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 권리를 잊어버린 한국의 아이들, "그런 것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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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 권리를 모르는 아이들, "당신과 당신의 아이는 놀 권리를 가지고 있나요?"


 수능 시험이 끝나고, 하루가 멀다고 수능 시험 성적 비관으로 자살한 수험생의 이야기가 보도되며 사람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이번 수능 시험에서도 오답 논란이 벌어지면서 많은 사람이 뉴스에 집중하고 있다. 그래서 수능 시험 이후 성적 스트레스와 고민으로 앞으로 살아갈 시간을 포기한 아이들의 소식은 더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나 싶다.


 어떤 사람은 이런 아이들의 모습을 가리켜 "겨우 공부하는 게 뭐가 힘들다고 자살을 하느냐? 1년 더 공부하면 되는 것 아니냐?" 같은 무책임한 말을 하기도 한다. 그런 말은 공부의 무게를 느껴보지 못한 사람이기에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거다. 우리 수험생에 대해 이런 말을 하지 말아요》이라는 글에서 이야기한 그 어른처럼 단 한 번도 공부로 인해 아파했던 적이 없을 테니까.


 그러나 공부로 인해 부모님과 갈등을 겪고, 성적이 올라가지 않자 혼자 '끙끙'거리며 몇 시간이나 방에 틀어박혀 고민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왜 수험생들이 저런 비극적인 선택을 하는지 알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나도 재수 성적이 더 떨어져 버렸을 때 그런 시간을 보냈다.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고, 무엇을 하고 싶은 기력조차 없었다.


 성적이 좋지 않아 고꾸라져서 무릎이 까여 피가 흐를 때는 정말 죽을 듯이 아프다. 하지만 이런 때에는 다시 일어나야 한다고 어른들이 말한다. 아프니까 청춘이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야 하는 게 청춘이라면서. 그런데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시간을 주지 않은 것도. 넘어지면 두 번 다시 일어나지 못한다고 말한 것도 바로 어른들이다. 어른들이 아이들이 다시 설 힘을 빼앗아 버린 것이다.


아이들의 놀 권리, ⓒ노지


 얼마 전에 나는 '한국의 아이들은 놀 권리를 모른다'는 것이 보도된 기사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아마 이 기사를 읽은 사람들은 '맞아. 우리 아이들은 너무 놀지를 못해. 매번 학교에 가고, 야자를 하고, 학원에 가고, 학원에 가고, 학원에 가고, 복습하고, 인터넷 강의를 듣고… 같은 행동의 반복이니까.' 같은 안타까움을 표하지 않았을까? 우리 주변에서 보이는 아이가 그렇고, 어릴 적의 우리가 그랬었으니까.


 학교에서 하는 '강제 야간 자율 학습'을 하고 싶지 않더라도 학교에서는 '다른 아이들도 다하는데, 왜 너만 안 하려고 하느냐?'고 말하면서 아이의 자유를 빼앗는다. 이름이 '야간 자율 학습'인데 사실상 자율은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외에도 방학 보충 학습, 방과 후 보충 학습도 사실상 수업 진도를 빼면서 아이들에게서 선택권을 이미 빼앗아 버린다.


 이건 고등학생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초등학교부터 그렇다. 초등학교 때부터 아이들은 자발적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없다. 그저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공부해야 하고, 공부해야 하고, 또 공부해야 한다. 어른들은 "이게 다 너를 위해서 그러는 거야."이라는 말로 아이들의 놀 권리를 빼앗는다. 아니, 그 이전에 '놀 권리'이라는 것을 아예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래서 '한국의 아이들은 놀 권리를 모른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고, UN 아동 인권 협약에는 '모든 어린이는 충분히 쉬고 놀 권리가 있습니다'이라고 명시되어 있음에도 한국에서는 어린이들이 좀처럼 놀지 못하는 것이다. 과거 《아빠! 어디가?》에서 볼 수 있었던 해외의 어린이와 한국의 어린이가 시간을 보내는 모습의 차이가 바로 그 대표적인 예라고 말할 수 있다.


[문화 이야기/방송과 행사] - 아빠 어디가를 통해 본 씁쓸한 한국 청소년들의 현실


ⓒMBC 아빠 어디가


 지난 11월 20일부터 23일까지 부산 해운대 벡스코에서 'G-STAR 2014'이라는 국제 게임 전시회 행사가 열렸었다. 당시 행사장에서는 정말 많은 청소년이 행사장을 방문해 게임을 즐기고, 각 부스의 이벤트를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런 청소년의 모습을 보면서 '정말 열정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동시에 '지금이 아니면 놀 수 없다는 절박함'이 보여 씁쓸했다.


