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렇게 사랑하고야 만다, 시간을 멈춰 세우는 듯한 에세이

 지난 몇 년 동안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 좋은 글은 무엇인지 생각해본 적이 있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 누군가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 힘을 꾹꾹 눌러서 쓴 글은 솔직히 말해서 좋은 글이 되지 못했다. 그런 글은 뭔가 엉성할 뿐만 아니라, 과연 그 글에 ‘나의 진심’이 담겨있는지도 알 수가 없는 글이었다.


 과거에 내가 쓴 글을 읽어보면 좀처럼 글이 와 닿지 않거나 부끄러운 이유도 그렇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은 자연스럽게 내 마음에서 샘솟는 감정, 내가 시도 때도 없이 하는 바보 같은. 망상을 자유롭게 옮길 수 있는 글이었다. 하지만 글을 쓰다 보면 유난스럽게 나는 ‘한 문단은 3줄(아이패드 메모 어플 기준)’이라는 형식에 얽매여 지나치게 딱딱한 글이 되어 자연스러운 글이 되지 못했다.


 아이패드 블루투스 키보드를 두드리며 글을 쓰는 지금도 ‘3줄’이라는 걸 무의식적으로 맞추기 위해서 길이를 조절하고, 어떤 식으로 더 이야기해야 할지 고민하며 글을 쓰고 있다. 이렇게 하지 않으려고 의식을 하고 있지만, 또 막상 쓰다 보면 3줄을 맞추기 위해서 문장을 적고 지우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이상하게도 나는 문장을 한두 줄을 쓰고 엔터키를 누르면 지나치게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 이렇게 글을 써도 되는 걸까 같은 의문보다 ‘깔끔하게 3줄을 맞추고 싶다.’라는 집착에 가까운 고집이 엔터키를 과감히 누르지 못하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쓰는 글은 지나치게 힘이 들어가는 걸까?


 이렇게 뭔가에 갇혀버리는 듯한 내 글과 달리 아주 자연스럽게, 무엇보다 책을 읽는 독자가 마음에 편해지는 글을 쓰는 작가의 새로운 에세이가 발매되어 이번에 읽었다. 그 에세이는 <우리는 이렇게 사랑하고야 만다>라는 이름의 에세이로, 책을 읽으면 흘러가는 시간이 멈추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에세이인 만큼 <우리는 이렇게 사랑하고야 만다>에서 읽을 수 있는 이야기는 특별하지 않다. 책에서 읽을 수 있는 이야기는 우리가 일상 속에서 한 번쯤은 본 풍경, 한 번쯤은 마주한 감정, 한 번쯤은 마주한 사람의 모습이 담겨 있다. 단지, 우리는 그때 느끼지 못한 특별한 감정을 저자는 풀어낸다.


 가령 이런 이야기가 있다.


“엄마. 언제 와? 벌써 30분 지났잖아. 응. 대충 뭐 먹었어. 어떻게 여기서 숙제를 해. 알았으니까 빨리 와.”

학원 끝나고 데리러 오겠다던 엄마가 많이 늦었나 보다. 때마침 나도 피디에게 연락이 왔다. 수정할 사항이 몇 있다고. 어쩔 수 없이 앉은 자리에서 일했다. 한참 동안 남자애도 나도 휴대폰만 쳐다보고 있었다. 편의점 문소리가 들릴 때마다 남자애가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엄마는 오지 않았다. (본문 57)


 위 이야기에서 읽을 수 있는 한 남자아이의 모습은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풍경 속에서 곧잘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아니, 볼 수 있는 것만이 아니라 어쩌면 저렇게 우리가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서 “엄마, 언제 와? 벌써 30분이나 지났잖아?”라며 볼멘소리로 약속시간에 늦은 걸 불평을 했을지도 모른다.

 

 얼마 전에 나도 그런 일이 있었다. 어머니가 잠시 납품을 하러 갈 일이 있다고 해서 사무실에 오라고 하셨다. 나는 만지작거리고 있던 영상 편집을 멈추고, 장갑을 끼고 어머니 사무실로 갔다.


