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드 인 강남, 화려한 조명에 감춰진 그림자
- 문화/독서와 기록
- 2019. 4. 8. 09:16
우리가 사는 세상에 낙원이란 건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리 화려한 조명 아래에서 빛나는 무대 위에서 모두가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더라도, 항상 빛이 닿지 않는 곳에는 짙은 어둠이 깔려있기 마련이다. 아니, 짙은 어둠보다 더 새까만 어둠은 바로 화려한 조명을 받은 피에로 아래의 그림자에 있다.
얼마 전에 언론에 노출된 연예인 승리가 운영하는 강남 클럽과 관련된 사건들은 그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다. 연예인 승리는 연예인 활동만 아니라 사업가 활동으로 크게 성공하며 모두가 바라는 무대 위에서 화려한 조명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정체는 너무나도 추잡한 피에로였다.
승리 강남 클럽 사건으로 인해서 화려한 조명 아래에서 대중을 현혹하는 다수의 피에로가 무더기로 정체가 탄로 나며 무대에서 내려오고 있다. 하지만 승리 강남 클럽 사건의 핵심은 무대 위의 피에로 같은 몇 연예인들의 추잡한 놀음이 아니라, 무대 위에서 일어난 마약과 관련된 권력 유착 비리가 핵심이다.
그런데 문제는 한사코 피에로 몇 명이 일으킨 범죄가 1면에 보도될 뿐, 깊숙이 숨겨져 있는 권력 유착 비리와 함께 탈세, 마약 등 큼직한 범죄들은 1면에 좀처럼 게재되지 않는다. 이제야 겨우 재벌 2, 3세들의 문제가 중간 마약 유통업자를 통해 드러났을 뿐, 아직도 파헤쳐야 하는 어둠은 너무나 깊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감춰진 문제가 명명백백하게 드러나 관계자들이 처벌받으리라는 걸 거의 기대하지 않고 있다. 왜냐하면, 그 새까만 어둠의 영역에 있는 관계자들은 쉽게 무너지지도 않을 뿐더러, 광대를 몇 명이나 내세워 방패 막이로 삼을 수 있으니까.
현실은 늘 그렇다. 우리는 정의가 똑바로 서기를 바라지만, 우리가 바라는 정의나 우리가 목격하는 정의는 심각하게 일그러져 있다. 오늘 읽은 <메이드 인 강남>이라는 소설은 어느 도시보다 화려하게 빛나는 조명으로 낮과 밤에 빛나지만, 그 아래에 칠흑 같은 어둠을 칙칙한 분위기로 그려낸 소설이다.
<메이드 인 강남>을 읽으면서 나는 과거 장강명 작가가 쓴 <댓글부대>와 무척 닮아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메이드인 강남>에서 그려지는 이야기는 강남에 자리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유흥업소의 그림자가 아니라, 그 유흥업소를 관리하는 실질적인 지배자의 그림자를 덤덤하게 그리고 있다.
유흥업소라고 하더라도 일반 사람들도 누구나 한 번쯤 가거나 들어봤을 키스방, 오피방, 룸살롱 같은 게 아니다. 그야말로 승리 강남 클럽에 존재했다고 밝혀진 VIP 룸처럼, 일반 사람들이 접할 수 없는 숨겨져 있지 않지만 숨겨져 있는 그런 장소가 이번 <메이드 인 강남>에서 일어나는 사건 무대가 된다.
그리고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 무대에서 일어난 사건의 배후에 있는 인물, 사건을 이용해 이익을 얻고자 하는 인물, 사건의 VIP를 위해 디자인하는 인물 등이다. 이렇게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해 이야기를 빠르게 진행하는 소설 <메이드 인 강남>은 책을 읽는 내내 무심코 두통을 느끼게 했다.
내가 소설을 읽으며 두통을 느낀 이유는 소설에서 그려진 묘사가 너무나 강했기 때문이다. 실질적인 주인공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건을 디자인하는 인물 민규의 시점에서 본 그림, 그리고 사건을 통해서 개인적인 이익을 얻고자 하는 재명의 시점에서 본 그림이 무심코 눈을 찌푸리며 미간을 잡게 했다.
<메이드 인 강남>은 그런 소설이다. 말로만 들었던 텐프로와 관련된 이야기도 있고, 유흥을 잘 모르는 사람이 ‘어? 이런 게 있어?’ 놀랄 수밖에 없는 소설. 텐프로 이야기는 인터넷을 통해 들은 적이 있었고, 고급 인물들은 한번 자는 데에 엄청난 비용이 든다는 걸 알고 있어도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소설 속에 그려진 건 어디까지 ‘진실을 이용한 허구’다. 현실에서 소설에서 그려진 살인 사건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소설에서 그려진 약에 취해 남녀가 뒤엉키는 모습은‘현실’로 우리가 승리 강남 클럽 사건을 통해 목격했다. 그래서 이 소설은 내심 수준의 차이는 있을 지언정 있을 법하게 느껴졌다.
자세한 이야기는 직접 <메이드 인 강남>을 읽어 보기를 바란다. 이런 생각을 해서는 안 되는 거라고 생각하지만, 내심 강남의 1%가 모이는 그 업소와 돈으로 살 수 있는 인물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기는 하다. 그저 거리에 나도는 싸구려 찌라시 업소가 아닌, 일반 사람은 범접할 수 없는 업소의 그 인물은 어느 정도일까?
이런 나도 참 어쩔 수 없는 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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