 오래전에 서울 코믹 월드에 갔었을 때에도 어느 부모님이 아이를 행사장에 데려다 주면서 "오늘만 노는 거야. 갔다 오면 다시 공부해야 해."이라며 조건부 자유를 주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느꼈었다. 아마 대체로 한국의 청소년(이하 어린이 포함)이 가지는 놀 권리는 이런 식으로 언제나 '공부'가 기본이 되고, 그것을 충족시켜야만 누릴 수 있는 것 같다. (부모의 사랑처럼)


ⓒ한수진의 SBS 전망대


 위에서 읽을 수 있는 시를 읽어보자. 겨우 초등학교 4학년이 쓴 시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가슴이 아파져 오는 시가 아닐까 싶다. 정말 저 나이 때에는 학원에서 밤 9시까지 공부를 하는 것보다 친구들과 공원이나 놀이터 등의 문화 공간을 돌아다니면서 노는 것이 가장 좋은 시기다. 하지만 겨우 초등학교 4학년인데도 밤 9시까지 학원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 거다. (출처)


 이런 아이들에게 '놀 권리가 있으니 넌 놀아도 된다.'고 말하면 어떤 기분일까? 아마 그 아이는 손사래를 치면서 "아니에요. 시간이 없어서 놀 수가 없어요. 학원 빼 먹고 놀면, 엄마한테 혼나요." 같은 말을 하지 않을까? 아이만이 아니라 부모도 "놀 권리요? 그런 권리도 있어요? 지금 애한테는 공부가 제일 중요해요. 노는 건 나중에 대기업에 취업하고 해도 늦지 않아요."이라고 말하지 않을까?


 그렇게 오늘의 행복을, 오늘의 자유를 뒤로 미루면서 언제나 불행한 매일매일을 반복한다. 모든 부모가 그런 건 아니지만, 이런 부모가 적지 않기에 한국 청소년의 행복 지수는 꼴찌를 기록하고, 자살률은 1위를 기록하는 아주 대단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놀 권리를 이야기하면 '피식' 비웃고, 우리 아이에게 이상한 것 가르치지 말라고 말하는데- 어찌 더 나아질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렇게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점차 아이들의 행복을, 웃음을 되찾아주기 위해서 노력하는 부모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공부가 모든 것이 되는 게 아니라 다른 프로그램이 잘 되어 있는 학교를 고집하는 부모님이 있고, 아이에게 공부를 강요하기보다 문화 체험 활동을 통해 다양한 것을 배우게 하는 부모님이 있으니까.


 아이들에게 자꾸 공부만 강요하면서 궁지로 몰아붙이게 되면, 아이들은 기댈 곳이 없어져 버린다.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장소를 잃어버리게 된다. 학교와 집, 학원 모두 자신을 괴롭히는 장소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민감한 시기에 가출 등의 일탈을 하거나 우울증에 걸리거나 자존감이 무너지는 상처를 입게 되는 것이다. (놀 권리를 가지지 못했기에 웃을 수 없었고, 행복하지 않았다.)


 '집이 너무 싫어요.'이라는 말이 아이의 입에서 나온다면, 그건 부모의 교육이 실패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명심하자. 우리 어른도 힘들 때에는 놀고 싶은 것처럼, 아이들도 놀고 싶은 때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놀 권리를 지켜주는 게 바로 좋은 부모, 좋은 교사, 좋은 어른의 역할이라는 것을. 때때로 자유롭게 놀아야 행복할 수 있고, 놀아야 괴로움도 이겨낼 수 있는 법이다.


 혹시 놀 시간을 주면 언제나 컴퓨터 게임만 한다고 나무라지 말자. 그건 아이들이 다른 노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 때에는 부모가 함께 어디 공원을 가거나 영화를 보러 가거나 연극을 보러 가거나 등의 다양한 체험 활동을 통해 함께 어울려주는 게 중요하다. '너 때문에 내가 시간을 소비해서' 같은 남 탓을 하는 게 아닌, 부모 자신부터 놀 권리를 찾는 게 제일 먼저다.


 그렇게 함께 웃을 수 있고,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어날 때, 비로소 아이는 시험 성적으로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살면서 넘어져서 몸이 진흙투성이가 되더라도 다시 일어나서 웃는 얼굴로 앞으로 달려나갈 수 있는 사람이 된다. 그게 바로 청소년의 행복 지수를 높이고, 청소년의 자살률을 줄일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니까.


 이 글을 읽는 사람에게 묻고 싶다. "지금 당신의 아이는, 아니, 당신은 놀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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