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 박근현 씨가 산을 오르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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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 박근현 강연100℃, 내가 산을 오르는 이유


 현재를 사는 많은 사람이 너무 숨 가쁘게 앞으로만 내달리며 삶을 산다. 우리는 '앞만 보며 가라', '조금이라도 멈춰 서거나 되돌아보지 말라'는 가르침을 받았기에 우리 주변을 둘러볼 여유를 잘 갖지 못한다. 그런 삶을 살다 자신의 주변에서 소중한 무엇이 없어진 지도 모르고, 한참이 지난 뒤에야 우리가 잃어버린 것을 그리워하며 후회할 때가 많다. 혜민 스님께서 '멈춰야지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통해서 이야기한 '왜 멈춰야 하는가?'에 대한 이유도 그와 같다.


 이 글을 읽는 누구라도 '없어지기 전까지 절대 그 가치를 모른다'는 말을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는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을 너무 당연하게 여기는 경향이 상당히 많고, 그것이 지닌 가치를 잘 보지 못하는 예가 적잖다. 그리고 좀처럼 멈춰서 자신의 주변을 돌아보며 자신에 대해 생각해볼 시간을 갖지 않기에 더욱 그렇다. 이런 삶을 사는 것은 '빠르게 성공에 다가갈 수 있는 삶'으로 어느 정도 평균 점수를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삶'으로는 상당히 낮은 점수를 받지 않을까?


 사람들은 누구나 한 번쯤 자신에게서 잃어버리고 나서야 그 소중함을 알게 된다고 한다. 그런 계기는 꼭 잃어버려야만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혜민 스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잠시 멈춰 서서 생각해보면, 우리 주변에 있는 소중함을 알 수 있다. 오늘, 나는 우리 사람에게 있어 정말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고 나서 한때는 방황하였으나 지금은 새로운 세상을 만나 행복한 삶을 사는 한 명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시각장애인 박근현 씨이다.



시각장애인 박근현, ⓒKBS1 강연100℃


 박근현 씨는 처음부터 시각장애인이 아니었다. 평범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던 그는 30대 초반에 눈의 이상을 조금씩 느끼기 시작했다. 내가 보는 세상이 실제와 조금씩 다르게 보였고, 잦은 작은 사고를 많이 겪자 그는 병원을 찾았다. 병원에서는 그에게 "눈은 서서히 나빠집니다. 하지만 치료 방법은 없습니다?"는 말을 하였다. 그의 눈을 통해 보이는 세상은 마치 빛바랜 흑백사진 같은 세상이었다. 그러나 텔레비전과 컴퓨터 화면은 정상적으로 잘 보였고, 흰 A4 용지에 쓰인 검은 글자도 명확히 보여 일을 하는 데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그런 식으로 그는 눈은 불편했지만, '나는 장애인이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그는 버스에 교통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이때 박근현 씨는 안전 신발을 신고 있어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그의 몸보다 마음이 더 많은 상처를 입고 말았다. '버스도 보지 못하는 이런 눈으로 대체 내가 뭐하는 짓이냐?'는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 차 그동안 참았던 서러움과 불안감이 밀려오기 시작했고, 그것은 곧 분노가 되어 폭발하고 말았다. 그 당시에 그는 온몸의 피가 머리로 솟구치면서 파괴적인 충동을 보였었는데, 그 하루가 정말 힘든 하루였다. 그리고 다음날, 그의 눈은 마침내 모든 것이 뿌옇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조금씩이나마 보였던 컴퓨터 화면마저 보이지 않게 되자 그는 공포감을 느끼게 되었고, 공포감은 곧 원망으로 바뀌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멀쩡한 그의 겉모습을 보면서 "정말 눈이 안 보여?"라는 질문을 하였었는데, 이 질문은 그에게 더 심한 상처가 되었다. 결국, 그는 더이상 일을 할 수 없었기에 휴직을 내고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그의 원망은 점점 더 커져만 갔고, 자신의 슬픔에 빠져 가족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도 갖지 못했었다. 자신을 괴롭히는 그 괴로움 때문에 잠도 잘 이룰 수가 없었고, 나날이 병이 심해지면서 그는 마침내 가족의 도움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고 말았다. 그는 계속 세상을 원망했다.



 그러나 어느 날, 문득 그는 '뛰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히 자신의 마음에 들어왔다. 그는 아내에게 부탁하여 함께 자신이 자주 가던 공원으로 향했다. 그 공원에서 평소 쌓여있던 답답함을 조금이나마 풀 수 있었다. 그가 혼자 걸을 때에는 열 걸음도 못 걸었었다. 그러나 그날부터 매일매일 그곳에 가서 몇 걸음 걷고, 주위를 확인하며 고함도 지르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혼자의 힘으로 그는 집에서 공원까지 왔다갔다할 수 있게 되었다. 열 걸음도 못 걸었던 것에 비해 아주 큰 진보였다.


