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어도 추석같은 명절이 꺼려지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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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어도 추석같은 명절이 꺼려지는 이유



 추석. 추석은 우리나라에서 자랑하는 대표적인 전통명절 중 하나이다. 추석과 같은 명절에는 온 식구가 다 모여서 떠들썩하게 여러가지 일을 하고는 한다.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추석은 즐거운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어릴 때부터 추석은 즐거운 것이 아니였다. 할 수만 있다면, 달력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것이였다. 

 현재 22살이라는 나이를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까지 추석이나 설날같은 명절이 정말 싫다. 오늘은 그 이유를 잠시 이 글에서 써보려고 한다. 이것은 나의 고질적인 문제이기도 하고, 지극히 나의 입장에서 쓰여진 글이므로, 대다수는 공감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먼저 생각해주기를 바란다. 



 블로그를 통해서 나를 오랫동안 알아온 사람들은 내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 대충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의 학교생활은 그저 맞고, 울고, 아이들의 노리개가 되었다가 집으로 오는 것이 일상이였고, 집에서는 늘 일어나는 부모님의 충돌 때문에 늘 골머리를 썩었다. 나는 그렇게 생활하면서, 사람이라는 그 존재 자체에 대해서 회의적으로 생각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사람이 많거나 시끄러운 곳은 정말 싫어하게 되었다. 아니, 여기서는 경멸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 나에게는 추석이나 설날 같은 명절은 정말 최악이었다. 그건 내가 학교에서 쉬는시간마다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거나 구타를 당하는 시간이랑 똑같은 시간이었다. 추석이나 설날같은 명절에는 최소 우리가족 4명이 다 집에 있는 경우가 많다. 다른 집 같으면 화목하고 밝은 분위기이겠지만, 우리집은 살얼음판 같은 분위기가 명절 내내 이어진다. 

 하지만, 그나마 집에 있으면 낫다. 왜냐하면, 집에 있으면 살얼음판 같은 분위기에서 가끔 큰 싸움이 일어날 때도 있지만, 서로 터치를 안하려고 하기 때문에, 나는 방에 틀여박혀서 책을 보거나 컴퓨터 게임을 했으면 됬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외가나 친가로 이동을 할 때이다. 여기서 매번 싸움이 일어난다. 나는 아마 '죽인다, 죽자'를 비롯한 각종 비속어를 우리집에서 가장 많이 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디를 가네, 안가네 하면서 싸움이 시작되고, 차를 몰고 나가더라도 '확 쳐박아서 다 죽자'하면서 아빠가 위험한 운전을 하기도 하였다. 실제로 몇 번이나 큰 교통사고가 날 뻔한 적도 있었다. 아마, 아빠도 스스로 죽는 것은 무섭거나 싫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명절마다 이 같은 일이 반복되는데, 그 당시에 어렸던 내가 어디를 가고 싶겠는가? 마치, 죽으러 가는 것 같은 기분일 것이다.  



 일반적으로는 이런 일이 가장 힘든 것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래도 가족들끼리 모이면 좀 더 낫지 않겠나?'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친가쪽에 가면 사람이 별로 없기 때문에, 집에 있는 것처럼 있는 내내 살엄음판 비슷한 분위기가 계속 된다. 외가 쪽에 가면, 정말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 곳에서도 자리가 없다. 다들 각자 할 일을 하고 있는데, 혼자서 고립되어서 정말 미칠 것 같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논다. 외사촌 형이나 누나, 동생이 있긴 하지만, 나와는 다른 종류의 인간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나는 섞이기가 힘들었다. 생각해보라. 학교에서는 매번 구타만 당하고, 항상 놀림감만 되어서 사람자체가 싫고, 집에서는 늘 일어나는 문제 때문에, 가족자체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 그런 장소가 그 당시의 나에게 어떻게 느껴졌겠는가?

 그래서, 나는 어릴 때부터 그러한 외가쪽에 가면 항상 책을 들고 다녔다. 그냥 마루에서 책이나 읽는게 그나마 속편하기 때문이다. 나이를 조금 먹어서는 MP3, PMP, PSP 같은 것을 들고 다니면서 혼자서 애니메이션이나 영화를 보거나 게임을 하거나 책을 읽었었다. 사람들 사이에 잘 섞여들어가지 못하고, 시끄러운 것을 정말 경멸할 정도로 싫어하는 나에게는 그것이 최선의 방책이었다. 


 그렇게 어린 시절의 명절을 보내면서 자연스럽게 나는 명절이 되더라도, 쉽게 순화를 되지 못했다. 조금씩 학년이 올라갈 때 마다, 이런저런 사회적 지식이 쌓여가고, 내적인 불만은 쌓여갔다. 명절 때마다, 어른들이 돈을 걸고 하토(또는 훌라같은 도박)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경찰에 불법도박으로 신고해버릴까?'라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또, 나는 즐겁지도 않은데 다들 웃고 시끄럽게 떠들때 마다, '여기서 내가 칼로 다 죽여서 이 시끄러운 소음을 없애버리면, 평생 이런 일은 없지 않을까?'하는 위험한 생각도 수십번을 했었다.

 그 당시에, 심리테스트에서 '극심한 심리적 불안으로 자실같은 위험한 행동을 할 수도 있음. 주의요망'이라는 판단을 받았던 나에게는 정말 힘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이라고 해서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런 식으로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과거라고 해도 그리 먼 과거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은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는 법이다.



 나는 기초적인 사회생활을 해나가면서, 사람들 사이에 섞이고 어울리는 방법을 나름대로 터득했다. 지난번에 '내가 오타쿠에 히키코모리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라는 글에서 언급을 했듯이, 수 많은 인간관계의 책을 읽으면서, 나를 바꾸기 위해서, 나를 조금 더 개선시키기 위해서 노력해왔다. 그나마 조금 더 나아진 나이지만, 아직까지도 나는 그러한 자리가 너무 불편하다. 왜냐하면, 가족내의 문제는 지금도 계속 되고 있고, 조금 바뀌기는 했으나 내 성격은 거의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모여 있어도, 늘 혼자 있어야 되기에,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도, 편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도 없는 곳이기에, 그러한 곳에 가는 것이 정말 싫다. 나 이외에는 전부 웃으면서 지내는 모습을 보는 것도 괴롭다. 그런 나 자신에 눈물이 나고, 그 상황 자체에 짜증이 난다. 약을 먹지 않으면, 그러한 장소에 있는 것 자체가 힘든 내가 한심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나이를 먹어도 아직까지 추석이나 설날같은 명절이 너무나도 꺼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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