미지는 얼마 전에 많은 시민의 공분을 샀던 인분 교수의 사건이다. 인분 교수의 사건 또한 열정 페이와 무관하지 않은데, 열정페이의 가장 큰 문제점을 반복할수록 사람들 사이에서 죄책감이 무뎌진다는 점에 있다. '나 때도 그랬었으니까, 너도 그래야 해.'이라는 생각은 얼마나 위험한 생각인가!
실제로 인분 교수의 사무실에서 일했던 직원들은 거리낌 없이 저런 행동을 반복했다고 하는데, 이는 사회적으로 치명적인 소시오패스 혹은 사이코패스에 가까운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그들도 분명히 죄책감이 처음에는 있었겠지만, '단체'와 '상사의 명령'이라는 두 코드가 악마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지난 <김제동의 톡 투유>에서 최진기 선생님께서 미국의 의료과실 사건 중 상당수가 상사의 폭언이 원인이 되어 발생한다고 한다. 사람이 사람에게 존중을 해주지 않으면, 우리가 꿈꾼 사람이 사람 답게 살 수 있는 사회는 허언에 불과하고, 손에 잡히지 않는 머나먼 환상에 불과하다.
이제 더는 열정페이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그 열정페이를 이용해서 악하게 사람을 부려 먹고, 한 사람이 사회에 재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마음을 망쳐버리는 고용주는 단호하게 처벌을 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여기서 내부 고발자를 보호해주는 제도도 함께 갖춰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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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직도 제대로 된 최저임금조차 받기 어려운 사회에서 살고 있다. 최저임금을 기대하는 행동을 가리켜 사치, 혹은 '아직 인턴 주제에 무슨!'이라는 말을 들으면서 멸시에 시달려야 하는 사회환경은 우리가 더 나은 사회로 발전하지 못하고,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우리가 이런 일에 분노하는 이유는 이 일이 정당하지 못한 것이기 때문이다. '나도 그랬었다.'이라는 말로 고통을 주는 것을 정당화하지 말자. 그것은 변명에 불과하다. 자신이 과거에 그런 부당함을 겪었다면, 다음 세대에는 그런 부당함이 겪지 않도록 해주는 것이 바람직한 사회의 모습이지 않을까?
영화 <변호인>에서 보았던 송강호 변호사의 "우리 애들 건우, 연우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로 브레이크 안 걸리는 세상에서 살게 할라고예. 사무장님 아 병국이도 이런 세상에서 살게 하믄 안되지요!"이라는 대사가 떠오른다. 우리가 가슴에 새겨야 할 것은 바로 이 말이라고 생각한다.
<김제동 톡 투유>에서 김제동은 "최소한의 인간적인 품위를 지키며 생활할 수 있는 기본적 사회 보장 장치가 있어야 덜 불안하고, 덜 분노가 생깁니다."이라고 말했다. 스펙을 담보로 인턴을 학대하는 사회와 기업은 결코 경쟁력을 키울 수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부당하다면, 우리는 고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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