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름표만 선진국인 대한민국의 국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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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ECD 국가, G20 국가, IT 강국? 하지만 여전히 대한민국은 후진국입니다.


 세월호 사건이 터지고 나서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고 있다. 늘 재난 특별방송을 하던 공중파 채널에서는 다시금 드라마부터 시작해 기존의 프로그램을 다시 진행하고 있고, 사람들 사이에서도 '그런 사건이 있었지. 빌어먹을 정부. 정말 안타깝다.' 식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아마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서도 이런 흐름 속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다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건 결코 그 행동을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다. 슬픔을 무조건 해야 한다는 강요는 절대 할 수 없으며, 원래 사람은 자신이 직접 당한 일이 아닌 이상 시간이 흐르면 남의 일에 대해서는 쉽게 잊어버리는 게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게 사람이라는 거다. 지금까지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전 세계 많은 나라에서 그런 현상이 꾸준히 반복되었다. 그래서 일부 국가에서는 잘못이 되풀이되기도 하고, 승자의 손에 의해 역사가 왜곡되어오기도 했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래도 나는 솔직히 말해서 무섭다. 이번 세월호 사고로 드러난 우리나라의 심각하기만 한 잘못이 전혀 개선되지 않은 채, 세월이 흘렀을 때 똑같은 사고가 그대로 반복될 것 같아서 말이다. 이번 세월호 침몰 사고를 계기로 드러난 많은 부정부패는 한 기업과 한 기관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줄줄이 많은 기관이 엮어있었다. 그리고 이와 함께 정부의 무책임한 행동과 바보 같은 짓은 '한국은 이름표는 선진국이지만 여전히 사회의 많은 시스템은 후진국이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었다.


ⓒGOOGLE IMAGE


 위에서 볼 수 있는 이미지는 과거 대선 기간에 해외 언론에서 보도되었던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기사와 사진이다. 아직도 이 이야기를 하는 건 조금 부담스럽지만, 타임을 비롯한 많은 외신에서 '독재자의 딸이 한 나라의 대통령 후보로 나와 많은 지지를 받는 건 보통 상식적으로 생각하기 힘든 일이다. 하지만 한국은 특이한 과거를 가지고 있어 그런 일이 가능하다.' 식의 내용이 많았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건 우리나라가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많은 경제 성장을 이루었기에 가능한 불합리한 일 중 하나였는데, 여전히 이 일이 많은 사람에 논란이 되고 있는 건 그만큼의 이유를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과정은 시작부터 끝까지 언제나 검은 의혹이 함께했다. 국정원 선거 개입 사건부터 시작해 정부가 본격적으로 들어선 직후에도 국정원 간첩 증거 조작 혐의까지 이어가며 지금도 언론 통제에 대한 의혹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박정희 대통령과 전두환이 나라를 지배했던 시절에 살았던 사람들은 '군사 독재 시절과 유사하게 흘러가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소름이 돋는다'고 곧잘 말한다. 아마 지금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서도 그런 사람이 있을 것이며, 일부 사람은 그래도 박근혜 정부를 지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은 아마 군사 정부 시절 큰 혜택을 입었거나 현실을 똑바로 보지 못하는 사람 중 하나일 거다.) 한 개인의 사욕을 위해 국민의 삶을 망치는 국가의 불편한 모습을 외면한 채 말이다.


ⓒGOOGLE IMAGE


 이번 세월호 침몰 사건은 그런 사고방식에서 썩은 뿌리로 힘들게 연명하고 있던 썩은 나무가 쓰러진 사건이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이렇게 안전 불감증과 허술한 행정 관리 문제, 부정부패와 비리로 인해 많은 재난이 발생했다. 하지만 그때와 조금도 달라진 것 없이 여전히 그런 재난이 발생하고 있는 거다. 참, 글을 쓰면서도 한숨이 저절로 나온다.


 얼마 전부터 난 《저는 인문학이 처음인데요》라는 책을 틈틈이 읽고 있다. 이 책에서는 아래와 같은 이야기를 읽어볼 수 있었는데, 이 부분은 정말 지금 우리나라가 처해 있는 상황을 잘 보여준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연고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나라가, 개인의 사욕이 국민의 안전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우리나라가 어찌 이 같은 비유를 피해갈 수 있겠는가.


