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딸을 위해 그린 일러스트 에세이집, '너는 아빠가 좋아?'
- 문화/독서와 기록
- 2020. 2. 12. 08:47
최근 나이가 서른이 넘어가면서 어머니나 어머니 지인과 친척에게 “결혼은 언제 할 거냐? 사귀거나 만나는 사람도 없어?”라는 말을 듣는다. 이미 어머니는 내가 사람들과 만나는 것 자체를 꺼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거의 마음을 놓으셨지만, 그래도 마음 한구석의 미련을 버릴 수 없는 것 같다.
더욱이 최근에는 사촌 형이 아이를 낳았기 때문에 매번 사촌 형의 아이, 즉, 나에게 있어 조카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예준이가 너무 귀엽다!”라면서 야단법석을 떠신다. 그런 어머니의 모습과 결혼을 해서 잘살고 있는 형의 모습을 보면 참 기묘한 기분이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비록 현실에서 그런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더라도 나는 종종 책을 통해서 따뜻한 가족의 일상 이야기를 읽곤 한다. 이번에 읽은 <너는 아빠가 좋아?>라는 이름의 일러스트 에세이도 그런 종류의 책으로, 아이를 낳아서 기르는 아빠가 아이와 보내는 일상을 옮긴 짧은 일러스트 만화를 소재로 하고 있다.
<너는 아빠가 좋아?>를 넘기면 평소 읽은 만화와 다르지만, 상당히 정겨운 그림체와 일러스트에 담겨 있는 소소한 일상에서 느껴지는 행복과 온기가 느껴진다. 그렇게 책을 천천히 넘기면서 저자가 바라보는 저자의 딸 츠무기의 일상을 보고 있으면 괜스레 옅은 미소가 지어졌다.
평소 DIY 작업을 좋아해서 이것저것 만드는 저자는 빵을 좋아하는 딸을 위해서 츠무기 빵이라는 이름의 작은 빵집을 만들어주기도 하고, 츠무기의 관심을 받기 위해서 이런저런 일을 하는 모습이 너무나도 따스하게 잘 그려져 있다. 책을 읽으면서 문득 이런 게 아빠의 감정인가 싶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도 아빠와 관련해서 좋은 추억을 별로 갖고 있지 못하다. 자주 가정폭력을 행사한 아빠의 모습은 어쩌면 있었을지도 모르는 좋았을 기억을 모두 지워버렸고, 어른일 뿐만 아니라 부모가 되어서도 책임감 없이 사는 모습은 너무나도 보기가 싫었다.
지금은 어머니와 이혼을 해서 연락을 끊은 채 살고 있는 아빠도 처음에는 <너는 아빠가 좋아?>의 저자와 같은 모습이 있었을까?
모르겠다. 아주 어릴 적에 남아있는 아빠의 모습은 칼을 들고 어머니를 협박하며 도박할 돈을 내놓으라고 하는 모습이고, 조금 더 성장해서 기억에 남아있는 아빠의 모습은 나와 동생이 보는 앞에서 어머니를 때리는 모습, 그로 인해 어머니가 우리에게 “너희들도 다 죽어!”라며 분풀이를 하는 모습이다.
그런 시간을 무려 19년 동안 겪으면서 보냈다. 자아가 똑바로 형성되지 않아 기억이 흐릿한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서 민감한 사춘기 시절, 나아가 대학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그런 모습을 도돌이표를 마주하는 것처럼 반복해서 보았다. 그렇기에 나는 웃음이 도란도란 피어나는 행복한 가정을 믿지 않는다.
지금은 이혼했기 때문에 어머니와 나와 동생 셋이서 살면서 큰 갈등 없이 살고 있다. 하지만 과연 여기에 ‘가족의 정’이라는 게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냥 함께 살기 때문에 함께 살고 있는 것뿐이고, 이제는 나와 동생이 모두 어른이 되어 각자 살아가기에 모두 각자 할 일을 하면서 살 뿐이다.
나는 아빠의 가정 폭력을 눈앞에서 겪으며 자랐던 시절에 학교 폭력까지 경험한 터라 더욱 사람을 꺼린다. 시간이 흘러 다소 나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나는 사람들과 불필요하게 얽혀야 하는 오프라인은 낯설고 불편하다. 그래서 친구와 만나는 일도 드물고, 정기적으로 연락을 하는 일도 드물다.
나는 그저 오늘 이렇게 책을 읽고, 책을 통해 만난 이야기로 내가 알지 못했던 따스한 온기를 느끼거나 혹은 즐거움과 재미를 느끼면서 후기를 쓸 뿐이다. 그렇게 나는 부족한 감정을 배워왔고, 채워왔다. 오늘도 <너는 아빠가 좋아?>라는 책을 통해 내가 알지 못하는 평범한 아빠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평범한 아빠는 이렇게 아이를 소중히 대하고,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면서 고이 보관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물론, <너는 아빠가 좋아?>의 저자가 우리 사회의 평범한 기준인지는 알 수 없다. 그래도 나는 <너는 아빠가 좋아?>라는 책을 읽으며 잠시나마 따뜻해서 좋았다.
츠무기에게
사람과 사람을 잇고, 꿈을 잇고,
하나, 하나 세심하게 시간을 들여 이어서
완성된 것으로 누군가를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싶다.
네 이름에는 그런 마음이 담겨 있단다.
네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아빠는 인스타그램도 안 했을 거고,
물론 네 성장이 이렇게 많은 사람의 응원을 받을 일도 없었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벌써 많은 사람을 이어주고 있구나.
네 만화를 보고 지친 누군가가 위로를 받고,
누군가가 가진 아이와의 추억의 문을 두드리고,
누군가가 열심히 육아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건
츠무기가 처음으로 이뤄낸 멋진 일이야.
네가 보내는 소중한 시간을 사람들과 공유하는 건
물론 아빠에게도 굉장히 멋진 경험이 되고 있단다. (본문 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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