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악이었던 9월 추석 명절을 되돌아보며
- 시사/사회와 정치
- 2014. 9. 13. 07:30
지금까지 명절 중 역대 최악이었던 지난 2014년 9월 추석 명절 회고록
추석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명절이라고 불리는 명절이다. 입추가 지나고, 가을에 있는 추석은 수확의 계절을 축하하는 의미와 함께 가족이 오손도손 모여 즐겁게 지내는 날이다. 비록 가족과 크고 작은 불화가 있더라도 이날 정도는 모두 얼굴에 '웃는 가면'을 쓴다. 그리고 곁에 두기 싫은 상대와 갈등을 빚더라도 웃으면서 어떻게 해서라도 즐거운 시간으로 남기기 위해 애를 쓴다. 그게 우리가 맞이하는 추석이라는 명절이다.
그러나 2014년 우리는 그 추석을 마냥 웃으며 보낼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가계 부채는 해를 갈수록 늘어가면서 정부는 그 부채를 해결할 방안을 마련하기보다 '대출을 받아서 집 사고, 학교에 가고, 먹고 사는 생활을 해라.' 등의 대책을 내놓으면서 거품만 더 늘리고 있다. 그 상황에서 자영업자와 일반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은 늘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어 추석이나 설날 같은 명절을 반기지 않는다. (그런 날에 소외감을 느끼는 가족 모임보다 그냥 일이나 하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또한, 지금 우리나라는 세월호 사고 이후 지지부진한 뒷걸음질을 치며 나라의 많은 상황이 악화하고 있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지고 진상 규명과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을 안전한 대책을 요구하는 유가족의 요구는 철저히 무시되고, 세상이 외면하더라도 목소리를 높이는 그들 앞에서 먹자 집회를 펼치는 비인간적인 일도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 원래부터 극과 극으로 나누어지는 세상이고, 우리나라 사회였지만… 이번 2014년 유독 더 심한 것 같다.
많은 사람이 바보 같은 웃음을 지으면서, 행복한 웃음을 지으면서 시간을 보낼 때에도 누군가는 도움의 손길을 기다린다. 이건 우리 사람이 사는 세상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미국, 일본, 유럽 등 많은 지역의 국가가 그렇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날에 작은 기부를 하기보다 내 배를 채우는 데에 더 돈을 쓴다. 《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이라는 책에서는 이 현상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는데, 이건 우리가 이기적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갑작스럽게 추석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건 다른 특별한 의도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저 즐겁게 추석을 보내는 것도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런 날에 소외된 사람들을 생각하며 '이 순간의 내 행복은 그 사람들의 슬픔이 있기 때문이다.'는 사실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강했다. 그리고 이번 9월에 내가 겪은 추석에 일어난 '역대 최악'이라고 말할 수 있는 해프닝 속에서 마음 깊이 느낄 수 있었던 우리 사회의 단절과 소외, 갈등에 관해 이야기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추석 아침 식사, ⓒ노지
위에서 볼 수 있는 사진은 이 글을 키보드를 두드리며 쓰고 있는 9월 9일 아침에 내가 먹었던 아침 식사다. 명절인 추석에 왜 이런 음식으로 아침을 먹느냐고 의아함이 들지도 모르겠지만, 내게 많은 사람이 모여서 불편한 감정이 들어가 있는 그런 식사보다 이렇게 간단히 혼자 먹는 음식이 훨씬 더 맛있고 먹을 만하다. 서로 얼굴을 보기도 싫은 사람끼리 모여 앉아서, 서로 불편한 감정을 꼭꼭 숨긴 채 먹는 식사가 입으로 제대로 넘어갈 리가 없지 않은가?
