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아이는 자치권을 가졌나요?
- 시사/학교와 교육
- 2012. 3. 8.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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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무엇을 할 수도, 해볼 수도 없는 현재의 아이들…
글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한 가지를 설명하려고 한다. 내가 여기서 말하는 것은 '자치권'이지, '자취권'으로 오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내가 이 글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자치'는 아이가 어떤 행동을 함에 있어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을 말한다. 간단히 말해서, 자기의 일을 스스로 처리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내가 당신의 아이는 자치권을 가졌는지 묻고 싶은 이유는 요즘 아이들의 대부분은 스스로 무엇을 할 수가 없는 경우가 상당히 많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이의 능력이 그만큼 성장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부모가 지나치게 어릴 때부터 아이의 모든 행동 하나하나에 간섭을 심하게 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간단하게 생각해보자. 요즘 아이들은 공부를 하는 것에 있어서도 무엇하나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자신만의 계획을 세우거나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닌, 학원의 종합반에서 세워주는 계획대로 움직이며 공부를 해야 할 뿐더러 부모가 시키는대로 늘 국·영·수 위주로 공부하여야 한다.
이전에 이범 선생님께서 '요즘 아이들은 학습능력이 떨어진다.'고 말한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이유에서이다. 옛날에 공부했던 사람들은 전부 스스로 계획을 세워서 공부를 해보고, 공부한 내용을 스스로 노트에 요점정리를 해보기도 했었는데, 요즘 아이들은 그런 공부를 전혀 하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고 말하는 것이 옳은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생각대로 계획을 세우거나 하면 부모님으로부터 '왜 학원에서 시키는 대로 하지 않느냐!'라며 혼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 아이들은 학습능력이 상당히 떨어진다. 단순히 학업성취도만 높을 뿐이지, 무엇인가 할 수 있는 능력은 이전 세대와 비교하면 계속해서 감소하고 있는 추세이다. 이런 현상이 문제가 되는 것은 단순히 그것이 '공부'에만 제한이 되는 것이 아니라 차후 아이들이 커서 어른이 되었을 때도,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상당히 떨어지기 때문에 그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
지식콘서트 내일, ⓒ KBS
이러한 문제가 일어나는 것은 어릴 때부터 부모가 아이의 행동에 지나치게 간섭을 하는 것이 그 원인이다. 공부에만 그치지 않고, 부모님은 단순히 '사랑'이라는 이유를 대면서 아이의 행동 하나하나를 다 제약한다. '누구와 놀지 마.'라고 말하면서 아이들 간의 왕따를 부추기도 하고, '무조건 엄마가 시키는 대로 해!'라고 말하면서 아이 자신의 생각을 죽여버린다.
그런 성장환경에서 아이는 능동적인 사람이 아니라 수동적인 사람으로서 성장하게 된다. 그 결과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어른으로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많은 부모가 "도대체 넌 그렇게 살아서 뭘 하려고 그러냐!?'라고 아이에게 고함을 치지만, 아이가 그렇게밖에 성장할 수 없도록 한 것은 정작 부모님 자신인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물론, 그런 행동이 무조건 옳지 못한 행동이라고 콕 집어서 말할 수는 없다. 그것이 일종의 부모가 주는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관심을 받지 못한 아이들은 '애정결핍'으로 인하여 여러 문제를 가질 수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사랑'이 너무 지나치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무엇이든 과유불급의 원칙을 지키지 못하면, 그것은 전혀 이로울 수가 없다.
스무 살이 넘었는데 아직까지 엄마, 아빠가 시키는 대로 따라 하는 사람은 바보예요. 또 어릴 때 엄마, 아빠가 내가 하고 싶다는 일을 그냥 하게 내버려두지 않고 반대해서 내가 지금 이렇게밖에 되지 않았다며 부모님을 미워하는 사람도 바보예요. 내가 하고 싶은 걸 못 했다며 부모님을 미워하는 마음이 있다면 털어버려야 해요. 낳아주고 지금까지 키워준 것에 대해서는 고맙고 감사하게 생각해야죠. 하지만 스무 살이 넘었다면 성인이기 때문에 앞으로 계속 부모님 말을 들으면서 살 필요는 없어요.
물론 부모님은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나에게 이런저런 간섭을 하실 겁니다. 그런데 지금 내가 벌어서 학교를 다닐 수 있습니까? 엄마, 아빠가 해주는 밥을 먹고 엄마, 아빠 집에서 생활하고 학비나 용돈도 받죠? 부모 자식이라는 관계를 떠나서 내 생활에 필요한 이런저런 지원을 하는 후원자라고 생각하면 간섭은 조금은 감수해야 해요.
- 방황해도 괜찮아, 법륜
여러 가지 경험을 해나가면서 그러한 경험을 토대로 배워나가면서 성장하는 것이 가장 올바른 성장이다. 그러한 경험에는 무조건 성공만이 있을 수는 없다. 실패도 하면서 그런 실패를 통해서 더욱 자신을 강하게 하고, 그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 배워나간다. 그것이 실패가 가지는 의미다. 아이의 '자치권'이란, 스스로 자신의 의사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다. 그 의사결정을 통해서 하는 자신의 행동을 통해서 아이는 스스로 가르쳐 갈 수가 있다는 것을 부모님을 알아야 한다.
