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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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라의 지도자도 하지 않은 사회적 약자의 등을 토닥여 준 교황의 발걸음


 오늘 발행되는 이 글의 초고를 작성했던 건 8월 18일이다. 8월 18일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4박 5일간의 방한 일정을 마치고, 다시 로마로 돌아가는 날이다. 겨우 4박 5일간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결코 짧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프란치스코 교황이 그 기간 동안 우리나라와 우리 국민에게 끼친 영향은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교황이 다니는 곳마다 셀 수 없을 정도로 사람이 모였으며, 그가 손길을 내미는 곳은 늘 외면받던 약자가 있던 곳이었다. 비록 처음 한국에 방문했을 때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영접에 따라 거북한 구 사열식을 보아야 했지만, 그 이후로는 늘 웃음을 띤 채 사람들과 만나며 분주히 발걸음을 옮겼었다.


 글의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여기서 이거 하나는 분명히 이야기하고 넘어가자. 박근혜 대통령이 프란치스코 교황 앞에서 군 사열식을 보여준 모습은 정말 큰 실수였다. 그 장면을 본 많은 시민이 '참, 지금의 우리나라 수준을 잘 보여준다.'라며 혀를 차며 비아냥거릴 정도였다. 일부 사람은 뭐가 문제냐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이는 누가 보더라도 명백한 실수였었다.


 왜냐하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군부 독재의 폭력을 목격했었던 사제였고, 그런 폭력을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었던 사람이었으니까. 더욱이 시복식을 비롯한 평소 그의 언행에서도 언제나 폭력은 정당하지 못하고, 약자의 말을 듣지 않거나 생각하지 못하는 지도자는 옳지 못하다는 메시지가 있었다. 그런 교황 앞에서 군 사열식을 일정으로 잡은 건 '멍청하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시민이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 지도자의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의 바른 자세다. 손에 쥐고 있는 권력을 이용해 개인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약자를 밟고, 약자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 지도자는 올바른 지도자라고 말할 수 없다. 지금 두 눈과 두 귀를 막고 있는 이 나라의 대통령 모습은 교황의 행동과 극명하게 대비를 이루었다.


ⓒ헤럴드경제 이형석 기자님의 이미지와 글 인용


 우리나라에서는 언제나 약자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한 채, 그저 힘을 가진 자의 횡포에 무릎 꿇고 피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옳지 못한 것을 '옳지 못하다'고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경찰이라는 공권력 앞에 피를 흘렸으며, 그들의 목소리는 언론을 장악한 권력 앞에 변질자의 목소리로 왜곡되어 '죽일 놈'으로 손가락질을 받기도 했다.


 이건 과거형이 아니다. 현재 진행형이다. 그리고 미래형이기도 하다. 이는 절대 부정할 수 없는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모습이다. 비단 한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힘을 가진 자가 가지지 못한 자를 힘으로 누르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좀 더 특이하게 이런 모습이 더 강하게 나타나고, 생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는데… 우리는 '더 밟아주세요'하고 있는 꼴이라니….


 물론, 이런 상황에서도 정말 자신이 죽음을 마주하더라도 진실을 애타게 외치는 사람이 있다. 세월호 유족 중 한 명인 유민이 아버지, 그리고 그를 응원하는 많은 사람이 그런 사람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 나라가 매몰차게 걷어차 버렸던 그들을 만나 손을 마주 잡아주었고,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진심으로 그들의 무운을 빌어주었다.


 거기에는 박 대통령이 선거 전에 흘린 가짜 눈물 같은 거짓이 섞여 있지 않았다. 진정성이 담긴 행동이었다. 사회적 약자의 손을 먼저 잡아주고, 눈을 낮추어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그대로 실천한 행동이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그의 목소리를 듣고, 그의 모습을 보고, 그의 행동을 보고… 가슴에 따뜻해지는 것을 느끼며 눈물을 훔쳤던 거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오기 전까지, 아니 오고 난 이후에도 시커먼 속을 가진 권력자들은 자신의 더러움을 감추려고 했다. 하지만 검게 물든 그 권력자들의 방해 속에서도 프란치스코 교황은 당당히 진정으로 자신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사람의 손을 마주 잡아주었다. 언제나 소통을 거부하고, 언제나 약자를 외면한 이 나라의 지도자와 권력에 '진짜 지도자의 자질'은 무엇인지 보여주었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이명박 대통령 때부터 지금 박근혜 대통령 시절까지 이어오고 있는 국민을 기만하는 행동은 많은 시민에게 '어쩔 수 없는 일'로 받아들여진다. 그들이 정당한 진실과 권리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는 사람을 경찰 방호벽으로 둘러싸고, 언론을 장악해 다른 시민의 눈을 돌리는 일이 아주 흔한 일이 되어버린 결과다.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서 종종 '나는 이 나라에 다 포기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마음 한구석에는 누구나 '그래도 더 나은 세상이 되었으면…. 더 나은 지도자가 있었으면….'이라는 마음을 품고 있다. 그래서 영화 《명량》을 통해 본 이순신의 모습에 감격했고, 영화 《변호인》을 통해 본 노무현의 모습에 감동했고,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모습을 통해 눈물을 흘렸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8월 20일에도 언론에서는 힘을 가진 자가 시민을 기만하는 행동이 여전히 보도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은 우리에게 '진짜 지도자의 자질'이 무엇인지 똑똑히 보여주었고, '사람이 선의를 가지고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진정으로 가치 있는 일이다.'라는 것을 몸소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통해 그런 사람이 먼저인 세상이 되지 못한,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오히려 고개를 숙여야만 하는, 약자가 점점 더 궁지로 내몰리기만 하는 우리나라의 불편한 진실을 엿볼 수 있었다. 교황의 방한은 그렇게 우리가 진실을 마주 보게 했고, 외신도 한국의 잘못을 보도하게 되면서 이 나라가 똑바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세계에 알리는 소중한 계기가 되었다.


 지금 우리는 이런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다. 많은 사람이 '선'을 이야기하면서 왜 당연한 것이 지켜지지 않느냐고 화내지만, 언제나 한 번의 분노로 끝나 바뀌지 않는 세상에서 '어쩔 수 없는 일'로 단념한 채 살고 있다. 비록 마음 한구석에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품고 있더라도 어쩔 수 없이 등을 굽힌 채 오늘도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오늘 우리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우리가 선택하고 지지하는 지도자는 어떤 지도자인가? 우리가 사는 어떤 나라인가? 지금 우리의 가슴에 손을 얹고, 그런 질문을 자신에게 던져보자. 과연 나는 어떤 나라의 어떤 시민으로 사는 지를…. 그러면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을 방문해 보여준 모습이 떠오르며 무엇이든 자신만의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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