나와 엄마는 9월 8일 오후 밀양에 위치한 외할머니댁을 방문했었지만, 9월 8일 저녁에 집으로 돌아왔다. 원래 외할머니댁에 가는 조건이 '오늘 가서 오늘 돌아온다'는 조건이었기에 나는 거기에 동행했고, 많은 친척이 모여서 억지로 무엇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불편한 감정을 내색하지 않은 채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일은 나이를 먹은 권위주의에 깊이 빠져 있는 어른들과 나 사이에 크게 갈등이 빚어지면서 모두 엉망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 일이 일어나고 나는 가슴 속 깊이 느꼈다. "정말 우리나라는 이런 권위주의 의식에 빠진 사람이 '이렇게 살아야 한다.'며 젊은 세대를 망가뜨리고 있으니 엉망이 될 수밖에 없구나!"라는 사실을 말이다. 아이가 부모의 말을 듣고, 어른의 말을 듣는 건 분명히 '도덕'이라는 예절로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른이 언제나 자신의 주장을 강력히 주장하며 모든 것을 자신에게 맞추려고 해서는 안 된다. 개인을 존중하지 못하면 그게 어른인가?
그런데 여전히 기성세대는 그런 일이 잘되지 않는 것 같다. 몇 번이나 정중히 거절하고, 그런 일은 힘들다고 했음에도 억지로 자신의 고집을 밀고 나가기에 늘 다른 세대와 트러블을 겪는다. 그러면서도 어른에 저항하는 아이를 향해 꾸짖고, '네가 바뀌어야 한다'고 억지 주장을 펼치는 그런 사람을 보면 기가 막힌다. 도대체 어떻게 저런 식으로 주변 사람을 대하고, 어떻게 아직도 저런 구시대적 가치관을 다른 세대에게 강요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추석이 너무 불편하다. 그런 명절이라고 해서 웃는 얼굴로 다른 사람 앞에 서 있어야 한다는 게 너무 싫다. 철저히 가치관이 다른 세대와 갈등을 빚는 것도 싫고, 그저 바보처럼 멍 때리며 있을 수밖에 없는 분위기도 싫고, 이런 명절에 돈이 있는 친척 사이에서 홀로 남몰래 눈물을 훔치는 어머니를 보는 것도 싫고, 매번 아버지 문제로 몰래 하는 질문에 대답하는 것도 싫고, 진실을 숨기면서 거짓말로 얼굴을 보이는 사람을 마주하는 것도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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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가장 싫은 건 나다. 그런 자리에서, 그런 식으로 있을 수밖에 없는 무기력한 내가 정말 싫다. 왜 사람들이 이런 추석 같은 명절에 해외여행을 다니며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려고 하는지, 왜 이런 명절에 다른 가족과 모여서 시간을 보내기보다 혼자 시간을 보내는 쪽을 선호하는지 정말 잘 알 수 있으니까. 내가 부족하고, 못났기 때문에 그런 것이겠지만… 정말 뼛속 깊이 아픔을 느껴야만 하는 그 연휴 기간의 짧은 친척 모임은 "엿 먹어!"라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이번에는 역대 최악의 큰 트러블이 터지면서 2014년 추석 명절은 '최악'이라는 수식어가 붙으면서 끝이 났다. 나는 두 번 다시는 억지로 그런 경험을 하고 싶지도 않다. 그런 퍼포먼스를 벌이지 않으면, 개인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그런 숨 막히는 공간에 가기 싫다. 그런 곳에서 체면치레를 해야 한다며 거래처 거래 대금도 제때 주지 못하는 어머니가 가까스로 돈을 마련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싫다. 도대체 이게 무엇을 위한 명절이라는 말인가?
글쎄, 우리 집안이 평범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모두 한곳에 모여서 즐거운 듯이 웃고, 철없는 아이들은 어른의 그 모습을 보며 즐거워한다. 하지만 그 속을 파헤쳐 보면 가진 돈의 크기에 따라 목소리 크기가 달라지고, 매번 몰래 쑥덕쑥덕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짜증이 치밀어 오른다. 개인을 존중해주지도 않으면서 무조건 어른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나무라고, 가진 게 많다고 기고만장해 하는 모습을 보면 구토가 올라올 지경이다.
역대 최악이었던 2014년 9월 추석 명절을 통해 나는 다시금 뼛속 깊이 칼로 새기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정말, 나는 이런 명절이 싫다.
[시사 이야기/사회와 정치] - 추석이 마냥 달갑지만 않은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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