 그렇게 박근현 씨가 공원에서 돌아오고 있을 때, 산에서 내려오던 한 어르신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 어르신께서는 그에게 "너에게는 가족도 있고, 친구도 있다. 하지만 평생 네 손을 잡아줄 사람은 너 자신밖에 없다. 그러니 네 힘으로 일어서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었다. 박근현 씨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눈이 보이지 않는 자신에게 할 수 있는 것은 없었고… 두려움이 있었다. 이때 그는 '산꼭대기를 올라가 보자'는 한 가지 목표를 잡았다.


 산에 올라갈 때 사방이 보이지 않으니 헤매기가 일쑤였다. 그래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씩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때로는 돌과 같은 장애물에 넘어지면서 많은 상처를 입기도 했지만,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그런 식으로 산을 오르는 자신에게 손을 내미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는 그 손을 정중히 거절했다. 왜냐하면, 누구의 도움도 없이 자신이 길을 걷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넘어지고, 부딪히고 하면서 1년 6개월 만에 드디어 산 중턱에 오르게 되었다. 그런 식으로 산을 오르면서 그는 자신의 몸이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처음에는 그렇게 비틀거리던 몸이 어느새 꼿꼿이 허리를 세워 걸을 수 있게 되었고, 바위와 나무 장애물에도 익숙해지게 되었다. 산길에 익숙해지면서 그는 마침내 '나는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장애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 이후로 지금도 그는 매일 산을 오르고 있다.



시각장애인 박근현, ⓒKBS1 강연100℃


 우리 사람에게 눈이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은 엄청난 문제다. 우리는 지금 당연히 눈을 뜨고 있으면 세상이 보일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앞이 보이지 않게 된다면 어떤 기분이겠는가? 아마 도무지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누군가는 '더는 인생을 살기 싫다. 아니, 살 수가 없다'고 좌절하며 삶을 포기해버릴지도 모르고, "내가 이렇게 된 것은 다 세상 때문이다!"고 말하며 세상을 원망하며 분을 참지 못한 채 폭력적으로 변할지도 모른다. 그만큼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다.


 우리는 지금 우리 자신이 이렇게 생활하고 있는 것을 너무 당연히 여기기에 지금 이 순간이 정말 행복한 순간인 것을 잘 모를 때가 많다. 그리고 멈춰 서서 자신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지도 못했기에 그 소중함과 행복을 모른다. 하지만 박근현 씨처럼 어느 날 갑자기 당연했던 일이 불가능한 일로 바뀌게 되면, 그때야 비로소 우리는 그 소중함을 깨닫게 되고, 그 순간이 정말 행복했다는 사실을 체감하게 된다.


 박근현 씨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바로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것들에 대한 소중함과 지금이 정말 다른 누군가에게는 행복하기 위해 절실히 바랐던 한순간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아무 의미 없이 보낸 1분을 죽어가는 사람에게는 정말 절실했던 1분이라고 생각해보라. 어찌 그 시간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그 순간을 행복하다고 느끼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마지막으로, 박근현 씨가 자신의 이야기를 마치면서 덧붙였던 말을 남겨본다. 이 말을 통해 많은 사람이 자신이 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한 번도 가지 않았던 길을 걸어오면서 두렵지 않았냐고요?

두렵지 않았습니다. 산이 저를 받아주었기에.

저도 모르게 외쳤습니다. "야호! 해냈다! 박근현 장하다!"

제가 너무나 기특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제가 50년 동안 자신에게 칭찬해본 적이 없더라고요. 그동안 남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고, 칭찬받기 위해서 뛰었던 몸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한 번도 안 했더라고요. 비로소 가슴에 쌓인 응어리가 다 녹아내리더군요. 90%를 잃어도 남은 10%로 이렇게 꼿꼿이 일어설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어 정말 나 자신이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리고 산을 오를 때 내 몸을 산에 맡기고, 산이 가리키는 대로 걸어가는 느낌은 정말 신기로웠습니다.

산 정상에 올랐을 때 예전에 보이지 않던 새로운 것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산 정상에서 볼 수 있는 것은 풍경만이 아니더라고요. 산의 햇살과 바람, 소리와 향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과거에는 눈에 가려 보이지 않던 자연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산은 저에게 있어 무모한 도전의 대상이자 치유의 공간이었으며,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나를 생각할 수 있는 자유의 시간이었습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산을 찾아보십시오. 어쩌면 지금껏 만나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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