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싱어의 '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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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싱어가 말하다, 어떻게 세계의 절반을 가난으로부터 구할 것인가?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는 곧잘 누군가를 위해 기부를 하거나 보이는 혹은 보이지 않는 선행을 하는 사람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정말 유감스럽게 우리는 그런 사람이 많지 않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대체로 많은 사람이 어려운 사람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단지, '한국' 내에서는 그 이미지가 퇴색해 부정적인 시선이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한국의 많은 사업가가 매해 어느 기관에 기부하고 있는데, 이는 '정말 도움을 주고 싶어서'라는 이유보다 '세금 공제 혜택을 받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 되어 보는 시선이 썩 좋지 않다. 게다가 정치인이 매번 선거기간 때만 하는 봉사활동 같은 선행 기부는 이미 하나의 퍼포먼스로 자리 잡아 많은 시민으로부터 '저 녀석 또 쇼하고 있네.'라는 비난을 쉽게 피해가지 못한다.


 더욱이 요즘처럼 불신이 많은 우리 한국 사회에서는 '내가 내는 기부금이 정말 불쌍한 사람을 위해서 이용이 되는가?'는 질문에 확신을 하지 못해 기부 문화가 움츠러들기도 한다. 블로그에 작성했었던 《세월호 성금은 과연 올바르게 쓰일 수 있을까?》라는 글에서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하기도 했었는데, 결국 우리는 기부도 '계산'을 피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내가 너무 삐딱하게 기부 문화를 보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대체로 기부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다 비슷하다. 사람들은 어떤 특정 조건 내에서는 모두 '작은 선행'을 베풀려고 하지만, 그 특정 조건이 벗어났을 때에는 '작은 선행'을 베풀려고 하는 경향이 옅어진다. 신기하게도 우리의 기부와 선행은 '이기적인 마음'에서 더 잘 일어나는데, 이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하고 있는 책을 얼마 전에 우연히 읽어보았다.


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 ⓒ노지


 바로 위에서 볼 수 있는 《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라는 제목을 가진 책이다. 이 책은 꽤 오래전에 발매가 되었던 책인데, 나는 다른 책에서 이 책에 대해 짧은 이야기를 읽다가 '한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구매해서 읽게 되었다. 평소 내가 자주 이용하는 응24 서점에서는 이미 팔리지 않는 책이었지만, 요술램프 서점에서는 아직 판매되고 있어 운 좋게 구매할 수 있었다.


 이 책은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우리가 기부하는 데에 움직이는 마음, 그리고 어떤 식으로 기부하게 되는 가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책이다. '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라는 제목과 책이 설명할 내용이 꽤 어렵게 다가올지도 모르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 저자의 논리를 따라가며 '호오, 그렇군!'이라며 여러모로 흥미롭게 책을 읽어볼 수 있다.


 《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는 크게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가난에 빠진 세계를 돌아보라'에서는 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 구할 것인가 말 것인가, 기부를 거부할 때 우리가 내세우는 10가지 논리들… 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2부 '인간은 정말 이기적인 동물인가'에서는 기부를 주저하게 만드는 6가지 심리적인 요인들, 기부 문화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3부 '남을 돕는 최선의 방법은 무엇인가'에서는 한 생명을 구하는 데 얼마면 될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4부 '기부의 새로운 기준에서는 '기부의 새로운 기준'에서는 내 아이와 남의 아이, 너무 지나친 요구인가?, 기부의 공식적인 기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 모든 부제의 작은 이야기 하나 하나는 졸음을 몰고 오기보다 눈동자를 반짝이며 '음음, 확실히 그래! 나도 그래서 기부를 거부하고 있는 거지!'라고 생각하거나 '결국, 우리 사람은 이기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구나. 그럼에도 기부를 한다는 건 꽤 재미있는 이야기야.' 등의 생각을 하며 책 자체에서 읽을 수 있는 이야기 하나하나를 즐길 수 있었다. 무엇보다 사회 문제도 있었고.


책임이 불분명하면 나서기 어렵다


우리는 또 도와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전적으로 주어지지 않을 때, 사람에게 별로 적극적이 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뉴욕 퀸즈에 살던 젊은 여성인 커터 제노비즈의 사건은 미국인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그녀가 잔인한 폭행 끝에 끝내 숨지는 동안, 주변 아파트의 여러 가구에 살던 주민 38명이 그 일을 보거나 들었다고 하면서도 한 사람도 그녀를 도우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제노비즈의 비명을 들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는데도 심지어 경찰에 신고 전화조차 걸지 않았다는 사실은 "우리가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되었는가" 하는 국민적 논란을 불러왔다.

