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일상에 브레이크를 거는 짱구의 삐딱한 인생 기술
- 문화/독서와 기록
- 2020. 10. 19. 09:33
올해로 서른 번째 생일을 보낸 나는 아직도 투니버스 채널에서 틀어주는 애니메이션 <짱구는 못말려>를 자주 보곤 한다. 집에서 혼자 저녁을 먹는 시간이 가끔 <짱구는 못말려> 방영 시간과 겹치기 때문에 나는 굳이 다른 드라마 같은 걸 찾아보지 않고 <짱구는 못말려>를 시청한다.
투니버스에서 방영하는 <짱구는 못말려>는 새로운 에피소드를 만날 때보다 이미 본 에피소드를 만나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나는 <짱구는 못말려>가 방영하고 있으면 늘 드라마 같은 장르보다<짱구는못말려> 애니메이션을 시청한다. 왜냐하면, 이게 정말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보통 드라마 같은 경우는 재미있다고 해도 다소 주인공과 함께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거나 아파하거나 답답해하거나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애니메이션 <짱구는 못말려>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보면 된다. 짱구와 그 친구들의 이야기는 전혀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다.
물론, 이게 어린 아이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무엇이든 솔직하고 재미있고 좋아하는 것을 따라서 하는 이야기인 탓도 있다. 아니, 어쩌면 그래서 나는 <짱구는 못말려>라는 애니메이션은 지금까지도몇 번이고 보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짱구처럼 솔직하게 오늘을 보내고 싶기 때문에.
이번에 나는 <멀쩡한 어른이 되긴 글렀군>이라는 책을 만났다. 이 책은 <짱구는 못말려(일본 제목 크레용 신짱>의 주인공 짱구의 이야기를 소재로 해서 어른이 된 저자가 짱구의 어떤 모습에서 어떤 것을 느꼈는지 풀어낸 에세이다. 책을 읽으면 괜스레 나도 저자와 같다며 공감할 수 있었다.
책을 읽기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내가 잠시 멈춰서 생각한 부분은 ‘오늘의 고기만두를 내일로 미루지 말자’라는 소제목이 적힌 글이다. 이 글에서 다룬 <짱구는 못말려>의 에피소드는 매번 열심히 세뱃돈을 저금하는 철수와 그렇지 않은 짱구 두 사람이 서로 다른 태도를 보여주는 모습이다.
철수 : 세뱃돈은 저금해야 하는 거야. 나는 MMC 뱅크에 했지.
짱구 : 너 은행 앞잡이구나!
유리 : 신 짱은 어떻게 했니?
짱구 : 고기만두 사고, 잡지 사고, 신디 크로포드 사진집 사고....
유리 : 다시 말해서 다 써버렸다는 거구나....
아마 이 에피소드에서 어른들이 “착하다. 장하네!”라고 말하는 모범적인 어린이는 바로 철수일 것이다. 요즘 세대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와 같은 세대는 초중학교에 다닐 때 학교에서 지역 은행과 연계해 통장을 만들어서 저금을 하는 일이 있었다. 돈을 쓰지 않고 모으는 건 익혀야 하는 미덕이었다.
나도 어릴 때부터 내가 받는 용돈의 절반 이상을 사용하지 않고 저금했다. 개인적인 일을 통해 돈을 벌 때도 항상 50%는 저금을 하고 그 나머지로 돈을 쓰면서 살았는데, 지나고 보면 이 일은 절대 후회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지금도 그 당시에 저금을 해서 돈을 모으기를 잘 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모은 돈으로 무엇을 했느냐고? 나는 그 모은 돈으로 대학 등록금 일부를 내거나 대학에서 참여하는 해외연수 프로젝트 참가비로 활용하거나 일본 여행을 가거나 내가 사고 싶은 여러 기기를 사는 데에 사용했다. 결국 돈을 모으는 것도 내가 하고 싶은 소비를 위해서 모은 것이기 때문이다.
돈을 모았으면 계속해서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의견도 많지만, 모은 돈 중 일부를 짱구처럼 내가 사고 싶은 것을 사고 먹고 싶은 것을 먹는 데에 쓰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요즘 나와 같은 젊은 세대는 ‘욜로족’ 혹은 ‘탕진잼’이라고 해서 내가 버는 만큼 다 써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그야말로 짱구 같은 형태로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다. 나는 이런 사람들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의 삶은 저마다 사는 방식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그 사람의 소비 형태를 가리켜서 남이 뭐라고 말할 수는 없다. 단지 그 소비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안 된다는 거다.
위 에피소드를 다른 글에서 저자는 글을 이렇게 매듭짓고 있다.
매일 행복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 건 삶이 아닐 테니까. 행복한 삶을 원하지 않는 사람도 없고, 삶의 과정에서 참고 견디며 때로는 고통받는 게 인생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도 없다. 그러니 우리에게 가혹하지 말았으면 한다. 크고 거창하지 않아도 좋다. 유난히 지친 오늘의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 그것부터 시작해보자.
당장 몇 천 원이면 가능한 그날의 행복을 위해
작은 소비를 해보는 경험을 부디 차단하지 않길 바란다.
참고 견디며 버티다가 마지막에서야 오는 행복은
소멸하기 전에 반짝이는 별처럼 슬프다.
하루하루 작은 행복이 쌓여야 오늘의 내가 행복하고,
오늘의 내가 행복해야 미래의 나도 행복하다는 걸 기억했으면 한다.
