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육아, 딸바보 아빠의 현실밀착형 육아 에세이


 KBS2 채널에서 방영하는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보면 매일 육아에 힘쓰는 아빠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건 조금 잘못된 사례다. 왜냐하면,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등장하는 가정은 비현실적으로 부유한 가정이라 그 모습이 곧 우리의 모습이라고 일반화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부모들은 넓은 집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부지런히 뛰어다니게 할 수 있다. 심지어 카메라가 따라다니는 상황 속에서 부모와 함께 외출을 자주 할 뿐만 아니라 어릴 때부터 맹목적인 지지와 같은 사랑을 받는다. 그런 아이들은 세상이 마치 모두 자신의 것처럼 느껴질 거다.


 그런데 현실은 이와 너무나 다르다. 보통 맞벌이를 하는 가정의 아이들은 뛰어다닐 수 있을 정도로 넓은 집이 없고, 공공장소에서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짓궂은 장난을 치면 ‘귀엽네.’라는 표정의 얼굴이 아니라 ‘뭐야? 도대체 부모는 뭐 하는 작자야?’라는 소리 없는 비난을 부모가 대신해서 받게 된다.


 우리 서민이 직접 겪는 현실의 육아는 <슈퍼맨이 돌아왔다> 같은 상위 계층이 즐기는 육아와 다르다. 훨씬 더 혹독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전혀 똑같은 점이 없는 건 아니다. 똑같은 점 중 하나는 ‘아이는 절대 부모의 말을 쉽게 듣지 않고, 또 하나는 아주 기발할 정도로 사고를 친다는 점이다.


 오늘 소개하고 싶은 <좀비 육아>라는 도서는 전 세계 어디서나 똑같은 그런 아이를 돌봐야 하는 부모의 현실적인 육아를 특이하게 풀어낸 에세이다. 책의 저자가 사용한 방식은 세상에 좀비 바이러스가 퍼지면서 종말의 위기가 왔지만, 그래도 부모는 아이를 돌봐야 한다며 육아 이야기를 전한다.



 사실 나는 육아와 별로 관련이 없다. 불과 수십 년 전이라면 이미 아이를 둘은 낳아서 기르면서 살아가야 하는 나이이지만, 오늘날 결혼 평균 연령을 기준으로 하면 아직 육아는커녕 결혼도 하지 않았을 시기다. 더욱이 내 세대인 90년생은 최악의 남녀 성비 116.5로 결혼할 짝을 찾기 어렵다고 한다.


 비록 결혼이나 육아 같은 이야기는 남의 이야기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불과 수십 년 전에는 ‘아이’였던 터라 나와 같은 세대는 우리 자신이 어떤 악동 기질을 가진 아이인지 돌아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좀비 육아>라는 책을 읽다 보니 무심코 쓴웃음을 짓거나 숨죽여 웃는 장면을 자주 만났다.


 우리와 계층이 다르다고 해도 아이들의 장난으로 헬 게이트가 열리는 건 모든 계층이 비슷하다. <좀비 육아>의 제2장은 ‘꼬마 자살 특공대’라는 소제목으로, 미처 생각지 못한 방식으로 아이들이 저지르는 위험한 장난이나 반항적인 기질에 대해 말한다. 내가 미친 듯이 웃었던 장면을 가져왔다.


훈훈한 미담과 상관없는 보통 어린이는 타인이 물론 심지어 자기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쓸모없기만 한 게 아니라 숫제 죽고 싶어 안달을 한다. 애들은 원래 그렇게 생겨먹었다. 자신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한 일이라도 부모 말이라면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다. 애들한테 버려진 광산에 가서 놀거나 마약을 하라고 부추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반대로 부모는 채소를 먹으라고 하거나 찻길에서 놀지 말라는 무리한 요구를 한다. 그러면 아들딸은 영양실조에 걸린 채 차에 치여 죽으려고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다. 다행히도 이런 노력은 대개 수포로 돌아간다. 애들은 심지어 죽는 데도 소질이 없다. (본문 54)


 흔히 아이들은 청개구리에 비유하며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 않는다고 부모들이 곧잘 말한다. 이런 모습은 서민 계층의 아이만 아니라 부유한 계층의 아이도 마찬가지다. 서민과 부자라는 계급에 상관없이 아이들은 모두 한결 같이 악동이다. 대신 부모가 그 행동에 어떻게 대응하는 지가 크게 다를 뿐이다.