키티 제노비즈 살해 사건과 그에 따른 여론의 비등으로, 존 달리와 빕 라탕은 '책임의 불분명성' 현상을 탐구하게 되었다. 그들은 학생들에게 시장조사 설문에 참여해달라고 하고는, 그들을 학생들에게 시장조사 설문에 참여해달라고 하고는, 그들을 한 젊은 여성이 기다리는 사무실로 안내했다. 그녀는 학생들에게 자리에 앉아서 설문지를 작성해달라고 했다. 그러고는 그 사무실과는 커튼 하나로만 분리된 옆방으로 들어갔다. 몇 분 후, 학생들은 그녀가 의자 위에 올라가 뭔가 높은 곳에 있는 물건을 꺼내려다 의자에서 굴러 떨어진 듯한 소리를 들었다. 그녀는 소리를 질렀다. "아, 이런 맙소사. 아이고, 발이야……." "우……움직일 수가 없네. 아야, 내 발목. 이…… 이걸…… 치울 수가 없어……." 신음과 비명은 1분 정도 계속되었다. 방에서 혼자 설문지를 작성 중이던 학생 중에서 70퍼센트가 도와주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역시 설문지를 작성하는 듯한 사람이 옆에 있고(사실은 조교였다), 그 사람이 모른 체 하고 있을 경우에는 7퍼센트만이 도와주려 했다. 진짜로 두 명의 학생이 방에 있을 때조차, 한 명만 있을 때보다 구해주려 나서는 비율은 낮았다. 책임의 불분명성은 일정한 행동 억제 효과를 낸다. '방관자 효과'라는 것이다. 다른 실험 역시 비슷한 결과를 냈다. (p82)


 아마 윗글에서 읽어볼 수 있는 사례를 접했던 적이 있었을 거다. 실제로 경험한 사례도 있었을 것이고, 뉴스를 통해 비슷한 사고가 보도되는 모습을 보며 '어떻게 우리 사회가 이렇게 엉망일 수가 있지!'라며 격분했던 적이 있었을 거다. 하지만 우리가 그 상황의 주인공이 되면, 어쩌면 우리도 비슷하게 행동할지도 모른다. '결코, 나는 그렇지 않아.'라고 자신하면서도 말이다.



 실제로 많은 기부 문화에는 그런 의도가 크게 작용한다. 다른 나라의 다른 사람을 돕는 데에는 인색하지만, 내 나라의 같은 사람을 돕는 데에는 훨씬 더 많은 기부가 되는 것이나 2천 명의 10%를 돕는 것보다 2백 명의 10%를 돕는 것을 선호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전자 쪽이 더 많은 사람이 해당하지만, 우리는 '실질적으로 내 도움이 미치는 것'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부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내가 돕게 될 대상이 누군지 알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원칙이 언제나 강하게 작용하고, 그런 캠페인을 벌이는 기부 단체가 좀 더 많은 사람으로부터 기부금을 받는다. 어떤 사람이 내가 낸 기부금이 누구에게 갈지도 모르는 데, 선뜻 기부하려고 하겠는가? 특히 한국처럼 안이 쉽게 썩어있는 나라에서는 그런 기대를 하기가 힘들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서는 언제나 합리적인 선택을 하도록 교육을 받고, '다른 사람보다 일단 내가 먼저 사는 게 중요하다'는 사회 분위기는 나라 정책을 움직이고 있기도 하다. 복지제도가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 것도 여기에 이유가 있고, 한국이라는 나라가 다른 나라를 돕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비용이 현저히 적은 것도 거기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뭐, 나는 이런 생각을 《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를 읽으며 할 수 있었다. 책 자체의 분위기는 이전에 읽었던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와 상당히 비슷하다. 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마이클 샌델의 책은 '답을 제시하지 않고, 고민하는 것'이라면… 피터 싱어의 이 책은 '어쨌든, 우리가 기부하는 건 중요하다'고 말하는 결론이 있다는 점일까?


 나는 많은 대학생이, 많은 지식인이, 좀 더 여러 분야의 사람이 이 책을 한 번 읽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책은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한 번쯤은 고민하고, 답을 찾기 위해 시간을 보내는 데에 투자할 가치가 있는 책이 아닐까 싶다. 그냥 기부 문화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사람과 사회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기에 절대 지겹지 않을 것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사람은 단지 상품을 소비하고 쓰레기를 배출하는 것보다 더 의미 잇는 삶을 살고 싶어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사람이 인생을 돌이켜보며 자신이 한 일 중에서 가장 의미 있다고 여기는 일은 남들을 위해 자신이 사는 곳을 좀 더 좋은 곳으로 만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보면 되는 거예요. 내가 누군가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큰 동기 부여가 세상에 있을까요? (p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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