미국에서 공부할 때 룸메이트인 독일인 친구와 수영을 하러 바닷가에 간 적이 있었다. 그곳에는 한 일본인 모자가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었다.파도가 치는 해변가에서 아이는 모래장난을 하고, 엄마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파도가 위험해 보였는지 엄마는 "위험하니까 파도가 닿지 않는 곳에서 놀아라" 하고 주의를 주었다. 아이는 내키지 않은 얼굴로 파도가 치지 않는 곳으로 옮겨와 모래성을 쌓기 시작했다.
잠시 후, 파도가 아이의 바로 옆까지 밀려와 아이가 만든 모래성을 스윽 지워버렸다. 아이는 다시 모래성을 쌓았지만, 또다시 파도가 밀려와 모래를 한 입 베어 물고 도망갔다. 아이는 모래성을 쌓고 파도는 허무는 과정이 여러 번 반복되었다.
그러자 엄마는 조바심이 났던지 "처음부터 모래를 많이 모아두는 게 좋지 않을까?" 하고 말해주었다. 아이는 엄마의 말을 못 들었는지 자기가 하던 대로 계속 모래성을 쌓았다. 결국 엄마는 "주위에 구덩이와 성벽을 먼저 만들렴"이라고 하더니, 몸소 나서서 모래성을 쌓기 시작했다.이 광경을 본 독일인 친구는 웃음을 지으며 한 마디 했다."일본 사람들답다. 어머니가 몸서 나서서 무엇이든 해주잖아. 독일인들은 주로 '아이에게는 실패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내버려두는데, 그것과는 정반대야."
- 하루에 한 번, 마음돌아보기 中
그런 가르침을 할 때 부모님의 역할은 아이가 나쁜 길로 세지 않게 적절히 손을 개입하는 것이다. 잘못된 것은 분명히 '이것은 안 돼.'라고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부모님 개인의 생각을 벗어난다고 모든 것이 '안 돼.'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아이의 인생은 아이의 인생이다. 부모님의 욕심대로 살도록 바라는 것은 사랑이 아니기 때문이다.
조금 어렵게 말을 했을지도 모른다. 간단히 생각해보자. 무엇이든 자신이 직접 결정을 하여 행동을 할 때, 더욱 그 흥이 나는 법이고, 열정을 불태울 수 있는 법이다. 싫은 일을 억지로 시키거나 혹은 알아서도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누군가가 개입한다면 그 일에 대한 열정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아마 자신을 조금만 되돌아보더라도 이런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흔히 공부할 때, 스스로 계획을 세워서 하는 아이와 언제나 시키는 대로 하는 아이 간의 성적 차이가 벌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스스로 계획을 세워서 공부하는 아이와 누군가가 시켜서 하는 아이는 스스로 느끼는 '성취감'에서 확연히 차이가 나기 때문에, 성적이라는 결과에서도 큰 차이가 나는 것이다.
내가 '공부'를 자주 언급한 것은 많은 부모가 아이의 '자치'를 단순히 공부에 방해된다고 생각하여 억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부모님이, 어른이, 알아줬으면 한다. 어른의 올바른 역할은 하나부터 열까지 아이에게 일일이 지적하면서 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를 가르쳐주고, 스스로 해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올바른 역할이라는 것을 말이다.
스무 살 미만으로 자식이 어릴 때는 부모가 따뜻하게 돌봐줘야 합니다. 지금의 부모님들은 따뜻이 돌봐주는 건 옛날보다 잘해요. 과거의 부모님이란 자식들을 거의 방치하다시피 하셨거든요. 문제는 자식들이 사춘기를 넘어가면 정을 떼고 자립심을 키워줘야 하는데, 여전히 애완용 동물처럼 손안에서 돌보기만 하는 것이죠. 그 덕분에 남자 친구 사귈 줄도 모르고, 직장도 스스로 구할 줄 모르고, 스스로 자기가 할 줄 아는 게 없어요. 이런 결과는 전부 부모 탓이에요. 이런 건 사랑이 아니에요. 사랑은 어릴 때 따뜻한 게 사랑이고, 사춘기 때는 지켜봐주는 게 사랑이고, 스무 살이 넘으면 냉정하게 정을 끊어주는게 부모의 사랑입니다.
- 방황해도 괜찮아, 법륜
지금, 많은 대학생이 자신의 길을 가지 못한 채, 남들이 하는 대로 단순한 스펙쌓기나 고시공부에만 매달리고 있다. 그것은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있었던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의사대로 무엇을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마치 내가 긴 시간 동안 트라우마가 되어있던 사람에 대한 공포심과 불신이 현재 인간관계를 잘 구축하지 못하고, 사람들 사이에 있는 것이 힘들게 하는 것처럼 말이다.
아이가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단순히 '공부'에만 그치지 않고, 아이의 인생 전체를 보았을 때 상당히 이로운 가르침이다. 그런 가르침을 통해서 자립심을 키우고, 자신감을 키울 수가 있고, 절제심을 키울 수가 있다. 지금은 단순히 부모님의 욕심대로 아이의 행동을 제한하는 것이 이로울지 모르나,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는 전혀 이로울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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