 그런데 어머니는 때마침 사무실에 온 친구분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고, 점심때 먹으려고 아침에 미리 사뒀던 김밥과 삶은 계란을 그분과 함께 드시면서 좀처럼 갈 생각을 하지 않으셨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이제 곧 가겠지.’라는 게 20분이 넘게 흐르자, 나도 모르게 고함을 치고 말았다.


“엄마! 안 갈 거가!? 도대체 언제 갈 거고!?”


 나도 모르게 고함을 치고 나서 아차 싶었다. 그 순간 어머니와 친구분은 잠시 얼어붙었고, 어머니는 “알았다. 빨리 갔다 오자.”라며 비로소 갈 채비를 하셨고, 어머니 친구분은 “나중에 다시 올게.”라며 내 눈치를 살피셨다. 어머니와 함께 납품을 하러 가면서 내가 이런저런 잔소리를 들은 건 말할 필요도 없다.


 아마 이렇게 사소하게 누군가와 부딪히는 이야기는 우리 모두가 겪는 이야기다. 저자 또한 그렇게 친구와 사소하게 부딪힌 이후 편의점에서 한 남자애를 만났고, 그 남자애의 모습을 옆에서 우연히  보면서 느낀 감정을 덤덤하게 풀어내고 있다. 앞서 소개한 이야기의 뒷부분을 조금 옮기면 다음과 같다.


“엄마는 왜 맨날 약속을 못 지켜.”

남자애 목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그 애. 화난 목소리가 아니었다. 속상해하고 있었다. 엄마가 안 오는 게 아니라 못 오고 있다는 걸, 약속을 꼭 지키고 싶지만 못 지키고 있다는 걸, 그 애는 알고 있었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휴대폰 너머 엄마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학원 선생님인 친구가 그랬었다. 요즘 애들은 밖에서 놀 시간이 없다고. 엄마 아빠는 맞벌이에 바쁘고, 학교 끝나면 아이들 맡길 데가 마땅치 않아서 어쩔 수 없이 학원 여러 개를 뱅뱅 돌린다고. 저녁 시간 학원에 오는 애들이 ‘선생님 배고파요. 밥 못 먹었어요.’ 소리가 정말 마음 아프다고. 어른이고 아이고 다 안타까운 현실이지 뭐.

그땐 다른 세계 이야기 같아서 와 닿지 않았다. 그런데 남자애를 보고 있자니 이게 진짜 우리 세계 이야기구나 싶었다. 그렇담 너무 씁쓸한 세계였다. (본문 58)


 어떤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지만, 이야기를 읽다 보면 문득 우리가 겪었거나 혹은 지나쳐온 풍경이 머릿속에 떠올라 괜스레 이야기가 더욱 깊이 들어왔다. 고수리 작가의 글은 늘 이런 식으로 눈이 아니라 가슴으로 읽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나는 이 작가의 글을 좋아한다.


 비가 오고 난 이후 맑은 하늘을 볼 수 있었던 건 아니지만, 아직 개지 않은 흐린 하늘 아래 뒷산의 새소리가 들으며 나는 <우리는 이렇게 사랑하고야 만다>를 읽으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처음에는 책을 다 읽고 후기를 쓰려고 했다. 하지만 책을 읽고 있으면 글을 쓰고 싶어서 어쩔 수가 없었다.


 <우리는 이렇게 사랑하고야 만다>라는 에세이는 그런 에세이이다. 책을 읽으면 마음이 괜스레 편안해지기도 하고, 작가가 바라보고 글로 옮긴 아주 사소한 일상의 풍경과 감정은 문득 독자마저 글을 쓰고 싶게 한다. 마치 ‘나도 이런 경험이 있었어. 나는 그때 이런 생각을 했었지.’라면서 말이다.


 너무나 바쁘게 흘러가는 시간을 멈춰 세우는 듯한 에세이 <우리는 이렇게 사랑하고야 만다>. 고수리 작가의 이 에세이는 점심 후 카페라테 한 잔과 어울리는 에세이, 자기 전에 진정한 의미로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 읽기 좋은 에세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당신에게 휴식이 필요하다면 힘껏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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