법 윤리는 어떤한가? 한국사회에서 법학은 오래전에 인문학의 뿌리를 싹둑 잘라냈다. 오직 사법고시 준비만이 전부가 되어버렸다. 철학이나 미학은 아예 법학과 무관한 학문으로 치부된다. 유럽은 물론이고 흔히 경제 동물이라고 불릴 정도로 효율성에 집착하는 일본만 하더라도 법확과 출신 철학자나 문학가가 꽤 있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그런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법에서 윤리가 사라진 상태에서 법은 정해진 법률 내에서 유죄와 무죄를 판별하고 형량을 저울질하는 단순한 기술로 전락해버렸다. 이미 한국 법조계에서 오랜 전통으로 자리 잡은 '전관예우 관행'은 하도 유명해서 재판에 대해 약간의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정도다. 판사나 검사 출신이 변호사 개업을 했을 때 일정 기간 재판에서 '예우'해주는 관행 말이다. 말이 예우지 사실상 가장 치졸한 범죄 행위다. 해당 변호사가 맡은 재판에 대해 검사와 판사가 최소 형량을 구형하거나 선고한다. 재판이 정의와 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변호사의 출신에 의해서 좌우되니 법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사기 행위가 아니고 무엇이랴.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관행으로 이미 굳어져버려서 어디서부터 손을 봐야 하는지조차 막막할 지경이다. 법이 인문학의 기반을 잃어버리고 윤리에서 분리되는 순간 어떤 추악한 문제가 생길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p32)


무엇보다 인간은 이기적이다. 자신의 이익이 모든 가치에 우선한다. 다른 모든 가치는 이익을 위해서라면 한순간에 던져버린다. 자신에게 아무리 큰 은혜를 베푼 자라 하더라도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돌아선다. 다만 상대방이 힘이 있는 위치에 있을 때는 비굴할 정도로 복종의 태도를 취한다. 속된 말로 간이든 쓸개든 다 빼줄 것처럼 행동한다. 우리 옛말에도 대감 집의 개가 죽으면 문상객이 넘쳐나지만 대감이 죽으면 썰렁하다고 하지 않던가! 하지만 자신에게 이익이나 손해를 줄 수 있는 어떤 힘도 갖지 못한 상태로 전락하거나 혹은 어려운 처지에 있게 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외면한다. (p135)


 이번에서 볼 수 있었던 세월호 참사 사고에도 해운조합 이사장직은 해양수산부 고위직들이 36년 동안 독차지하면서 주무부처인 해수부가 낙하산 인사의 전관예우에 묶여 부실 감독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그 이외에도 언딘과 해경의 의혹도 커지고 있다.) 이런 우리나라에서 한 개의 기관이 똑바른 역할을 하기를 기대하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 아닐까. 오늘날 같은 일이 벌어졌음에도 앞으로 이런 일은 후진국처럼 계속 될 것이다.


ⓒYTN


 우리나라가 초기 미흡한 대응으로 안절부절못하며 희생자 가족과 국민을 상대로 정부와 언론이 대국민 사기극을 치고 있을 때, 4월 25일 스페인에서 발생한 여객선 화재 사건에서는 메뉴얼에 따라 신속히 대응해 한 명의 희생자도 없이 모두 구조를 하는 일이 있었다. 참, 어떻게 보더라도 우리나라가 너무 덜 떨어져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가 없다. 어찌 이런 나라를 선진국이라 할 수 있겠으며, '난 대한민국의 국민이야'라고 자랑스러워할 수 있겠는가.


 지금도 잘못을 똑바로 시인하고, 해결책을 위해 신속한 대응을 하기보다 어영부영 넘기고 있는 게 우리나라다. 세월호에 탔던 아이들이 모두 죽고, 일반 탑승객이 모두 죽고 나서 뒷수습만 하는 그들의 모습은 절대 국민을 먼저 여기고 있다는 뜻을 엿볼 수가 없다. 하나부터 열까지 미심쩍은 행동을 하며 국민 사이에서 '불신'을 부추기고, '분노'하게 하고 있을 뿐이다. 이건 과거형도 그랬고, 현재진행형도 그렇고, 아마 미래형도 그럴 거다.



 만약 선진국에서 이 같은 일이 일어났다면, 외신에서 보도한 것처럼 '지도자의 자리를 지킬 수 있는 자리는 지도자는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이런 일이 최악의 코스로 접어들었음에도 여전히 자리를 지킬 사람은 다 자리를 지키며 책임을 회피하면서도 떵떵거릴 수 있는 건 우리나라가 이름표만 선진국이지, 여전히 속은 부패하기만 한 후진국과 다름없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지금도 대한민국은 바뀌지 못하고 있다. 아니, 애초에 잘못을 인정하고 개선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그저 흘러가는 시간에 기대어 '시간이 흐르면 모두가 잊어버리겠지.'라며 지금 이 순간의 위기를 벗어나고자 할 뿐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런 모습은 지금만이 아니라 좀 더, 좀 더 긴 세월이 흐르더라도 바뀌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며칠 전에 내가 썼던 《세월이 지나도 바뀌지 않을 우리나라의 불편한 진실》에서 말했던 것처럼 말이다.


왜냐하면, 사태가 이 지경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이런 형식적인 사과만 하는 정부와 관료 인사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으니까. 그들은 지금도 '왜? 세월호 침몰은 선장과 청해진 해운 사장의 잘못이지. 정부가 무슨 책임이 있느냐?'고 주장하니 여기서 우리가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다. 그저 우리는 답답한 가슴을 두드리며 쓰디쓴 숨을 토할 수밖에 없다. 할 수 있는 건 오직 그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름표만 선진국인 대한민국의 힘 없는 국민이다. 당신은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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