인생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니까. (본문 31)
짱구와 철수, 유리 세 사람이 나눈 세뱃돈 이야기를 가지고 이렇게까지 생각해볼 수 있다는 게 참 재미있다. 짱구는 어린 아이이기 때문에 우리처럼 카드값이나 공과금 등을 내지 않아서 가볍게 생각할 수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걸 다 챙기면서도 오늘의 행복을 위한 소비를 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리고 굳이 탕진잼 같은 위험한 수준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소득 중 일정 금액을 저축하고, 남은 금액을 나를 위해서 사용하거나, 혹은 조금씩 모은 돈을 나를 위한 선물로 주는 합리적인 계획도 오늘의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선택지가 된다. 나는 그렇게 사는 인생이 진정으로 잘 사는 법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 <멀쩡한 어른 되긴 글렀군, 내 일상에 브레이크를 거는 짱구의 삐딱한 인생 기술>은 이렇게 짱구의 이야기를 통해 저자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느낀 감정과 저자가 하는 여러생각에 대한 이야기가 정리되어 있다.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또 자신만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해석하며 생각해볼 수도 있다.
또 한 장면을 살펴본다면 아래에서 볼 수 있는 나도 언젠가 애니메이션으로 보았던 골프 연습을 하는 아저씨와 짱구의 이야기가 그려져 있다.
이 이야기는 회사 골프 회동에서 반드시 꼴지에서 탈출하고자 비장한 각오로 연습을 하는 아저씨가 자신의 옆에서 한사코 장난이나 치며 멋대로 스윙을 하며 골프를 즐기는 짱구에게 신경을 쓰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아저씨는 처음에 짱구에게 “나는 진지하게 골프를 치고 있다!”면서 버럭 화를 냈다.
그때 짱구는 주눅이 들거나 울지 않고 “난 재밌어서 치든 건데”라며 당당히 말한다. 짱구의 그 모습에 아저씨는 “재미라... 그러고 보니 골프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재밌어서 어쩔 줄 몰랐는데.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점수에만 신경쓰느라 골프를 할수록 스트레스가 쌓이고 있다.”라며 자신을 돌아본다.
그리고는 짱구처럼 골프를 즐기기 위해서 짱구에게 어떻게 하면 즐길 수 있을지 배운다. 짱구는 그런 아저씨에게 “자기 마음을 솔직히 꺼내! 생각하지 마! 가슴으로 느껴! 점수는 신경쓰지 마! 여자 눈을 신경 써라!”라며 코치한다. 그야말로 짱구다운 모습이다. 이게 참 마냥 웃기면서도 확실한 메시지가 있었다.
분명히 우리는 재미있어서 시작한 일이, 내가 좋아해서 시작한 일이 어느 새 스트레스 덩어리가 되어버리거나 나 스스로 행복하지 못하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 그 이유는 전적으로 두 가지다.
한 가지는 좋아하는 일에 몰입하면 할수록 나약한 자신을 마주하게 되고, 같은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과 끊임없이 비교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한 가지는 스스로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심적 부담이 좀처럼 내가 좋아하는 일을 처음 그 일을 시작했던 때처럼 도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내가 좋아해서 시작한 일, 재미있어서 시작한 일을 끝까지 가지고 가지 못할 때가 있다. 만약 지금 그러한 시간에 빠져 있다면, 다시 한 번 더 처음으로 돌아가 내가 어디에서 두근거림을 느껴서 지금의 일을 시작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때처럼 다시 즐기는 거다.
즐거운 글쓰기로 돌아가기 위해 짱구의 가르침을 적용해 보면, 글쓰지 자체를 둘러싼 복잡한 생각들과 당장 답이 나오지 않는 답답한 고민은 좀 내려두고 일단 그냥 뭐든 쓰는 거다. 재밌는 순간과 감정에만 집중하라는 단순한 진리 말이다. 성공한 이들 모두 이렇게 별거 아닌 태도로 놀라운 성취를 이뤘다는 사실을 떠올려본다.
’생각은 무슨 생각을 해. 그냥 하는 거지 뭐’라는 김연아도
모두 짱구의 가르침을 자신의 일과 삶에 적용하고 있다. 그러니 눈 딱 감고 짱구를 한번 믿어보려고 한다. 삶에 대한 고민에 휩싸여 골몰하다가 점점 경직되기보다는, 즐겁고 가벼운 몸풀기 상태로 하루하루 활기찬 삶을 살기로 다짐해본다. (본문 141)
오늘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어떤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가? 우리는 매일 열심히 살아가면서도 갑작스레 ‘나는 이렇게 살아가도 되는 걸까?’ ‘나는 왜 이 일이 재미있지 않지?’라며 내 인생에 대한 고민을 마주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괜스레 누군가와 비교하다가 괴로워하거나 자책하지 말자.
우리에게 필요한 건 짱구 같은 솔직함과 오늘을 즐기는 태도다. 갑작스럽게 마음이 다운되는 날이 온다면 그때는 가볍게 VOD로 <짱구는 못말려> 애니메이션을 다시 보자. 어릴 때 본 애니메이션 <짱구는 못말려>는 적적한 우리의 마음을 금방 잊게 해주거나 생각지도 못한 메시지를 줄지도 모른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이 책 <멀쩡한 어른 되긴 글렀군>을 통해 <짱구는 못말려>를 통해 볼 수 있는 여러 에피소드와 저자의 에피소드를 읽어볼 수 있기를 바란다.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오늘을 살아가는 저자가 짱구를 통해 느낀 감정과 메시지는 우리에게도 괜스레 다가올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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