 부모의 대응 방식에 따라 미래는 천국과 지옥이 결정된다. 아이를 방치하거나 혹은 하나뿐인 내 아이’라며 그 잘못된 행동을 모두 덮으려고 한다면, 그 아이는 정말 승리가 운영하는 클럽 같은 장소를 들락날락하며 마약에 찌들거나 범죄에 노출된다. 이미 그 상황부터 아이에게 미래는 없어진 거다.


 이렇게 말을 듣지 않는 아이들이 커서 엉망진창이 된 어른으로 성장한 사례는 SNS에서 빠르게 퍼진다. 이뿐만 아니라 아이 한 명을 키우는 데에 드는 비용은 점점 더 아이를 낳아서 기르고자 하는 의욕을 갖기도 전에 꺾어버린다. 아마 나와 같은 젊은 세대는 자신과 부모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버린다.


 책에서 꽤 재미있게 이러한 현상을 정리하고 있다.


엄마 아빠가 늘 그렇게 유능했던 건 아니다. 의학이 발전하기 전 부모들은 자식이 멍청한 실수를 저질러 죽지 않게 보호하는 데 애를 먹었고, 유아 사망률도 훨씬 높았다. 하지만 치명적 사고는 대수롭지 않은 취급을 받았다. 아이를 대체 불가능하며 유일한 존재로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족은 기계였고, 아이들은 교체 가능한 부품이었다. 고칠 방법이 없었으므로 부품이 망가지면 새것으로 갈아 끼웠다. 성인이 될 때까지 살아남는 자식이 하나도 없을까 봐 부모는 아이를 대량 생산했다. 반면 오늘날 부모는 모두 살아남을까 봐 자식을 적게 낳는다. (본문 58)


 그냥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익살스러운 묘사임을 이해하기를 바란다. 저자가 말한 대로 과거에는 아이가 쉽게 죽어버렸기 때문에 아이를 많이 낳아야 했지만, 오늘날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기대 수명이 무려 100세에 이른다고 한다. 그래서 굳이 많을 낳을 필요도 없고, 굳이 더 피곤해질 필요도 없다.


 요즘은 노동이 가능한 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했다면서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의견이 커지고 있지만, 아마 그러한 걱정은 빠르게 성장하는 고성능 AI 시스템이 장착된 로봇이 차츰 대체해가지 않을까 싶다. 그만큼, 우리는 아이를 낳아서 길러야 하는 합당한 이유가 점차 사라지고 있는 상황인 거다.


 어쩌면 그래서 요즘 아이들은 더 육아가 힘든 건지도 모른다. 많은 아이도 아니고, 많아도 둘 뿐인 자식이니 어찌 부모가 감싸지 않을 수 있을까? 때때로 ‘이건 천사가 아니야 악마야!’라는 생각이 들어도 부모는 그 험난한 육아를 감당해야 한다. 좀비 바이러스가 퍼져도 부모가 할 일은 변하지 않는다.


 살짝 글이 지나치게 비관적인 글이 되어버리고 말았지만, 오늘 소개한 책 <좀비 육아>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두커니 아이에 맞서며 육아를 해야 하는 부모의 상황을 재치 있게 풀어내고 있다. 아마 실제로 아이를 기르는 부모의 입장이라면, 이 책에서 많은 공감을 하거나 웃으면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 위 도서는 해당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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