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법 수업, 로마법을 통해 본 오늘의 모습
- 문화/독서와 기록
- 2019. 10. 11. 09:08
대학에서 나는 법학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법과 사회에 많은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교양 과목으로 늘 법과 사회와 관련된 과목을 찾아서 들었다. 그러다 우연히 만난 수업 중 하나가 로마법을 통해 살펴보는 법 수업으로, 당시 그 수업을 통해 법만 아니라 로마의 역사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당시 수업은 재미있게 들었다고 말하기보다 그냥 중고등학교 시절에 배운 세계사를 재탕하는 형태로 수업을 들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상당히 유익한 수업이었다. 그 당시에 들은 로마의 역사와 관련된 이야기는 오늘날 인문 교양 도서를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는 배경지식이 될 수 있었다.
덕분에 나는 오늘 <로마법 수업>을 남들보다 조금은 부담을 덜 가지고 손을 뻗을 수 있었고, <로마법 수업>에서 읽을 수 있는 내용을 깊이 살펴보며 저자가 말하는 오늘을 함께 고민해볼 수 있었다.
책의 제목이 <로마법 수업>이라고 하더라도 이 책은 그렇게 딱딱하게 법의 탄생 배경과 법과 관련된 주요 해설을 다루고 있지 않다. 물론, 어느 정도 해설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 해설은 대체로 우리가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게 되어 있고, 오늘날 우리 사회의 모습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기도 하다.
과거 <라틴어 수업>의 저자로 베스트셀러 저자 반열에 오른 한동일 작가는 <로마법 수업>을 통해서도 라틴어를 사용했던 로마의 당시 법을 다루고 있다. 하나의 법 조항이 가지고 있는 라틴어 하나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설명하고, 당시 로마법을 어떻게 해석해 오늘을 바라볼 것인지 고민하게 한다.
덕분에 책을 읽으면서 상당히 능동적인 독서로 책을 읽을 수 있었다. <로마법 수업>의 첫 장에서 다루어지는 로마에 존재했던 노예 제도와 함께 노예와 자유인에 대한 부분에서는 아래와 같은 글을 읽어볼 수 있다.
로마의 자유인과 노예의 실상을 알고 나니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똑같은 모습을 한 사람끼리 어떻게 저럴 수 있지?’ 싶어서 화가 치미나요?
그러나 저는 어떤 면에서는 로마시대와 오늘날에는 큰 차이가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노골적인 신분제만 없다 뿐이지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조건과 양상은 어떤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처럼 보이거든요. 물론 오늘날에는 ‘자유인인가? 노예인가?’라고 대놓고 묻거나 신원을 조회하는 일은 거의 없지요. 하지만 지금도 우리 사회는 소속과 경제력에 대해 교묘한 질문을 통해 끊임없이 사람을 가르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정규직인가? 비정규직인가?”
“당신은 전임교수인가? 시간강사인가?”
“당신은 서울캠퍼스 학생인가? 지방캠퍼스 학생인가?” (본문 26)
이 부분만 읽어도 <로마법 수업>이라는 책이 어떤 형태로 이루어진 책인지 알 수 있다. 이처럼 우리는 오늘날 법의 기초가 된 로마법을 통해서 어떤 식으로든 우리 사회에 질문을 던져보면서 오늘날 우리 사회 문제를 한 번 더 살펴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로마법 수업>을 읽는 일은 무척 좋았다.
위에서 저자가 던진 세 가지 질문은 늘 우리 사회에서 갈등을 빚는 문제이기도 하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전임 교수와 시간 강사, 그리고 서울 캠퍼스와 지방 캠퍼스. 이 모든 게 차별을 정당화하는 요소로 이용되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뜨거웠던 이슈 중 하나는 '임대 아파트'와 '분양 아파트' 간의 차별이다.
임대 아파트와 분양 아파트 사이에 커다란 벽(실제로)을 만들거나 혹은 화재 시 대피 엘리베이터 유무로 차별을 하는 등의 형태는 오늘날에 볼 수 있는 '똑같은 모습을 한 사람끼리 어떻게 저럴 수 있지?'라며 화가 치밀게 하는 요소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가 변하지 않는 이유는 그런 걸 당연하게 여기기 때문은 아닐까?
분명히 자신이 소유한 만큼 다른 대우를 받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실력이 다른데도 같은 대우를 원하는 건 또 하나의 불평등을 만드는 화근이다.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다르다=틀리다'라는 인식이다. 이 인식을 바로 잡지 않는 이상 결코 우리 사회는 앞으로 한 걸음 더 내딛지 못할지도 모른다.
어떻게 본다면 제목 <로마법 수업>이 어렵게 다가오는 책이다. 하지만 막상 책을 읽으면 로마법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다. 그리고 저자가 던지는 말하는 로마법에 대한 해석과 함께 오늘날 우리 사회를 고민하게 하는 질문은 적극적인 책 읽기를 하게 한다.
오늘 잠시 시간을 내어 생각하는 책 읽기를 하고 싶은 사람에게 <로마법 수업>이라는 책의 일독을 권하고 싶다. 여기서 이야기를 마치기 전에 늘 우리 사회에서 뜨겁게 논란이 되는 출산율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는 부분을 잠시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당시 로마와 사회의 수많은 노예들에게는 피임이나 비혼의 개념조차 없었겠으나, 저는 로마사회의 교묘한 출산 장려책들을 보고 있노라면 또다시 지금 우리 젊은이들이 맞닥뜨리고 있는 엄혹한 현실이 겹쳐 보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보통 가정의 자녀들은 자라서 상당수가 서비스직에 종사하게 될 겁니다. 정당하게 대우받고 사명감을 느낄 수 있는 서비스직들도 많으나, 감정노동과 갑질, 박봉 속에서 박탈감을 느끼며 최저임금만 간신히 받고 일해야만 하는 젊은이들은 훨씬 더 많겠지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출산을 기피하는 현상에는 이러한 배경이 그 밑바탕에 깔려 있는 건 아닐까요? (본문 72)
<로마법 수업>은 하나의 이야기를 끝낼 때마다 늘 저자가 한 차례 독자에게 질문한다. 그리고 독자는 저자가 던진 질문에 대해 ‘나는 평소 어떻게 생각하고 있더라?’라며 몇 번이고 물으면서 수동적인 독자가 아니라 적극적인 독자가 되어 책을 읽게 된다. 이런 게 진짜 ‘인문학’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책을 읽으면서 다시금 로마법만 아니라 로마의 역사에 대해 배울 수 있어서 좋았고, 오늘 우리가 접하는 많은 사회 문제와 갈등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어서 좋았다. 이 책은 혼자 읽어도 좋은 책이지만, 독서 모임 같은 곳에서 함께 읽으면서 이야기하기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선택은 당신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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